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1 장

1

항구의 해가 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가싶게 먼 해구로부터 시꺼먼 먹장구름이 우우- 바람소리를 내면서 뭍쪽으로 밀려들었다.

산더미같은 파도가 방파제를 들이친다. 그 물갈기에 질겁을 한듯 갈매기들이 아츠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울부짖는 바다와 노호하는 구름장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손을 뻗치면 기슭에 닿을듯한 섬마을- 형형색색의 판자집들과 초가마가리들이 위태위태해보이는 영도는 이미 먹물을 토하는듯한 먹장구름속에 삼키워버렸다.

바다에서는 대륙의 교두보, 대륙에서는 대양의 출구라고 일컫는 오랜 력사의 항구도시 부산시가도 소리치며 밀려드는 그 먹장구름앞에 부르르 치를 떠는가싶다.

젖소의 젖통처럼 바다로 삐죽삐죽 내밀렸다고 하는 항부두에서는 더우기 아우성이다.

짐들을 만재한 기선들은 물론 방금 빈배로 밀려들었던 큰 짐배들이 더우기 겁을 먹고 우왕좌왕 헤덤빈다.

아직 기차구경조차 못했다는 외진 산골녀인들의 가냘픈 손가락에 끼였던 은가락지, 동가락지는 물론 시아버님 밥상에 정히 닦아올리던 놋숟가락, 놋저가락까지 말짱 빼앗아 실어내가는 항구이고보면 갑자기 들이닥치는 자연의 노호에 겁을 먹을만도 했다.

멸망을 앞두고 침략과 략탈이 최절정에 이르렀던 1944년, 그 한해동안에 조선의 철광석만도 550만톤, 선철 54만톤, 강재 11만 1천톤을 략탈해가려 획책했으니 항차 떵떵 얼어붙는 겨울도 아니요, 산천이 한창 살찌고 무르익는 가을철이고 보면 부두마다에 쌓이고 덧쌓인 이 나라 재부가 어이 철광석이나 선철, 강재뿐이랴. 일본본토와 태평양전선으로 실어간다는 산악처럼 줄줄이 쌓인 쌀가마니더미들은 물론 목화, 콩, 담배, 석탄, 원목… 삼천리 이 땅안에 있는것이라면 안실려온것이 없는데 그 아비규환의 살풍경속에 더우기 사람들의 가슴을 긁는것은 넓으나넓은 부두에조차 더는 자리를 낼수가 없어 바다가해수욕장쪽으로 쑥 내밀어놓은, 한산한 모래불에서 울리는 소떼의 처량한 영각소리였다.

폭풍아, 벼락을 쳐라. 바다여, 더 노호하라. 우죽뿌죽 일어선 저 부두가의 기중기라도 콱 자빠뜨려라. 굶주린 악마처럼 철덕철덕 기슭에 달라붙는 짐배들을 뒤엎어 바다속에 처넣어라!…

밤이 깊어가자 항구는 물론 온 부산시가는 더우기 숨막히는듯 한 질곡속에 빠져들었다. 도시상공을 꽉 채우고 짓누르는 먹장구름때문인지 어느 골목에든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의 가슴을 끓이던 모래불의 소영각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부두가 터지게 찼건만 아직도 무엇을 끌어들이는지 기관차의 거쉰 기적소리가 몸서리치게 꽤―액 꽤―액거리고 도대체 그 탁성에는 어울리지 않게 어느 양옥에선가 울리는 앵앵거리는 샤미센소리와 함께 간드러진 왜년들의 간지럼타는 소리가 딴세상처럼 터지군 할뿐이다.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그 어둠의 질곡을 쫙쫙 헤가르며 두줄기의 눈부신 불줄기가 골목골목을 미친듯이 헤집더니 시가지 한복판에 달팽이잔등처럼 우뚝 두드러진 공원입구로 쑥 들어섰다.

찌르는듯한 불줄기속에 공원의 잔디밭에 솟아난 이채로운 집, 주런이 늘어선 군용풍막이 드러났다.

몰풍스럽게 승용차문 여닫기는 소리가 탕탕 밤공기를 뒤흔드는것과 동시에 절그럭거리는 군도소리, 무엇인가 차던지는것 같은 무거운 구두발소리가 어지럽게 일었다. 뒤미처 세네줄기의 군용전지불이 번쩍거리는데 제일 가까운 천막앞에 서있던 감때사납게 생긴 군졸 하나가 쇠꼬치를 삼키기라도 한것처럼 꼿꼿해졌다.

전지불줄기들은 군졸의 눈섭이라도 셀듯이 꼼꼼히도 비춰본다. 이어 전지불들은 다른 천막을 향해 얼른거리고 묵직하게 위협적으로 뚜걱거리는 구두발소리는 매 천막의 보초병들앞에서 한참씩 멎군 했다.

천막주위를 일일이 다 돌면서 경비정형을 알아본 군용전지의 주인들은 선택검열이기라도 한듯 가까이 있는 한 천막앞에 이르러 다짜고짜 《나들문》을 홱 잡아제꼈다. 캄캄한 풍막안을 전지불로 쭉 훑었다. 형형색색으로 배좁게 드러누운 청장년들을 하나하나 세여보기라도 하듯 얼굴들을 비쳐보던 전지불이 문득 한 청년의 얼굴에 멎었다.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듯 꼼짝도 않는 얼굴에 잠시 멎었던 전지불은 이내 다시 그옆의 몸체 다부진 젊은이한테로 옮겨졌다가 껌벅 꺼져버렸다. 이어 볼장을 다 본 모양 전지불을 끈채 들어올 때처럼 홱 돌아서서 급히 군용승용차에 올라탔다.

승용차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한참이나 부르릉거리며 발동소리를 요란스레 냈다. 한동안 그렇게 부르릉거리면서 곱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을 험창스레 짓뭉개놓고서야 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보초병들은 발끝이 패일만큼 안도의 숨을 내쉬고나서 목덜미의 땀을 씻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절그덕거리는 군도소리와 위협적인 구두발소리는 천막안의 공기도 바짝 긴장시켰었다. 비몽사몽간에도 고향집뜨락에 쓰러져 땅을 치며 통곡하던 늙으신 부모님들과 동구까지 맨발로 따라나오며 몸부림치던 철없는 아이들, 안해들 모습에 터져나오던 흐느낌도 뚝 끊어졌다.

천막들에는 지금 징병으로 끌려가는 수백명의 청장년들이 누워있었다. 이미 중국동북지방의 100만 관동군은 물론 태평양전선의 력대 해군장군들도 꺼져가는 운명에 직면하자 놈들은 부랴부랴 본토사수의 발악적전략을 폈으니 《특별수상근무부대》의 명목으로 경상북도 대구, 영천, 성주일대에서만도 6천여명의 조선청년들을 오끼나와전선에 강제로 끌어갔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번에 또 수백명의 청장년들을 몰아가고있었는데 그들이 부산에 도착한것은 하루전이였다.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야 할 인원은 그들뿐이 아니였다. 오끼나와전선뿐이 아닌 일본본토의 여러 전선들은 물론 계속 증파해야 할 태평양전선의 징병자들도 며칠째 항구안의 림시숙박소며 야외천막속에 감금되여 허덕이고있었다. 어찌 징병으로 끌려온 청장년들뿐이랴. 징용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수는 또 얼마인지 모른다.

결국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야 할 연체품은 결코 부두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산뿐이 아니였다. 그 《인체의 연체품》들, 방금 전지불빛이 비쳐들었던 천막속에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장철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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