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5 장

2

비밀모임장소로 가는 장철석은 저으기 어깨가 무겁고 발걸음이 떠졌다.

이틀동안이나 김봉빈과 함께 있으면서 지하조직들을 확대하는 문제와 조직의 투쟁방향, 방법을 배울 때는 물론 곽영무까지 만나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구상과 구체적인 투쟁경험을 들었을 때는 자신이 만만했고 그만큼 또 신심이 북받쳤는데 정작 그들과 헤여져 광산에 돌아와보니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사람들이 보는 눈길부터가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경관들과 길거리에서 마주치군 하는 수비대놈들도 어쩐지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것 같았다. 이죽거리기 잘하는 로무과장과 신경질로 빚어놓은것 같은 갱안의 십장놈도 무엇인가를 알고있는것처럼 느껴지면서 가슴이 철렁하군 했다.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봉빈공작원과 마주앉았을 때와는 달리 내가 정말 일을 제대로 해낼수 있을가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날 밤이면 또 한인준의 얼굴이 떠오르고 혜영이와 영옥의 얼굴이 떠올라 발목을 잡기도 했다.

제일 긴장되는것은 총독부 경무국과 직접 잇닿아있다는 밀정의 눈길이였다.

어느 놈일가?

우리의 곁에 바싹 접근해있다고 하면 지하조직선가까이에 들어와 박혔다는것인데 과연 어떤 놈일가?

그렇듯 침착하고 주도세밀한 한인준이까지 모르는걸 보면 로숙해도 보통 로숙한 놈이 아닌게 분명했다.

그 눈길이 밤이건 낮이건 자기의 등뒤에 붙어다닌다고 생각하면 장철석은 깜박 잠이 들었다가도 등골이 오싹해서 캄캄한 방안을 둘러보군 했다.

급선무는 빨리 그놈의 정체를 밝혀내는것이였다. 한인준의 유언대로 방풍림구실을 바로하자고 해도 그렇고 더우기 무장폭동준비를 극비밀리에 다그치자고 해도 그놈부터 똑똑히 밝혀내야 했다. 아직 그놈이 어디에 도사리고있는지조차 모르고있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탔다.

한인준이 일체 행동을 중지하고 침묵했던 사정이 더 깊이 리해됐다.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제 생각만 생각이라고 우둘렁거리던 일이 정말이지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설익었댔어. 당초에 똑똑칠 못했댔거든. 그러니 이찌가와 노리아끼같은 놈한테 조직을 다 로출시키기까지 했댔지.)

다시금 나때문에 귀중한 동지가 잘못됐다는 자책에 가슴이 째지는것 같았다.

그래. 놈들과의 사생결단은 제 기분, 제 배짱대로 헤덤벼쳐선 안돼!

봉빈공작원의 말대로 조직을 확대하면서 무장폭동준비를 다그치자면 빨리 놈들의 밀정을 알아내야 했다. 이미 결심한대로 놈들과 쉽게 접촉할수 있는 조직원을 빨리 선발해야 할텐데 과연 누구를 어떻게 활동시킬것인가부터가 막막했다.

며칠동안 팥자루에서 콩알 찾아내듯 하여 두사람을 점찍었다.

아직 점만 찍었을뿐 본격적인 사업엔 착수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료해와 실천적인 검증이 더 필요했던것이다. 강동지의 체포모략이나 한인준의 희생과 같은 치명적인 일을 다시 반복시킬수는 없지 않는가.

(더 따져봐야 한다. 한인준동지처럼 신중해야 해.)

놈들이 부러 우리 조직을 다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놈들의 밀정을 더《신임》하고 믿는척 해야 한다. 스스로 꼬리를 드러내게 해야 해!

배심이 생겼지만 한편 불안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그길밖에 없는것이여서 장철석은 단호히 그 방법으로 맞받아나가야겠다는 결심을 더 굳게 다지였다.

그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모임장소는 한인준이 리용하던 선녀갱 옆골안의 페갱이였다. 다른 갱주변도 그렇지만 선녀갱가까이에도 이곳저곳 뚫다가 그만둔 페갱들이 곳곳에 있었다.

장철석은 처음 한인준의 뒤를 이어 자기가 이곳 지구 조국광복회조직의 활동을 책임지게 되였을 때 비밀모임장소부터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했었다. 봉빈이와 영무의 조언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모임장소를 옮길뿐아니라 자주 변동시키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것은 지하활동에서의 하나의 원칙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장철석은 점차 달리 생각했다.

이미 한인준이 로출됐고 자기도 로출된 상태라면 그 회합장소를 더 적극적으로 리용하자는것이였다.

한인준이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자기가 방풍림성벽이 되여 놈들을 감쪽같이 갱속 깊숙이 끌어들여다 수족을 얽어매놓겠다고!

그렇다면 굳이 놈들의 눈길을 피하는게 아니였다.

놈들의 눈길을 피하는척 하면서 아니, 놈들이 모르는척 한다면 우리도 일체 모르는척 하면서 놈들이 조명등을 켜놓은 바로 그 턱밑에서 활동을 하는게 훨씬 더 유리하지 않겠는가.

때로는 우정 부산을 피우며 그 페갱안에 모여 우스개판을 벌리군 했다. 화투놀이나 장기놀이 같은것을 벌리기도 했다. 그렇게 놀음판을 벌려놓고는 실지 내용적인 문제들은 사전에 따로 과업을 받은 조직성원들이 전혀 왕청같은 다른 곳에 모여앉아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다.

오늘은 특히 중요한 문제를 토의하기로 했다.

문제가 중요한것만큼 장철석은 오늘회의를 각별히 품을 들여 준비했었다.

우선 항시 놈들의 감시속에 있을 선녀갱쪽의 페갱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될수록 화투놀이나 장기놀이에 승벽이 센 광부들을 모이도록 했다. 이미 로출되였다고 짐작되는 이전의 조직성원들에게 과업을 주어 몇명씩 데려오게 했던것이다.

선녀갱책임자를 비롯해서 기본문제토의에 꼭 참가해야 할 대상들은 하루전에 각자 구실을 만들어 광산에서 멀리로 볼 일을 보러 가는것처럼 감쪽같이 행적을 감추도록 조직사업을 짜고들었다.

장철석은 부러 늦장을 부리면서 얼마쯤 장기판에서 더 시간을 보내다가 중요회의를 하는것처럼 사람들을 가까이 모여앉히고는 로동조건개선문제와 임금인상문제를 비롯해서 광산측에 제기해야 할 생활조건 몇가지를 의논에 붙였다.

와짝 열을 올려놓고는 터져나오는 의견들을 수첩에 진중히 받아적었다.

《회의》를 끝마치고는 얼마동안 더 놀음판에 끼여앉았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진짜회의는 북갱으로 올라가는 험한 산골안의 깊숙한 고갱속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북갱쪽으로 가기 위해 선녀갱입구가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나무숲이 무성한 산릉선을 톺아오르는 장철석은 다시금 봉빈이와 영무와 마주앉아 장시간 의논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상기해봤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빨리 조직을 확대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우는것이였다.

봉빈의 말처럼 상황이 상황인것만큼 실정과 정세에 대응할 방법들이 필요했다. 어떤 방법, 어떤 경우에 관계없이 하나의 철칙은 절대적인 비밀엄수였다.

곽영무는 이 사업을 깊은 바다에 비유했었다.

이제부터 상풍광산지하조직의 활동은 깊은 바다같이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겉면은 잔잔해도 물밑에서는 거창한 흐름과 소용돌이를 일으켜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작전에 합류할 무장폭동준비를 착실히 갖추어나가야 한다는 뜻이였다.

깊은 바다! 유사시에 대응할 무장폭동준비!

가슴이 뛰고 피가 끓었다.

옳다. 겉면은 내가 되여야 한다. 이미 로출된 소조책임자들 몇명이 그 바다의 겉면을 꽉 채워야 한다. 그밑에서 소용돌이칠 조직성원들!

다음은 봉빈이 요구한 작탄제작용화약과 도화선보장문제였다. 력량준비도 중요하지만 무기가 없이야 무슨 무장폭동이겠는가.

이것 또한 생명을 내대야 하는 극비중의 극비문제였다. 놈들에게 비밀근거지로 들어가는 통로를 알려줄수 있는, 이를테면 실꾸리가 풀려들어갈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였다. 몇해전 중국동북지역에 《집단부락》설치령을 내리고 소금과 식량을 리용하여 유격대를 전멸시킬 음흉한 모략을 꾸몄다는 놈들이 아닌가.

그 살인적인 모략음모의 앞장에 섰던 놈들 역시 밀정들이였다고 했다.

밀정!

밖에 있는 몇백명의 적들보다 안에 있는 한놈의 적이 더 무섭다고 일러주던 곽영무의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조직선밖의 백놈의 적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는 그놈은 과연 어느 놈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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