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2 장

6

장작을 패는 도끼질소리가 어찌도 야무진지 집앞으로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며 혀를 차군 한다.

까만치마허리를 노끈으로 꼭 졸라매고 저고리팔소매를 살짝 걷어올린 영옥이는 도끼를 내리찍을 때마다 도톰한 입술을 꼭 옥물군 했다. 기둥감을 잘라놓은것 같은 통나무토막들이 두쪽으로 쩍쩍 갈라질 때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꽃송이처럼 활짝 웃군 한다.

장철석은 토방에 앉아 한없이 정찬 눈으로 그의 장작패는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여느 처녀들이라면 기어코 달려들어 보란듯이 제가 힘뽑기를 했으련만 오늘은 부러 끝까지 지켜보기만 할 심산이다.

아니, 영옥의 그 담차고 여무진 일솜씨가 눈물나게 보고 또 보고싶었던것이다. 저 처녀가 정말 10년전 조선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아녕하시니까?》하고 발음이 분명치 않은 말로 깍듯이 인사를 하군 하던 그 《미쯔꼬》란 말인가?

세상일도 참!

그 정상이 생각할수록 눈물겹고 그 성장이 바라볼수록 목이 메였다.

제 이름을 스스로 영옥이라고 고쳤다니 그 한 소행에만도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져있는가, 영무가 이 소식을 안다면 얼마나 목메여할가. 그 착하고 고운 마음이 짓밟히기는 또 얼마나 모질게 짓밟혔던가.

우리 조선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그렇게도 착하고 마음이 곱고 웅심깊은데 이놈의 세상은, 왜놈의 종자들은 어이 그리 모질고 악착스럽기만 할가!

한인준으로부터 영옥이가 10년전의 《미쯔꼬》라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매일이다싶이 갱으로 오며가며 그의 집에 들려보군 하는 철석이였다. 마침 그의 하숙집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철석은 하루일을 마치면 자연 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는 한인준의 약속대로, 그의 소개로 광산 북갱의 광부로 들어갔었다.

이 광산은 범갱, 선녀갱, 당산갱, 북갱으로 갈라져있었다. 네개의 갱들은 다 제나름의 깊숙한 골안에 들어앉았다.

장철석은 같은 값이면 한인준이 일하는 선녀갱에서 그와 함께 일하고싶다고 했다. 한인준은 첫마디에 도리를 저었다. 물론 자기도 그러고싶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여기 상풍광산도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손에 들어갔다. 동무의 말을 들어보면 그놈이 동무를 알아보았을뿐아니라 《형제계》에까지 손을 뻗쳤던게 분명한데 이제 그놈이 여기 나타나면 동무를 몰라본다고 장담할수 있겠는가고 했다.

북갱은 광산사무실에서도 십리나 멀고 험한 곳이여서 광주도 조만해서는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곳인데다 그 갱에는 아직 조직선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지 못한것만큼 한번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보라고 권고하였다.

조직에서도 물론 경각성을 높이고 관심을 돌리겠지만 혹시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나타나는 경우 절대 로출되여서는 안되겠다는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한인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철석이 입갱을 한지 아흐레째 되는 날 진짜 그놈이 나타났다. 하루일 끝내고 갱을 나서려는데 낯모를 한 청년이 갱어구에서 팔을 잡아끌면서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나타났으니 내려가지 말라고 알려주는것이였다. 걱정보다 먼저 속이 울컥하여 광산사무실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바위투성이의 산마루로 올라갔다. 다행히 그놈은 사무실에만 들렸다가 해떨어지기전에 인차 차를 타고 돌아가버렸다.

한인준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했지만 내가 왜 저놈을 피해야 하며 더우기는 숨어지내야 하는가 하는 울화만은 여전했다. 저놈이 우리 《형제계》성원들을 징병, 징용으로 다 뽑아보낸게 분명하단 말이지 하고 생각하면 언제든 돌벼락이라도 콱 안기고싶었다.

한인준의 보증으로 그는 인차 광산반일지하조직성원이 되였다.

그는 이곳 조직이 구창광산에서 제가 조직했던 《형제계》와는 비할바없이 째이고 규률이 엄격한데 점점 더 탄복했다. 규률중에도 특히 엄한 규률은 비밀엄수였다. 조직망과 그 규모는 한인준외에는 누구도 몰랐다. 《형제계》에서는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전체 성원들이 다 모여앉군 했는데 여기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

어떤 때는 두세명, 제일 많이 모여서 예닐곱명정도인데 철석은 그 사람들이 다 일정한 지역을 담당한 소조책임자들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 조직밖의 성원들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백번 옳은 일이였다.

《형제계》도 그렇게 했더라면 놈들이 《뉘집어내듯이》 그렇게 말짱 골라 징병, 징용으로 끌어가지 못했을것이였다.

하긴 김일성장군님의 항일유격대정치공작원이 직접 나와 조직하고 지도한 조직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소조책임자들은 태반이 광부들이였지만 때로는 농사군청년도 보이고 손바닥에 송진이 꺼멓게 배인 벌목공도 있었다.

장철석은 비로소 이곳 조직이 광산뿐아니라 린근의 각곳에 그 산하조직을 두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였다.

오긴 면바로 찾아왔다. 어서 김일성장군님의 유격대공작원을 만나게 될 날만을 고대했다.

한데 그 공작원이 박상이와 함께 잘못되였다지 않는가!

그 기막힌 사연을 알게 된 날 밤 철석은 제사 더 펄펄 뛰였다.

밀정, 옳다!

틀림없이 밀정이 있다. 나도 그런 놈때문에 열물같은 고배의 쓴맛을 볼대로 봤다. 늙다리 승냥이같은 이찌가와 노리아끼놈이 이 광산이라고 그런 끄나불을 박아넣지 않았겠는가. 그 밀정놈을 잡아내기 전에는 아무 일도 못한다. 당장은 그놈부터 적출해야 한다 …하고 열을 올렸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도 그만 한인준은 일체 움직이지 않았다. 자주 모이던 소조책임자들의 모임도 열지 않았다.

참다참다 못하여 철석은 한인준과 마주앉았다.

어쩌자는것인가? 지내 겁을 먹은건 아닌가?

책임자가 움직이지 않는 조직은 사실상 죽은 조직이나 같지 않느냐고 했다.

《이것 보오. 내 일생에 두가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는데 말이요. 북주하양주공장에 있을 때 숙감 영무를 보면서 찾은 교훈이 뭔가? 일본놈들한테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한다는거요. 깜찍하기 이를데 없는 족속들이란 말이요. 난 강동지가 희생된 후에도 놈들이 입김 한번 내불지 않고 잠잠해있는게 무척 불안하고 이상하오. 분명 무서운 꿍꿍이를 하는것 같단 말이요.

두번째 교훈은 내가 나자신한테서 뼈저리게 찾은것이요. 놈들과의 싸움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사람은 단호할 땐 단호해야 한다는거요. 좋은 기회는 두번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소. 내 그때 양주공장에서 말이요. 에―에, 생각할수록 분하거든, 왜 그렇게 철이 없었댔는지…》

한인준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전혀 탓하는 기색이 없었다.

장철석은 열이 더 와짝 났다.

끝내는 이곳 조직이 정 그렇게 주저앉아 맥을 놓고있게 되면 자기는 원래계획대로 국경을 넘어가겠다고 했다.

한인준은 신중해졌다. 구창광산에 갔다와서 하던 조직성원의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원래는 소심한 성격이였다. 그 성격을 고치고 강해지려고 무척 마음썼다. 일단 결심이 서면 머리가 깨지고 허리가 부러져나가는줄도 모르고 기어코 해낸다.…

그러니 이제는 반대쪽, 다른켠으로 탈선이 된다는것인가?

믿음만은 더욱 뜨거워졌다.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말을 누구보다 많이 했다는 통보만으로도 그랬다.

《형제계》도 장군님에 대한 말을 듣기 제일 좋아하는 광부들로 조직했다지 않는가.

옳다, 중국 동북지방바람을 직접 맞아본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가.

마음은 뜨거웠지만 한인준은 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 보오 철석동무, 사람은 물론 결단성도 있고 단호할 땐 단호해야 하는거요. 하지만 무분별해서는 안되오. 무분별해서 초래되는 후과가 더 엄중한 때도 있는거요.》

한인준은 열에 들뜬 장철석을 어떻게 진정시킬지 그 신통한 묘안이라도 찾듯 잠시 마주보기만 하다가 목소리를 좀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우리 주위에서 밀정이 움직이고있다는 말은 물론 옳소. 방금 철석동무가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는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그말도 옳소. 강동지를 생포하려던 놈들이 그 비밀음모가 실패했는데도 왜 잠잠한가? 모략도 보통모략을 꾸미는것 같지 않단 말이요. 속이 떨리지 않소? …그래서 우린 더 신중해야 한단 말이요. 철석동문 아직 잘 모르는것 같은데 우리 조직은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구상을 받들어나가는 혁명조직이요. 우리 조직의 활동을 장군님께서 지켜보신다고 생각해야 한단 말이요. 알겠소? 제멋대로 흥분하고 제 마음내키는대로 할 권리가 없소.》

《아, 내 말은…》

《또 덤비는군, 진정하구 듣소.》

한인준의 목소리는 다시 높아졌다.

《새 공작원은 꼭 올거요. 지금의 정세가 그걸 증명해주지 않소. 놈들이 허둥거리는걸 좀 보오. 철석동무도 부산항에서랑 제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하지 않았소. 어떻게 해야겠는가? 침착해서 기다려야 하오. 본격적으로 조직을 확대해나가야겠소. 경각성을 바짝 더 높이면서 …이건 강동지가 떠나면서 몇번이고 신신당부한거요. 마지막당부, 알겠소?》

철석은 말이 막혔다.

한인준의 말은 가슴의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질을 한 셈이였다.

만약 그의 말대로 조국해방작전이 당장 눈앞에 박두하고 그를 위해 새 공작원이 온다면 굳이 앉아서 기다릴게 뭔가 하는 생각이였다.

혹시 봉빈이나 영무, 관길이, 기철이들이 압록강건너 어디까지엔가 와서 장군님의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하고있는건 아닐가 하는 생각에 잠을 못잤다.

공작원들이 반드시 또 온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압록강건너 가까이에 분명 장군님부대가 와있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매양 여기서 우물우물 할게 있는가.

강만 건너가면 틀림없이 그 부대를 만날것 같았다. 설사 부대를 직접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곳에도 혁명조직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 조직선만 타면 얼마든지 소원성취를 할수 있을것이다…하고 하루밤에도 몇차례나 천리성만리성을 쌓아보군 했다.

고맙게도 그 심정을 지지하고 무작정 따라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차창일이였다. 어떤 날에는 저이상 흥분하기도 했다.

《옳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예요. 우리가 이렇게 가만 앉아만 있어가지고는 절대로 밀정놈을 잡아낼수 없어요. 그건 놈들의 모략에 말려드는거나 같아요. 아이들싸움에서두 상대가 미처 묘술을 생각해내기 전에 답새겨놓아야 이긴다는 말이 있잖나요. 명백한건 우리가 움직여야 그놈들도 움직인다는거예요. 안그래요?》

새 공작원이 온다고 해도 우리가 사전에 그놈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느냐고 윽윽했다.

《좋아요. 인준형님이 그런 립장이라면 난 철석형님을 따르겠어요. 가자요. 우리 둘이서라도 압록강을 건너가자요!》

장철석은 영옥이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차창일은 혁명을 하는데 사랑때문에 발목을 잡혀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따라나서면 같이 가는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해방이 되는 날까지 여기서 오빠의 투쟁이나 잘 도와주면서 기다리면 될게 아니냐는것이였다.

단호한 그 성미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인정과 혁명 … 어느것을 앞세우고 어느것을 희생시켜야 하는가를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차창일이 오랜 혁명가처럼 돋보이기도 했다.

다시금 북주하양주공장에서 봉빈네를 따라가지 못했던 후회와 함께 그래도 자기한테는 사람복이 있는게 아닐가 하는 긍지감도 생겼다.

부산까지 끌려갔다가 순철이를 만난것도 그렇지 않는가.

참, 그는 어떻게 됐을가? 또 붙잡혀가지는 않았을가? 그가 진짜 약속대로 여기로 올가?

혜영의 생각도 터질듯이 가슴을 끓이였다.

장철석에게는 이즈음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하면 무작정 접근하여 동정을 살피는것이였다. 세상형편을 알려는 갈증에서였다. 혹시 혜영의 소식을 안고오는 사람은 없을가? 혜영이 아니라도 놈들에게 끌려간 다른 처녀들의 소식이라도 듣고싶었다.

그는 정말 어떻게 됐을가?

생각은 이래저래 속불을 와짝 더 지피고 그 불길은 그만큼 또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하겠다는 곬으로 굽이쳤다.

혼자 떠나든 차창일과 같이 떠나든 어쨌든 한인준은 만나야 했다. 조직의 규률이기 전에 인간적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한인준과 마주앉아보려고 찾아왔는데 웬일인지 그는 날이 퍽 저물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장작을 다 팬 영옥이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장한듯이 방싯방싯 웃어보였다. 내처 패놓은 장작들을 아름아름 안아다가 부엌문앞에 쌓기 시작했다.

그 일에는 철석이도 팔을 걷고나섰다.

둘이 한창 장작을 날라다 쌓고있는데 대문이 열리면서 차창일이 성큼 들어섰다.

영옥이는 좀 긴장해했다. 요즈음 이 집 걸음이 전에없이 찌우뚬해졌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던것이다.

오빠때문이라는것도 알고있었다.

며칠전 차창일이 제 성미대로 영옥이앞에서 한인준의 우유부단성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그때 영옥이는 처음으로 당돌하게 나무람을 했었다.

《글쎄 잘 모르긴 하겠지만 난 오빠가 옳다고 봐요. 난 한번도 오빠생각이 잘못되고 오빠하는 말이 그릇된것을 본적이 없어요. 거기선 …우둘쩍거리며 덤비군 하는게 탈이예요.》

차창일은 귀뺨을 맞은것처럼 아연해했다. 부끄러움에 앞서 자존심이 상했다. 가뜩이나 속이 끓던 때라 영옥이한테 화를 왈칵 냈다.

《좋아. 거기서 그렇게 본다면 … 난 더 할 말이 없지!》

그랬던 차창일이니 철석이까지 앉아있는 마당에서 영옥이를 대하는 품이 고울리 만무했다.

아니나다를가 영옥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첫마디부터 퉁명스러웠다.

《인준형님이 내포국집으로 빨리 오래요.》

밑도끝도 없는 말이였다.

철석은 그저 의아해서 창일을 쳐다보았다.

차창일은 또 무엇이 못마땅한지 여전히 철석이와 영옥이는 보지 않은채 장작개비들을 와락와락 안아다 부엌문앞에 부지런히 가려쌓았다.

영옥이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옷고름만 매만졌다. 금시 울음이라도 쏟을것 같았다.

(헛참, 사람두…)

사랑다툼은 칼로 물베기와 같다는 생각에 조용히 웃음을 머금었다. 차창일이 영옥이가 진짜 미워났으면 제사 저렇게 장작을 안아다 가려줄텐가.

장철석은 그제서야 한인준이 자기를 내포국집으로 불렀다는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한인준이 할 일이 없어 내포국이나 먹자고 사람을 띄웠겠는가.

새 공작원이 도착했는가?

아니, 아니야.

도리를 저었다.

새 공작원이 도착했다면 창일이 저 량반 얼굴이 왜 저렇게 비린 콩 씹은 인상이겠는가.

여하튼 만나야 할 사람이기에 장철석은 괜히 옷자락을 툭툭 털며 대문을 나섰다.

내포국집이란 시가지 한쪽끝의 조용한 유축에 자리잡은 개인이 영업하는 식당이였다. 광산거리식당들중에는 그중 조용한 곳이여서 한인준은 단골손님이라할만큼 그 식당을 자주 리용했다.

늦저녁이여서 식당안에는 사람들이 퍽 많았다.

한인준이 늘 앉군 하던 시가지쪽을 환히 다 내다볼수 있는 창문곁의 식탁에도 낯모를 사람들이 둘러앉아 막걸리사발을 돌리고있었다.

장철석을 알아본 식당주인이 소리없이 다가와 주방칸이 달린 안쪽으로 들어가자고 눈짓을 했다.

내포국집주인이라면 얼굴에 기름이 지고 몸이 실하기 쉬우련만 이 집주인은 그저 보통의 몸집에 수수끔한 얼굴인데 손님을 맞고 바래고 하는 동작만은 얼마나 날랜지 모른다.

손님접대는 서른을 갓 넘긴 안주인이 직접 맡아한다. 집주인보다 퍽 젊어보이는 그 녀자는 날씬한 몸에 얼굴이 갸름한데 늘쌍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두내외가 내포국집이나 운영하며 살아갈 사람같지는 않다고 인끔을 치하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내외는 오히려 더 식당영업에 극성이였다.

김이 몰몰나는 내포국사발을 들고 주방문턱을 넘어서던 안주인이 철석을 알아보자 인사먼저 얼른 주위부터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었더냐싶게 총총히 손님들한테로 달려갔다.

식당주인은 아랑곳없이 주방칸 안쪽문을 열어주었다.

철석은 문앞에 굳어졌다.

그리 넓지 않은 살림방에서 한인준과 마주앉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형님!》하면서 마주 달려나왔던것이다.

《순철이!》

철석이도 신발을 벗지 못한채 팔을 벌리며 달려오는 순철을 와락 붙안았다.

《형님!》

《순철이!》

더 힘껏 그러안았다. 이 사람이 진짜 왔구나! 하는 기쁨에서였다.

순철의 입에서 신음같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

철석은 품에 안았던 순철을 풀어놓으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마를 무명천으로 감았다. 왼쪽팔에도 두툼하게 천을 감았다.

《왜 이렇게 됐나? 응?》

순철은 철석의 앞에 풀썩 주저앉으며 주먹으로 땅바닥을 쳤다.

《형님, 난 죽지 못해 형님을 찾아왔수다. 죽지 못해서.》

《그건 무슨 말인가? …우리야 이미 여기서 만나자구 약속하지 않았댔나.》

대답대신 방구석에서 흐느낌소리가 났다.

젊은 녀인이 얼굴을 두손으로 싸쥐며 돌아앉았다.

한인준이 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처일세.… 인사들 하라구.》

녀인이 곱게 일어나 절을 하고는 또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해 얼굴을 가리며 돌아앉았다.

철석이는 순철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엉? 말을 좀 하라구.》

순철은 너무 억이 막혀서인지 꺽꺽 메이는 소리를 하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형님과 헤여져서 저 사람과 만난 날로 산속으로 들어갔댔어요. 반토굴집이나마 짓고 겨울날준비를 꽤 했댔는데 글쎄 간수놈이… 산림간수놈이 어떻게 냄새를 맡고 달려들지 않았겠어요. 당장 쇠고랑을 채우구 집에다가는 불을 놓습디다. 참을수가 있습니까. 사생결단하구 달려들었더니 치구차구 …글쎄 손에다 쇠고랑을 찼으니 당할수가 있습데까. 할수없이 끌려갔지요. 저 사람은 그냥그냥 울면서 따라오구 …그러다가 벼랑길을 만났는데 죽기내기로 그놈을 머리로 냅다 받고 벼랑밑으로 밀어던졌지요. 어이구… 난 또 사람을 죽였수다.》

순철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쳤다.

철석은 격해서 부르짖었다.

《그랬으면 됐네. 그깐놈 죽어싸지. 개같은 놈!》

그는 순철의 안해쪽으로 돌아앉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그만 하슈, 차라리 잘됐습니다. 여기다 짐을 푸슈, 실은 나도 걱정이 많았수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오지는 않지 … 무소식 희소식이란 말이 있지 하면서도 어찌나 궁금하던지 … 썩 잘됐어요. 여긴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철석은 말을 뚝 끊었다. 방문이 열리고 식당녀주인이 저녁밥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이 웃는 얼굴이였지만 철석은 그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차게 느껴졌다.

모두 밥상에 불러낸 한인준이 화제를 돌리련듯이 한마디 했다.

《갱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데 철석동무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더구만. 그래서 만나보니 이 사람들이더라니… 자, 이젠 지나간 일들은 다 잊어버리구 여기서 새살림을 펴라구. 우선 밥부터 먹구, 뭐니뭐니 해두 배가 불러야 해요. 자 어서.》

한인준이 그렇게 권했지만 겨우 몇술 뜨다가 말고 먼저 물러난 사람은 순철의 안해였다.

또 얼굴을 가리고 돌아앉아 어깨를 떨었다.

눈물에 젖고 시름에 젖은 그 모습을 보니 철석은 문득 혜영이 생각에 밥먹던 목이 꽉 메였다. 그 부끄럼 잘 타는 얌전데기가 지금 어디 가서 제대로 먹기나 하며 지내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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