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4 장

1

1945년은 지구가 두쪽으로 갈라졌다고 할만큼 거창한 사변의 해였다.

그해로부터 사회주의 새 진영이 제국주의세력과 당당히 맞서 자주위업수행을 위한 인류의 리상사회에로 줄기찬 행진을 시작하는 력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던것이다.

허나 그해의 양력설이라고 류다른 점은 없었다.

례년과 다름없이 북방의 고산지대에는 12월 31일 밤 눈이 펑펑 내렸다.

새해의 아침에는 바람이 일고 눈보라가 앞을 가릴수없이 산판을 덮었다.

말그대로 림해설원의 눈풍경을 이루었다.

상풍광산마을도 같았다.

다르다면 올해 양력설의 아침해는 서쪽에서 떠오르는것이 아니냐고 광부들은 물론 온 시가지사람들이 놀라 말하는 일이 한가지 생겼는데 광산에 이틀동안 휴식이 선포된것이였다. 12월 31일 저녁 전에없이 도경찰서의 새까만 경호차를 타고 다시 나타났던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그렇게 령을 내리고 돌아갔다는것이였다.

광산의 합숙에서는 소금물에 절인 무우나 고비, 병풍잎만이 오르군 하던 식찬그릇 한옆에 쩌들긴 했어도 고등어도 한토막씩 올려놓았다.

시뿌연 탁배기도 한사발씩 떠주었다.

휴식선포의 소식을 듣자바람으로 왁작 열들이 난것은 시가지의 식당과 술집, 상점들이였다.

처마밑에는 제법 축등도 매달고 소나무도 세워 한명의 손님이라도 더 끌기에 여념이 없었다.

장철석은 광산과 시가지에 돌변한 뜻밖의 이 명절분위기는 감감 모른채 광산에서 먼 원시림의 귀틀집에서 이틀째 봉빈이와 함께 지내고있었다.

10년간의 눈물겹고 목메인 회포부터 나누었다.

한인준이 알려준 극비의 련락장소를 거쳐 지정된 장소에서 가슴조이며 상봉의 그 시각을 기다리던 일을 생각하면 장철석은 지금도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틀림없이 벌목공차림으로 나타난 국내공작원이 김봉빈일줄이야 상상인들 했으랴.

한인준이 반가운 사람이라고, 기다리고있는 사람이라고 마지막숨을 몰아쉬면서 알려준 공작원이 정녕 북주하양주공장의 그 봉빈일줄이야!

《날 모르겠소? 봉빈이요, 김봉빈!》하며 제먼저 달려와 와락 그러안았을 때에도 잘못보았는가 하여 제 눈을 의심했었다.

키도 몸집도 별로 달라져보이지 않는 그였다.

영채로운 눈과 마주볼 때면 웃음기부터 머금군 하던 입모습도 여전했다.

중국동북의 무변광야에서 온갖 시련을 과감히 헤쳐온 항일혁명군의 체취와 함께 틀지고 세련된 몸가짐만이 얼굴에 온통 석탄칠을 해가며 소년직공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군 하던 시절의 그 봉빈이가 아니구나 하는 이름할수 없는 무게를 느끼게 했다.

목메이게 반갑긴 하면서도 몸이 굳어져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봉빈이는 더 허물없이 그때일부터 상기시켰다.

《생각나오? 영무, 관길이, 기철이… 참, 중국소년 〈바퀴〉… 〈니쓰 쨩란스바, 니쩐 쌍야오쓰마?〉(바퀴새끼, 네가 그랬
지 너 죽어보겠니?)

봉빈이는 능란하게 중국말을 번지며 웃었다.

장철석이 일하는 알탄작업장으로 봉빈이가 들어온지 며칠 안되는 11월초 어느날의 일이였다.

알탄빚는 기계가 고장나서 그날은 태반의 소년공들이 물에 축축히 적셔 개여놓은 석탄무지들에 빙 둘러앉아 손으로 알탄을 빚고있었다.

중국동북지방의 겨울날씨는 맵짜게 찼지만 어디서나 한지에서 딩굴던 소년공들은 얼음이 서걱거리는 물추긴 석탄을 맨손으로 주무르면서도 그게 무슨 대수냐는듯 웃고 떠들며 별별 장난을 다했다.

어디선가 왕밤알만한 알탄덩이 하나가 날아와 김봉빈의 옆에 앉은 중국소년의 이마빡을 때렸다. 뜻밖의 알탄세례를 받은 중국소년은 눈을 뚝 부릅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석탄무지너머 맞은쪽에 앉은 직공들속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는 소년이 있었다.

귀바퀴가 류달리 커서 《귀바퀴》로 불리우던, 별명이 《귀》자를 떼버리고 그저 《바퀴》로 통하는 익살스럽고 장난이 여간 세차지 않은 중국소년이였다.

후에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은데 의하면 그날 그 중국소년은 새로 들어온 봉빈이가 어떤 친구인가를 중떠보기 위해 일부러 그
한테 알탄덩이를 던졌다는것이였다.

그런데 꿋꿋하게 얼어드는 손이라 뜻대로 되지 않아 알탄덩이는 그만에야 봉빈의 옆에 앉은 또 다른 중국소년의 이마빡으로 날아갔던것이였다.

장난꾸러기 《바퀴》가 알탄덩이를 던진게 분명하다는것을 안 중국소년은 당장 자리를 차며 일어났다.

《니쓰 쨩란스바, 니쩐 쌍야오쓰마?》

그는 주먹만한 탄덩어리를 《바퀴》한테로 던졌다.

너무 덤벼친 탓에 그옆의 기철이의 무릎우에 철썩 떨어졌다.

기철이라고 얌전해있을리 만무했다.

근 80여명의 소년들이 순간에 와 들고일어났다. 크고작은 석탄덩어리들이 하늘을 덮었다.

얼굴이며 가슴, 잔등들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알탄덩이들에 범벅투성이가 되였다.

누군가 《감독 온다!》하고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런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입직 첫무렵에 있었던 일이 인상에 남아있는것처럼 봉빈이한테도 그날에 있었던 일이 제일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비록 힘겹긴 했어도 철부지시절의 천진한 세계를 돌이켜주는 그 말에는 장철석이도 소리없이 웃었다.

한번 웃고나니 몸이 활 풀리여서 저도 힘껏 봉빈이를 그러안았다.

그때부터 그들은 북주하양주공장의 알탄작업장에서마냥, 물사발이 떵떵 얼어붙던 합숙방의 때절은 모포속에서마냥 아주 허물이 없이 귀틀집에서 함께 자고 먹으며 지냈다.

무슨 말인들 안나누었으랴.

이야기는 주로 봉빈이가 하고 장철석은 처음 글자를 배우는 소학생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서 들었다.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구상과 전민항쟁방침, 그 방침을 받든 항일유격대원들의 령활한 투쟁성과와 국내항쟁조직들의 활동소식… 바로 장군님의 그 방침을 받들고 곽영무도 국내에 나왔다는 말에 장철석은 가슴이 막 터지는것 같았다.

《숙감말이요?… 그 영무가 정말 여기로 왔어요?》

《이제 만나게 될거요.》

《야, 이거… 그가 정말 장군님을 모시고 싸웠어요?》

《한다하는 기관총수, 유격대지휘관이요. 나보다도 더 많이 장군님곁에 있었지. 소할바령회의에도 우린 같이 참가했댔소.》

《야, 이거 정말!》

장철석은 《야, 이거 정말!》을 연방 곱씹으면서 두손으로 제 무릎을 썩썩 비비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당장 부대를 인솔하시고 만세소리 하늘땅을 진감하며 국내로 들어오시는것만 같았다.

3. 1인민봉기때와는 대비할바 없는 기세로 삼천리 이 땅이 산악처럼 와와 일어서는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희망의 등불, 등대처럼 바라보며 그리며 기대하며 의지해온 장군님이신가. 일제놈들에게 짓밟힐대로 짓밟히며 천대와 멸시, 구박과 압제의 구두발밑에서 나라잃고 살길잃은 설음이 골수에 응어리진 우리 겨레모두가 그러했듯이 중국동북산야의 사나운 눈비와 광란의 폭풍을 다 맞으며 막돌처럼 굴리우던 장철석에게 있어서도 김일성장군님은 마음속의 유일한 구세주였으며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온갖 걱정을 일거에 다 풀어주실 하늘이시였다.

정말이지 보천보전투소식을 들었을 때의 흥분과 감격이 어떠했던가.

국내 조선땅안에서의 총성!

멀지도 않은 같은 도안의 현준혁, 리룡진… 평양경내와 남포, 구월산일대의 반일조직들의 활동소식들은 또 얼마나 그의 가슴을 들뛰게 했던가.

김일성장군님께서 함흥의 어느 리발소에 태연히 들리시여 리발을 하시여 일제경관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며 천지조화의 도술로 가랑잎 한개를 오룡차처럼 만들어 칠색의 령롱한 구름에 휘감아타고 평양과 서울상공은 물론 일본 도꾜의 하늘까지 유유히 돌아보신 후 백두산천지에 내리시여 시원스레 몸을 씻으셨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그 흥분과 격정을 더한층 고조시켰다.

그런 날, 그런 이야기의 밤이면 또 남모르게 내 왜 그때 김봉빈이며 곽영무와 함께 가지 못했을가 하는 생각에 가슴을 치군 했었다.

벌목공차림으로 옹근 하루나 허물없이 저와 함께 한방에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있었지만 봉빈이가 아득한 산상에 올라서있는 거인처럼 느껴졌다.

영무의 모상도 그랬다.

한편 무인지경의 깊은 산판에서 헤매다가 구사일생으로 길을 찾은 때와도 같은 환희가 북받쳤다.

드디여 나도 이제는 오매불망 심신을 태우던 백두산 김일성장군님의 손길에 이끌리우게 되는구나 하는 기쁨에서였다.

정녕 그이께서 10년동안 애타던 그 마음까지 다 헤아리시여 다른 사람도 아닌 김봉빈과 옛 숙감 곽영무를 친히 나한테로 보내신건 아닐가.

여기도 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전역이라고,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싸우면 장군님의 뜻을 따르는것이며 장군님 전사의 본분을 다하는것이라고 마지막숨을 톺으며 하던 한인준의 말이 귀전에 울리면서 얼굴이 뜨끔했다.

정말이지 내 무슨 경거망동을 했는가. 그 후과로 귀중한 동지가 희생되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에 온몸이 졸아드는것 같았다.

장철석의 그 심정을 헤아린듯 김봉빈은 저녁녘부터는 한인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가 한인준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있었던지 장철석은 마치도 그가 한인준과 오래동안 같이 싸워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인준이 몸은 비록 국내에 있었어도 그 역시 오랜 기간 항일유격대에 있었던것 같은감도 들었다.

하긴 김일성장군항일유격대의 국내지하공작원 강동지의 지도를 받은 한인준이 아닌가.

한인준에 대한 이야기는 곧 국내지하투쟁에서의 원칙과 방법, 앞으로의 구체적인 투쟁방향으로 이어졌다.

《광산에 놈들이 이미 로숙한 밀정들을 깊숙이 박아넣은것 같다는 한인준동무의 말이 틀림없는것 같소. 말하자면 조직의 아주 가까운 곳, 바로 동무들의 곁에 바싹 말이요. 강동무도 그렇지만 이번에 동무들이 또 매복에 걸렸던 일 역시 우연한 일같질 않거든.》

김봉빈은 한동안 말을 끊고있다가 더우기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한인준동무가 지하투쟁을 참 잘했소. 침착하고 결단성이 있고… 그가 얼마나 예견성있고 전망적이였는가 하는건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영옥이말이요.… 그래, 10년전의 그 〈미쯔꼬〉를 반일지하조직성원으로 정식 받아들이지 않은것만으로도 알수 있지 않소.》

장철석은 놀랐다.

그는 영옥이는 응당 조직성원이 되였으리라 생각하고있었다.

영옥이가 절대로 그런 내색을 안하는것은 조직성원들의 움직임은 일체 비밀에 붙여야 하기때문에 그러는줄로 알고있었다.

저도 조직의 활동과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었다.

한데 한인준이 그를 조직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것은 무슨 말인가?

《한인준동무의 말인즉 영옥동무를 설복시키느라 무척 땀을 뺐다고 하오. 만약의 경우 조직이 로출됐다면 어떻게 하겠소. 언제인가는 틀림없이 놈들의 검거소동이 일어날텐데 로출된 조직성원들은 일부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조직은 굳건히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소. 조국해방의 날도 멀지 않았는데 말이요.… 한인준동무는 로출된 조직뒤에 엄밀히 위장된 새 조직을 내올 계획이였다고 하오. 진짜 과감히 투쟁을 벌릴 새 조직을… 그를 위해 영옥이처럼 준비시켜나가는 동무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소. 참 아까운 동무를 잃었거든.》

김봉빈은 또 한동안 말을 끊었다

장철석은 몸둘바를 몰랐다. 아까운 동지를 잃었다. 아까운 동지… 정녕 그 아까운 동지가 누구때문에 희생됐는가.

애석한 마음을 누르면서 뙤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밤하늘의 뭇별들에 눈길을 보내고있던 김봉빈이 여전히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인준동무를 비롯해서 국내반일조직들의 투쟁에 대해 다 알고계시오. 물론 강동무를 비롯한 국내정치공작원들을 통해서요.… 강동무는 사령관동지께서도 무척 신임하시던 지하공작원이였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해방의 날이 가까와오는데 오래동안 함께 싸워온 훌륭한 동무들이 희생되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너무 아파 잠을 못드신다고 하셨소.》

장철석은 점점 더 고개를 무겁게 떨구며 입술을 깨물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도 알고계신다는 사람!

강동지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으면서 활동한 조직책임자로서의 한인준, 그의 웅심깊은 속은 모르고 투쟁하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나 같지 않느냐고 우둘쩍거리군 하던 일이 더우기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 한마디 귀띔이라도 못했을가?

장철석은 고개를 숙인채 물먹은 소리로 말했다.

《한인준동지는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도 참으로 귀중한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나날이 더 가슴이 터지는것 같고 얼굴을 들수가 없습니다.》

장철석은 눈물을 삼키며 한인준이 이제라도 명심하라고 절절히 하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김봉빈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다 듣고나서도 한참이나 동안을 두었다가 천천히 이었다.

《장군님 전사의 본분이라… 참 뜻깊은 말이요. 실은 나도 그렇고 우리 항일유격대원들 누구나 다 장군님곁에 가까이 있고싶은건 하나같은 심정이요. 하면서도 공통된건 뭔가. 동만, 북만, 남만, …광활한 중국동북땅 곳곳, 여기 국내곳곳에 나와 활동하는 전사모두는 항상 장군님곁에 가까이 산다는 그 심정을 안고있다는거요. 한인준동무가 말한것처럼 혁명전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장군님의 뜻을 따르고 장군님을 받드는것이라면 최상의 영예이고 영광이라는거요. 말을 듣고보니 철석동무가 생각은 훌륭했는데 그 참뜻을 잘 모른것 같거든.》

《명심하겠습니다. 뼈에 새기겠습니다.》

장철석은 더 아프게 입술을 짓씹고나서 계속했다.

《그리구 이번에 또하나 신중히 찾은 교훈이 있습니다. 혁명은 소심해서 우물쭈물해도 안되지만 우둘쩍거리면서 헤덤벼쳐도 안된다는것입니다. 더우기 우리가 맞서고있는 왜놈들은 원래부터 교활하고 깜찍하기 그지없는 놈들인것만큼 매사건건 심사숙고해야 한다는겁니다. 이걸 이미 채심했더라면 한인준동지를 잃지 않는건데…》

장철석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나서 계속했다.

《한인준동지는 마지막으로… 우리 광산의 혁명조직은 여기 비밀근거지의 방풍림이 되고 성벽이 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놈들의 발악적인 음모책동을 막아내는 바람막이… 그래야 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구상이 실현된다고말입니다.》

봉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막이라… 옳소. 비밀근거지의 성벽, 그건 한인준동무자신이 스스로 맡아나선것이였소. 놈들이 조직의 뒤를 밟았다면 오히려 그놈들을 다 광산의 깊숙한 땅굴속으로 끌어다 몰아넣겠으니 무장대를 더 와짝 꾸려놓으라는것이였지.

참, 철석동무 얘길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오. 좋은 동무를 만났다고. 하 그런데 난 한인준동무가 그렇게 칭찬하는 사람이 북주하양주공장의 그 알탄작업장친구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댔거든. 동무가 살아온 경위랑 이름이랑 듣고서야 알아봤소.》

장철석은 눈굽이 뜨끔했다.

(인준동지!)

그는 고개를 버쩍 들었다.

《공작원동지!》

철석은 저도모르게 불렀다.

봉빈은 탓하지 않았다. 영채로운 눈빛이 더 강렬하게 번쩍거렸다.

장철석은 그냥 울먹이듯이 말했다.

《봉빈동지, 한인준동지한테도 여러번 얘기했지만 난 지금껏 북주하에서 봉빈동지랑 따라가지 못한걸 내내 후회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기어코 다시 강을 건너가려 했던것입니다. 사실 난 봉빈동지를 만난 순간 또 여기 무장대에라도 들어오고싶은 생각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한인준동지의 충고를 그렇게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장철석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나서 계속했다.

《한인준동지가 알았다면 뭐라고 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결정적으로 그 생각을 돌리겠습니다. 한인준동지의 당부대로 오직 하나의 마음, 방풍림이 되겠습니다. 구실을 바로하겠는지는 모르지만 내 힘껏 한인준동지의 뜻을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고맙소, 철석동무!》

봉빈이도 기뻐서 철석의 두손을 힘있게 모아잡았다.

그의 눈앞에는 문득 한인준의 기쁨이 어렸던, 확신에 넘쳐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장철석이 누구보다 김일성장군님을 흠모하며 따르려는 마음이 뜨겁다고, 하기야 장군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이끄시고 축지법을 쓰면서 싸우시는 중국동북지방 바람을 직접 맞으며 자란 동무가 아니냐고 믿음을 담아 말하던 모습이였다.

(그래, 한인준동무가 옳게 보았어. 아무렴 장철석이도 북주하양주공장의 그 폭풍속에 직접 뛰여들었던 동지가 아닌가!)

그는 다시한번 모아잡았던 두손을 뜨겁게 흔들었다.

귀틀집 들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밀림의 밤은 고요하기 이를데 없었다.

김봉빈이 특히 힘주어 강조하였다.

《전반적정세와 상풍광산일대의 현상황으로 보아 놈들이 무엇인가 매우 위험한 모략을 꾸미는것 같다는 철석동무의 말이 옳은것 같소. 놈들의 침묵! 고요!… 이런 때 우린 어떻게 해야겠는가? 차창일의 파업투쟁이 무모한 방법이였다고 하는 상풍광산지하조직의 견해 역시 백번 옳았소. 그것만 봐도 한인준동무가 조직의 투쟁을 정말 옳게 이끌었다는것을 충분히 알수 있소. 그 모범과 투쟁경험을 본받아야 합니다.》

김봉빈은 한참이나 더 신중한 표정으로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 이었다.

《현 실정에서 우리는 적들의 〈고요〉를 〈고요〉로 맞받아 짓부셔야겠소. 침묵전에 침묵으로, 이를테면 지략과 지략의 대결이랄가… 총적과제는 무엇인가? 두무봉회의에서 제시하신 전략적구상을 비롯하여 사령관동지께서 밝혀주신 조국해방최후작전에 합류하기 위한 준비―즉 이 랑림산일대에서의 무장폭동준비를 철저히 완성하는거요.》

김봉빈은 바로 그 력사적과업수행을 위하여 자기가 조국땅으로 나오게 됐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고 뜻있게 믿음의 미소만 지어보이면서 계속하였다.

《우린 강동무와 한인준동무가 이미전에 목숨바쳐 마련해놓은 피어린 투쟁성과들이 절대로 헛되지 않게 해야겠소. 난 나날이 더 그들이 정말 큰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이오. 그들처럼 우선 조직을 더욱 확대해서 력량을 튼튼히 마련해야겠소. 일단 유사시가 도래하면 일거에 들고일어날수 있는 핵심력량… 다음은 무장폭동준비요. 마지막결전에서 맨주먹만으로는 절대로 이길수 없소. 최후발악을 하게 될 놈들이거든!》

계속하여 그는 무장폭동준비를 어떤 방향에서 어떤 방법으로 할것인가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하고나서 특히 중요한것은 비밀근거지에 작탄을 자체로 만들어낼수 있는 병기수리소와 야장간을 차려놓은것만큼 광산에서는 작탄제작에 필요한 화약과 도화선, 뢰관을 전적으로 맡아 보장해야겠다고 하였다. 아직 무기를 많이 마련하지 못했기때문에 무장대의 힘있는 무기는 자체로 만드는 작탄이라는것이였다. 작탄제작에 필요한 무쇠와 쇠줄을 비롯해서 근거지안의 무장대원들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물자들과 자재들은 목재소를 비롯하여 린근 조직망을 통하여 해결하게 되니 이제부터 광산조직에서는 화약과 도화선, 뢰관만 전적으로 맡아달라는것이였다.

《알았습니다. 제 힘껏 해내겠습니다. 머리가 깨져도 해내겠습니다.》

장철석은 흥분해서 자리를 차고일어나며 결의했다.

《힘이 납니다. 이젠 주저할것두 걱정할것두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봉빈은 저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일부러 꾹 눌러앉으며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평시에는 조용하고 소심한것 같지만 일단 불이 달리면 이마가 깨여지는줄도 모르고 욱하는 성미라고 하던 한인준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조용히 장철석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소. 어서 앉으라는데!》

김봉빈은 무장폭동준비에서 작탄생산의 의의와 중요성을 다시금 력점찍어 강조하고나서 화약과 도화선해결의 기본방도를 조직성원들을 발동하여 찾으라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특히 항일무장투쟁의 초창기 부녀회원들과 로인들, 아동단원들까지 떨쳐나 적들의 무기를 빼앗은 경험들을 생동한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들창문 바깥턱에는 흰눈이 절반나마 쌓였다.

사연도 많고 뜻도 깊은 밤이였다.

1945년 새해의 첫날 밀림의 첫밤은 그렇게 깊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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