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4 장

7

심혜영은 뜨거우면서도 초조한 눈길로 아름드리 분비나무가지들에 묻히여 선뜻 눈에 뜨이지 않는 자그마한 귀틀집을 바라보고있었다. 비밀근거지에서 썩 나와있는, 여러곳의 지하조직성원들과 만나기도 하고 련락원을 파견하기도 하는 비밀상면상담장소였다. 참 묘한 곳에 묘하게도 숨기여 지은 집이였다.

지금 그 귀틀집안에서는 긴급호출을 받고 달려온 장철석이 곽영무와 김봉빈이를 만나고있었다.

심혜영은 비밀근거지 무장대성원으로 입대했었다.

무장대에는 녀성대원들도 여러명 있었다. 작식대일과 재봉일 같은것은 다 녀대원들이 맡아하고있었다.

심혜영은 총과 작탄을 다루는데서 사람들을 놀래웠다.

군수공장출신이 아닌가.

그 경력으로 하여 그는 인차 작탄만드는 일에 선발되였다. 자기가 만드는 작탄이 앞으로 장철석과 함께 무장폭동을 일으키는데 쓰인다는것을 알고서는 누구보다 성수를 냈다.

비록 며칠되지 않았지만 그는 비로소 사람의 세상에서 사는 맛을 느꼈다.

사람의 처지가 이렇게도 달라질수 있을가? 사람들은 흔히 지옥과 천당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기야말로 지옥에 빠졌다가 천당에 날아오른 심정이였다.

무슨 일에나 남보다 더 열성스럽게 앞장서기 위해 마음을 썼다. 몸도 약해보이는 처녀가 그렇게 열성이니 보는 사람마다 칭찬이고 사랑이였다.

혜영은 오늘도 누구보다먼저 작탄제작장에 나갔었다. 장작을 아름아름 날라들이고 화로에 불을 지피고 힘차게 풍구질을 해대는데 형제많은 집의 맏오빠처럼 아량있고 리해심이 깊은 작탄조책임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오더니 빨리 지휘부로 가라고 했다.

지휘부마당에는 영무와 봉빈이가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우리 함께 어디 좀 갑시다.》

그 어디라는 곳이 눈속의 집인 이 비밀아지트일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철석이!》

《영무형님!》

봉빈의 소개를 받은 두사람이 팔을 벌리며 달려가 얼싸안을 때는 정녕 꿈을 꾸는가 했었다.

《철석동무.》

《공작원동지!》

얼굴을 확인하듯 서로 찬찬히 마주보다가 다시 힘껏 그러안을 때는 혜영이 저도 눈물이 콱 났었다.

그들은 곧 귀틀집안으로 들어갔다.

혜영은 스스로 밖에 떨어졌다.

유격대공작원들과 지하조직책임자사이의 비밀문제도 있겠지만 보다는 그들의 상면을 지켜주고싶은 마음에서였다.

한시간나마 지났는데도 아직 누구 하나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심혜영은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나기도 했다.

그도 이제는 상풍광산지하조직이 놈들에게 로출되였다는것을 알았다. 봉빈이가 철석을 영무와 함께 유격대로 보내려 하는게 아닌가고 슬쩍 귀띔을 해주는 대원도 있었다. 영무가 봉빈이와 함께 저까지 데리고 이 비밀아지트로 온것도 그 문제때문이였을가 하는 생각도 했다. 공작원들끼리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일에 왜 굳이 저를 데리고왔겠는가.

장철석이 이곳 상풍광산에 있다는것을 알았을 때 혜영은 만사불구하고 무작정 그한테로 달려가고싶었었다.

장철석이 어차피 또 광산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이내 도리를 쳤다.

짐승같은 놈들이 눈을 발가차고 지켜본다는데 왜 아직도 어물거릴가?

금시 무슨 일이 생길것 같아 가슴을 조였다.

한편 장철석이 곽영무와 함께 김일성장군님부대로 갈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였다. 단지 구창광산에서처럼 또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헤여지는건 아닐가 하는 조바심에 온밤 잠을 못잤다.

정말이지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고 헤여졌으면 하는것이 일생의 소원같았다.

그는 자기가 철석의 사랑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가 철석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몇해전 지금처럼 눈이 강산을 덮었던 한겨울이였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읜데다 어머니가 랭병으로 겨울에는 더우기 옴짝을 못하는 살림이여서 혜영이는 해종일 구창강에 나가 얼음을 까며 사금을 채취하다보니 산간마을이면서도 집에는 땔감이 자주 떨어지군 했다. 그 부족되는 땔감을 예닐곱살의 어린 남동생이 맡아안다싶이 했다.

하루는 굶주림에 지치고 추위에 지쳐서 집에 돌아오니 삭정이 한가치 때지 못한 랭돌방에서 어머니가 헌 이불을 들쓰고 누워 신음소리만 내고있었다. 억이 막힌 혜영이는 그만 어머니옆에 어푸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야 어떻게 계속 산담, 차라리 다 죽고말자꾸나!

그때 마당에서 쿵 하고 무엇인가 꺼져내리는 소리가 났다.

몸이 다부진 웬 청년이 아름드리 통나무 하나를 메고와서 마당굽에 내던진것이였다.

마른 솔가리 한짐을 진 남동생이 뒤따라 들어오며 누나를 찾았다.

마당 한가운데 서서 집둘레를 살펴본 청년은 마치 제 집에라도 온것처럼 부엌문도 열어보고 랭돌방의 방안도 들여다보았다. 나이든 처녀가 사는 집 살림이 이게 뭐냐 하고 힐난하며 책망하는것 같았다. 한참 그렇게 무뚝뚝해서 집안팎을 살펴본 그는 토방구석에서 날이 다 무딘 도끼를 찾아들고 메고온 통나무를 패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죽기로 작정을 했던 혜영은 그때까지도 별로 고마운 마음이 없었다.

쩡쩡 울리는 도끼질소리가 어쩐지 제 가슴을 콱콱 찍어내는것 같아 흠칫흠칫 놀라군 했을뿐이였다.

통나무를 절반나마 팼을 때에야 혜영은 어머니옆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남동생이 지고온 솔가리로 아궁에 불을 지피고 물을 끓였다.

그는 따끈하게 끓인 물을 한사발 들고 밖으로 나갔다.

청년은 혜영이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내미는 물사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아무말없이 받아서는 그대로 토방우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성이 나고 뚝한 표정이였다.

청년은 나무 한통을 다 패놓고서야 돌아갔다.

혜영은 벙어리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남동생이 성이 나서 나무람했다.

《누난 뭐야 쳇… 그 형님은 내가 나무하러 다니는걸 여러날 지켜보았다고 했어. 이제부턴 나무하러 다니지 말구 어머니가 뜨끈뜨끈한 방에서 지내게 불을 자꾸 때주라고 했어. 더운물 끓여서 손발도 자주 씻어주구. 벙어릴게 뭐야.》

청년은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저녁이면 통나무를 한대씩 메여왔다. 무딘 도끼도 광산에 가지고나가 선득선득하게 갈아다놓고는 한무지씩 장작을 패놓군 하였다. 이채로운것은 삭정이단이나 솔가리단 같은것은 한번도 져온 일이 없이 언제봐도 꼭 통나무를 한대씩 메여다가는 제손으로 다 빠개놓군 하는것이였다.

여전히 일체 말을 안했다.

혜영은 그즈음에야 그의 이름이 장철석,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별고생을 다한 혈혈단신이며 광산의 《형제계》책임자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머리우에도 하늘이 있다는것을 느낀 심정이였다. 정녕 장철석은 고생많던 처녀에게 있어서 하늘과 같은 희망이며 의지였다.

참말이지 그는 말없는 그 청년한테 모든것을 의탁하고싶었고 많은것을 다 쏟아놓고싶었다. 그 쇠덩이처럼 단단한 가슴에 안기여 마음껏 울어라도 보고싶었다.

야속스럽게도 청년은 일체 다른 내색이 없었으며 뚝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혜영이네 생활에만은 얼마나 세심하고 따뜻한지 몰랐다. 때식끓일감이 떨어지는것은 어떻게 알아보는지 강냉이나 보리쌀이나마 제때에 몇되씩 사다가 부뚜막에 놓아주군 했다. 집식구들의 생일날은 또 어떻게 아는지 혜영이로서는 엄두도 못내던 돼지고기나 소고기까지 남동생의 손에 들려보내기도 했다.

혜영은 비로소 자기가 온몸이 귀와 눈이 되여 장철석의 마음에 발을 맞추려고 애쓴다는것을 깨달았다. 그 깨도가 그의 감각과 눈치를 남달리 예민하게 했다. 그것은 또한 청년의 마음속기대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애타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다른 집에 정을 두고있는것 아니냐? 원, 나이찬 젊은이들이 맨날 만나면서두 소 닭보듯 하는것부터가 별나지 않냐.》

혜영은 언제한번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오로지 장철석을 자기처럼 믿었을뿐이였다.

그것은 장철석의 변함없는 그 눈길과 진심이 일렁이는 얼굴을 믿어서였다.

그는 어느때든지 장철석이 한겨울날 처음으로 아름드리 통나무를 메여다 마당가운데 내던지듯이 자기의 짐을 다 꾸려들고 와서 방 한가운데 털썩 내려놓으리라 믿었다. 일일삼추로 그날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말처럼 장철석이 만약 다른 집에 정을 두었다면 그날로 산속에 들어가 목을 매달 결심이였다.

그것은 또한 처녀의 가슴에서 남모르게 활짝 웃는 행복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저녁에 박산이 났다.

행방불명!

청천벽력같은 그 소식이 일본놈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붙들어 일본본토로 끌어갔다는 소식으로 이어진것은 며칠이 지나서였다. 그날은 정말 마을뒤산에 올라가 목이라도 매달고싶은 심정이였었다.…

귀틀집문이 열린것은 또 한시간나마 시간이 퍽 지나서였다.

10년간의 회포를 나누어서일가?

세사람모두의 얼굴이 눈에 뜨이게 환했다.

《허, 이거 우리가 도령님을 너무 오래 붙잡고 앉아있은게 아니요? 춘향이 꽁꽁 다 얼었겠소.》

곽영무가 기분좋게 롱말을 하며 어서 가보라고 장철석의 등을 밀었다. 저들은 귀틀집뒤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장철석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혜영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왜 그렇게 되는지 몰랐다.

등뒤에 와선 장철석은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무슨 사람이 이럴가!… 혜영은 제사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장철석은 아무 말도 없이 혜영의 옆을 지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며 나무숲속으로 들어갔다.

혜영은 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아름드리 고목밑을 지나 뚝처럼 가로누운 진대나무를 에돌기도 하면서 얼마쯤 그렇게 걷던 철석은 드디여 우뚝 멈춰섰다.

혜영이도 괜히 가슴에 두손을 모아얹으며 그자리에 섰다.

혜영이한테로 돌아서는 철석의 두눈에서는 이때껏 쌓고쌓아만 두었던 인정이 솟구쳐 불덩이처럼 이글거렸다. 혜영이는 숨이 콱 막히였다.

《고생했구만.… 용소.… 내 영무동지한테서 다 들었소.》

혜영은 눈굽이 화끈했다.

저 목소리 저리도 인정있고 저리도 따뜻했던가!

철석은 눈속을 왔다갔다 했다.

얼마간 그렇게 걷기만 하던 그는 또 혜영의 앞에 뚝 멎어서며 말했다.

《구창쪽으로 가는 인편이 있어서 어머니소식을 알아봤소. 별일없이 지낸다오. 동생도 철이 더 들구. 광산 〈형제계〉동무들이 잘 도와준다고 하오.》

혜영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돌아섰다.

《엄마!… 어머니.》

장철석이 혜영의 어깨에 따뜻이 손을 얹었다.

《진정하오. 이제 해방이 되면 우리가 더 잘 모시자구.… 자, 좀 더 걷지. 종일이라도 걷고싶구만.》

혜영은 그의 팔을 꼭 붙잡고 걸었다.

얼마나 안기고싶던 품인가!

공작원동지한테 다 들었다고 했지? 다 들었다… 무엇을 들었다는것일가. 지옥의 사자같은 그 털부숭이놈의 방에서 뛰쳐나올제 《철석오빠, 엄마!》하며 정신없이 눈판을 헤맬 때의 그 참경을 과연 알고있단 말인가?

장철석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가 너무 깊이 들어온것 같구만.》

그는 서둘러 돌아섰다.

혜영은 무엇인가 시간의 촉박감을 느꼈다.

그래 영무공작원동지가 빨리 떠날것이라고 했지.

혜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오늘 떠나야 하나요?》

장철석은 걸음을 멈추며 혜영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혜영은 저로서도 뜻을 모르게 고개를 한번 젓고나서 또박또박 힘을 주듯
이 말했다.

《영무동지가 빨리 떠나게 된다는걸… 알아요.》

《오―》

장철석은 말꼬리를 길게 뽑았다. 그는 《허허허.》하고 소리를 내여 웃었다.

이어 그는 걸음을 성큼 내짚으며 말했다.

《알만 하오. 내가 영무동지를 따라간다는거지?》

《총독부에서까지 거길 주목하고있대요.》

《총독부가 아니라 일본 본영이나 천황이 지켜본들 어쨌다는거요?》

《예?!》

《이것 보오. 내 방금 영무동지와 봉빈동지앞에서도 다시금 명백히 말했지만… 난 일생동안 북주하에서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걸 후회할거요. 얼마전까지만도 기어코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구.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이찌가와 노리아끼같은 놈한테두 겁을 먹구 피하려는 생각을 했댔소. 그따위놈 보지 않는데로 훌 떠나가버릴 생각이였지. 그 경거망동때문에 귀중한 한 동지가 목숨까지 잃었소.》

장철석은 가슴아프게 한숨을 내쉬고나서 계속했다.

《혜영이, 총독부에서 나같은게 뭐라구 지켜보겠나. 내가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랑림산일대의 비밀근거지와 무장부대들이지. 김일성장군님께서 파견해주신 국내공작원들, 봉빈동지나 영무동지 같은 사람들 말이야. 더 나아가서는…》

철석은 뒤말을 뚝 끊었다. 가슴이 철렁해서였다.

감히 어디라구 개놈들이…

철석은 저도모르게 격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어리석은 놈들, 뭐 총독부 경무국?!…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어찌구어째보겠다구? 천하에 바보같은 놈들, 장군님을 어떤 사람들이 보위하는지를 모르거던. 우리 조선사람을 몰라.》

《그건… 무슨 말이예요?》

무엇을 념두에 둔 말이냐는 뜻이였다.

철석은 손을 한번 가볍게 내저으며 말했다.

《오, 그건 차차루 알게 돼.… 한마디루 난 절대로 어딜 안가. 가서도 안되구. 아, 혜영일 이 산판에 두고 내가 가긴 어딜 간단말이요. 둘이 다 사지판에서 살아나 이렇게 만났는데. 내가 혜영일 지켜줘야지.》

장철석은 조용히 웃었다.

철석은 혜영의 두손을 꼭 모아잡으며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영이, 똑똑히 알아두라구. 우린 이젠 광주놈밑에서 수걱수걱 일이나 하던 광부들이 아니요.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구상을 받들고 왜놈쪽발이놈들과의 싸움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조선청년들이요. 우리의 싸움을 장군님께서 지켜보고계신다고 생각해보오.… 참으로 사람답게 살게 되였지. 어머니랑 모시고 옛말하며 살 날이 멀지 않았다 그 말이요. 내 얼마전까지만도 기어코 강을 건너가야겠다고 했지만 깨닫고보니 여기에도 중요한 일들이 많아. 장군님께서 여기 랑림산일대를 그렇게도 중시하신다는걸 늦게야 알았거던. 그러니 혜영이, 우리 장군님부대에 함께 가있는 심정으로 싸움준비를 더 잘하자구. 무장폭동준비! 알겠어? 내 혜영일 생각해서라두 화약과 도화선을 한짐씩 지워보낼테요. 혜영이 실컷 쓰고 남을만큼!》

혜영은 여전히 새 사람을 보듯이 감동되고 놀라는 눈빛이였다.

철석은 한걸음 더 나서면서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나직나직 말했다.

《이제 보오. 이 장철석이 사람들을 깜짝 놀래우는 일을 해놓지 않나.》

《깜짝 놀래우는 일이요? …뭔데요?》

장철석은 한쪽눈을 찡긋 감아보였다.

《그저 그쯤 알아두라구.》

혜영의 눈에 눈물이 핑 어렸다. 장철석이 어디도 안간다는데 대한 기쁨인지 그저 그쯤 알아두라는데 대한 야속함인지 몰랐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듯 혜영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고개를 숙인채 입술만 꼭꼭 씹던 그는 이윽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얼굴을 살짝 들며 물었다.

《글쎄 나같으건 몰라두 되겠지만… 그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여기 들어와 싸움준빌 하면 안되나요?》

혜영의 두눈과 얼굴에는 여전히 절절한것이 끓고있었다.

고집이기 전에 진심이였다.

장철석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의 얼굴이 눈에 뜨이게 흐려지자 혜영은 또 울먹울먹하며 말했다.

《거기서 잘못되면 나도 죽고말겠어요.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줄가.…》

《자 이런,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철석은 웃어보이면서도 부러 성을 내는체 했다.

혜영은 아랑곳없이 더욱 신중해서 말했다.

《나도 다 들었어요. 지금 놈들의 밀정이 거기곁에 바싹 붙어있는것 같다는 말도 말이예요. 밀정놈한테 작게 피해를 봤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장철석도 신중해서 물었다.

혜영은 주위를 얼핏 살피고나서 한걸음 다가섰다.

《저… 이건 아직 누구한테도 하지 않은 말인데… 구창광산에서 말이예요. 거기서랑 〈형제계〉성원들이 많이 붙잡혀서 징병, 징용으로 끌려간건 틀림없이 밀정놈때문이라고 했어요. 거 남갱 말더듬이 생각나요?》

장철석은 머리속에서 번쩍 하고 지나가는것이 있었다.

남갱 말더듬이?

《그놈이 밀정같아요.》하던 《형제계》성원의 말이 생각난것이였다.

혜영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나서 더 조용조용 말했다.

《거기서 징병으로 끌려간지 사나흘후였지요. 산에 간 동생이 오지 않아 내가 뒤산에 올라가는데 글쎄 그 말더듬이와 또 한사람이 무엇인가 낑낑거리며 맞들고가지 않겠어요. 사람의 시체였어요. 아직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걸 보면 죽인지 얼마 안되는것 같았어요. 놈들은 그 시체를 페갱의 수직굴에다 던져버렸어요. 난 너무도 무서워 바위짬에서 나오지도 못했댔어요.》

《그렇소? …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소? 죽은 사람말이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말더듬이놈은 틀림없었어요. 그리고 또 한놈도 똑똑히 봤어요. 두눈귀가 올리붙고 아래턱이 내밀렸어요. 그놈이 말더듬이한테 무슨 지시를 주는것 같았어요. 상풍광산이란 말도 여러번 하구… 그 일이 있은 다음에 나도 갑자기 붙잡혀갔댔지요. … 이제라두 만나기만 하면 알아볼텐데.》

《그래?!》

《이봐요. 그놈들이 상풍광산이란 말을 여러번 한걸 보면 그놈들도 상풍광산에 와있는게 안예요?

난 막 무서워요. 가슴이 떨려요.》

장철석은 마른 이끼들이 가득 덮인 전나무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눈귀가 치째지고 아래턱이 내밀렸단 말이지!》

철석은 주먹으로 나무밑둥을 탕 쳤다.

《아래턱이 내밀린 놈이라!》

또 한번 외우고는 서둘러 혜영의 팔을 잡았다.

《알겠소. 빨리 봉빈동지한테로 가자구.》

그는 혜영을 끌다싶이 하며 귀틀집쪽으로 향했다.

얼마쯤 끌려가던 혜영이 기어코 다시 멈춰서며 물었다.

《저… 정말 무섭지 않아요?》

장철석은 이윽토록 혜영을 뜯어보다가 싱긋 웃었다.

《원 참, 몇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내 방금전에도 말했지? 전에는 겁도 났다구. 허나 이젠 이 장철석이 전날의 철부지가 아니요. 봉빈공작원의 말이 김일성장군님께서 이 장철석이도 알고계신다는거요. 우리 조직의 활동을… 장군님께서… 아, 장군님께서 알아주시는데 뭘 겁날게 있어?》

혜영은 여전히 발끝에 떨군 눈길을 들지 못했다.

또 그 밀정놈때문이라는 생각에 장철석은 저으기 신중해져서 말했다.

《글쎄 걱정말라는데.… 아직은 놈들이 날 다치지 않아. 오히려 돌봐준다고 할수 있지. 날 굉장히 크게 써먹으려 하고있거던. 결국 날 보호하고 내가 하고싶어하는걸 도와주는셈이지. 그러니 걱정 꽝 놓구… 혜영이, 맡은 일을 더 잘하라구. 알겠어? 자, 어서 가자구.》

그는 더 힘있게 혜영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귀틀집앞에서는 봉빈이와 영무가 먼저 돌아와서 무슨 이야기인가 열정적으로 나누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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