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1 장

3

순철이 역시 보통키에 농사일에 다져진 사람답게 다부진 체격이였다.

첫눈에는 어리숙해보였지만 도드라진 되박이마에 눈꼬리가 량옆으로 어지간히 쳐들린 모색은 결코 어리무던하지만은 않은 인상이였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앉아 반소매베적삼을 벗어 보자기처럼 똘똘 말아 허리에 둘러띠였다. 그리고 간편하게 바지괴춤
안으로 깊숙이 밀어넣어 웃옷을 벗은것처럼 보이게 했다.

철석이도 그가 하는대로 했다.

준비가 다되자 철석이가 약속대로 좀 높은 소리로 말했다.

《여, 오줌누러 나가지 않겠어?》

《으-음.》

순철의 피로에 젖은듯한 목소리.

《혼자선 떨려서 그래. 같이 좀 나갔다오자구.》

다음행동으로 넘어가자는 신호였다. 혹시 아직 자기들처럼 잠들지 못하고있는 청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예고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비칠거리면서 천막을 나섰다. 천막을 나서기 바쁘게 부러 보초놈앞으로 다가갔다. 오줌이 무척 마려와 급해난것처럼 안절부절했다. 웃동을 벗은채 제놈의 앞에서 바지괴춤을 내리고 오줌을 누는것을 보자 보초놈은 낯짝을 찡그리며 돌아섰다.

먼저 괴춤을 올린것은 순철이였다.

철석은 온 정신을 모아 순철을 살피면서 한껏 늦장을 부렸다.

바지괴춤을 올리고 허리띠를 끙끙 졸라맨 순철이 어느새 비호처럼 달려들어 보초놈의 목을 틀어안았다. 어둠속에서 칼날이 번뜩하더니 놈의 가슴에 박혔다. 순철이 어떻게나 놈의 목을 비틀어 안았던지 놈은 끽소리 한마디 치지 못했다.

순철의 손에서 또 한번 칼빛이 번쩍했다. 보초놈은 그의 팔에 안긴채 맥없이 스르르 무너지며 어푸러졌다.

《빨리요!》

순철의 속삭임과 함께 그들은 바람처럼 이미 약속했던 해당화가 무성한 떨기나무숲을 향해 내뛰였다. 인공바위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는 해당화숲뒤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졌다.

어둠속에서 손들을 억세게 마주쥔 그들이 대나무숲에 뛰여들었을 때에야 천막주변에서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고 연거퍼 쏘아대는 놈들의 총탄이 새빨간 포물선을 그으며 어둠속 사방으로 날아갔다.

총탄이 날으는걸 보면 놈들은 아직 대나무숲을 죽기내기로 달리고있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였다.

그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였다. 뛸내기에서는 장철석도 어지간했지만 제먼저 사생결단의 결심을 했대서인지 순철이를 당하지 못했다.

어차피 순철의 손에 끌리여 뛰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순철이는 마치도 힘센 말이 마차를 끌듯이 억세게 냅다끌었다.

한발자국이라도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면 그만큼 살 길이 더 넓어진다는 오직 그 한생각밖에 없었다.

방금전 저들이 뛰쳐난 그 천막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했다. 총소리에 놀라 깨여난 청년들이 불난 집에서처럼 천막밖으로 뛰쳐나온것은 물론 뒤늦게야 사태를 짐작한 그들 역시 산지사방으로 내뛰였다는것도, 놈들이 사정없이 갈겨대는 총탄에 여라문명의 끌끌한 청년들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는것도 알수가 없었다.

먼저 쓰러진것은 순철이였다.

아무리 억대우같은 힘이라도 저만 못지 않은 장철석을 내내 잡아끌며 뛰였으니 어이 지치지 않으랴.

그가 쓰러지는것을 보자 철석이도 더는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는 순철의 몸우에 엎어지듯이 그옆에 퍼더버리고앉았다.

사방은 여전히 캄캄했다.

멀리 하늘 한끝이 희읍스름히 트이기 시작했다.

목이 타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속에서도 철석은 그것이 동녘하늘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려명이 밝아오고있었다.

려명!

철석은 자기들이 얼마나 달렸는가를 생각했다. 네댓시간을 정신없이 달렸다는것을 알았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들을 콱 파묻고있는 어둠은 지난밤 부산앞바다로부터 무섭게 밀려들던 그 먹장구름에 의한것이 아니였다. 주위사방은 온통 나무숲이였다. 울창한 나무숲이 어둠의 장막을 드리웠던것이다. 그 장막―나무가지들사이로 하나둘 새벽별들이 반짝이였다.

철석은 저들이 지금 경상산줄기의 무성한 산림속에 들어섰다는것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순철이가 손을 내저으며 헛소리를 쳤다.

《난 아니요, 아니예요.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죽이지 않았단 말예요!》

철석은 순철을 와락 잡아흔들었다.

《순철이, 정신차려. 정신차려, 순철이!》

순철이는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나앉았다. 땀이 벌창인 얼굴이 해쓱했고 두눈에는 충혈이 졌다. 충혈된 그 눈속에서 공포의 빛이 떨고있었다.

한동안 철석을 멍청하니 바라보던 순철은 돌연히 또 뒤로 펄쩍 물러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철석이 붙안을 사이없이 그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순철이!》

철석은 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순철을 여겨보았다.

이 사람이 과연 바람처럼 달려나가 왜놈보초를 찔러눕히고 수십리 먼먼 산판길을 내내 저를 끌고 달려온 순철이가 옳을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긴 그때는 순간에 생사가 판가리되는 때였으니 그럴수 있었지… 하는 생각에 다시금 목이 꺽 메여올랐다.

《순철이!》

또 한번 피타게 부른 철석은 저도 그만 그옆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말았다.

미구하여 날이 활짝 밝고 숲우로 둥실 떠오른 아침해가 누구에게나 공정한 따스한 빛으로 그들을 다정히 어루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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