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5 장

1

조선중부 평야지대에도 그렇지만 랑림산일대의 고산지대에는 특히 눈이 더 녹을 사이없이 계속 내려와 덧쌓이기만 했다.

어제도 밤새도록 눈이 쏟아졌다.

토끼나 오소리 같은 산짐승들은 엄두도 못냈고 노루나 메돼지들이 지나간 자리는 자국이 아니라 가슴과 배로 떠밀고나가 곳곳의 숲속에 오솔길같은 눈길을 냈다.

분비, 가문비, 전나무가지들에는 금시 뚝 부러지지 않을가싶을만큼 눈이 더미로 쌓여 무겁게 늘어졌다. 큰 나무들 사이사이에 자라던 애어린 나무들도 눈을 들써서 어떤것은 백삼같기도 하고 어떤것은 나무드덜기나 바위돌 같아보이기도 했다.

또 한바탕 눈을 쏟으려는지 하늘이 시커멓게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울창한 밀림속에 가지마다 눈을 무겁게 들썼으니 나무밑은 백야속의 그늘처럼 컴컴했다.

어디선가 궁상스럽게 까마귀울음소리가 까욱까욱 나더니 눈가루를 뽀얗게 날리면서 먼저 산까치 한마리가 날아오르고 뒤미처 열댓마리나 되는 흉물스러운 까마귀들이 기를 쓰며 산까치를 추격했다.

방금 까마귀들이 날아오른 산등성이에서 허리까지 치는 눈판을 헤치는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꺼먼 털벙거지와 두툼하게 두른 털목도리에 성에가 허옇게 불렸는데 곰가죽등거리가 유난스러웠다. 어깨에는 쌍련발식사냥총을 멨고 허리와 어깨에는 탄약을 줄줄이 끼운 탄띠를 둘렀다. 사냥총과 탄약, 곰가죽등거리가 담이 크고 관록있는 사냥군이라는 말없는 시위인듯도싶다.

사냥군이면 자연히 숲속을 유심히 살피련만 무엇을 목표로 했는지 곧바로 산등선을 가로지르더니 남향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밑으로 향했다. 저 앞쪽으로 다래와 오미자덩굴에 절반쯤 묻혀버린 절벽이 나타나자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나서 이마우로 털벙거지를 쑥 밀어올렸다. 땀이 홍건히 내밴 이마에서 대뜸 김이 피여오른다. 두눈귀가 치째지고 아래턱이 눈에 뜨이게 내밀렸다.

모리무라 다다시가 품을 들여 키워냈을뿐아니라 중국 동북지방은 물론 조선경내의 중요요충지대들에 깊숙이 묻어놓은 첩자들중의 하나인 우메즈 사부로―《모모―1》이였다.

그는 이미 할빈, 왕청, 연길, 무송지구로 무수히 자리를 옮겨가며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하조직과 조직원들을 내탐하여 도죠내각의 표창은 물론 인생말년에 그리 궁하지 않게 사는데 적지 않게 보탬이 될 상금까지 받았다.

특수첩보원들중에서 《모모―2》도 그렇지만 우메즈 사부로가 특히 더 다다시의 관심을 끈것은 전혀 일본사람이라고 느낄수가 없는 조선말발음이였다.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초점으로 하고 조선사람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 첩보활동에서 모리무라 다다시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중시하는 일종의 방략이기도 했다.

사부로가 다다시의 각별한 관심을 산것도 천성적이라고 할만 한 그 재간때문인지도 모른다.

헌데 일은 이곳 상풍광산에서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셈이 되고말았다.

사부로가 경무국의 비밀료정에서 다다시와 술잔을 찧고 박상이라는 이름으로 상풍광산에 들어온것은 네해전이였다. 그는 그사이 침착하고도 치밀하며 인내성있는 작전으로 광산의 반일지하조직성원이 되였고 부책임자로까지 신임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그의 총적과업은 하나―반드시 랑림산일대로 들어오게 될 조선인민혁명군 무장소조나 국내공작원을 색출하는것이였다. 그 대상이 크면클수록 보수가 엄청나게 높아질것이라고 약속했다.

다다시는 이번 일까지만 끝내고는 도꾜로 돌아가 새 첩보원양성에 전념하면서 첩보활동경험집같은거나 썼으면 하는 그의 희망도 쾌히 담보해주었었다.

사부로는 상풍광산공작이 자기 한생의 황홀한 령마루로 되리라 확신했다. 그만큼 그는 자신심을 가지고 뼈심들여 달라붙었던것이다.

드디여 그는 《강동무》라는 너무도 큰 인물과 맞다들었다.

한인준으로부터 국경대안까지 자기를 대신하여 그와 동행하라는 특별과업을 받았을 때 그는 정말이지 순간에 구름우에라도 날아오르는것 같았었다. 긴급비상통보를 받은 모리무라 다다시는 또 얼마나 흥분했던가.

한인준에게서 극히 중요한 움직임이 있군 한다는것은 이미 포착했었지만 그것이 유격대사령부와 직접 련계를 가지고있는 국내공작원 《강동무》라는 인물과 극비밀리에 만나군 하는 일일줄은 몰랐었다.

사부로는 곧 해당 통로를 통하여 치밀한 작전을 폈다. 그에게는 임의의 시간, 임의의 장소에서든 자기의 작전을 마음먹은대로 펴나갈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 총독부증명서가 있어 저격수 한명을 요구했다. 그에게 행군로정의 매복지점을 정해주고 자기들이 나타나면 지체없이 우선 자기의 왼쪽팔을 쏘라고 명령했다.

다른데는 안되고 꼭 왼쪽팔을 쏘아야 한다고 엄하게 반복했다. 총소리만 내겠으니 총에 맞은척 하고 쓰러져있으면 안되겠느냐고 동정을 표하자 비장하면서도 결연한 목소리로 천황페하의 충신이 팔 하나가 무슨 대수인가. 내가 피흘리며 쓰러지는것을 직접 보아야 그 《강동무》가 달아나질 못한다. 혁명군은 자기 동지가 부상을 입고 쓰러지면 절대로 혼자 달아나는 법이 없다. … 하고 유식을 뽐내기까지 했다. 특히 그가 기어코 자기 몸에 부상을 당하려는것은 만약의 경우 같이 《체포》되여 같이 《감옥투쟁》을 벌리려는 타산이였다.

자기를 먼저 쏜 다음에는 이어 《강동무》의 성한 다리를, 동상으로 하여 절룩절룩 저는 다리가 아니라 꼭 다른쪽다리를 쏘아 절대로 뛰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선발된 저격수의 사격솜씨는 귀신처럼 능했다. 첫 총성과 함께 왼쪽팔굽아래를 몽둥이로 쳐갈기는것 같은 타격을 받는 순간 풀숲에 푹 쓰러지면서도 사부로는 속으로 환성을 올렸다.

(성공이다!)

앞서 걷던 《강동무》가 아연해서 돌아서는 순간 또 한방의 총소리와 함께 그가 오른쪽무릎을 붙안으며 주저앉을 때는 펄쩍 뛰쳐일어나 목이 터지게 《반자이!》를 웨칠번 하였다.

허나 그는 《강동무》의 몸에 비상용수류탄이 준비되여있을줄은 몰랐다.

잠복해있던 경관들이 짐승무리처럼 달려드는 순간 산판에 메아리치며 울리는 폭음!

사부로는 제몸이 그 수류탄파편에 갈가리 찢어지지 않은것만도 천행으로 여겼다.

제풀에 성이 독같이 오른 사부로는 얼혼이 빠져 멍청히 서있는 한 경관의 손에서 다짜고짜 보총을 나꿔채자바람으로 방금전에 자기의 왼쪽팔을 쏜 저격수의 가슴을 꿰창냈다.

《개자식!》

왜 애매한 저격수한테 행패를 하는지도 모르고 남은 총탄을 다 쏟아부었다. 아연해서 벌벌 떠는 경관들에게 빨리 산판에서 강대나무들을 끌어오라고 명령했다.

산더미같은 나무더미가 쌓이자 두 시체를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

비록 뜻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수습은 괜찮게 했다고 생각하며 다다시에게 경과보고를 했는데 일은 또 뜻밖으로 번져졌다. 이제는 광산에서 일체 손을 떼라는것이였다. 당초의 언약대로 쇄골분신의 정신으로 기어코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떼를 쓰자 다다시는 쓰거움을 감추며 점잖게 타일렀다.

《자네는 이미 로출됐어. 임자의 그 인상특징부터가 께름하단 말이야. 로출된 탐정은 적들에게 역리용된다는걸 몰라?》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장작더미에서 타죽은것으로 소문을 내고 인적없는 산판으로 깊숙이 숨어들라고 했다.

사부로는 그때처럼 자기의 치째진 눈귀와 앞으로 내밀린 아래턱이 저주스러워본적이 없었다.

어쨌든 맡은 임무에 대한 쇄골분신의 정신이 은을 내서인지 랑림산일대의 큰 인물색출에만은 그대로 참가하기로 했다. 그것이 다름아닌 고달프기 그지없는 천고의 대원시림을 참빗질하듯 샅샅이 훑어야 하는 《사냥작전》이였다.…

사부로는 또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허리춤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비록 국화문장이 새겨진 시계는 못되여도 도죠 히데끼내각의 한다 하는 요직인물이 직접 선물로 준 시계였다.

그는 (아차!) 하는 후회와 함께 서둘러 벼랑굽으로 향했다.

벼랑굽에는 눈속을 헤치며 무슨 풀뿌리인가를 캐는 한 녀인이 있었다.

사부로는 좀 숨이 찬 목소리로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약초를 캐는가요? 원, 이 겨울에 약초를 캐다니요?》

《산에서 물오리사냥을 하려는 사냥군이나 같지요.》

《담뽀뽀.》

《모모―1.》

녀인은 그 다음에야 허리를 펴며 돌아섰다. 두눈만을 내놓고 검은천으로 복면을 했다.

사부로는 모욕을 느끼며 성을 냈다.

《그 복면은 벗어!》

《담뽀뽀》의 목소리는 아주 야유적이였다.

《상면때 반드시 복면을 하라는것은 내 상관의 지시예요.》

사부로는 침을 탁 내뱉았다.

실은 그도 《담뽀뽀》의 얼굴은 몰랐다. 다다시의 상면지시를 받는 순간부터 어떤 녀자일가 하는 호기심이 부사산만큼이나 컸었다. 헌데 정작 나타난것은 복면의 수수께끼같은 년이란 말인가!

상관이라면 누구인가? 《모모―2》?

흥! 하고 코바람을 내불었다. 기껏 위장하고 련락임무나 수행하는 주제에! 하는 조소에서였다.

《정 시끄러우면 없애치워. 가차없이!》하고 소름이 오싹 돋을만큼 랭기를 풍기던 다다시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가슴을 선뜩하게 했다.

한가닥 동정심도 일었다.

비록 검은 복면을 쓰고 가을독사처럼 독기를 풍기긴 했지만 네년도 기껏 써먹다가 비위에 거슬리면 꿰진 신발짝 차던지듯이 개굴창에 내던져질 운명이야! 하는 쓰겁고 가련한 생각에서였다.

다다시의 그 야수같은 성미에 다시금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끄러우면 가차없이 없애치울》운명이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채 그래도 다다시의 첩자랍시고 도고해하는 인생이 이 어리석은 년 하나뿐이겠는가.

어쨌든 새 지시는 전달해야 했다.

《담뽀뽀》는 채 듣지조차 않고 얼굴이 새빨개서 팩 했다.

《뭐예요?… 누굴 암개로 보는거야?》

사부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자기는 물론 지시를 전달하는것으로 임무수행이 끝나지만 《담뽀뽀》가 너무도 도전적으로 반발했기때문이였다. 뜻밖의 예상할수 없는 불똥이 저한테도 튈것 같아 당황해졌다.

다다시의 새 지시에 꺼림없이 반발하는 년의 놀아대는 품으로 보아 둘사이가 보통 아니였댔던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에 더더욱 오금이 저려났다.

둘은 한식경이나 벼랑밑을 서로 엇갈아가며 왔다갔다 했다.

사부로는 무엇인가 인내성있게 설득시키려 했고 《담뽀뽀》는 여전히 도고한 자세로 신경질을 부렸다.

얼마후에야 서로 합의가 이루어진듯 깍듯이 고개들을 숙여보이고 헤여졌다.

《담뽀뽀》는 꼿꼿이 나무숲을 헤쳐나가다가 《모모―1》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을무렵에야 복면을 벗고 막혔던 숨을 내쉬듯이 큰숨을 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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