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3 장

4

갱밖으로 나온 장철석은 소식이 무척 궁금하고 초조하기도 했으나 부러 느럭느럭 걸으면서 옆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여러 갱들로 갈라져가는 광산사무실앞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소식은 한마디도 얻어듣지 못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막힌 골안에 밭을 일구면 3정보는 잘될 평지가 있었다. 광산사무실은 바로 그 펑퍼짐한 평지에 들어앉았다. ㄷ자형의 2층벽돌집을 짓고 그 주변에는 크고작은 목조건물들을 가뜩 덧붙여놓았다. 산이 깊고 나무가 많은 고장이여서인지 쩍하면 목조건물을 짓군 하는 왜놈들이였다. 2층벽돌집이 사무실이고 크고작은 목조건물들은 제놈들만이 리용하는 식당, 숙소, 목욕탕, 격검과 유술을 한다는 체육실과 춤도 추고 영화도 보군 한다는 오락실들이였다. 건물들로 울타리를 친 그가운데는 운동장을 넓게 닦았는데 제놈들끼리 개싸움을 하듯이 으르렁대기 잘하군 한다는 야구장도 있었다.

얼마전부터 광산사무실주변에는 수비대 한개 분대가 밤낮으로 경비를 섰다.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도경찰부장과 총독부 경무국의 모리무라 다다시라는자와 같이 광산에 나타났다 사라진 후 읍거리의 수비대 한개 독립소대력량을 독립중대력량으로 증강하고 광산사무실에다도 한개 분대의 경비력량을 새로 배치했던것이다.

장철석의 눈앞에는 불현듯 또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낯짝이 떠오르면서 속에서 불기둥같은것이 욱 치밀었다. 어쩐지 그놈과 무슨 인연이라도 맺어진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놈이 여기서도 어느 밀정놈과 손을 잡은건 아닐가? 그래서 경비력량도 더 보강한건 아닐가? 아니, 오늘의 일을 이미 눈치챈건 아닐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장철석은 오늘따라 사무실경비가 더 엄엄하게 느껴졌다.

낯짝이 쭈그러진 조롱박처럼 작고 못나서인지 불룩한 개털모자가 유난스럽게 커보이는 정문보초한테 괜히 눈을 흘기고나서 스적스적 당상갱쪽의 경사지길로 걸어올라갔다.

교대가 끝난지 오래서 이미 광부들이 다 내려오고 드문드문 한두사람씩 마주치군 하는데 모두 낯이 설어서 함부로 사연을 물어볼수도 없었다.

당상갱쪽으로 한 절반쯤 갔을 때 무릎까지 내려오는 시누런 털솜옷을 입었지만 머리에는 여름에 쓰던것 그대로인 족도리같은 군모를 쓴 헌병 세놈이 마주왔다. 별로 살기가 등등해보였다.

놈들은 대뜸 장철석의 아래우를 무섭게 훑어보았다. 조선사람이라고 하면 무작정 의심부터 하고 주리를 틀지 못해 몸살이를 하는 족속들임에야.

놈들의 눈에서 어찌나 독기가 뿜겼던지 장철석은 속이 철렁했다.

세놈은 그저 한번 그래봤던듯 별다른 시비는 없이 지나가버렸다.

장철석은 기분이 잡쳐서 돌아서고말았다.

스적스적 걸어 다시 광산사무실앞에 이르니 그 얼굴 쪼꼬만 보초가 추위에 못견디겠는지 처녀애들처럼 발을 콩콩 구르고있었다. 총은 메였어도 나이는 퍽 어려보였다. 문득 저런 애숭이까지 군복을 입혀 끌어왔으니 네놈들이 정말 망할 날이 멀지 않기는 않은 모양이구나 하는 통쾌감이 들었다. 한편 이 깊은 산골 광산에 보초까지 끌어다 세운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낯짝이 다시 떠오르면서 몸서리가 쳐졌다.

사람의 일이란 참!

내 어쩌면 이곳에서 또 그놈과 마주치게 됐을가.

갈수록 더 그 일자체가 불쾌하고 불안하면서 빨리 이곳을 떠야겠구나 하는 조급한 생각이 겹쳐들었다.

광산사무실앞을 지나 시가지로 향하는 큰길을 얼마쯤 걸어내려가는데 《형님!》하고 찾는 소리가 났다.

길옆의 굵은 전나무뒤에서 차창일이 얼굴만 내밀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깎아지른듯한 절벽밑을 지나 산등성이로 뻗은 오불고불한 오솔길로 겅중겅중 걸어올라갔다.

장철석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나무군이나 사냥군들이 한두명 다녔을 오솔길은 무릎을 치게 눈이 깊었다.

장철석은 한동안 눈길을 톺아서야 숨을 헐떡이며 차창일을 따라 잡았다.

차창일은 펑퍼짐한 너럭바위밑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장철석은 숨을 헐썩이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어지간히 노염이 섞인 목소리였다.

차창일의 대답은 왕청같았다.

《철석동지.》

전에없이 《동지》로 존대하는 바람에 철석은 어리둥절했다. 어딘가 좀 이상스러운감도 들었다.

차창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철석동지, 우리 이길로 떠납시다.》

철석은 차창일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만 했다.

그러다 저도모르게 물었다.

《떠나다니, 어디로 말이요?》

차창일은 감때사나울만큼 낯을 찡그리면서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어디긴 어디겠어요. 강을 건너가잔 말이예요.》

장철석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분명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겼구나!)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면서 침착해졌다.

그는 웃사람답게 여유있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요?… 방금전에 난 그쪽 갱에서 내려오는 헌병들을 만났댔소.》

《헌병이요?… 그까짓 헌병놈들이야 뭐…》

차창일은 코바람을 흥 내불었다. 또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한참이나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땅속이라 일할 시간이 림박할 때까지 갱입구에 모여앉아서 갱안으로 들어가기를 힘들어하는것은 광부들의 공통된 심리다. 약속대로 여느날보다 일찍 갱앞에 모여앉은 광부들은 긴장과 함께 흥분된 속에서 누구인가의 지시를 기다리고있었다.

차창일도 그속의 한사람이였다.

이윽고 광부들이 술렁거렸다.

오늘 싸움을 제일먼저 호소했을뿐아니라 자기가 직접 선도할것을 맹세한 당상갱 좌상아바이가 나타난것이였다.

과묵하고 의협심이 많은 그는 나이도 나이지만 광산일 경험이나 인품으로 하여 갱사람들은 물론 광산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웃사람대접을 받고있었다.

한데 광부들앞에 이르러 하는 그의 말은 너무도 뜻밖이였다.

《오늘 계획했던 일은 참아야겠소. 일체 다른 말들 말구 입갱들 하자구요.》

아바이는 제먼저 간데라불을 켜들고 천천히 갱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광부들의 옆에 앉았다가 아연해서 일어서는 차창일의 앞으로 가까이 오더니 못쓰게 된 광차(지하조직성원들이 광부들과 짜고들어 파괴하고 못쓰게 만든것들이였다.)들을 끌어내다 쌓아놓은 파철무지쪽을 눈짓했다.

눈을 들쓴채로 있어서 앙상한 나무등걸들을 되는대로 무져놓은것 같은 파철더미뒤에 입김을 훅훅 내뿜는 한사람이 서있었다. 좌상아바이 못지 않게 틀이 진데다 나이도 그만한 반일지하조직 선녀갱소조책임자였다.

차창일은 그가 좌상아바이의 결심을 돌려앉혔다는것을 알아차렸다.

한동안 벌둥지를 뒤엎어놓은것처럼 웅성거리던 광부들은 어느 사이 어웅하게 뚫린 갱안의 여러 막장들로 잦아들었다.

방금전까지 긴장과 숨가쁠만큼 흥분으로 일렁이던 갱앞에 혼자 남게 된 차창일은 맥이 풀린 걸음으로 선녀갱소조책임자앞으로 걸어갔다.

선녀갱소조책임자는 한때 정주, 선천, 룡천, 신의주일판에서 손꼽히는 씨름군이였다고 했다.

씨름군의 몸과 어울리게 얼굴도 동으로 부어놓은것처럼 단단해보이는데 그 얼굴이 전에없이 컴컴했다.

그는 차창일과 마주서자바람으로 직판 추궁조로 물었다.

《동무 조직성원이 옳소?》

차창일은 례절만은 공손히 지키면서 자기 주장을 설명했다.

차창일의 말을 참을성있게 듣고있던 선녀갱소조책임자는 손을 홱 내저으며 그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그러니 동문 그 밀정놈을 잡아내기 위해서 사람들을 무모한 싸움에 나가도록 하자는거였겠소? 글쎄 동무의 생각대로 밀정놈이 나 여기 있소 하고 진짜 꼬리를 드러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보, 일본놈들과의 싸움이 그렇게 제 감정나는대로 윽윽 들고일어나서 이길수 있는거요? 그래서 이길 싸움이라면 3.1인민봉기두 그래 6. 10만세시위투쟁도 그래… 숱한 싸움들이 왜 피만 흘리고말았겠소?》

선녀갱소조책임자는 차창일이 응당 좌상아바이와 같은 좋은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해서 조직이 준 과업대로 조직망을 더 확대
하는데 노력할 대신 무슨 왕청같은 일을 벌려놓으려 했느냐고, 조직앞에서 단단히 총화받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맵짜게 비판했다. 크게 기대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차창일은 갱으로 들어갈 생각도 않고 해종일 산속에서 딩굴었다.

결국 강건너로 향하던 마음이 와짝 더 끓어 제잡담 준비를 갖추고 이제나저제나 장철석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는것이였다.…

장철석은 한동안 말을 못했다. 차창일 본인의 말만 듣고는 아직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던것이다.

아침녘부터 극단에서 극단으로 오간다고 할만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연거퍼 빚어놓으니 도대체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속히우고 얼리워 넘었던것 같은감마저 들었다. 정신차려 장철석!

철석은 바위앞을 몇걸음 거닐다가 저도모르게 한마디 물었다.

《글쎄, 가는건 가는거고… 영옥인 만나봤나?》

차창일은 당황해했다. 그는 장철석의 눈길을 피하면서 어름어름 대답했다.

《고건, 그저… 가도 오빠를 꼭 만나보구 가라는 말뿐이지. 뭐 제 오빠가 어서 가십사 하구 내 등을 떠밀어라두 줄줄 아는지.》

여전히 짜증과 신경질, 불평스러운 어조였다.

하긴 그랬다. 장철석이 몇번이나 결심을 했었지만 아직까지 뜨지 못하고있는것도 한인준때문이 아닌가.

장철석은 눈을 헤치며 바위굽을 왔다갔다했다.

문득 압록강을 건느겠다고 먼저 말을 한것이 자기인데 이제와서 다른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이 뭐라고 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바위굽을 몇바퀴 돌았다.

(그래, 기회란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것이 아니지. 두번 세번 다시 찾아오는것도 아니고. 때가 오면 여기 사람들도 리해해줄거다.)

북주하양주공장에서 봉빈네와 헤여져 뿔뿔이 흩어져가던 일이 또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김일성장군님 항일유격대 대원이 되여 이 광산에 다시 나타날 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는 결연히 차창일의 앞으로 다가섰다.

《좋소. 같이 떠나기오.》

차창일이 껑충 뛰며 장철석의 두손을 잡았다.

《형님, 정말이요? 정말 떠나자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하는 생각에 장철석은 다시금 차창일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아직 내가 미덥지 못하단 말인가? 하긴 다시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는 길이니까!

철석은 부러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면서 롱말을 한마디 던졌다.

《여보, 가더라도 거 수염이나 좀 깎고 갑세. 젊은 사람이 그게 뭔가.》

차창일은 탓하지 않고 그냥 환성이다.

《야, 내 형님 이러실줄 알았소. 믿었다니까!》

다짜고짜 장철석을 닁큼 들어안고 몇바퀴나 빙글빙글 돌고나서 그대로 눈우에 풍덩 넘어졌다.

둘은 아이때처럼 한바탕 서로 눈끼얹기를 하였다.

한참 그렇게 웃고 딩굴고나서 장철석이 조용히 일어나앉으며 말했다.

《한데 사람이란 어딜 가든 마무릴 깨끗이 해야 하지 않소. 내 이 광산에 와서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주인집에 인사두 하구 더우기는 순철이를 만나보구 떠나야 하겠소.》

《거야 물론 그래야지요.》

차창일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그럼 난 볼일 다 봤으니 이길로 내처 매골 숯구이막에 가서 기다리겠수다. 매골을 알지요?》

차창일은 눈우에 매골로 가는 길과 숯구이막의 위치를 그려보였다.

《알겠네. 그럼 래일아침에 만나자구.》

그들은 곧 서로 뜻많은 눈길을 남기고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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