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3 장

7

한인준은 캄캄한 밤길을 어떻게 걷는지 몰랐다.

몇번이나 눈구뎅이에 빠져 허우적이였는지도 모른다.

온통 눈투성이가 되여 눈사람처럼 되였다. 그래도 좋았다. 눈구뎅이에 빠진채 네활개를 쫙 펴고 한동안씩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환희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밤바람이 차도 추운줄을 몰랐다. 온밤 눈덮인 산발을 끝없이 걷고 또 걷고싶기도 했다.

드디여 국내공작원 김봉빈과의 첫 상면이 이루어졌던것이다.

지정된 통로를 통하여 그의 호출을 받은 한인준은 어떻게 약속된 장소로 달려갔던지 몰랐다.

초면인 공작원이였지만 두손을 마주잡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동지인가. 그 누가 목이 타고 가슴이 탔단들 한인준 그 이상 더 탔을텐가!

상면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전반적인 국제국내정세분석, 일본관동군과 조선경내의 군대, 경찰, 헌병들의 움직임, 그에 대처한 김일성장군님의 대담하고 령활무쌍한 전략전술과 작전적구상… 김봉빈은 마치도 오래동안 품들여 준비한 강의내용을 론리정연하게 체계별로 설득시키듯이 침착하게, 마치도 생활담을 나누듯이 자연스럽고도 류창하게 통속적인 말로 이어나갔다. 한인준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아주 세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정치공작원이라는 믿음에 감격하였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공작원을 보내줄것이라고 하던 강동무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마치면서 눈굽이 화끈화끈했다.

정신이 버쩍 들고 눈앞이 환해졌다.

명백히 멸망에 직면한 일제가 조선과 중국동북전역에 거미줄처럼 뒤덮어놓은 밀정망들을 총 발동하여 어떻게든 패망의 폭풍을 막아보려고 최후발악단계에 들어섰다는 말에 특히 가슴이 서늘해졌다.

강동무와 박상이의 희생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인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조직의 심장부에 적의 마수가 뻗쳐들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누구일가? 어느 놈인가?

귀로는 봉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앞에는 광산사람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선녀갱을 비롯해서 각 갱들의 소조책임자들은 광산의 오랜 본토배기들과 같은 사람들이여서 어느 면에서든 믿음이 갔다. 놈들이 밀정을 박아넣었다면 십중팔구 최근 몇해어간에 새로 나타난 인물일것이다. 내옆에 새로 나타난 인물―장철석, 차창일, 한영옥, 리순철과 그의 안해 그리고 내포국집내외…

도리를 저었다.

아무렴 그들이 밀정이겠는가.

《참나무》조차 아직 이렇다할 단서를 잡지 못한걸 보면 놈들도 보통 로숙하고 세련된 놈들이 아닌 모양이였다.

상면은 결코 무거운 걱정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광산지하조직의 활동정형과 조직체계에 대한 만족과 치하의 말을 들을 때에는 목안이 뜨거워올랐다. 장철석과 차창일의 불같은 성화를 고집스럽게 눌러놓으면서 끝까지 침묵속에 조직망을 확대하는데 힘을 넣은것은 적들의 모략에 말려들지 않고 오히려 놈들을 불안과 초조속에 몰아넣은 주동적이면서 장한 작전이였다고 김봉빈이 치하를 할 때는 무엇인가 울컥 치밀기도 했다.

《장철석이, 그가 정말 북주하양주공장에 있던 친구란 말이요?》

김봉빈이 입을 항 벌리고 한동안 말을 못하고있을 때는 제사 한무릎 다가앉기까지 했다.

《그렇습니다. 공작원동지 이름이랑… 곽영무라고 숙감과 그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랑 얼마나 눈물나게 했는지 모릅니다.》

한영옥이 그 《옛날》의 미쯔꼬이며 그 미쯔꼬가 어떻게 되여 한영옥으로 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봉빈공작원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원 세상에… 세상일도 참!》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여서 몇번이나 혀를 찼다.

정과 정이 조직과 투쟁이라는 하나의 도가니속에서 뜨겁게 융합된 한인준은 자기의 속생각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모든 면으로 보아 전 앞으로 철석동무를 저의 1대리인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물론 아직 일부 결함들이 있긴 하지만…》

《그의 부족점이 뭐요?》

김봉빈이 신중히 물었다.

한인준도 신중해져서 솔직하게 말했다.

《과격하다고 할가, 덤빈다고 할가… 예상밖으로 놀랄만큼 욱 할때가 있는데 어떤 때 보면 모순적인데도 느껴집니다. 일생의 교훈탓인지…》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김봉빈이 파고들듯이 물었다.

한인준은 좀 무춤했다가 침착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철석동문 북주하양주공장에서 공작원동지랑 따라가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그건 자기가 혁명적자각과 의식이 부족했던것과도 관련되지만 보다는 소심하고 적극적이지 못했기때문이였다고 합니다. 사실 그때 여러명이 공작원동지네를 따라나섰는데 그들이 다 혁명성이 강했구 조직적으로 준비되였겠는가고 하면서 말입니다.… 지금도 쩍하면 압록강을 건너간다고 울컥울컥하군 하는데… 어쨌든 그 정신만은 믿을만 하다고 봅니다.》

김봉빈은 무척 신중한 표정으로 한인준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무엇이든 확확 빨아들일것 같은 눈길은 어서 계속하라고 독촉했다.

한인준은 아주 자신있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제가 특히 장철석동무를 믿는것은 일련의 성격상 결함은 있지만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불같은 지지와 흠모심입니다. 우리가 알아본데 의하면 구창광산 광부들속에서 장군님에 대한 선전을 아주 실감있게 잘했다고 합니다. 〈형제계〉성원선발기준을 장군님이야기와 장군님유격대이야기에 관심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을 기본으로 했다는 그 하나만 보아도 알수 있지 않습니까. 선이 똑바로 서고 대가 확고한 동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이끌어주면 진짜배기 훌륭한 혁명가로 될수 있다고 봅니다.》

《예―》

김봉빈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확신성있게,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소식 알려주니 고맙습니다. 철석동무에 대해서는 나도 인상에 있는것이 있습니다. 그는 양주공장에 있을 때도 평시에 조용하고 별로 나타나지 않았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옥의 죽음을 비롯해서 일본놈들의 교활성과 비인간적인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투쟁을 호소했을 때 제일먼저 곽삽을 휘두르며 뛰쳐일어났습니다. 그가 그때 우리를 적극적으로 따라나서지 못한걸 일생의 교훈으로 삼는다는건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실 그때 우리는 너나없이 단 한번만이라도 조선땅에 가보고싶은것이 불같은 희망이였습니다. 난 인간적으로 그를 보증합니다. 그를 광산지하조직책임자의 1대리인으로 삼겠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인준은 김봉빈의 두손을 힘있게 모아잡으며 기뻐했다.

이야기는 차창일에게로 돌려졌다.

김봉빈이 먼저 말머리를 돌려놓았던것이다.

《내 보기에는 철석동무가 차창일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는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한인준은 봉빈을 맞바로 쳐다보기만 하다가 얼마후에야 좀 자신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차창일이 철석동무를 〈형님형님〉하면서 누구보다 가까이 하는데… 그러고보면 철석동무가 최근에 별로 더 욱욱하는것도 창일이 그 사람 성미를 닮는것 같기도 합니다.》

《성미까지 닮는단 말입니까? 뭘 그러기까지야 하겠습니까. 나이도 있는데…》

김봉빈은 소리를 내여 웃었다. 하면서도 한인준을 보는 눈길은 예리하였다.

한인준은 역시 정치공작원이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더 바싹 긴장해졌다.

김봉빈은 더욱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차창일의 고향이 바다가마을이라고 했던가요?》

《예.》

한인준은 그가 태여난 곳이며 어떻게 되여 고아가 되였는가에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세심히 다 듣고난 김봉빈은 역시 지나가는 말처럼, 그러면서도 찌르는듯이 물었다.

《그 바다가마을에 직접 가본 사람이 있습니까?》

한인준은 입을 반쯤 벌렸다. 차창일도 그렇고 태반의 조직성원들의 고향과 과거지사는 다 본인의 입을 통해 알고있는것들이였다.

《됐습니다.》

봉빈은 한인준을 딱한 사정에서 이끌어내려는듯 서글서글하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인데 일일이 다 알아볼수는 없습니다. 우선 본인을 믿어야 합니다. 차창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알아보겠습니다. 이젠 다른 얘길 합시다.》

한인준은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광산래왕정형은 물론 특히 장철석에게서 그놈에 대해 들은 말들을 빠짐없이 다 이야기했다.

《음!》

김봉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구창광산에서 철석동무를 알아봤단 말이지요?… 모리무라 다다시와 결탁됐다… 이건 매우 신중한 문제입니다. 우선 철석동무가 다시는 그놈의 눈에 띄우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그에 대해 사전대책을 철저히 세웠다면 아주 잘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조직성원들이 그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겠습니다.》

김봉빈은 여러 갱들이 멀리 떨어져있는 조건에서 비상긴급련락체계를 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아보고 해당한 대책들을 빨리 세우도록 하였다.

한인준은 또한번 강동무 못지 않게 유능한 공작원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져서 광산실태와 그동안 조직의 활동정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날이 퍽 저물어서야 그들은 봉빈이 마련해가지고 온 줴기밥을 한덩이씩 나누어먹고 헤여졌었다.…

한인준이 무릎까지 치는 눈길을 헤치며 광산마을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선것은 새벽별이 유난히 밝은 빛을 뿌릴무렵이였다.

마을은 아직 캄캄 밤중이였다. 지하투쟁을 하는 사람에게는 낮보다 밤이 더 좋구나 하는 생각에 자못 긍지가 부풀었다.

희미한 불빛 몇개가 가물가물 조으는 집들중에 동쪽골안의 저의 집이 눈에 띄였다.

영옥이 아직 자지 않고 기다리는가?

장철석이 거처하는 집에는 아래웃방이 다 캄캄했다.

한인준은 한껏 웃음을 머금었다.

(철석동무, 기뻐하오. 동무가 기다리는 공작원이 왔소. 누군줄 아오? 봉빈동지요, 김봉빈동지!)

그는 큰 숨을 한번 쉬고 더욱 흥분하여 마음속으로 외웠다.

(다음번엔 꼭 동무를 데리고오라고 했소. 동무를 직접 만나겠다고 했소.)

한인준은 다시금 활활 눈을 걷어차며 등성이길을 내리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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