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4 장

3

H시의 동쪽변두리에는 류달리 경치가 아름답고 고요하고 안침진곳이 있었는데 시가지사람들은 그곳을 일본인거리라고 했다. 서울남산의 총독부 고관관저들을 본따서 지은 각양각색의 일본인주택들이 널려져있었기때문이였다. 일본인주택도 주택이지만 보다는 주택지구에 채 닿기 전의 도로량옆으로 《대중주점―잇빠이》, 《빠―마댐》, 《빠찡꼬―오아시스》와 같은 간판들을 숨막힐만큼 내건, 도꾜의 어느 골목거리나 오사까나 나가사끼의 시장거리를 방불케 하는 식당, 상점, 오락장들이 줄을 서서였다.

다른 곳에서는 왁작 끓어올랐던 명절기운이 하루도 못가서 식어져버렸건만 이 거리에서는 이제 한창 절정에 이르는가보았다. 날이 어둡자 건물앞에 내건 축등들과 창문마다에서 쏟아지는 불빛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료정마다에서 흘러나오는 샤미센소리와 더불어 애간장을 끓이는 왜년들의 노래가락과 꽥꽥 멱따는 소리같은 사내들의 탁성, 투닥투닥 되는대로 울리는 손벽소리, 축음기판에서 울리는 류행가가 한데 범벅이 되여 더우기 그렇게 느껴지는것 같았다.

어느 집 어느 창가나 다 그렇게 불이 환하고 분주한데 유독 한 건물만은 역시 불빛은 환하지만 숨마저 죽은듯이 조용하였다. 독특한 맛을 내려는 뜻에서인지 내륙지방에는 어울리지 않게 《동해호텔》이라고 네온등장식현판을 내건 2층벽돌양옥이였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도경찰서의 까만 경호차와 함께 두석대의 승용차들이 눈가루를 들쓰고 서있었다.

호텔정문앞에서는 두놈의 경찰과 사복형사 한놈이 몸뚱이들이 얼어들어서인지 발을 쿵쿵 구르며 왔다갔다 했다.

관리인들과 일반 접대부들은 어느 구석방에 숨어들었는지 얼씬을 안했다. 이따금 2층복도에서 음식을 나르는 접대부들이 한두명씩 조심스럽게 왔다갔다 했는데 반드시 중년의 호텔녀주인이 동행을 했다.

2층에는 주로 자름자름한 작은 방들이 많고 큰방은 가운데 한방인데 지금 그 방에는 도경찰부장과 헌병대장, 수비대장을 비롯하여 도안의 손꼽히는 권력자 대여섯이 낯짝들이 불깃불깃해서 바지띠를 풀어놓고 앉아있었다.

신년을 맞아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당초의 계획은 상풍광산에서 보란듯이 한번 차리려 했던것인데 모리무라 다다시가 두말 다시 못하게 딱 잘라 거절을 했었다.

리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노리아끼는 그것이 어항속에서 꼬리치는 금붕어들을 놀래우지 않기 위해서라는것을 제꺽 알아차렸다.

저 역시 두말 다시 않고 여기 H시의 일본인거리에서 간단히 설음식이나 나누자고 했다. 말로는 그렇게 제꺽 다다시의 의사를 따르는척 했지만 속에서는 괘씸한 생각이 기름끓듯 했는데 긁어 부스럼이라고 놈의 요구 또한 그의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뚱딴지같이 광부들에게 이틀간의 휴식을 주고 식사까지 아주 《특식》을 차려주라는것이였다. 그러되 노리아끼는 일체 얼굴을 내밀지 말고 광주나 감독들을 통하여 광부들속에 대일본제국의 은총을 선전하는 한편 일본사람들은 상풍광산지구를 아주 평온한 안민촌으로 믿고있다는것을 인식시키도록 하라고 했다.

이틀이나 휴식을 주면 어떤 움직임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한가닥 희망도 없지 않았다.

그 모든것 역시 귀신도 알수 없는 총독부 경무국의 비밀작전이리라는 생각에 이찌가와 노리아끼는 늙은 로마답지 않게 고개부터 갑삭 숙여보였다.

말은 간단한 설음식이라 했지만 연회상은 다리가 부러질만큼 요란했다.

허나 모리무라 다다시의 자리는 비여있었다. 첫 축배잔을 비운지 얼마 안있어 조심스레 방문을 연 접대부가 미리 약속이라도 했던듯 뭐라고 눈짓을 했던것이였다.

하긴 마음 편안히 신년연회상앞에나 앉아있을 다다시가 못되였다.

모리무라 다다시가 다시금 이 지구에 내려온것은 어제아침이였다. 신년명절을 랑림산지역에서 겨울철사냥을 하는것으로 뜻깊게 즐기려 한다면서 새 사냥총과 사냥복까지 그쯘하게 갖추어가지고 나타났지만 그 말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서울가까이에 좋은 사냥터가 한두군덴가. 모리무라 다다시가 자신도 언제인가 말하지 않았던가. 좀처럼 시간을 낼수가 없어서 그러지 언제든지 꼭 데라우찌가 배정자를 무릎에 앉히고 사냥을 떠났댔다는 삼방사냥터에 나가 사슴사냥을 해보는것이 소원이라고.

다다시의 급작스러운 사냥행각의 속내는 사냥조직에서부터 드러났다. 사냥을 떠난다면 몰이군들을 대동해야 할텐데 다다시는 우선 그것부터 반대했다. 경찰부장이하 경찰관속 두세명만을 일행으로 삼았던것이였다.

사실 그랬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모리무라 다다시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는것은 자기 관할지역에서도 특히 이곳 랑림산일대였다.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무인지경의 산중에서 꼭 무서운 호랑이가 무수히 새끼를 치고있을것 같은 예감에 불안을 참을수가 없었다.

모리무라 다다시에게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얼마전에 1945년의 새 국책을 내놓기에 골머리를 앓고있는 도꾜에 건너갔었다.

본영의 거두들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어쩔수없이 거의 다 벌거숭이가 된 몸뚱이들에 예민한 촉각의 청진기를 대여보고 제 손가락으로 직접 타진도 해보던 그는 그만 어깨가 처지고말았다. 태평양전선에서의 패전은 분명히 시간문제였던것이다.

그를 더욱 실망케 한것은 그처럼 승승장구한다던 중국동북일대에서의 군사작전도 공격으로부터 방어에로 방향전환을 할것이 명백한것이였다.

금주, 통화, 왕청을 련결하는 대산림지대에 《복곽진지》라는것을 구축하고 여기서 반타격전으로 상대측을 포위섬멸한 다음 다시 방어로부터 공격에로 작전을 바꾼다는것이였다.

말은 그럴듯 하지만 그것 역시 벌써 썩은 냄새가 풍기지 않는가.

하긴 그것은 이미 단순한 작전상의 문제가 아니였다.

사람들은 프랑스의 마지노선이나 도이췰란드의 지그프리트전선이 제일 든든한 방어선인줄로 알고들 있었지 중국동북일대에 구축한 일본의 요새들과 그 구역들이 얼마나 요란한지는 아직 알지 못하고있었다.

이 요새들을 하나로 쭉 련결시키면 총 연장길이가 수천키로메터나 된다.

이 요새에는 보통 한개 구역안에 영구화점과 토목화점들만도 평균 500개가 넘고 지휘소와 감시소, 화력진지, 각종 엄페호와 전호, 교통호, 반땅크와 반보병차단물들까지 설치해서 개미 한마리 얼씬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병졸시절부터 그 일판에서 김일성장군항일유격대와 다년간 맞서본 다다시는 그 저지선, 방어요새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김일성장군유격대앞에서의 그 저지선, 방어요새란 한갖 바람앞에 세워놓은 개바자나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설사 그 요새선이 군사적공격을 일시 저지시킨다 해도 김일성장군유격대에는 보다 무서운 힘이 있지 않는가.

전민항쟁으로 조선의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변함없는 초지의 뜻!

두만강일대의 북선지대와 압록강연안 랑림산의 험한 산판, 백두산 줄기줄기들이 문제였다.

물론 제 혼자 나선다고 무슨 뾰족한 방도가 있으랴만 그래도 이해의 첫자욱을 랑림의 그 험한 산발에 찍고싶은 모리무라 다다시였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면서 총독부에 앉아있을수없는 충동이 일어난것은 황해도경찰부 고등과에 박아넣은 첩자인 한 형사의 긴급통보를 받아서였다.

10여년전 북주하양주공장이란데서 감독을 하다가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알선으로 첩보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특별첩보훈련지에서 모리무라 다다시의 눈에 든 형사였는데 긴급통보인즉 양주공장을 불바다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주모자 곽영무란 청년이 놀랍게도 황해도일판에 나타났다는것이였다.

중국동북지방의 유격근거지로 들어갔던 청년이 10년이 지나 조선경내, 그것도 서울이 가까운 황해도일대에 나타났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대로 놓치지 말고 무조건 끝까지 추적하라는 지시를 주었는데 한시간도 못되여 다시 날아온 정보는 또 얼마나 가슴을 뛰게 했던가.

국내에 침투한 항일유격대공작원이 분명한데 랑림산줄기를 타려는걸 보면 목적했던 일을 다 보고 북부국경지대로 철수하는게 틀림없다는것이였다.

역시 절대로 놀래우지 말고 꼬리를 바싹 따르라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다음은 일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갑작스레 신년의 명분으로 이 일대에 날아들었고 제가 앞장서서 강설의 험준한 산발일각에 발을 들여놓았건만 겨우 손에 쥔것은 몇마리의 산토끼와 꿩일뿐 무엇이든 닁큼 삼켜버릴것 같은 대밀림―끝을 가늠할수 없는 원시림앞에 불안과 공포만이 가슴을 서늘하게 했었다.

아아히 펼쳐진 산발들, 보면 볼수록 거창한 힘으로 움씰움씰 움직이는것 같은 밀림의 바다!

다다시는 문득 북만땅의 어디선가 항일유격대를 추격한다고 떠났던 병사시절의 일이 생각났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였다.

항일유격대의 발자취라고는 하지만 진짜 사람의 발자국인지 곰의 발자국인지도 명백치 않은 흔적을 따라 무작정 내달리기만 하던 그들은 뜻밖에도 예상치 않았던 흔들레판을 만났었다.

선두에 섰던 병사 두세명이 가슴 섬찍하게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는 벌써 그 병사들이 가슴노리까지 흐물거리는 썩은 감탕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었다.

단말마적인 비명도 한순간, 썩은 감탕판은 어느새 병사들의 머리끝까지 삼키고나서 사람의 생명에는 너무도 비할바가 못되는 기포방울만 꾸르륵꾸르륵 몇개 토해놓고는 무슨 일이 있었더냐싶게 잠잠해졌다.

가뜩이나 물참봉이 되여 덜덜 떨던 병사들은 질겁을 하여 물러서고말았다.

불현듯 그때일이 눈앞에 떠오른 다다시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 무제한으로 펼쳐진 밀림의 바다가 그때의 그 흔들레판처럼 느껴지면서 벌써 한다리가 그 감탕판에 빠지기라도 한것 같아 소스라치며 뒤걸음을 쳤었다.…

누빈돗자리 12장을 석줄로 깔아놓은 자그마한 방.

창가림이 무겁게 드리운 창문앞에 서있는 다다시는 낮에 제눈으로 직접 보았던 대밀림과 함께 이제는 아득히 흘러가버린 옛날의 일로 된 흔들레판이 엇바뀌며 떠올라 기분이 나빴다.

아니, 국내공작원이 틀림없다는 그 곽영무란 조선청년이 옴짝못하게 자기의 등덜미를 거머쥐고 흔들레판으로 사정없이 밀어뜨리는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온몸에 닭의 살이 돋고 가슴이 떨려 얼마간을 더 창문앞에 서있기만 하다가 이윽해서야 일체 내색을 않은채 부러 목소리를 낮추면서 저력있게 물었다.

《노리아끼상한테 특별히 이틀간의 휴식을 주도록 했는데 전혀… 아무런 기미도 없더란 말인가?》

《예.》

간단하게 차린 음식상앞에서 얼굴 절반을 가리울만큼 큰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죄스럽게 대답했다.

급하게 서둘러 면도를 한듯 량쪽의 귀밑으로부터 턱까지 그리고 코밑에 되는대로 밀어버린것 같은 수염이 거밋거밋했다.

다다시는 그 수염부리가 못마땅해서 눈살을 찌프리며 쏘아보았다. 사나이는 두어깨를 으쓱해보이면서 어물어물 이었다.

《혹시 한인준이 저세상으로 갔기때문인지…》

다다시는 그만 신경질을 팩 부렸다.

《머저리같은것들, 겨우 붙잡았던 꼬리를 제손으로 끊어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는가?》

사나이도 제법 배짱을 부렸다.

《그렇습니다. 그 바보같은 자식이 경상만 입히라고 했는데 아예 정통을 갈겨댔으니…》

다다시는 입이 쓰거워 더 다른 말을 않고 방안을 몇걸음 거닐었다. 창문앞을 그렇게 몇걸음 왔다갔다하다가 뚝 멎어서며 퍽 아량있게 말했다.

《이봐, 난 결코 그따위 일을 놓고 추궁하자는것이 아니야. 물론 이번 일은 자네의 첫 작전에서 실패인것만은 사실이지. 교훈을 찾으라구. 요는 뭔가? 우리가 자네를 얼마나 품들여 키웠으며 어떻게 공들여 상풍광산에 잠복시켰는가 하는걸 명심하는거야. 자네에 대한 기대는 결코 우리 경무국뿐만이 아니야.… 첩보란 때로는 한순간을 위해서 한생을, 아니 대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거든. 우리가 지금껏 자네한테 돈을 아끼지 않은것도 그 한순간의 성공을 위해서야. 어쨌든 이번에 한인준의 꼬리를 바싹 쥐였던것만은 치하를 받을만해.…》

사나이는 제꺽 음식상앞에서 물러나 두무릎을 꿇고 그우에 손을 얹으며 정중히 앉았다. 그리고는 목이 꽉 메인 소리로 말했다.

《저의 대호를 〈모모〉의 대호그대로 〈모모―2〉라고 해주신 뜻을 명심하겠습니다. 오직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천황페하를 위하여 쇄골분신하겠습니다. 조선의 〈복숭아꽃〉, 〈살구꽃〉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음!》

다다시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상앞에 앉았다. 사나이를 친절히 상가까이에 불러다 편히 앉도록 하고 그의 잔에 술을 부으며 말했다.

《더 깊숙이 묻히라구. 철저한 위장…〈모모〉의 뜻을 잊으면 안돼. 내가 말했지? 조선의 〈모모〉는 한철만 피지만 일본의 〈모모〉는 〈대동아공영권〉을 완전히 실현할 때까지 계속 피여야 한다구. 알겠어?… 그러자면 신임을 얻어야 해. 열성도 더 내구. 첫째 과업은 절대로 로출되지 않는거야. 절대루! 여기가 반도땅이라고 해서 어리숙하게만 봐서는 안돼. 땅은 반도땅이지만 우린 여전히 항일유격대, 김일성장군유격대와 맞서고있다는걸 명심해야 돼. 유격대공작원들이 서울은 물론 부산과 제주도, 일본본토에까지 손을 뻗친다는 정보가 있소. 총독부에 종합된 자료만 봐도 조선안에 반일항쟁조직이 100개가 훨씬 넘어. 100개가…》

다다시는 또 한번 오싹 몸을 떨었다. 황해도일대에 나타났다는 국내공작원 곽영무란 청년이 생각나서였다. 그가 황해도일대만 돌아봤겠는가. 첩자의 예측대로 그가 정말 서울은 물론 부산과 제주도까지 메주밟듯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하랴. 아니, 조선경내에 들어온 공작원이 어찌 그 하나만이라고 하랴. 방금 제 입에서 튀여나간 그 100개가 훨씬 넘는 반일항쟁조직들을 그들이 다 돌아봤다면 그 조직마다에 어떤 불씨를 뿌려놓았겠는가.

해쓱해지는 얼굴때문에 잠시 사이를 두었던 모리무라 다다시는 제법 너그러운 인상을 짓고 결론을 내리듯이 말했다.

《우린 설사 자네가 당장 큰 공을 세우지 못한다고 해도 추궁을 안해. 내 말뜻을 알겠나?》

《알겠습니다. 대일본제국을 위한 원대한 그 뜻에 탄복합니다.》

《고맙네, 자 들자구.》

사나이는 패기있게 술잔을 냈다.

그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다다시는 나들문쪽에 대고 손벽을 두번 쳤다. 즉시에 문이 열리면서 고급양복차림에 역시 테굵은 색안경을 낀 사나이가 중절모를 정중히 벗어들며 례절있게 들어왔다.

《인사를 하게. 얼굴들은 이미 알고있겠지만… 오늘 이렇게 새삼스레 인사소개를 하는것은 이 군이 바로 〈모모―1〉이였다는걸 알려주기 위해서일세.》

《모모―2》는 퍽 놀란 눈으로《모모―1》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다다시가 인사중개를 계속했다.

《〈모모―1〉은 불가피하게 광산에서 소환했지만 자기 임무수행은 계속해야 되네. 앞으로 〈모모―1〉은 전적으로 〈모모―2〉와 〈담뽀뽀〉의 활동을 뒤받침해야 하겠네.》

《모모―1》은 호기심이 반짝이는 눈으로 다다시를 일별했다.

다다시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얕잡아보기라도 한듯 《모모―1》을 슬쩍 곁눈질했는데 그 눈길에 흐뭇해하는 미소가 어렸다. 그는 자랑이라도 하듯 또하나의 첩자 《담뽀뽀》(민들레)의 대호를 설명했다.

《앞으로 때가 되면 만나게 되겠지만… 〈담뽀뽀〉역시 〈모모〉못지 않게 조선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요. 이른봄에 피는 꽃, 짓밟혀도 짓밟혀도 다시 살아나는 꽃… 순하고 부드럽고 연연하면서도 부끄럼을 타듯이 풀숲에 조용히 숨어서 소박하게 피여나기때문에 더 좋아한다나… 누가 보건말건 땅바닥에 착 붙어서 소문없이 인기를 끄는게 아주 이채롭단 말이야.》

다다시는 대상의 성격에도 맞게 신통한 대호를 달아주었다는 만족감으로 제멋에 흐뭇해하였다.

《모모―2》가 상전이 기분좋아하는 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던듯 퍼그나 대담하게 한마디했다.

《저… 〈담뽀뽀〉를 계속 내곁에 두어야겠습니까? 이젠 나도 광산지구에 든든히 발을 붙였는데…》

《담뽀뽀》가 옆에 붙어있는것도 불편스럽고 시끄러운데 《모모―1》까지 또 붙여주느냐는 불만이였다.

다다시의 눈길에 대뜸 서리발이 섰다. 목소리도 칼날처럼 예리하고 랭기가 풍겼다.

《상급의 명령을 흥정하는 버릇은 언제 배웠는가? 난 아직 그런걸 배워준적두 허용한적두 없는데?》

《모모―2》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온몸이 꼿꼿해졌지만 대답만은 꺼림이 없었다.

《잘못했습니다. 저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다시는 손을 홱 내리그었다.

《버릇이 나빠.… 이번만은 용서하겠네. 자네들의 임무가 너무 중하거든. 이봐, 〈담뽀뽀〉는 자네를 상풍광산일대에 안전하게 들여보내는데 필요한 위장인물이였다고만 생각하면 안돼. 자네한테 련락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게 아닌가. 발걸음이 잦으면 돌부리에 걸채인다는 말 몰라? 그리구…첩보활동에서는 남자보다도 녀자가 더 쓸모있는 때가 있는 법이야. 알겠나?》

《모모―2》는 다시금 목을 꼿꼿이 세웠다.

《핫, 명심하겠습니다.》

다다시는 느슨히 웃음을 띠였다. 《모모―2》를 뚫어지게 마주보는 눈에는 음충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빛이 끓었다. 그는 웃몸을 《모모―2》쪽으로 쑥 기울이면서 조롱하듯 물었다.

《왜? 단련이 심하던가?》

《모모―2》는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핫하하…》

다다시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 눈앞에는 유난히도 육신을 노그라들게 하는 한 녀자의 라체가 떠올랐다. 얼굴은 별로 탐을 낼만치 예쁘지 못했지만 첫 교제부터 도대체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판처럼 육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타고난 재능의 녀자였다.

다다시는 갑자기 온몸에 짜릿짜릿 흐르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한해이상 제가 직접 맡아안고 보내던 각종 훈련과 교제의 나날이 떠올랐던것이다.

두 첩자가 야릇한 눈길로 지켜본다는것을 깨닫고서야 정신을 버쩍 차리면서 아닌보살을 했다.

다다시는 단호한 어조로 마디마디 찍어던지듯이 말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담뽀뽀〉의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자네에 대한 위장과 련락원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게 하는거요. 그외는 일체 다른 과업을 줄 필요가 없어. 같은 길을 간다고 다 열키로나 스무키로그람의 짐을 지워보내는건 아니잖나. 안 그래?》

다다시는 한쪽눈을 의미있게 찡긋 감아보이고나서 점점 더 팽팽해지는 긴장을 풀려는듯 쾌활하게 롱말까지 던지였다.

《한창나이의 젊은 녀성인것만큼 응?… 갈증이 좀 나 할수도 있지. 적당히 도와줘서 나쁠게 있는가, 어? 항차 자네두 오륙이 성성한 사나이인데 때때로야 어?…》

제사 정욕이 지글지글 끓던 다다시의 눈길이 언제였던가싶게 선뜩해지면서 날카로와졌다. 마냥 제 품에 안았던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빼앗기우기라도 했을 때의 야수와 같은 눈빛이였다.

목소리도 딴사람처럼 단호했다.

《정 시끄러우면 없애치워. 가차없이!》

두 첩자는 아연해서 굳어졌다. 등골에 오싹 서리발이 섰던것이다.

다다시는 더더욱 그런 감상주의에 빠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제사 목소리를 더 엄하게 돋구었다.

《앞으로 나의 지령은 〈모모―1〉에 의해 전달될거네. 〈모모―1〉은 될수록 광산에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게.》

다다시는 중국동북에서부터 오래동안 제 손으로 직접 품들여키운 두 첩자의 근량을 다시한번 료량하기라도 하듯 매서운 눈초리로 찔러보고나서 창밖 멀리 산쪽을 가리키며 끊었던 말을 계속했다.

《저 산속에 틀림없이 불주머니가 있어. 그 불아구리로 들어가는 직선길은 상풍광산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광산이란 참 걷어쥐기가 힘든데거든. 장마당이나 같아서 누구나 발붙이기가 쉬운데다 땅속굴안에 깊숙이 들어간 다음엔 소를 잡아먹어도 알수가 없단 말이야. 항일유격대 국내공작원들이라면 그 광산에부터 손을 뻗치리란거야 너무도 명백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자네들의 최종목표는 그 불주머니인것만큼… 〈모모―2〉와 〈담뽀뽀〉는 어떤 수를 써서든 광산지하조직선을 단단히 감아쥐여야 해. 절대로 서뿔리 놀래우지 말구, 응?… 그리구 〈모모―1〉, 자네는 자네의 첩보원들을 발동해서 〈사냥작전〉을 계속 내밀어야 해. 저 랑림산의 줄기줄기, 골짝골짝마다를 샅샅이 다 밟아봐. 알겠나?》

《알았습니다.》

두 첩자는 결패있게 대답했다.

《음.》

다다시는 그 순간 무슨 령감같은것이라도 떠오른듯 제사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마간 눈을 감고있다가 무척 진중하게 말했다.

《〈사냥작전〉이라… 물론 사냥대상을 찾아다니면서 쫓아가 잡을수도 있지. 한데 솜씨있는 사냥군은 짐승들이 다니는 길목이나 물먹이터 같은데를 알아내서 그곳으로 끌어내다가 손쉽게 잡는 경우도 있잖나.》

그는 《어때?》하는 눈길로 두 첩자를 일별했다.

두 첩자는 눈들만 껌벅거렸다.

모리무라 다다시는 자기 궁냥을 재정립이라도 하듯 또 얼마간 동안을 두었다가 아주 자신있게 계속했다.

《〈모모―1〉, 아무래도 자네는 이미 시작했던 추격전, 수색전에 힘을 넣어야겠네. 대신 〈모모―2〉, 끌어내오는 유인전은 임자한테 맞기네. 〈담뽀뽀〉와 같이, 응?… 사냥에선 몰이군이란게 있잖나?》

다다시의 새 궁리를 먼저 알아차린것은 《모모―2》였다.

그는 어지간히 흥분해서 맞장구를 쳤다.

《아, 알만합니다. 유인전!… 끌어내오는 작전은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마침 산속에서 화약과 도화선에 갈증이 났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화약과 도화선?》

모리무라 다다시는 긴장해졌다.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였다.

《모모―2》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큰 고기를 낚자면 큰 미끼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다시는 더욱 매섭게 번쩍이는 눈길로 《모모―2》를 뚫어져라 마주보고나서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큰 고기를 낚으려면 큰 미끼를 던져야 한다.… 그건 그래.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는 제 손으로 자기가 만든 불통을 뒤집어쓰게 될수도 있어.》

《모모―2》는 한무릎 다가앉기까지 했다.

《그건 걱정마십시오. 갈증에 허덕이는자는 신기루에도 눈이 뒤집힌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다다시는 비로소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좋아. 그럼 솜씨를 보이게. 나도 적극 뒤받침을 하지.》

그는 만족스럽게 다시금 잔에 술을 부었다.

《자, 그럼 잔들을 들게. 〈모모〉와 〈담뽀뽀〉는 다 한철에 꽃이 피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야.… 그럼 성공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잔찧는 소리가 류달리 챙챙했다.

허나 《모모―1》의 낯색은 그리 밝지 못했다. 어차피 《모모―2》한테 밀리우게 된다는 질투심이 끓었지만 칼날같은 성미의 상관앞이라 절대로 내색을 해서는 안되기때문이였다.

두 사나이가 절도있게 돌아서 나간 다음에도 다다시는 한동안이나 더 빈방에 앉아 손으로 이마를 고이고있었다.

《큰 고기를 낚으려면 큰 미끼를 던져야 한다.… 화약과 도화선이란 말이지!》

혼자소리로 외우면서 한식경이나 더 앉아있다가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큰방의 방문앞에 이르니 지금껏 어디 가서나 로인답게 입을 꾹 다물고있군 하던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굳어진 혀를 놀리며 장광설을 늘어놓고있었다.

《이봐, 올해가 소화20년이지? 꼭 40년전이 되는 그때에 말일세. 이또 히로부미가 이 반도땅을 어떻게 병탄했는가? 임자네들처럼 수십만의 군대를 끌고왔나, 현대적무기들을 메고왔나, 어? 하야시공사, 하세가와대장, 어? 통털어 셋이서 고종황제의 수족을 얽어매고 보호조약을 받아냈거든.… 강제든 강압이든 상관있는가. 응? 그 령감이 진짜 대장부야, 대일본제국의 대장부. 데라우찌총독도 우직스러운데는 있었지만 그만하면 난 인물이였지. 그래 지금 우리 일본에 그런 인물이 있어? 저 동북땅 100만 관동군이 창해일속이라고 하던 김일성장군항일유격대한테 계속 쩔쩔 매고있질 않나, 어? 남양군도에서는 날마다 무리죽음이 나질 않나. 임자네들은 다 바지저고리야, 구멍이 뻥뻥 뚫린 바지저고리!》

다다시는 이발을 앙다물었다. 방금전까지 바로 그 대일본제국을 위해 첩자들을 불러놓고 진땀이 나게 골머리를 짜댔는데 저 늙다리귀신같은 령감태기는 무슨 장광설인가.

당장 문을 박차고 달려들어가 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은 료리상을 발길로 걷어차기라도 하고싶었다. 저 늙다리를 왁작 추동하여 신년연회랍시고 이 료정에 끌어들인 구로지마 가메도가 괘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총독부의 요원답게 옷매무시부터 단정히 하고는 모든 일이 잘된듯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자기 자리로 걸어가는 그의 눈에서는 전에없이 간담을 서늘케 하는 독기와 찬서리가 뿜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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