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1 장

2

천막밖에서 군용전지들이 번쩍거리고 구두발소리와 군도소리가 절거덕거릴제 소스라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축들도 있었지만 장철석은 그 전지불빛이 별스레 자기의 얼굴을 핥을 때에도 오히려 입술을 꾹 짓씹으며 끙하고 모로 돌아누웠다.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몸체에 밀리워 리순철이라는 옆의 청년이 또 그옆의 청년의 배우에까지 밀려날 정도였지만 그는 모른체 했다.

그는 그저 초조하고 조급해지는 마음뿐이였다.

래일아침 아니, 오늘밤중에라도 배에 실리우게만 되면 만사는 끝장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떻게든 도망을 쳐야 했다. 자동차와 기차… 장장 천여리길을 끌려오면서도 이루지 못한 그 일을 여기 부산항 막바지에서 과연 성사할수 있을가?

번잡스러운 시내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기회가 생기려니 했는데 벌써 눈치를 챘는지 놈들은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죄인몰듯 하
면서 다짜고짜 경비조건이 좋은 이곳 낯설은 공원공지에 숙소를 정하고 사방에다 수십명의 보초를 세워놓았다.

목숨이 붙어가지고 놈들의 배에 실릴수는 없다. 사생결단하고 그전에 마련을 보아야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징병, 징용에 끌려가다 도망을 쳐서 산속에 들어가 나라가 해방될 날만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는가.…

죽어서도 안된다.

해방의 날이 다가오는데 내가 왜 죽겠는가.

살아서 혜영이도 만나고 우리 조직 성원들도 만나야 한다. 참, 그들은 어떻게 되였을가? 나처럼 또 징병, 징용에 걸려들지는 않았을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에라, 될대로 되라 하는 축들도 있었지만 보다는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뒤라 천막안은 괴로움과 고통의 잠바다속에 잠겨버렸다. 어느 구석에선가는 코고는 소리까지 났다. 뒤미처 옆에 바싹 붙어누운 순철이도 가볍게 코고는 소리를 냈다.

장철석은 한숨을 한번 내쉬였다.

리순철.

사리원에서 기차에 오른 청년이였다.

린산 어느 산간마을에서 농사를 짓다가 징병에 걸려들었다고 했다.

순박하고 양순해보이면서도 어딘가 강기와 결패가 느껴지는 청년이였다. 일체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눈치만은 여간 빠르지 않
았다.

일행에 누구나 같았지만 특히 더 걱정과 시름이 얼굴에 꽉 차있었다. 너나없이 같은 사정이라 별로 사연을 묻는 사람도 없었지만 어쩌다 간단히 한마디씩 묻는 말에조차 씨원히 대답을 안했다. 하면서도 웬일인지 장철석을 은근히 따르고 의지하려는 태도만은 확연했다. 하긴 이 고행길에 서로 마음의 의지가 될 사람을 찾는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아마 그래서 오늘밤도 철석의 옆에 와 누웠는지 모른다.

정녕 순철이도 그래 여기 청년들이 다 함께 도망을 칠수는 없을가?

철석은 또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누구인가 어둠속에서 조심스레 손더듬을 하더니 철석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순철이였다.

손은 힘있게 잡았지만 코고는 소리는 여전했다.

철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철이는 《응.》하고 잠꼬대같은 소리를 내며 철석이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제 입을 철석의 귀에 바투 갖다대면서 소곤
거렸다.

《형님, 난 형님을 믿어요.》

철석은 까딱 안했다.

순철은 뜨겁게 입김을 내불었다.

《형님, 용서해요. 난 내내 형님을 살펴봤어요. 형님 도망치자고 하지요?》

철석은 여전히 옴짝 안했다.

순철이 더 바싹 다가붙었다.

《형님, 나도 도망칠래요. 죽어도 왜놈땅에 안가겠어요.… 난 칼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순철은 괴춤에서 선뜩하는 쇠붙이를 꺼내보였다. 농촌에서 조나 수수이삭을 자를 때 쓰느라 부러진 낫날을 벼려서 만든 한뽐정도되는 칼이였다.

순철이는 오늘밤을 놓치면 안된다고, 날이 흐려서 주위가 온통 캄캄하니 둘이서 보초놈을 한놈 제끼고 공원의 나무숲속에만 뛰여들면 그만일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떻게 하자고 구체적인 행동방안까지 내놓았다.

철석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럴듯 했다. 순철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탄복했다.

그러고보면 그는 날이 어둡기 전부터, 아니 마을을 떠날 때부터 기어코 도망을 할 결심이 확고했었다.

내가 참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찌르르했다.

철석은 저도 순철이쪽으로 돌아누우며 그를 꽉 껴안았다.

《고맙소. 순철이, 같이 해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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