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5 장

8

광산지구는 점점 더 살벌해졌다. 의도적으로 벌려놓는 살풍경이였다.

도경찰부장 구로지마 가메도와 헌병대장이 왔다간지 얼마 안되여서는 또 헌병대파견대장이란 놈이 여러 장졸들을 거느리고 들이닥쳤다. 린근 경찰서들에서 수십명의 경관들도 더 끌어들였다. 명색은 잃어진 화약상자들을 기어코 찾는다는것이였다.

곳곳에 보초소와 차단소들을 만들어놓고 장터로 가는 녀인들의 저자구럭까지 뒤졌다. 하루일을 마치고 갱에서 나오는 광부들은 여불없이 몸조사를 당했다. 또 무슨 검거선풍놀음을 벌릴지 아니아니했다.

장철석이 갱에서 나왔을 때는 하루해가 뉘엿뉘엿 지고있었다.

이제는 먼산의 골짜기들과 음달진 나무숲을 내놓고는 언제 녹으랴싶었던 눈들이 말짱 자취를 감추었다. 길가의 바위짬이나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냉이며 꽃다지, 제비꽃이파리들이 파릇파릇했다. 그것은 마치도 세상이 아무리 살벌해도 내 할일은 다 하노라 하고 소리치는 일종의 도전같기도 했다.

마을곁에 이르니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부지런한 집들에서 벌써 집오래의 손바닥만큼씩한 돌서덕밭들에도 씨앗을 묻으려고 겨울난 검불들이며 조짚, 강냉이짚부스레기들을 긁어모아 불놓이를 하고있었던것이다. 짚무지속에 섞었던 소똥이며 개똥타는 냄새와 함께 고무쪼각과 천쪼박타는 냄새가 뒤섞여 때로는 역스럽기도 하였다.

놈들의 모략은 여하간에 어쨌든 사나운 겨울을 이겨낸 봄의 환희만은 분명했다.

여느때 같으면 새 계절의 향취에 가슴이 들먹해졌겠지만 장철석은 전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봉빈의 지시를 기다리고있는 그였다. 이전처럼 제가 직접 그와 만나 정황을 통보하고 결론과 지시를 받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임일광이 알려준 밀정놈이 점점 더 옆으로 바싹 접근하여 제사 먼저 걱정을 앞세우군 하는것도 무척 불안스러웠다. 어리석고 가소롭게도 느껴졌지만 그래도 다년간의 첩보훈련과 경험을 가진 세련된 놈이라지 않는가. 때로는 놈을 우정 옆에 붙이고 식당이며 술집 같은데로 드나들면서 기색을 살피였다. 놈을 제옆에 바투 붙이면 오히려 조직의 활동에 유리할 때도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상신호를 받고 극비밀리에 신속히 움직여야 할 때면 놈을 감쪽같이 떼버려야 하는 일에 몇배의 신경을 더 써야 했다.

지금도 그는 이제 마을길에 나서면 어느 골목에서든 그놈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리라는 생각에 구토감을 느끼였다. 아니, 어느 숲속이나 집모퉁이에서, 갱안에서 나올 때부터 찬찬히 지켜보고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뿌죽뿌죽한 돌부리들이 자꾸 발끝에 채우는 돌서덕길이여서 장철석은 부러 천천히 걸었다. 차창일이 마차습격사건을 일으킨 후부터의 일들을 차근차근 재정립해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창일이 빼앗아온 화약과 도화선은 놈들이 던진 미끼도 보통미끼가 아니라는것이 더 명백해졌다.

장철석에게 그것을 더욱 명백히 확신하게 한것은 도경찰부장과 헌병대장까지 출두하여 벌린 요란한 수색소동과 함께 종잡을수 없이 벌린 검거의 돌풍이였다.

광산마을 집집의 부엌과 창고, 골방으로부터 험한 산골짝까지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펴고 참빗질하듯 하면서도 놈들은 응당 첫째가는 관심을 두어야 할 수십개의 광산페갱들은 샅샅이 뒤지라고 소리는 요란히 치면서도 눈에 뜨이는대로 대충 훑어보고 지나갔던것이였다.

온 광산마을과 주변의 산판까지 그렇듯 삼엄한 경계진을 펴고 수색전을 벌리게 한 놈들이 아무러면 광산페갱들에 무관심할수 있겠는가.

차창일은 그날 화약상자들을 당상갱 뒤골안의 페갱속에 깊숙이 감추었었다.

도경찰부장과 헌병대장까지 내려와 광부들의 출퇴근길과 시가지 길목들까지 지키면서 광부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생각할수 있는 페갱들을 홀시했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장철석은 곧 《소나무》를 호출하여 화약 감춰둔 페갱주변을 은밀히 살펴보게 하였다. 아니나다를가 사흘만에 이상한 나무군들이 맞은켠 산속에서 어물거린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장철석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문득 언제인가 봉빈공작원이 옛말처럼 들려주던 말이 생각났다. 근거지의 비밀아지트에서 둘이 함께 밤을 새우며 회포를 나누던 때의 일이였다.

잊을수 없는 북주하양주공장에서 이찌가와 마꼬도한테 속히워 어린 몸의 고혈을 빨리우던 갖가지 일들을 더듬고났을 때 봉빈이는 조용히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앉으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마꼬도 한놈만이 아닌 일본제국주의라는 왜나라 족속들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수 있지. 정말 깜찍하고 간특한 족속들이요. 그 교활성과 야수성을 실례들자면 끝이 없소.》

봉빈이는 먼저 로일전쟁후 배상금을 적게 받아냈다고 악마구리 끓듯 했던 일본전국의 상황이며 그 소요를 다독이는 출로로 오래전부터 꿈꾸어오던 병탄의 야망을 안고 이또 히로부미를 《보호》라는 미명으로 조선으로 들여보내던 일본천황에 대해서 그리고 처음에는 서울에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인천의 보잘것없는 숙박소에 거처를 정했던 이또 히로부미가 리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의 매국역적들을 매수하여 끝내는 《을사5조약》을 강압날조하던 일과 12살에 류랑소녀로 방황하다가 애어린 처녀의 몸으로 깊은 산중의 녀승으로 삭발까지 했던 배정자를 어떻게 고종황제의 황실에까지 제마음대로 드나들수 있는 끄나불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초대통감 이또 히로부미의 교활성과 야수성, 포악성을 자료적으로 하나하나 발가놓던 봉빈은 1대 조선총독 데라우찌와 2대총독 하세가와는 물론 3대총독 사이또에 이르러 더욱 격분을 터뜨렸다.

《1919년 9월 2일 신임총독으로 서울에 기여든 사이또가 5일후인 9월 7일 시정방침이란걸 내놓았는데 그게 뭔지 아오? 첫째로 문화주의를 표방하며 둘째로 조선민중의 심정을 달래여 포섭동화하는데 노력하며… 헌병제도를 철페하고 학교교원들이 차고있던 군도와 총기류도 철페하고 조선사람들이 신문도 발행하게 하고… 하면서 귀맛좋게 떠들어댔소. 그후 조선총독부 직원들앞에서는 또 뭐라고 했는가? 대일본제국을 위해 조선에서 무엇을 가져갈가를 생각하기 전에 조선사람들한테 무엇을 베풀어줄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며 조선사람들에게 무엇을 시킬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무슨 일을 해줄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며 어떤 명령을 내릴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좀더 친절할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력설했다는거요. 〈내선일체〉란 말을 줴치면서 제놈의 녀편네까지 끌고와서 조선의 지방장관들앞에 조선식으로 무릎꿇고 인사를 하게 한것도 그놈이였구. 그렇게 앞에서는 웃으며 온갖 친절을 다하던 놈이 실지 뒤에서는 어떻게 했는가. 라남에 본부를 둔 제19사단과 룡산에 본부를 둔 제20사단 그리고 평양, 함흥, 라남, 경성, 대구의 다섯개 헌병대로서 조선사람의 수족을 얽어매고 전 조선땅자체를 말그대로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었거든. 왜놈들이란 바로 이런 놈들이요. 우린 이런놈들과 맞섰다는걸 매사에 명심해야 되오.》

그때의 그 분격이 치밀어오를 때마다 장철석은 정신이 버쩍 들군 했었다.

그래, 이또 히로부미가 기여든 때로부터 꼽아도 어언 40여년! 보잘것없던 나무모도 그사이면 거목이 됐을터인즉 원래부터가 그렇게 깜찍하면서도 포악스럽기 그지없는 족속들이고 보면 그 후배들인 총독부 이하 관속들은 또 얼마나 음흉해졌을텐가.

허나 장철석은 결코 걱정만 하고있을수 없었다.

그것이 놈들의 교활하고 음충스러운 함정이라는것을 알자 그 함정에서 빠져나가 오히려 놈들을 골탕먹이면서 어떻게든 일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결심이였다.

놈들이 던진 미끼이긴 하지만 7상자의 화약과 도화선이 어딘가. 이제 그 화약과 도화선, 뢰관들이 작탄이 되여 놈들의 머리우에서 터지게 된다면, 그것을 알게 된다면 놈들이 어떻게 될가 하고 생각하면 통쾌하기도 했다. 문제는 빨리 그 귀물들을 감쪽같이 근거지로 보내야 할텐데 밤낮으로 지켜보는 놈들의 눈을 피하는 방법이 없었다.

(정말 무슨 수가 없을가?)

돌서덕길을 걸으면서도 그 한생각에 골몰한 장철석은 어느 사이 광산사무실앞길에 이르렀는지 몰랐다.

사무실건물앞을 지나 시가지와 목재소로 갈라지는 갈림길목에 이르니 2명의 경관이 지켜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단속하고있었다.

임일광과 헌병대 파견대장이 직접 끌고온 낯선 경관이였다.

임일광은 도경찰부장과 헌병대장한테서 직접 엄중취조를 당한 후 다행히도 경찰서장의 보증을 받아 한달동안의 처벌근무를 서는것으로 용서를 받았었다.

《야야, 뭘 꾸물거려? 젊은 녀석이… 빨리빨리 보이고 통과해!》

임일광이 이마에 토목수건을 동인 웬 농사군청년의 괴나리보짐같은 보퉁이를 가리키며 큰소리를 쳤다. 전에없이 청높은 목소리였다.

장철석은 가슴이 뛰였다.

임일광의 목소리가 무엇인가 미리 알리는것 같았던것이다.

장철석은 느럭느럭 걸어 어린애를 업고 싸리바구니를 든 녀인이 낯선 경관한테 불리워가는 틈에 얼른 임일광의 앞에 다가섰다.

《두손 올리 들어!》

임일광이 꽥 소리쳤다. 장철석의 어깨와 가슴, 잔등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화약이나 도화선 채넣은것 없어?》

《없수다.》

《빨리 가!》

시끄럽기라도 한듯 손을 내젓고는 장철석을 두번다시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켜고있었다.

장철석은 천천히 단속초소에서 벗어났다.

가슴이 그냥 방망이질을 했다.

몸뒤짐을 하던 임일광의 손이 재빠르게 양복주머니속에 들어갔다나오는것을 알아차렸던것이다.

그 양복주머니가 쇠덩이를 넣은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고무풍선처럼 붕― 떠오르는것 같기도 했다.

철석은 종시 참지를 못하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길옆의 판돌만한 돌멩이우에 털썩 걸터앉았다.

양복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얄팍한 종이쪽지가 손에 잡혔다. 필요할 때 리용하려고 넣고다니던 담배쌈지와 함께 종이쪽지를 꺼내들고 담배를 마는척 하며 쪽지를 펼치였다.

《계획을 승인한다.》

입속으로 가만히 외웠다. 후날 사람들을 놀래울 그 계획의 내용은 아직은 장철석과 김봉빈을 비롯하여 극히 몇명만이 알고있었던것이다.

무엇인가 한시름 놓이는듯싶었다. 철석은 다시 쪽지편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마지막문구에 눈길을 박았다.

《짐운반때 특히 덤비지 말것. 어떤 경우든 〈참나무〉의 지시를 무조건 집행할것.》

무조건 집행하라고 한 글줄에 눈굽이 화끈했다. 만약의 경우 빨리 피하라는 《참나무》의 련락을 받고도 예전의 성미대로 자의대로 고집을 부릴수 있다는것을 사전에 엄하게 경고하는 뜻이였던것이다.

김봉빈이 임일광을 비롯하여 적기관에 깊이 침투한 조국광복회특수회원들에게 준 임무중에 중요한 임무의 하나가 놈들이 어느때든 상풍광산에 진짜 검거선풍을 일으킬것이니 그 경우 어떻게든 로출된 성원들을 무조건 구원하라고 한것이라는것을 이미 알고있는 장철석이였다.

마음이 더 든든해졌다.

(고맙습니다. 공작원동지, 내 문제를 놓고는 너무 걱정마십시오.)

쪽지에 재빨리 써레기담배를 듬뿍 놓고 솜씨있게 말았다. 불을 붙였다. 담배맛이 이렇게도 구수할가! 련락쪽지의 내용을 다시한번 머리속에 곰곰히 새겨넣었다.

계획을 승인한다.

절대로 덤비지 말것.

무조건 집행!

담배가 다 타서 손끝이 뜨거워날 때에야 남은 꽁초를 꼼꼼히 바위돌우에 비벼서 흔적을 없애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소나무》와 《이깔나무》를 만나야 한다. 그들을 더 적극 움직일 때가 됐어!

시가지의 집집마다에서 솟아나는 저녁연기가 이채롭다.

자연히 시가지끝 동쪽골안의 한인준의 집으로 눈길이 갔다. 통나무를 파서 세운 굴뚝이 잠잠했다. 이즈음은 좀해서는 연기를 보기 힘든 굴뚝이였다.

장철석은 한참이나 그 집을 바라보았다.

수비대에서 놓여나온 날부터 자리에 드러누워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한영옥이였다. 누가 찾아가도 말을 안했다. 차창일이 찾아가면 더우기 이불을 들쓰고 기척도 안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어깨가 처져있던 차창일이 끝내는 할말 안할말 다하며 막 성을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더욱 앵돌아져서 더는 상대도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끝내는 영옥이편에서 아직 약혼식도 하지 않았던것만큼 영영 갈라지자고 강경선언까지 했다는 말이 돌아가고있었다. 가뜩이나 의지가지없는 몸이라 순철의 안해한테 마음을 나눈다는 말도 있었다.

차창일이 전에없이 내포국집출입이 더 잦아진것도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라고 했다.

순철의 처가 어떻게든 둘사이를 다시 화해시켜보려고 이따금씩 영옥이네 집에 들려 때식도 끓여준다지만 영옥이는 나날이 더
차창일의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는것이였다.

장철석은 이윽토록 한영옥의 집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철석이 방에 들어서자 한영옥은 조심스레 일어나앉으며 옷매무시를 바로했다.

장철석은 긴장한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금 밖에서 들어왔건만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문틈에 눈과 귀를 대가며 바깥동정을 살폈다.

입술을 꼭 감쳐문 영옥이도 조마조마 가슴을 조였다.

이윽고 장철석은 영옥이와 가까이 마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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