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3 장

8

매골 숯구이막은 해마다 봄철부터 가을철까지만 사람이 있고 겨울동안은 비워두군 했다.

겨울에는 숯생산을 하지 않기때문이다.

여러개의 숯가마옆에 큰 바위를 의지하여 초막형식으로 지은 막이 한채 있는데 가끔씩은 사냥군들이 리용하군 했다. 이 근래도 몇명의 사냥군들이 밤샘을 했던 모양 사방 눈천지에 사람의 발자국들이 여러갈래로 흩어져있었다.

순철의 내외와 헤여진 장철석이 숯구이막에 이른것은 새날이 훤하게 밝을무렵이였다.

숯구이막안에서는 빨갛게 타는 불빛이 비쳤다.

밤새 우등불을 피운 모양인데 이제는 불덩이들만이 남아 점점 사위여가고있었다.

차창일은 불무지를 등지고 초막어구에 꼬부리고 누워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온밤을 뜬눈으로 새우다가 날이 밝아오니 마음의 탕개가 풀려 쓰러진게 분명했다. 생나무도 얼어터진다는 12월 마감의 강추위속에서 밀림의 눈속에 묻혀 혼자서 밤을 새우려니 오죽했을가!

장철석이 숯가마들을 들며 마른 나무토막들을 주어다 불무지우에 놓는데 차창일이 와닥닥 놀라 일어났다.

《아, 왔구만요!》

그는 환성부터 내지른다.

장철석은 조용히 웃어보이고는 불담에 입김을 훅훅 불어 불을 살구었다.

차창일은 얼굴에 피곤이 가뜩했지만 기지개를 힘차게 하며 부쩍 사기를 냈다.

《야, 이거 혁명군훈련이 보통아닌데요.》

자칭 혁명군이라는 말에 장철석은 또한번 미소를 지어보이고나서 순철이 내외가 싸준 음식꾸레미를 풀었다.

《자 이런, 어디서 이런 진수성찬이 생겼소?》

차창일은 두손을 썩썩 비비며 군침부터 삼켰다.

불길이 황황 일어 초막안이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시장할텐데 어서 들라구. 그렇지. 우선 한모금 마시고 보게나.》

장철석은 자그마한 보시기에 술을 부어 권했다.

차창일이 형님부터 마시라고 너무 고집을 부려 장철석은 할수없이 제가 먼저 술보시기를 받아들었다.

한데 술보시기를 입에 가져다대던 장철석은 순간적으로 덮쳐드는 이상한 예감과 함께 머리카락이 곤두서는것을 느꼈다.

먼산의 동녘하늘은 훤해졌어도 높은 벼랑바위와 우중충한 산림들로 꽉 차있는 골안의 눈바다우에는 아직 어둠의 장막이 채 걷히지 않았는데 장철석은 그 어둠이 갑자기 얼음장벽처럼 굳어지면서 무겁게 짓누르는것 같았던것이다.

차창일도 무엇을 예감했는지 낯색이 재빛으로 변했다.

미처 자리에서 일어날 사이도 없이 초막밖에서 일시에 벼락치는것 같은 고함소리가 터지면서 시퍼런 총창들이 눈앞에서 번쩍했다.

둘이 다 화닥닥 놀라 일어났다. 총창들은 어느새 그들의 가슴을 면바로 겨누었다.

방금 눈더미속에서 헤여나온것 같은 세놈의 수비대놈들이였다.

눈앞이 아찔하면서 하늘땅이 꺼꾸로 서는것 같았다.

장철석은 차창일을 꽉 붙안으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 황군이나 밤새껏 눈속에서 떨었는데 이자식들 아침진지가 그럴듯한데!》

세놈중 코밑에다 유난스레 검은 털벌레같은걸 붙인 두눈이 퉁방울같은 놈이 시까슬렀다. 그리고는 그중 날파람있어보이는 놈에게 무엇이라 소리를 꽥 질렀다.

《하!》

두놈은 제마끔 장철석과 차창일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고섰고 날파람있어보이는 젊은 놈이 제꺽 수갑을 꺼내여 그들의 손목에 절컥절컥 채웠다.

수갑을 채우고도 안심치 않았던지 하얀 포승끈으로 두사람의 몸을 꽁꽁 묶고 한줄에 련결시켜놓았다.

놈들은 그러고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총들을 거두고 방금 장철석이 펴놓은 음식에 달라붙었다.

장철석은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었다.

분통이 터져오르면서 그대로 달려들어 놈들을 물어뜯기라도 하고싶었다.

하지만 두손목에 수갑을 찬데다 차창일과 한끈으로 묶어져있으니 도저히 마음대로 움직일수가 없었다. 또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낯짝이 떠오르면서 눈앞이 아뜩했다.

(이것도 그놈의 모략이 아닐가?… 아, 내 정녕 동북땅에 들어서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되고마는가?)

막 태질이라도 하고싶었다.

한편 아무리 날고 뛰는 놈들이라 할지라도 차창일과 단둘이서 작전한 일을 이놈들이 어떻게 알고 숯구이막으로 달려들었을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제밤 어데론가 급히 달려가던 놈들이 생각났다. 그중 몇놈이 이 산판을 헤매다가 초막을 발견한건 아닐가?

아니, 아니야.

방금 퉁방울눈놈이 지껄인 수작을 보면 놈들은 밤새껏 눈속에 잠복해있은게 분명했다.

하다면 내가 온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는게 아닌가. 그래서 혼자 밤을 새우는 차창일을 까딱 다치지 않고 기다렸단 말인가?

돌연히 국내공작원 강동지와 박상이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놈들의 잠복에 걸렸다던 일이 눈앞을 아찔하게 했다.

같은 수법, 같은 방법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움직임까지 그렇게 낱낱이 알고있는 놈은 과연 어떤 놈일가?

문득 어제저녁 너럭돌앞의 하얀 눈판에 차창일이 매골로 들어오는 길을 그려보였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이 놈들의 눈에 띄운것은 아닐가?

그때부터 있었던 일들이 순간에 다 떠올랐다.

주인집내외에게 한 당부와 인사, 한영옥이 대문밖에까지 따라나오던 모습, 순철의 내외와의 작별… 초저녁부터 광산마을이 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며 달려가던 수비대놈들과 당상갱쪽에서 거들먹거리며 내려오던 헌병대놈들… 나어린 보초병까지 다 떠올랐다.

만약 헌병대나 수비대에서 이미 알고 움직였다면 굳이 초저녁부터 그렇게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울 필요가 있었겠는가. 차창일이나 자기가 무슨 큰 인물이라고.

통닭이며 술이며 마른음식들까지 말짱 들짱을 낸 놈들은 만족스레 입언저리를 씻으며 일어났다.

차창일과 장철석은 초막밖으로 끌려나갔다.

날이 다 밝고 동쪽의 거무틱틱하던 산봉우리너머에서는 아침해가 떠오를 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걸어!》

놈들은 또 총창으로 위협했다.

한놈이 앞에 서고 두놈은 뒤에서 몰아댔다.

어쩔수없이 걸어야 했다.

《창일이,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은 바로 차려야 한다는 말이 있소.》

장철석이 눈길에 비칠거리는 차창일에게 귀띔했다. 창일은 좀 의아해하더니 인차 고개를 끄덕였다.

눈길은 몹시도 미끄러웠다. 몇번이나 둘이 한덩이가 돼서 딩굴었는지 몰랐다.

그러면 앞뒤놈들이 달려들어 꽥꽥거리고 총탁이 날아들군 했다. 등어리가 얼얼했고 얼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들은 몇걸음만에 또 넘어졌다.

결코 눈길이 미끄러워서만이 아니였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였다.

이대로 광산으로 끌려내려간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한인준, 순철이, 영옥이…

이놈들이 정말 어떻게 알고 이 골안에 나타났을가 하는 생각에 또 가슴이 탔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퉁방울눈놈도 그래 다른 두놈도 어인 까닭인지 차창일이 보다는 자기한테 더 관심을 두는게 분명하다는 생각이였다.

그래, 분명 놈들의 눈길은 나한테 더 집중됐어.

그렇다면 진짜 우리의 행동을 이미 아는 놈이 있은게 확실하다는것이 아닌가.

차창일이 저 사람을 미행하던 놈이 있은건 아닐가?

생각할수록 눈앞에는 점점 더 몸서리치게 이발을 갈군 하던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낯짝이 얼른거렸다. 설마하는 생각과 함께 절대로 그럴수 없다고 도리를 저어도 그놈의 낯짝이 더 크게 확대되는것은 어인 일인가?

장철석은 문득 자기들의 행동이 옳았던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하였다.

또 한인준의 얼굴이 눈앞을 꽉 채웠다.

내가 왜 그와 만나지조차 않고 서둘렀던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째지는것 같았다.

분명 무엇인가 속히우고 얼리운것 같은감에 속이 거북스러워났다.

아, 한인준이 이제 이 일을 안다면 뭐라고 할가.

저도모르게 그자리에 우뚝 섰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한인준의 얼굴과 함께 이번엔 혜영의 얼굴이 눈뿌리를 아프게 지졌던것이다.

놀라움과 실망, 안타까움이 가득 실린 얼굴이였다.

이젠 영영 만나보지도 못하는게 아닐가? 혜영이 그 당자는 물론 그의 어머니와 동생도 영영…

그자리에 콱 어푸러져 언땅에 이마라도 짓쫏고싶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어디선가 땅! 하고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윽!― 하는 비명과 함께 앞에 섰던 놈이 그자리에 풀썩 꺼꾸러졌다.

때를 같이하여 산판을 쩌렁 울리는 웨침소리.

《철석이, 창일이, 엎드리라!》

장철석은 본능적으로 눈속에 몸을 콱 던졌다.

창일이도 눈우에 어푸러졌다.

당황한 두놈도 그자리에 넙적 엎드렸다. 무턱대고 어림짐작으로 땅땅 총질을 했다.

장철석은 그때에야 오른쪽 릉선의 아름드리소나무와 참나무들사이로 날래게 자리를 옮기면서 이쪽으로 내려오는 두사람을 알
아보았다. 색날은 밤색모자가 눈에 익었다. 한인준과 리순철이였다.

한인준의 손에 권총이 쥐여져있었다.

리순철이도 무엇인가 손에 들었다. 단단한 참나무몽둥이였다.

놈들도 그것을 알아보자 한인준을 향해 집중사격을 했다.

퉁방울눈이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껑충 올리뛰였다가 인차 두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혼자 남은 마지막놈이 벌떡 일어나서 맞은켠 산릉선을 향해 냅다 뛰였다.

한인준이 비호처럼 뒤따랐다.

끝내 그놈도 한인준의 총에 쓰러졌다.

놈이 쓰러졌건만 한인준은 기어코 그놈에게 또 한방을 안기고야 돌아섰다.

그사이 리순철이 장철석에게로 달려왔다.

이미 부산에서부터 낯을 익혔던 칼로 포승줄을 끊고 앞에 섰던 놈의 바지주머니를 뒤져 수갑의 열쇠도 찾아냈다.

아직도 꿈을 꾸는건 아닌가싶어 멍하니 서있기만 하던 철석이 순철이를 와락 그러안았다. 차창일이도 무엇이라 목메여 부르짖으며 순철이를 덮쳐안았다.

《형님!》

《순철이!》

《아!》

울음같은 소리가 터졌다.

《이게 어떻게 된거요?… 어떻게 여길?》

장철석이 순철을 놓지 않은채 그의 볼에 얼굴을 비비며 물었다.

순철이도 철석을 붙안은채 목메인 소리를 했다.

《인준형님이 막 나한테 달려왔습니다. 영옥이한테 말을 듣구. 나두 다 말했지요. 했더니 그 형님이 당장…》

장철석은 고개를 버쩍 들었다.

마지막놈까지 씨원스럽게 쏘아눕힌 한인준이 눈가루를 날리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인준동지!》

장철석이 그앞으로 달려나갔다.

《철석동무!》

한인준도 눈길을 차며 마주 달려왔다.

바로 그때 예상밖의 또 한방의 총소리가 터졌다.

힘차게 달려오던 한인준이 우뚝 굳어졌다.

《인준동지!!》

장철석이 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한인준은 앞으로 푹 쓰러졌다.

《형님!》 차창일이도 아연한 소리를 치며 한인준에게로 달려갔다.

등뒤에서 또 총소리가 났다.

순철이가 어느새 퉁방울눈놈한테 달려들어 장총을 빼앗아들고 연거퍼 방아쇠를 당겼던것이다.

아직 숨이 채 넘어가지 않았던 그놈이 끝내 한인준을 쏘았던것이다.

땅 땅…

눈에 불이 펄펄 이는 순철이는 마지막탄알까지 깡그리 다 그놈한테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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