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3 장

9

한인준은 치명상이였다.

모두들 너무 억이 막혀 그를 붙안고 몸부림을 쳤다.

한인준은 얼마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일어나려고 안깐힘을 썼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가쁜숨만 힘들게 몰아쉬였다. 그는 장철석과 차창일의 손들을 꼭 마주쥐였다. 무슨 말인가 하고싶은데 혀가 잘 돌지 않아 안타까와했다.

아침해가 퍼그나 떠올랐다.

온통 눈천지의 산중에 쏟아지는 해볕은 더 밝고 더 찬연해보였다.

바람 한점 없었다.

쏟아져내리는 해볕도 무성한 나무숲도 너무나 뜻밖의 일에 숨을 죽이는가싶었다.

한인준이 드디여 장철석에게 의지하며 반쯤 일어나앉았다.

천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나서 리순철에게 말했다.

《총소릴 냈으니… 주변에 또 놈들이 있지 않겠는지… 한번 살펴주게.》

《예.》

대답은 했지만 순철은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진통이 더해지는지 입술을 꽉 앙다물고있던 한인준이 말은 못하고 어서 그래달라고 독촉하듯 순철에게 눈짓을 했다.

순철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몇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오른쪽 릉선으로 올라갔다.

한인준은 차창일에게도 같은 뜻의 눈짓을 했다.

《형님!》

차창일이 울먹이며 불렀다.

한인준은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일없네. 어서!》

목소리는 낮으나 눈빛은 엄했다.

장철석은 비로소 한인준이 무엇인가 자기와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싶어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차창일에게 어서 떠나라고 눈짓을 했다.

눈속에 너부러져있는 놈들에게서 총 한자루를 나꿔채 든 차창일이 순철이와는 반대쪽인 왼켠릉선으로 올라갔다. 그가 산릉선을 향해 퍼그나 올라갔을 때에야 한인준은 가슴안쪽에 손을 넣더니 자그마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듯 하여 수첩장에 또박또박 글자를 썼다.

《나의 대리인을 보냅니다.

한―백.》

장철석은 가슴이 철렁했다.

《인준동지!》

철석은 저도모르게 웨치듯 불렀다.

한인준은 무슨 뜻인지 고개를 한번 젓고는 수첩과 만년필을 장철석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김일성장군님부대에서… 왔소. 동무얘길 다 했소.》

이어 그는 극비의 련락지점과 날자, 시간, 상면방법을 알려주었다.

장철석은 비로소 한인준이 영옥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떠났던 곳이 어디였던가가 짐작되였다. 목안엔 불덩이가 걸리는것 같았다.

(인준동지!)

철석은 마음속으로 뜨겁게 불렀다.

두눈에 눈물이 콱 실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아, 내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사죄를 하려고 해도 할수가 없었다.

한인준이 또 몸을 뒤채려고 힘을 썼다.

《인준동지, 이러지 마십시오. 진정하십시오.》

《난 일없소. 철석동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듣소. 우리 조직이 로출된건 틀림없소. 하지만 놈들은 아직 많은걸 모르고있소. 비밀… 비밀은 생명이요.》

한인준이 무척 힘겨워했지만 장철석은 만류할수가 없었다. 아니, 설사 만류한다고 해도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을 한인준이 아니였다.

한인준은 한참이나 숨을 톺고나서 그때까지 몸에 품고있던 권총을 꺼내여 철석의 손에 쥐여주었다.

《철석동무, 이건 강동지가 나한테 준거요. 이제부턴 동무가… 여기 세자루의 총은 산으로 보내오. 그리구 철석동무, 유격대공작원과의 련계를 어떤 일이 있어도 철석동무가 직접해야 하오. 놈들이 우리 조직을 알면서도 왜 가만있는가?… 보다 큰것을 노리기때문이요. 그게 뭐겠소. 비밀근거지와 무장대, 특히는 장군님부대의 공작원이요. 우린… 목숨으로 보위해야 하오. 이것이 우리 조직의 당면임무요. 방풍림… 그렇소. 비밀근거지를 목숨으로 결사보위하는 억세고 튼튼한 바람막이가 되여야 하오.》

한인준은 점점 더 숨이 차 했다.

장철석은 너무 당황하고 급해서 뭐가 뭔지 통 걷잡을수가 없었다.

한인준이 오히려 제편에서 정신차리라고 일깨워주듯 장철석의 손을 힘있게 쥐며 계속했다.

《철석동무, 이제부터 놈들과의 싸움은 더 힘겨워질거요. 철석동무도 얘길했지? 놈들이 왜 잠자코 있는가? 분명 무슨 꿍꿍이를 하고있다고… 옳게 보았소. 총소리없는 격전, 정면에 드러나지 않는 싸움… 지략과 지략의 싸움이요. 고요한 격전!

…총소리 울리는 격전보다 몇배 더 어렵고 힘든 싸움이요. 철석동무, 절대로 덤비지 말구… 장군님만 믿구… 절대적으로 믿구… 비밀근거지를 지키는 일은 곧 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을 수행하는… 장군님을 지키는… 아!》

한인준은 정신을 잃었다.

장철석이 한참이나 어깨를 흔들어서야 그는 다시 혼미하게 의식을 차렸다. 장철석을 보는 두눈에 뜨겁고 절절한것이 끓고있었다. 그는 철석의 손을 꼭 쥐며 입을 열었다.

《철석동무, 내가 동무를 잘 돕지 못했구만. 일이 이렇게까지 될줄을 몰랐거든. …철석동무가 기어코 강을 건느려 했다는걸 알구 내 자기반성을 심각히 했소.… 이제라도 명심하오. 여기도 장군님의 전사들이 있어야 할 전역이요. 조국해방작전전역…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싸우면 다 장군님의 뜻을 따르는거구 장군님전사의 본분을 다하는거요. 내 동무를 꼭 훌륭한… 장군님의 훌륭한…》

그는 또 정신을 잃었다.

장철석은 돌미륵처럼 굳어져 한인준을 지켜보기만 했다. 방금 자기반성을 심각하게 했다는 그의 말이 백가지 천가지 뜻으로 집약되면서 천만근의 철퇴가 되여 뒤통수를 후려치는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떠올라 하는 말이 아니였다. 언제든지 꼭 해주고싶었던 말, 반드시 해야겠다고 벼르어오던 말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내 정녕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하는 생각에 숨이 꺽 막혔다.

장철석이 말 한마디 하지 못해서인지 한인준이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누구인가를 찾았다. 장철석은 대답대신 차창일과 리순철이 올라간 산등성이를 살폈다.

한인준이 힘겹게 이었다.

《영옥이… 영옥이를 부탁하오.》

《예.… 걱정…》

장철석은 목이 너무 메여 뒤말을 잇지 못했다.

한인준의 얼굴에 웃음이 비꼈다. 철석을 욕심스레 보며 더 환히 웃었다.

《철석동무가 부럽구만.》

《예?!》

한인준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저으며 장철석의 손을 더 힘있게 쥐였다.

《철석동무, 기뻐하오.… 이제 동무가 만날 사람은… 동무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는 무척 숨이 가빠하였다.

이어 가까스로 진정하면서 마지막힘을 모아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있소. 동무를 꼭 데리고오라고… 직접 만나겠다고…》

그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

골바람이 터지며 눈사태가 쏟아졌다.

울울창창한 소나무가지들에 쌓였던 눈무지들이였다.

딩굴며 어푸러지며 두사람이 달려내려왔다.

쏟아지고 또 쏟아지는 눈사태, 눈보라!

언땅을 치며 통곡하는 두사람앞에 장철석은 결연히 일어섰다.

그의 두손에는 방금 넘겨받은 권총이 무겁게 쥐여져있었다.

또다시 쏟아지는 눈사태! 온 골안이 뽀얀 눈보라속에 잠겼다.

우― 숲이 몸부림쳤다. 산악이 노호했다.

그 노호속에 장철석은 하나의 목소리를 듣고있었다.

《방풍림… 방풍림이 돼야 하오!!》

뒤이어 울리는 절절한 음성.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싸우면 다 장군님의 뜻을 따르는거구 장군님전사의 본분을 다하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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