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5 장

4

장철석은 비밀련락장소인 3호지점으로 어떻게 달려갔는지 몰랐다. 《참나무》로부터 긴급상면을 요구해왔던것이였다. 아직은 얼굴도 모르는 《참나무》와의 첫 상면이였다. 봉빈이한테서 《참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광산지하조직의 뒤를 잘 받쳐주고있는 그가 누구일가 하고 곳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군 하던 장철석이였다. 적의 밀정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알고싶어지던 《참나무》였다.

3호지점은 소나무가 울창한 수림속이였다. 깎아지른듯 한 절벽이 솟아있고 주위에는 가둑나무와 개암나무숲이 우거졌다. 절벽밑에는 융단처럼 포근한 풀판이 펼쳐졌다.

가슴울렁이며 상면장소에 이른 철석은 등골이 오싹하여 굳어졌다. 가둑나무숲에서 얼씬하는 검은 제복을 보았던것이다. 틀림없는 경관제복이였다.

매복?!

숯구이막에서 꼼짝 못하고 수비대놈들한테 붙잡혔던 일이 눈앞에 확 떠올랐다.

가슴속에서는 열댓발의 남포가 연방 튀는것 같았다.

착각을 했던가싶을만큼 저쪽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아름드리소나무뒤에 몸을 숨긴 장철석은 피가 지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주위를 살피였다.

저쪽에서 먼저 기척을 냈다.

상면암호였다.

상면암호가 분명했지만 장철석은 응답을 못했다. 아직 잘 믿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너무 긴장하여 입을 열수가 없었던것이다.

《장철석동무!》

이번엔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장철석은 소나무밑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와삭와삭 마른 가랑잎을 밟으며 급히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철석은 정신을 펄쩍 차리며 일어났다.

까만 경관복… 모자를 벗어든 젊은 청년이 반가움에 떠서 달려오고있었다.

《참나무!》

장철석도 목메여 부르며 마주 달려나갔다.

《철석동무!》

《참나무!》

그들은 와락 그러안았다.

뜨겁게 볼을 비비고나서 한참이나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 다시 힘껏 그러안았다.

우― 소나무숲이 설레였다. 설레이는 나무가지들사이로 금빛해살이 쏟아져내리며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한껏 상봉의 기쁨을 나눈 그들은 등산길에 오른 소년들처럼 손을 잡은채 벼랑밑의 풀판에 나란히 앉았다.

《이 옷이 눈에 거슬리지요?》

《참나무》가 의미있게 물었다.

장철석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슴이 철렁했댔소. 하지만 옷이 무슨 문제요.》

장철석은 자기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는 정녕 튼튼하고 억센 돌기둥이라도 꽉 그러안은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네놈들이 우리 조직 가까이에 밀정을 박아넣었다면 네놈들의 심장엔 우리 동지가 있다 하는 배심에서였다.

힘이 났다.

이제부터는 놈들의 염통을 뽑아낼수 있지 않는가.

장철석은 긴급상면을 요구한 사연을 빨리 알고싶었다.

그것을 눈치채자 《참나무》는 부러 늦장을 부리듯 왕청같은 말을 꺼냈다.

《초면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지 않습니까?》

장철석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있다는 눈치였다.

장철석은 알고싶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얼굴을 붉혔다. 너무 조급해했다는 자책에서였다.

내가 왜 자꾸 이러는가. 사람이 마음먹어 못해낼 일이 없다는데 의지와 용단이 아직 모자라서일가?

새삼스레 《참나무》를 여겨보았다.

상대방의 심리를 대뜸 알아채는 그의 통찰력에도 감탄을 했다. 보통 침착한 사람이 아니였다. 하긴 한인준이 품들여 키워낸 조국광복회특수회원이라지 않는가.

한인준과 나란히 앉은 때마냥 마음이 훈훈해졌다.

《참나무》는 조용조용 자기 경력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은 임일광, 나이는 장철석보다 한살 아래였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소문을 냈다 한다.

그의 가정은 리조시대 정5품벼슬을 지낸적도 있는 량반가문후손으로서 정 못살지는 않았다. 제손으로 농사지을 땅마지기는 가지고있어 부지런히 일하면 배는 곯지 않았다.

그의 우로 형이 하나 있었다.

첫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웬일인지 10년나마 태기가 없었다. 집에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보통 드세차고 완고하지 않았다. 아들을 하나밖에 낳지 못한다고 여간만 어머니를 박대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서른이 훨씬 넘은 어머니가 마을뒤산에 올라가 목을 맬 결심까지 했댔으랴.

첫아들을 낳은지 13년째되는 어느해 봄날 밤이였다.

밥상에 마주앉지조차 않던 할머니가 자정도 훨씬 넘은 야밤중에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면서 다짜고짜 어머니를 두드려 깨웠다는것이였다.

농사일도 농사일이지만 할머니의 눈총에 더 시달려 기를 못펴고 새우잠을 자던 어머니는 당장 마른벼락이라도 치는가싶어 오돌오돌 떨었다. 할머니는 제잡담 어머니의 아래배부터 만져보았다.

《태기가 있지 않냐?》

어머니는 할머니가 실성을 했는가싶어 더욱 떨었다.

할머니는 아주 장담을 했다.

《곧 태기가 있을거다. 방금 꿈을 꾸었는데 큰수닭 한마리가 내품에 뛰여들어와 안기는게 아니겠냐. 둘째손주가 태여날 꿈이
분명하다.》

후에 할머니가 실토한 말에 의하면 할머니는 이미 어머니의 얼굴색과 몸가짐에서 이상이 일어난다는것을 알았다는것이였다.

늘쌍 죄감에만 몰려 본인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지내던 어머니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쥔채 날샐녘까지 울기만 했다.

할머니의 예측은 맞아 그달에 어머니의 몸에서는 정말 태기가 완연하였으며 몇달후에는 둘째아들이 태여났다.

임일광이였다.

너무 오랜 기간 끊었다가 아이낳이를 해서인지, 아니면 할머니의 단련에 너무 시달렸던탓인지 아이는 낳았지만 어머니의 몸에서는 젖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를 떼내다싶이 했다. 제손으로 산꿀을 구해오고 매일 콩과 찹쌀로 《인공젖》을 만들어 먹였다.

어머니의 젖이라고는 한방울도 먹지 못한 아이가 용케도 열달이 되기 전에 이발이 나오고 제절로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제힘으로 걷게 되자 아이는 죽어라고 방안에 있기를 싫어했다. 날만 밝으면 밖으로 나가자고 떼질을 했다.

할머니는 해뜰녘부터 늘쌍 밖에서 살아야 했다.

사립문옆에 피여난 봉선화며 동구길로 굴러가는 달구지며 개울가 돌밑에서 엉금엉금 기여나오는 가재와 게며… 자연의 그 모든것을 대하는 아이의 눈은 어른들이상 빛났다. 기억력은 또 얼마나 좋았던지 까치는 깍깍, 황소는 음매, 토끼는 깡충깡충 하고 보면 본대로 신통하게 그 특징을 재현시켰다.

할머니의 자랑도 자랑이지만 온 동네가 신동이라고 떠들썩하였다.

세살때부터 할머니는 아이를 등에 업고 서당에 찾아가 글을 배우게 했다. 서당주인도 하나를 배워주면 둘, 셋을 내짚는다고 혀를 찼다.

그무렵 마을에는 몰리브덴광산이 개발되였다.

일본사람들이 와짝 들어왔다.

임일광이 9살잡히는 그해에는 그리 크지 않은 학교가 섰다. 일본인자녀들을 위주로 공부시키는 학교였다.

할머니는 가산을 다 팔아서라도 공부를 시켜야겠다면서 임일광을 기어코 그 학교에 입학시켰다.

세살때부터 글을 배운 소년이였으니 학교적으로 특출하게 뛰여난것은 두말할것 없었다.

일본아이들이 무섭게 질투를 했다. 교원들까지 합세를 했다.

임일광은 독을 먹고 반발했다.

하루는 네댓명의 일본아이들이 생트집을 잡아 임일광을 운동장구석에 몰아놓고 모두매를 안겼다.

피투성이가 되여 집에 온 손자를 보자 할머니는 억이 막혀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할머니를 어떻게 대했으리라는것은 너무도 뻔했다.

혀를 씹으며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온 집안식구들을 불러내여 봉선화를 가득 심어놓은 마당귀에 철봉과 평행봉을 세우고 모래주머니까지 매달아놓았다.

《힘을 키워라. 쇠덩이처럼 체력을 단련해서 열이건 스물이건 일본애들을 멨다꽂아라. 공부에서나 주먹질에서나 일본애녀석들한테 지고는 이 집 문턱을 넘어설 생각 말아!》

하루에 열번도 더 곱씹던 할머니의 말이였다.

너무도 뛰여나게 높은 실력차이로 학교를 졸업한 임일광은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공부를 할 꿈을 꾸었다.

손자를 위해서라면 가산도 다 팔아야겠다던 할머니가 뜻밖에도 귀뺨을 후려칠것처럼 성을 냈다. 쪽발이나라에 가서 뭘 배워오겠냐는것이였다.

할머니의 반대도 문제였지만 그때는 이미 학비를 보장할만 한 집 형편이 못되였다. 하는수없이 부모들을 도와 농사일을 시작했다.

몇해동안 농사를 짓던 그는 생각이 깊어졌다. 세상을 바로 잡으려면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였다. 그는 리조시대의 《법전》들은 물론 일본의 법률도서들을 구해다 읽기 시작했다.

그 《법학공부》는 순사시험에로 그를 추동했다. 순사옷을 입고 조선사람들을 구박하는 일본놈들과 법으로 맞서보리라는 결심이였다.

시험에서도 단연 월등한 성적으로 당선됐다.

순사가 된다는 말에 할머니는 꼬박 이틀동안 물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무슨 설복인들 안했으랴.

일체 반응이 없던 할머니는 사흘째 되는날 아침 아껴입던 하얀 조선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차려입고 임일광을 엄하게 불러앉혔다.

《네 쪽발이놈들의 그 까마귀옷을 입고는 내 눈앞에 얼씬도 말아. 죽은 다음에도 내 무덤앞에 얼씬 말아!》

너무도 단호한 말이였지만 임일광은 초지의 결심을 굽힐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할머니앞에 큰절을 올린 그는 일본으로 가려고 준비했던 자그마한 트렁크 하나를 들고 그날로 집을 나섰다.

그는 고향사람들이 보지 않을 수백리 먼산중의 산속 여기 상풍광산으로 들어왔다.

한해후에는 기어코 경찰서에 들어갔다.

뛰여나게 총명한데다 일본법까지 도통하고 체격이 단단한 그는 인차 경찰서장의 총애를 받게 되였다. 서장의 신임이 오죽 컸으면 광산에 내려왔던 도경찰부장까지 욕심을 냈으랴.

그런 임일광이 한인준과 손을 잡게 된것은 정말로 행운중의 행운이였다.…

길지 않은 자기 인생사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은 임일광은 제풀에 허허… 하고 웃었다.

장철석은 다시금 그의 얼굴을 여겨보며 미더운 눈길을 보냈다.

《그랬댔구만.… 나도 한인준동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런지 모르오. 많이 도와주.》

임일광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다.

이윽고 그는 자세를 바로했다. 얼굴이 퍽 심중해졌다.

《철석동무, 놀라지 마오. 사실은…》

임일광은 둘밖에 없는 깊은 산중이였지만 사방을 한번 살펴보고나서 장철석의 옆에 바싹 붙어앉으며 그의 귀에 입을 바투 가져다댔다.

심중한 기색으로 그의 말을 듣던 장철석은 불에라도 덴듯 화닥닥 뛰쳐일어났다.

《뭐요?!》

임일광은 까딱않고 앉아 장철석을 올려다보았다.

장철석은 경련이 일어 입술을 떨며 물었다.

《확실하오?》

두눈에는 《아니요, 그럴수 없소!》 하는 빛이 력연했다.

임일광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장철석은 쓰러지듯 다시금 임일광의 옆에 앉았다.

임일광은 여전히 귀속말을 하듯 이었다.

《철석동무, 한인준동지가 잘못된 후 인차 여기 수비대중대장이 바뀐걸 압니까?》

장철석은 임일광을 뜯어보기만 했다.

이전 중대장대신 항시 말을 타고 거드름피우기 잘하는 땅딸보 새 중대장이 나타난것은 알았지만 군대에서는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장철석이였다.

임일광이 차근차근 계속했다.

《난 한인준동지의 과업을 받고 이전 중대장과도 가까이 지냈소. 한인준동지와 세놈의 수비대놈들이 〈행방불명〉됐다는것도 그 중대장을 통해 알았소.… 그렇소. 놈들은 그 일을 〈행방불명〉이라고 했소. 틀림없이 무슨 일이 터지겠구나 하고 바싹 긴장했댔는데 이상하게도 광산은 물론 경찰서에서도 일체 모른체 했소. 하루아침에 중대장이 감쪽같이 바뀐것뿐이였소. 그 일에 분명 전 중대장이 관계했다는것을 알았지만 놈들이 어떻게 비밀리에 짜고들었던지 통 행처를 찾을수가 없었소.… 얼마전에야 겨우 알아냈는데 신의주쪽의 국경수비대에 옮겨놓았다는거였소.》

임일광이 경찰서장을 구슬려놓고 신의주쪽으로 떠난것은 닷새전이였다고 했다.

중대장을 찾아내여 이틀동안이나 술집으로 끌고다녔다.

이틀째 되는날 밤에야 억병으로 취한 중대장의 입에서 극비밀리에 총독부 경무국의 특별신임장을 내보이면서 수비대원 세명을 요구한자가 누구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겨 …경무국 어른들 수가 보 …보통 아니란 말야. 그 …그자가 참 귀신같이 위장을 했거든… 임자 아무리 머리가 좋아두 응? …안돼. 그 …그 까마귀옷이나 입고서는 안돼. 그 …그자는 말이야 …쉬!》

중대장은 빈 방안을 휘휘 둘러보고나서 그자는 마음만 먹으면 광주건 경찰서장이건 수비대 중대장이건 지어 도경찰부장까지도 제 병졸처럼 써먹을수 있는 무제한한 권한을 가지고있다고 하면서 자기도 그자의 정체를 알게 된 덕에 바람세찬 국경초소로 날려왔다고 두덜거렸다는것이였다.

장철석은 중풍을 만난것처럼 몸을 떨었다.

세상이 거꾸로 섰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을상싶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은 피가 날 정도였다.

교활하고 음흉스럽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음험할가.

아니, 놈들이 이 광산침투를 위해 그렇게까지 품을 들였단 말인가?

모리무라 다다시와 이찌가와 노리아끼!

결국 놈들은 내가 구창광산에 있을 때부터 그렇듯 면밀한 음모를 꾸몄댔구나 하는 생각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는 몸이 너무 떨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토가 날만큼 속이 메슥거리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임일광도 따라 일어서며 힘을 주듯 말했다.

《정체를 알았으니 이젠 되지 않았소. 역경을 순경으로!… 몽둥이야 이젠 우리 손에 쥐여진셈이 아니요.》

장철석은 임일광을 와락 그러안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거꾸로 치솟는것 같던 피가 가라앉고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한것은 그로부터도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들은 다시 풀판우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차후작전을 진지하게 의논했다.

기본은 놈들한테 그냥 속는척 하면서 오히려 그놈들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위장물로 써먹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산속에는 어스름같은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됐소. 골탕을 먹여봅시다. 염통이 터져나갈거요. 뭐 조선사람들이 어쩌고 어쨌다고? 어리석은 놈들!》

그들은 또 한번 손들을 힘있게 마주잡으면서 통쾌하게 웃음을 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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