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3 장

3

장철석은 이틀째 별렀지만 한인준을 만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장철석은 아침교대이고 한인준은 중번(낮교대)이였던것이다.장철석이네 북갱은 선녀봉골안에 있는 한인준네 선녀갱과는 반대쪽인 북쪽의 십리도 더 먼 제일 험한 산골안에 있었다. 광산사무실에서도 한시간은 나마 걸어들어가야 하는 곳이라 교대시간에는 좀처럼 만날수가 없었다.

장철석이 한인준과 한갱에서 일하고싶었던 마음은 갱이 먼데도 있었지만 한영옥이가 10년전의 미쯔꼬였다는것을 안 다음부터 와짝 더했었다.

한인준은 장철석이 그 마음을 터놓을 때마다 오히려 일은 잘된셈이라고, 북갱에서도 반일지하조직망을 넓혀나가야겠는데 로무과장이 쪽발이족속이긴 해도 인사사업은 우리편에서 하는게 아니냐고 끄떡않은채 우스개소리까지 하군 했다.

사실 광산의 지하조직은 기본력량이 한인준이 일하는 선녀갱에 있고 북갱과 범갱, 당상갱에는 소조책임자를 포함하여 몇명씩밖에 되지 못했다.

한인준은 장철석에게 구창광산에서 《형제계》를 무었던 경험도 있을테니 북갱의 로동자들속에서 우선 조직에 받아들일만한 대상을 잘 료해하고 그들과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리라고 만날 때마다 당부하군 하였다.

북갱에도 일본놈들을 극도로 미워하는 끌끌한 청년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장철석은 우선 그들과 가까와지는 일로부터 시작하려고 부러 입갱도 같이했고 동발목도 함께 메고 광차도 같이 밀군 했다.

이즈음에 와서는 그 일에도 뜨아해졌다.

그 일이 오히려 여러 사람들한테 발목을 잡히우는 일같이 생각되였던것이다.

가뜩이나 그렇게 마음이 들썽했던 장철석은 오늘 해종일을 긴장과 흥분속에 보냈다.

아침에 있은 뜻밖의 일로 해서였다.

오늘은 기어코 한인준을 만나리라 결심한 장철석은 아직 날도 채 밝기 전인 이른새벽녘에 그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중번교대는 밤 12시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내려오군 했으니 단잠자는 사람한테 미안하긴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새벽잠을 곤하게 자고있으리라 생각했던 한인준은 방금 어데론가 떠나가고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영옥이가 무척 미안해하며 그를 맞아주었다.

《어쩌나. 떠나신지 반시간 좀 남짓한데…》

《어디 간다는 말은 없었소?》

《글쎄, 한 이틀 걸릴거라고만 하셨어요.》

영옥의 눈빛이 전혀 모르는게 분명했다.

오빠가 하는 일을 일체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또 알아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그였다.

(젠장!)

장철석은 맥이 풀려 토방에 걸터앉았다.

갱으로 가려면 아직 시간이 퍼그나 있어서 얼마쯤 앉아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눈가래를 찾아들었다. 마당 한귀에 산더미처럼 무져놓은 눈더미가 있었던것이다.

영옥이 놔두라고 몇번이나 말렸지만 대답도 않고 꾸둑꾸둑하게 얼어든 눈무지를 눈가래로 푹푹 떠내서는 통나무울타리밖으로 넘겨뿌렸다.

큰 봉분만 하던 눈무지를 말짱 다 없애고 마당비로 그 눈자리까지 깨끗이 쓸고났을 때 면도를 못해서 구레나룻이 전에없이 시꺼매보이는 차창일이 불쑥 나타났다.

《형님 계시오?》

아침인사도 없이 장철석에게 물었다.

장철석은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면서 방금 영옥이한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외웠다.

《에잇― 내 걸음이 짧았구만.》

차창일은 두주먹으로 제 무릎을 치더니 앞치마에 물묻은 손을 씻으며 나오는 영옥은 본체도 않고 다짜고짜 장철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형님, 나 좀 봅시다.》

장철석을 대문밖으로 끌어낸 차창일은 더욱 흥분해서 말했다.

《형님, 우리 당상갱에서 한번 들고일어나보자는거우다. 개놈의 새끼들!》

당상갱에서는 이틀전에 큰 락반사고가 일어나 한꺼번에 일곱명이나 인명피해를 입었다. 몇달전부터 위험구간을 알려주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광산측에 요구했지만 다 썩은 동발목 몇대만 들여다세우고 그냥 내버려두었던것이 끝내 그런 엄청난 사고를 냈던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일곱명씩이나 죽이고도 광산측에서는 몇푼 안되는 위자료로 굼때고 넘어가려고 했다는것이였다.

《어제밤 토론들이 있었수다.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고 모두 윽윽들 해요. 좋은 기회지요. 로동조건개선도 문제지만 난 이번일을 통해서 우리 주위에서 어떤 놈들이 맴돌고있는지 그걸 알아내자는거요. 틀림없이 움직일거예요. 그러니 형님네 갱에서두 각성있게 좀 살펴주. 범갱과 선녀갱에도 사람을 띄웠어요.》

장철석은 가슴이 뛰였다. 현훈증이 일 정도였다.

옳다.

일이 되려는가부다.

무엇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한인준, 그와 토론없이 일을 벌려도 될가?

숨가쁘게 들뛰는 가슴을 안고 한동안 서성거리던 그는 좀 주저하듯이 물었다.

《일없을가?》

장철석의 말뜻을 알아차린 차창일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우리 갱사람들 스스로가 들고일어나는거우다. 사람들 말이 우리 당상갱에서 들고일어나면 다른 갱들에서도 가만있지 않을거라는거요. 우물쭈물할게 있소? 까짓거, 우정 조직이라도 할려니 한판 겪어볼판이지. 잘하면 한팔매에 독수리나 새매를 두마리 떨굴수도 있잖소.》

장철석의 눈앞에는 북주하양주공장 소년직공들이 폭동을 일으키던 일이 떠올랐다. 창문을 들부시고 압력계들을 깨버리고 빈병상자들을 내동댕이치고… 알탄, 증자, 발효, 보이라실… 작업장마다에서 쇠장대며 몽둥이며 손에 잡히는대로 찾아들고 와와 소리치며 이찌가와 마꼬도한테로 달려가던 소년직공들.

알탄작업장에서 알탄빚는 일에 시달리던 장철석이도 그때 석탄삽을 둘러메고 목이 터지게 구호를 웨치는 소년들속에 섞여 병세척장의 처녀애들과 합세를 했었다.

그때 누가 장철석에게 싸움에 나서라고 귀띔이라도 했던가? 아니였다. 관길이며 기철이… 같이 일하던 소년직공들이 들고일어나는데 같이 격분하여 목이 터지게 구호를 웨치고 주먹을 내두르며 따라서지 않았던가.

밀랍처럼 질린 낯짝으로 소년직공들앞에 나서서 요구조건을 무조건 다 들어준다고 울음을 터뜨리듯이 선포하던 이찌가와 마꼬도, 기세충천하여 터뜨리던 승리의 환성!…

장철석은 두눈을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승리의 함성 터뜨리던 소년직공들의 모습은 이어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조선놈의 새끼들은 모두 불태워죽이면 씨원하겠다고 악을 쓰면서 말같은 개를 내몰아 심부름군아이를 물어뜯게 하던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승냥이같은 낯짝으로 바뀌였던것이다.

《형제계》의 책임자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기만 하던 장철석! 그래, 그때도 난 소심했댔어. 나약했었지.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내 몇번이나 강마음을 다졌댔던가.

순간이나마 또 (일없을가?) 하고 주저하던 일이 생각나며 얼굴이 화끈했다.

차창일이 눈치채지 않았을가?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것 같았다.

그래, 우물쭈물할 일이 아니다. 싸움은 력량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계기에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것도 그만 못지 않게 중요한거야. 갱사람들스스로가 분격하여 들고일어나는 일이 쉽게 생길텐가. 이야말로 조선사람이 다 죽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줄 때다.

장철석을 더욱 든장질한것은 어차피 저는 이 광산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였다.

가만히 떠날수는 없었다.

이미 이곳 조직성원으로서 반일의 길에 나선 몸이고보면 무엇인가 한가지 거사를 치르고 떠나는것도 남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밀정놈이라도 한놈 들춰내여 목대를 꺾어놓는다면 떠나는 걸음도 떳떳할수 있지.

차창일의 속심도 그런게 아닐가? 그래서 저렇게 흥분하는게 아닐가?

구레나룻이 시커먼 사람은 배짱이 세다더니 창일이 제구실을 하는가봐!

리성은 이미 광란의 난파에 뛰여올랐다.

《좋소. 거기서 들고일어나면 우리 북갱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을거요.》

그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손들을 힘있게 잡아흔들고 헤여졌다.

한데 당장 광산이 들썩 뒤집히게 될줄 알았던 그 일은 어떻게 됐는지 하루일을 끝내고 막장을 교대할 때까지 잠잠했다.

실패인가? 아니면 또 밀정놈이 먼저 움직여 모두 붙들려가기라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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