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6 장

1

봄은 순철이네집 오래뜰에도 깃들어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거푸집처럼 푸근푸근 부풀려 올렸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티티새와 찌르러기들이 찌르럭거리고 인적이 없을 때면 비둘기와 꿩들이 날아와 묵은 콩뿌리들을 헤집어놓기도 했다.

터밭농사에서는 그들 내외를 따를 집이 없는가 보았다.

연약한 녀인이 혼자 살 때에는 풀밭이나 다름없이 되였다던 주변 터밭들에 이른봄부터 싸리바자를 빙 둘러쳐놓더니 내외가 짬짬이 삽으로 뚜지고 돌을 춰내고 이랑을 짓고 하여 30평남짓한 터밭을 아주 번듯하게 만들어놓았다.

《우리야 본시 농사군인걸요.》

오가던 사람들이 칭찬을 할라치면 순철이는 뒤더수기를 썩썩 쓸면서 자못 긍지롭게 말했다. 그러면 그의 안해도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웃군 했다.

오늘은 감자를 심는 날이다.

통알감자에서 두세눈씩 따서 매운재에 버무린 씨종자가 제법 나무함지에 무둑했다.

순철이 광산일을 끝내고 돌아와 시작한 감자파종이다. 저녁해가 벌써 서쪽으로 퍽 기울어졌다.

해떨어지기 전에 함지의 종자를 다 묻으려면 어지간히 서둘러야 했다.

순철이는 앞에서 괭이로 이랑을 짓고 안해는 그뒤를 따라 겨울동안 모아놓았던 재를 삼태기에 담아다 뿌린다. 그리고는 큰 바가지에 감자씨들을 담아들고 둬뽐 간격으로 정히 묻어나간다.

지난해에 이사를 온 이후 금술이 좋은 내외로 소문이 난 그들이기도 했지만 말없이 손발을 착착 맞춰가며 감자파종을 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부러움을 자아냈다.

《원 저렇게 품을 멕이문야 자갈밭엔들 감자가 안될라구요!》

《터밭농사는 이 집에서 배워야 할가보우다.》

《이 사람 순철이, 거 그쪽 귀퉁이엔 습해서 감자가 잘 안되네. 수수를 심으라구.》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것도 다 부러움과 칭찬의 뜻이다.

하지만 너나없이 남의 집 일을 구경이나 하고있을 때가 아닌 봄철이였다.

싸리바자너머에 몰켜서서 젊은 내외가 감자심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나무함지의 감자씨도 절반나마 축이 났을무렵 순철이는 이랑을 짓던 괭이를 흙속에 쿡 박아놓은채 집앞의 울퉁불퉁한 달구지길을 바라보았다.

금시 쓰러지기라도 할것처럼 비칠거리면서 한 사람이 힘겨웁게 걸어오고있었던것이다.

차창일이였다.

어디 마음붙일데가 없어서인지 이즈음은 줄창 순철의 집에 와서 살다싶이 하는 그였다.

순철이 어느새 달려나가 그를 부축했다.

《이 사람, 오늘도 또 취했구만. 어딜 갔다오는 길인가?》

《어딜 갔다가 오는가구요? 가긴 어딜 갔다 오겠소.… 형님 찾아오는 길이지요.》

《그런가? 그럼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자구.》

순철이는 한잠 푹 재울 생각인듯 무작정 그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했다.

차창일은 정작 마당안에까지 들어가서는 토방우의 가마니짝우에 벌렁 드러누워 푸념을 해댔다.

《형님, 날 좀 도와주. 철석형님한테 얘길 좀 해달란 말예요.… 난 이젠 형님밖에 믿을데가 없어요.》

《무슨 말을 해달란 말인가? 그리구 도와주구 안주구 할건 또 뭔가. 원 사람두.》

《섭섭하우다. 섭섭해요. 철석형님이 날 그렇게 대하다니 섭섭해요.… 영옥이, 그라두 있었으면… 에이!》

그는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에서는 적의감같은것이 번쩍했다.

《영옥이, 그가 왜 달아났는지 알아요? 그것두 다 철석형때문이예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순철이는 펄쩍 뛰였다.

《임자 아무리 취중이래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창일은 성을 왈칵 냈다.

《왜요? 내가 못할 말을 했소? 그럼 물어봅시다. 철석형님 말이나 영옥이가 한 말이 어쩌면 그렇게 꼭같소? 예? 어쩌면?》

《사람두 참, 물론 임자 아픈 마음이야 누군들 모르겠나. 영옥이두 이제 때가 되면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 그애두 똑똑한 앤
데. 고마운 사람들을 영 잊기야 하겠나. 철석형님두 자네때문에 여간 속태우지 않네. 아 자네가 이러면 조직은 어떻게 되나?》

《조직이요? 조… 직…》

차창일은 무슨 말인가 할듯 하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꼿꼿이 펴서 입에 가져다대며 《쉬!》하고 소리를 냈다.

순철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차창일은 제풀에 하하하… 하고 웃었다.

순철이는 억이 막혀 손을 한번 내젓고나서 추궁조로 한마디 했다.

《자네 내포국집에 너무 자주 다니지 말게.》

차창일은 그저 큰소리로 웃기만 했다.

영문모를 차창일의 그 웃음소리에 바가지에 감자씨앗을 담아들고 일어서던 순철의 안해도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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