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1 장

4

《난 말이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오. 유복자였거든.》

장철석은 제먼저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사흘전, 한시간나마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다가 가까스로 깨여난 그들이였다.

한잠 푹 자고난것처럼 심신이 풀리고 머리도 맑아졌었다.

빨리 더 멀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은 여전했다.

이틀밤 사흘낮째 줄창 산속을 헤맸다.

산판은 들어갈수록 험산이였다.

해마다 쌓이고 덧쌓여 시꺼멓게 썩은 나무잎들과 이끼들에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한껏 자라다 저절로 쓰러진 진대나무들이 거창한 동물의 등뼈처럼 널려져있었다.

그들은 지금 한창 태백산줄기를 타고 간다는것도 몰랐다. 무작정 북쪽을 향해 더 울창하고 더 깊은 수림속으로만 들어갔다. 산림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더 편안하고 배심도 든든해졌다. 왜놈들이 아무리 지독스럽다고 한들 이 산속까지야 따라오랴. 한가
을철이라 산속에는 입에 넣을것도 적지 않았다. 머루, 다래, 돌배, 산복숭아… 때로는 주먹같은 왕밤알들이 수두룩이 떨어져있는 밤나무도 만났다. 어제는 뜻밖에도 골개천을 만나 시원하게 미역을 감았다. 강바닥에 가재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오래간만에 가재구이까지 했다. 순철이도 이제는 공포에서 퍼그나 벗어났다. 얼굴에 한결 혈색이 돌았다.

공포에서 벗어나니 더 다부라지는감이 나서 걱정이였다. 순간도 철석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철석은 그것이 더 미덥고 정이 갔다.

그는 일은 차라리 잘된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심이 확고했던것이다.

이제 자기가 일하던 구창광산에 들려 조직성원들이나 만나보고는 그길로 곧장 두만강을 건늘 결심이였다. 이제 더는 구창광산에 발을 붙일 형편이 못되였다. 두만강을 건너 김일성장군님 항일유격대를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몇해전 구창광산에 발을 붙였었다. 지난해에는 광부들속에 반일조직을 내왔다.

평양은 물론 국내의 곳곳에 반일조직들이 조직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됐던것이다. 제가 직접 여러곳을 다니며 이름난 활동가들의 투쟁소식도 들었다. 다른 곳에서처럼 《형제계》라는 합법적인 명칭을 붙였지만 조직의 성격은 철저히 반일이였다. 일본놈들의 동태를 살피고 정세를 연구하면서 조직을 확대하는것을 당면과업으로 내세웠다. 일본은 반드시 망할것이다. 짐승같은 왜놈들이니 멸망을 앞두고 마지막발악을 할것이다. 빨리 조직을 확대하고 광부들을 단합시켜야 한다. 로동조건을 개선하고 광부들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대책을 세우면서 태업, 파업 등으로 대륙침략을 위한 놈들의 전시생산계획을 파탄시켜야 한다.… 하는것이 총적인 투쟁목표였다. 사생결단의 폭동도 예견했다. 이를 위해 무기도 마련하고 식량과 의약품도 마련해둘것을 계획했었다.

그렇게 사전의 준비를 갖추었다가 일단 유사시가 도래하면 온 광산이 들고 일어나게 할 전망이였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확신과 신심이 있었다. 김일성장군 항일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어릴적부터 누구보다 많이 들어왔던것이다. 더우기 1937년 여름의 보천보전투소식은 당장 왜놈세상을 뒤집어엎고 조국해방을 맞이하게 될것 같은 흥분을 일으켜주었었다. 그는 광부들속에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김일성장군님과 항일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려주군 했다. 《형제계》의 대부분 성원들이 철석의 그 이야기에 제일 심취되군 하던 광부들이였다. 그래서 철석이 그들에 대한 믿음이 컸고 그들은 또 그들대로 진심으로 장철석을 조직의 책임자로 내세우며 따랐던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일도 생겼었다.

남갱에서 《친목회》라는것이 조직됐는데 까닭모르게 걸음걸음 《형제계》의 활동을 걸고들면서 《형제계》성원들을 시기중상했던것이다.

회장이란 사람은 마흔살전후의 중년이였으나 열네댓살 소년이라고 할만큼 키가 작고 체소했는데 작아도 고추라고 되알지고 야무지기 그지없었다. 아이적에 저보다 4년이나 우인 밥술이나 먹는다고 우쭐거리는 한 아이한테서 귀뺨을 몇대 얻어맞은적이 있었는데 한달이상이나 매일같이 얻어맞고 코피가 터지면서도 량손에 제 주먹보다 더 큰 차돌을 한개씩 들고 복수를 하겠다고 따라다녀 종당에는 어른같이 키가 크고 힘이 센 그 아이한테서 두손 바짝드는 항복과 함께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고 자랑하는 악발이였다.

반일감정과 투쟁목적도 같은것만큼 두 조직을 합치든가 합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화목해지자고 장철석이 몇번이나 《친목회》를 찾아갔지만 무슨 심산에서인지 당초에 마이동풍이였다.

충돌은 나날이 더 격화되여 어떤 날에는 패싸움과 같은 집단폭행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장철석이 《형제계》성원들부터 만류하여 가까스로 떼여놓군 했는데 그것이 또한 일부 《형제계》성원들속에서 불만을 터치게 했다. 《형제계》가 무엇이 모자라서 《친목회》것들한테 머리를 숙여야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생각같아서는 장철석이 제먼저 《친목회》회장의 귀뺨이라도 후려갈기고싶었지만 같은 처지의 같은 광부들이라는 생각에 꾹 누르군 했었다.

그런데 장철석으로서도 더는 참을수 없는 일이 생겼다. 《형제계》성원 한명이 밤작업에 나가다가 아무 리유없이 《친목회》성원들에게 걸려 만신창이 되게 얻어맞고 의식을 잃은채 지나가던 사람들의 등에 업혀왔던것이다.

장철석이 끝내 왈칵해서 뛰쳐나갔다.

야밤삼경에 홰불을 날리며 무서운 싸움이 벌어졌다. 온 광산이 잠을 깼고 경관들까지 달려와서야 량쪽은 다같이 네댓명씩의 피투성이 부상자들을 둘쳐업고 헤여졌다.

장철석은 싸움의 주모자로 경찰에 붙잡혀갔다.

얼음장같이 차고 물기가 질벅거리는 구류장바닥에 앉아서야 장철석은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쳤다. 욱―하는 성미?… 아니, 사실상 싸움은 《친목회》에서 먼저 걸었는데 구류는 자기가 되지 않았는가.

틀림없이 어떤 놈의 의식적인 작간이다. 어떤 놈이 무슨 목적에서일가? 분명 어떤 놈한테 어처구니없이 속히웠다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환멸이 덮치면서 구토감이 치밀었다.

주먹으로 차디찬 널마루를 내리치며 몸부림을 쳤다.

그는 얼굴은 물론 온몸에 피멍을 입으면서 이틀동안이나 억울하게 닥달을 받고서야 놓여나왔다.

육신의 아픔보다도 치욕과 모멸감에 며칠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통쾌하기라도 한듯 《친목회》에서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것은 장철석으로 하여금 틀림없이 어떤 사연, 내막이 있다는것을 더욱 확신케 했다.

어떤 내막인지 알수 없는것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무슨 쪼간으로 《친목회》가 저러는지 기어이 그것부터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속에서 불이 일게 했다. 《친목회》성원들도 다같이 같은 처지의 광부들인데 서로 옳게 리해만 한다면 화목해지지 못할게 뭐겠는가.

장철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친목회》성원들이 어떻게 나오든 자신을 다잡으면서 방도를 찾기에 애를 썼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채 쥐도새도 모르게 놈들한테 붙잡혀 징병징집의 화물차에 던져지게 될줄이야…

어차피 구창광산을 떠나야 할 몸이고보면 더 달리 갈게 뭐랴 하는 생각이 점점 더 굳어졌다.

그래, 장군님의 유격대를 찾아가야 한다.

혜영이도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앓고있는 어머니와 남동생때문에 그럴수가 없었다.

이제 떠나는 길이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길이고보면 어쨌든 만나는 보고 떠나야 할것이였다.

순철은 보나마나 저를 따라나서리라 믿었다.

그 역시 제 살던 마을에 얼굴을 내밀수가 없지 않는가.

이제는 제가 그의 손우형이 되고 힘이 되여주어야 한다는 자각이 확고해졌다.

우선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고싶었다. 생사운명을 같이 할 사람들사이에 서로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주고 알게 되는것도 하나의 례의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또한 지쳐 쓰러질것 같은 순철이의 걸음속도를 높이는데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철석은 껍질이 다 벗겨지고 군데군데 마른 버섯들이 붙어있는 진대나무를 타고넘느라 얼마간 사이를 두었다가 시작한 말을 계속 이었다.

《난 내가 어디서 태여났는지도 모르오. 다만 우리 어머니가 살길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저 간도의 어느 외진 산간마을 조밭고랑에서 나를 낳았다는것밖에 모르지. 한여름날의 뙤약볕아래서 남의 집 조밭김을 매다가 날 낳았다는거요. 내가 열세살 나는 해에 난 그 어머니마저 잃었소. 새해를 며칠 앞둔 날이였지. 어머니는 자꾸 기침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페염에 걸렸댔던가보오. 새해전이란 대체로 그렇듯이 어찌도 추웠던지… 그날밤 우린 너무 추워서 어느 낯모를 집 소외양간에 들어가 잠을 잤댔소. 아침에 깨여나보니 어머닌 이미 숨이 져있지 않겠소. 제 옷을 다 벗어서 나한테 덮어주고 말이요. 이런 제길… 무슨 놈의 깔따구가 이리도 성화람!》

장철석은 손을 홰홰 내젓고나서 눈굽을 찍었다.

어디서 사람의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지 대낮인데도 정말 눈을 뜰수 없을만큼 깔따구떼가 기승스럽다. 순철이도 같이 손을 저으며 깔따구떼를 쫓았다. 장철석의 말에 호기심이 끌린듯 두눈에 생기가 반짝거렸다. 걸음도 씩씩해졌고 깔따구떼를 쫓느라 휘젓는 팔에도 힘이 있어보였다.

하긴 지옥의 문턱에서도 이제는 멀리 벗어나지 않았는가.

순철이 생기를 띠자 장철석은 사기가 올라 더 승이 나서 말했다.

《나라없고 부모없는 몸이고보니 어떠했겠소. 그저 앞이 캄캄할 수밖에 방법이 있었겠소. 류랑걸식의 길에 나서는 길밖에.… 에―에… 그 얘길 다 해선 뭘 하겠소. 그건 그렇구,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가 늘쌍 외우던 고향이란 곳이 가슴에 꽉 차더란 말이요. 어머니의 고향이 무슨 산자가 붙은 곳이라는거였소.… 와짝 더 마음에 불이 달린건 37년도 여름 보천보전투소식이였소. 참, 그 소식 들었소?》

《나도 조선사람인데 귀를 막고 살았겠나요!》

《하긴 그래. 굉장했지. 조선경내는 물론 중국동북지방에서도 떠들썩했소. 들리는 말이 일본 본영에서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였다더구만.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유격대를 거느리구 조선땅으로 욱 밀고 나가실것 같더란 말이요. 나가자! 하구 떠났는데 에―에―… 하여튼 몇년이 걸려서 나오긴 나왔는데 나와보니 산자가 붙은 고장이 어디 한두곳이요? 철산, 곽산, 운산, 토산, 원산, 혜산… 제기랄!》

장철석은 또 손을 홰홰 내저었다 .

《정말 그렇구만요. 한데 조선에 나온건 언제였나요? 방금 몇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몇년이 잘 걸렸지.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으니까. …사실 결심품고 떠난건 어머니를 잃은 다음인 1931년도 겨울이였는데 정작 두만강을 넘어선건 10년이 지난 후였소. 고국을 한번 떠나면 되돌아가는 길이 무척 힘들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가 보오. 10년이 어디요, 10년이!》

장철석은 무성한 나무가지들사이로 거울쪼각처럼 보이는 하늘을 추연히 올려다보다가 계속했다.

《조선이 어느쪽이냐고 물으며 여기저기 방황하는 사이 내 나이도 어느새 열일곱살이 되였댔지. 지금처럼 키가 별로 크지 않아서 나이는 열일곱이지만 사람들은 열네댓살정도로밖에는 보지 않았던가 보오. 하루는 어느 정거장의 나무걸상우에 드러누워 정신없이 자고있는데 누군가 깨우지 않겠소. 안경을 낀 웬 중년사나이였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좋은 공장에 가서 일을 하지 않겠느냐는거였소. 밥도 거저 먹여주고 잠도 거저 재워준다는 말에 무턱대고 따라나섰지. 정거장앞에 풍차가 한대 서있었는데 그 차가 무슨 차였던가 하니… 북주하라는 시가지 한 변두리에 자리잡고있는 양주공장차였소. 그 공장이 어떤 공장인지 아우? 원래는 중국사람이 경영하던 퍽 오랜 공장으로서 그 아근에서는 퍼그나 알려진 술공장이였소. 그런걸 일본의 한 자본가가문의 맏아들 이찌가와 노리아끼란 놈과 그 동생인 이찌가와 마꼬도란 놈이 강제로 빼앗아 타고앉았었지.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시구 왜놈들을 냅다 족치시자 그 공장 로동자들도 파업을 일으켰소. 세번씩이나 파업이 련속되자 공장주놈은 하루아침에 공장로동자들을 전원 해고시켜버렸소.》

장철석은 지독스럽게 달려들던 깔따구 한마리가 끝내 눈속으로 날아드는 바람에 또 한참동안 눈을 비비고나서 계속했다.

《참, 그 해고선풍을 누가 고안했는지 아우?

이찌가와 마꼬도―동생놈이였소. 이거 아무래두 그놈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구만.》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같은 소리가 들렸다.

장철석은 순철이부터 붙안으며 한포기의 다박솔뒤에 몸을 숨기였다.

머리우로 난데없이 검은 그림자같은것이 휙 지나갔다. 날개를 활짝 편 광주리만한 독수리였다.

실하게 자란 나무들사이로 재빛토끼 한마리가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방금 독수리한테 덮치웠댔던 모양 등허리털이 한줌이나 뽑혀져있었다.

눈에 달이 오른듯한 독수리가 또 산토끼한테로 급강하를 했다.

《저런 고현놈같으니!》

장철석이 무작정 앞으로 뛰여나갔다. 마침 팔뚝같은 몽둥이 하나가 눈에 띄였다.

장철석은 숨을데가 없어 굵은 소나무밑굽에 바싹 붙어앉아 바들바들 떠는 산토끼한테로 달려가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건 또 웬 놈이냐는듯 사나운 독수리는 산토끼가 아니라 장철석에게로 달려들었다. 철석이도 이놈봐라! 하고 기회를 노리면서 몽둥이를 단단히 틀어쥐였다. 그 기상에 눌리운 모양 독수리는 철석의 머리우를 몇바퀴 돌더니 저 남쪽하늘가로 날아가버렸다.

산토끼도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장철석은 좀 맹랑한감을 느끼였다.

《퉤! 그놈 신통히도 쪽발이놈들 심보거든!》

철석은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다시금 독수리가 사라진쪽을 바라보며 손을 툭툭 털었다.

순철이한테로 돌아가니 그는 재미나는 놀음이라도 구경한것처럼 시물시물 웃고있었다.

처음보는 웃음이였다.

순철이 웃는걸 보니 철석은 한결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순철이는 제법 제가 먼저 장철석의 팔을 끼며 물었다.

《그래서요?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이번엔 장철석이 벌씬 웃었다. 흥미있소? 하는 눈길로 순철을 일별하였다. 이어 그는 생색이라도 내듯 부러 뜨직뜨직한 목소리로 계속 이었다.

《그 양주공장을 무작정 강압적으로 빼앗아낸 이찌가와 노리아끼란 형놈은 생긴것부터가 우악스럽고 성질이 승냥이같은 놈이였소. 이미전부터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구 조선과 중국동북지방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돌아치던 놈이였지. 이찌가와 마꼬도―동생은 어떤 놈이였는가. 심리학자랍시고 지성인인체 하는 위선자였소. 조선사람과 중국사람에 대한 멸시사상은 제 형놈 찜쪄먹을 놈이였소. 심리학, 특히는 아동심리학연구로써 세상을 들썩 놀래우겠다는 개꿈을 꾸고있던 이놈은 형놈의 공장에서 파업이 자주 일어나자 무릎을 치며 북주하로 달려왔다고 했소.》

《그럼 한개 공장을 두놈이 같이 경영했다는거예요?》

순철이 좀 조급해난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철석은 또 한번 순철을 슬쩍 여겨보았다.

얼굴에는 더 크게 웃음이 벙실거렸지만 내색을 않고 여전히 한본새로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아니, 그렇지는 않았소. …아동심리학자라는 동생놈의 주장이 뭐였던지 아오? 양주공장이란 기술자 몇명만 있으면 소년로동자들로써도 얼마든지 돌릴수 있다, 아이들이란 잘 얼려만 놓으면 시키는대로 하는것이니 어른들을 다 내쫓고 소년공들로 공장을 운영해보자,… 하고 형놈을 와짝 든장질했다는거요. 왜? 조중소년들의 심리를 연구해서 〈황국신민화〉정책에 이바지하는 그 무슨 굉장한 심리학책을 쓰려 했다는거였소. 정말 개꿈이였지. 동생놈이 무슨 속심이였는지를 알수 없는 우직스러운 형놈은 〈좋아. 그럼 공장일은 네가 한번 해봐라. 난 다른 돈구뎅이를 파야겠다.〉했다는거요. 그때 노리아끼놈은 일본령사관을 등에 업고 양주공장에는 비할바없는 큰 광산 하나를 또 타고앉을 꿍꿍이를 하던 참이였소. 당장 성인로동자들 해고바람과 함께 소년공모집바람이 불었소. 중국동북지방 곳곳에 강가의 조약돌처럼 흔한것이 류랑아들인지라 며칠동안에 300명이상의 소년인부들이 모집됐소. 허참… 그 소년공들의 이야길 다 하자면 끝이 없소. 내 평생 잊을수 없는게 누구들인가 하면… 곽영무라는 숙감과 그의 녀동생 영옥이, 김봉빈과 또 그의 녀동생 봉순이, 곽영무의 어린시절 친구인 관길이라는 동무였소.》

장철석은 한동안 말을 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순철이는 갈증을 만난 사람처럼 입술을 감빨며 더 바싹 그에게 붙어서면서 귀를 강구었다.

장철석은 저로서도 참으로 잊지 못할,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의 시절이라 한동안 그렇게 걷기만 하다가 이제는 생사조차 알수가 없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펼쳐나갔다.

… …

곽영무는 장철석이와 같은 열일곱살이였지만 체격이 류달리 우람차고 어른들처럼 무척 듬직한 청년이였다. 힘이 장사같고 인
정이 많아 대뜸 이찌가와 마꼬도의 눈에 들었다.

그의 고향은 북주하에서 수천리 떨어진 조선의 황해도 봉산이였다. 세살잡히는 해에 고아가 됐다.

아버지는 그가 태여나던 해 한밤중에 일본군의 추격을 받아 뛰여든 어느 한 의병대원과 함께 집을 떠난 후 몇해가 지나도록 종무소식이였고 산후탈로 고생하던 어머니마저 끝내 저세상으로 갔던것이다.

너무 철없는 나이에 부모를 잃게 되자 봉산에서 수백리 떨어진 덩두골이란 산골마을에 시집을 가서 일찌기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살던 고모가 어린 영무를 데려다 아들처럼 키웠다.

덩두골에는 곽영무보다 한살 아래인 관길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영무는 그애와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자랐다.

관길이는 산간벽지 무인지경의 덩두골에 첫기둥을 박아세운 좌상로인의 손자였다. 엉뚱한 생각을 곧잘 해내는 능청스럽고 락천적인 소년이였다. 생활은 어렵지만 세상물정을 알바없는 그들은 강가로, 풀언덕으로, 산기슭으로 뛰여다니며 즐겁게 자랐다.

산골안 음달진 곳에는 아직 눈무지들이 더미더미 그대로 쌓여있는 초봄 어느날 아침이였다. 그날아침 그들은 뜻밖에도 눈물속에 헤여지게 됐다. 일제의 토지조사바람에 관길이네가 하루아침에 땅을 떼우게 됐던것이다. 관길이네는 어쩔수없이 덩두골을 떠나게 됐다.

한편 이때 덩두골에서 백리나마 떨어진 어느 한 산골마을에서도 그들에게 못지않는 가슴아픈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그 마을에는 영무와 동갑나이인 봉빈이라는 소년이 병약한 어머니와 두 녀동생과 함께 살고있었다. 그 소년이 손아래동생 봉순이와 같이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유혹하는 뚜쟁이한테 속히워 이름도 모를 곡마단으로 팔려가게 되였던것이다.

한해후에야 뚜쟁이한테 속히웠다는것을 알게 된 봉빈의 어머니는 앓는 몸이지만 네댓살난 막내딸 봉옥이를 데리고 아들딸을 찾아 집을 떠났다. 생사를 알길 없는 아들딸을 찾아 방황하던 어머니는 그만 길가에 쓰러졌다. 세상에 참 이런 기이한 인연도 있을가.… 숨이 지기 전에 봉빈의 어머니는 뜻밖에도 영무 아버지를 만났던것이다. 영무 아버지는 일제놈들에 의해 해산된 조선군대병사들과 독립군들로 조직된 의병부대에 들어가 싸우댔는데 그만 그 부대가 일본 수비대놈들에 의해 전멸됐다. 부대가 전멸되자 영무 아버지는 가족들을 먹여살릴 돈이라도 좀 벌어보려고 광산에 들어가 광부가 됐던것이다.

운명직전 봉빈의 어머니는 길가에서 만난 낯선 광부한테나마 자기 집 기막힌 사연을 호소하면서 의지가지할데 없는 어린 딸을 부탁했다.

봉빈의 어머니로부터 너무도 기막힌 사연을 알게 된 영무 아버지는 불쌍한 봉옥이를 양딸로 삼고 이름도 영옥이로 고쳐주었다. 얼마후에는 그애와 함께 덩두골을 찾아갔다. 생사여부를 모르던 아버지를 만난 영무의 기쁨은 온 세상이라도 안은듯싶었다. 아버지와 고모는 영무에게 어린 영옥이를 안겨주면서 이앤 네 동생이다, 엄마가 앓기때문에 아버지가 업어다 키운 애란다 하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영무는 영옥이를 진짜 친동생으로 알고 끔찍이도 고와했다.

또 불행이 들이닥쳤다. 영무 아버지가 왜놈들과 싸울 때 다친 상처가 심하게 도진데다 고모가 빚값에 몰려 지주집 머슴으로 끌려갔던것이다. 이미 자기 병이 기울어졌다는것을 알게 된 영무 아버지는 죽기 전에 영옥이한테 친오빠와 언니라도 찾아줄 결심을 했다. 하여 영무와 영옥이를 데리고 곡마단을 찾아 평양으로 떠났다.

곡마단이라고 하면 평양이나 서울에 있을테니 우선 평양에서부터 찾아볼 생각이였던것이다. 가는 곳마다에서 일본놈들의 구박과 멸시를 받던 영무 아버지는 그만에야 어느날 저녁 모란봉의 청류벽밑 자연동굴속에서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상처도 상처지만 나라잃은 원한이 그를 더 살수가 없게 했던것이였다. 영무는 그때부터 영옥이와 함께 류랑의 길에 나섰으며 다음해에는 중국동북지방으로 물밀듯이 밀려가는 류랑민들을 따라 두만강을 건느게 되였다.

어디선가 와당탕 퉁탕… 하는 소리가 났다.

장철석은 향방없이 뻗어나가는것 같던 이야기를 뚝 끊으며 흠칫 놀랐다.

퍼그나 경사가 급한 오른쪽 산기슭에서 물동이만 한 돌멩이 하나가 껑충껑충 뜀박질을 하듯이 굴러내려왔다. 그 웃쪽에서 코끼리상아같은 버드렁이발이 량쪽으로 쑥 삐여져나온 중소만 한 메돼지 한마리가 저로서도 놀라운듯 두눈이 퀭해서 굴러내리는 돌덩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먹이감을 찾아 묵은 나무잎들을 뚜지며 돌아가다가 돌밑굽을 잘못다친 모양이였다. 무인지경의 산중이라 별의별 짐승들이 다 있는가보았다.

장철석은 후두둑 뛰는 가슴을 누르며 순철이를 돌아다보았다.

어찌나 이야기에 심취됐던지 그는 메돼지의 실수같은것은 알아채지도 못한 모양 두눈이 초롱초롱해서 철석을 쳐다보고있었다.

장철석은 빙긋이 웃었다. 제 말에 그렇게 귀기울이는데 나쁠게 뭐랴, 영무네 이야기가 그렇게 흥미있을가?… 하긴 생사를 예측할수 없는 방랑아들의 기구한 운명담이 아닌가.

전기불도 꺼진 양주공장의 캄캄한 합숙방―한장씩밖에 차례지지 않는 헌 군용모포만으로는 너무도 얼어드는 추위를 막을수가 없어 몇명씩 조를 무어 모포를 겹쳐덮고 서로서로 꼭 붙안고 누워 잠을 청하던 밤 곽영무가 조용조용 들려주던 말이 생각났다.

《…어딘들 안가봤겠니. 연길, 훈춘, 돈화, 심양… 목재판에도 들어가봤구 말몰이군도 해봤다.… 안되겠구나, 어디든 정착을 해야겠다 하고 깨달은건 7~8년이 지나 내 나이도 열여섯살이 되여서였다. 여기 현소재지에 이른건 지난해 초봄이였어. 마침 혼자 사는 마음 무던한 어머니 한분을 만났구 그 어머니의 주선으로 읍거리 인력거군자리를 하나 얻었단다. 그때부터 인력거를 끌면서 우리 영옥이를 키웠어. 열일곱살 애젊은 놈이 숱한 사람들이 보는 네거리길로 인력거를 끌고다니는 일이 고되고 창피스럽긴 해두 제 잠자리를 정하구 우리 영옥이 하나라도 하루 세끼 배곯지 않게 먹일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든줄을 모르겠더구나.》

철석이도 그렇고 모두들 울면서 들었다. 영무오누이의 방랑생활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보다는 그 방랑생활이 신통히도 듣는 아이들모두의 생활과 류사했기때문이였다.

절망과 설음만이 꽉 찼던 암담하던 방랑생활의 아픔으로 하여 장철석이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걷기만 하자 순철이가 더 바싹 다가붙으며 물었다.

《그다음엔요? 형님은 정거장에서 안경낀 중년사나이를 만나 양주공장에 들어갔는데 영무는 또 어떻게 공장에 들어갔어요? …봉빈이네 오누이는 어떻게 됐구요?》

두눈에 더 큰 호기심이 어렸다.

장철석은 또 싱그레 웃었다. 까짓거 다 말해주자, 바쁜 일도 없는데.… 하긴 이 고행길에 객담이나마 서로 나누어야지 말없는 벙어리걸음만으로야 힘겨워 어이 가내랴!

하면서도 철석은 넌지시 물었다.

《거 뭐 소시적 시시껄렁한 얘긴데 그냥 듣겠소?》

순철이는 펄쩍 뛰듯 하며 입을 열었다.

《시시껄렁한 얘기라뇨, 나라잃고 살길 막힌 백성들의 피와 눈물에 젖은 원한의 자욱자욱들인데. 이제 왜놈세상이 뒤집히고 나라가 독립되면 하나하나 다 력사책에 기록해서 자자손손 전해줘야 할 얘기지요.》

장철석은 입을 항 벌렸다.

《가만, 자네 거 보통 유식하지 않구만!》

순철은 얼굴이 벌개졌다. 이어 손을 홰홰 내저었다.

《원 형님두, 별 말을 다… 농사군한테 유식이 다 뭐예요.… 8도강산 하도 돌아다니다나니 풍월루 좀 주어들었던 끄트모랭이지요.》

《허허허…》

장철석은 소리를 내여 웃었다. 아무튼 기분은 흥그러워졌다.

그는 순철이를 옆에다 꼭 당겨끼기까지 하면서 《곽영무가 양주공장에 들어가게 된건 말이요.》하고 끊었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 …

현소재지에 류랑의 닻을 내리고 인력거군이 된 영무는 어느날 정거장에 나가 손님을 기다리다가 우연히도 신사차림의 일본인―이찌가와 마꼬도를 인력거에 태우게 되였다. 실은 우연이 아니였다. 곽영무의 어른다운 성품과 힘장사같은 체구에 눈독을 들이고 정거장을 드나들 때마다 여러차례 눈여겨 살피던 이찌가와 마꼬도가 부러 우연인체 하면서 그의 인력거에 올라앉았던것이다.

인력거를 타고 가면서 영무의 고향이며 살림형편을 친절히 알아본 마꼬도는 무척 후더운 동정을 표하면서 자기가 힘껏 도와주겠으니 영옥이까지 데리고 양주공장에 들어오라고 권고했다.

공장에는 이미 관길이가 들어와있었다.

덩두골을 떠나 여기저기 떠살이를 하던 관길이네는 부전강으로 가면 살길이 열린다는 조선총독부의 광고에 유혹되여 부전강발전소 건설장으로 갔었다. 죽음의 함정과도 같은 그 발전소 건설장에서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혈혈단신이 된 관길이 역시 류랑의 길에 나서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영무와 관길은 눈물겹게 만났다.

관길이까지 잡아끄는 통에 영무는 영옥의 손을 잡고 마꼬도를 찾아갔다. 마꼬도는 쾌재를 부르면서 영무를 합숙숙감으로 임명하고 300명 소년직공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게 하는 《신임》까지 베풀었다.

300명 소년직공들의 눈물겨운 생활들을 알게 된 영무는 그들의 친형이 되여 동생들처럼 돌봐주면서 때로는 마꼬도에게 엄청난 요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불여우같이 깜찍하고 교활한 마꼬도는 영무의 요구를 들어주는척 하면서 그를 리용하여 소년직공들을 나날이 더 고역에로 내몰았다.

이럴 때 양주공장에 또 한명의 소년직공이 들어왔다.

연길유격근거지에서 양주공장 소년직공들속에 소년선봉대조직을 내올데 대한 과업을 받고 들어온 봉빈이였다.

뚜쟁이한테 속히웠다는것을 늦게야 알아차린 어머니가 행처를 찾아 헤매일 때 그들오누이는 서울의 어느 한 곡마단에서 지옥에서와 같은 학대를 받으면서 교예훈련을 강요당하고있었다.

봉빈이는 말타는 교예를 배우고 봉순이는 바줄타는 교예를 익혀야 했다.

아득한 공중에서 바줄을 타야 하는 봉순의 고역은 더 말할수 없었다. 채찍, 욕설, 벌… 동생을 죽일것만 같아 가슴을 조이던 봉빈이는 어느날 중국동북지방으로 살길을 찾아 떠나는 한 류랑민을 알게 되여 그 사람의 도움속에 봉순이와 함께 곡마단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낯설은 이역땅에서 류랑의 길을 헤매던 봉빈이네 오누이는 어느 깊은 산속에서 유격대지하공작원을 만나 유격근거지로 들어갔고 봉빈이는 소년선봉대 대장으로 성장했던것이다.

그 과정 역시 근 10년세월이였다.

뒤늦게야 공장에 입직을 한 봉빈이는 장철석이 일하는 알탄작업장에 배치됐다. 좀 헐한 작업공정들에는 이미 로력이 다 차고 나중에 들어온 소년들은 제일 힘든 알탄작업장에 내몰렸던것이다.

공장안에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봉빈의 활동은(물론 그때 공장소년공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소년들을 보호하려는 영무한테 부딪쳐 걸음걸음 속을 태웠다.

영무때문에 속을 태우면서도 봉빈이는 그가 온갖 사랑을 다 쏟아붓고있는 영옥이가 자기의 친동생이라는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영옥이 또한 봉빈이가 세살때 헤여진 자기 친오빠인줄을 알지 못했다. 영무는 나날이 더 경계하면서 못마땅해하는 봉빈이는 물론 관길이까지 미워했다. 봉빈이가 이미 영무와 제일 가까운 관길이부터 돌려세웠던것이다. 영무는 관길이까지 배척해버렸다.

그무렵 공장에는 야수와 같은 또 한놈의 일본놈이 나타났다. 의사의 탈을 쓴 일본륙군소속 특수연구소 연구사 오야마 고로였다.

도꾜군부의 뒤받침을 든든히 받고있는 이놈은 손쉬운 방법으로 생체실험대상들을 선발하기 위하여 검진의 구실밑에 소년공들에 대한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이자는 이미 10여년전에 새 마취제연구실험을 위해 조선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숱한 사람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병신을 만들어놓은 놈으로서 산골마을의 봉빈이와 영옥의 잔등에도 지울수 없는 상처자리를 남긴 놈이였다.

검진과정에 봉빈이와 영옥의 잔등의 상처자리를 발견한 오야마 고로는 미칠듯 한 호기심을 느끼며 이 사실을 이찌가와 마꼬도에게 알려주었다.

가뜩이나 봉빈이를 수상쩍어하던데다 야수의 본성에서는 결코 짝지지 않는 두놈은 영옥이를 죽음에로 몰아가는 생체실험의 첫 대상 《모르모트―1번》으로 정했다. 봉빈이와 영무의 관계를 리용할 몸서리치는 계획까지 세웠다.

비인간적이며 살인적인 이 음모를 아는 사람이 딱 한명 있었다. 이찌가와 마꼬도가 도꾜의 자기 집에서부터 충실한 하녀로 키워온 미쯔꼬라는 소녀였다.

미쯔꼬는 원래 조선소녀였다. 간또대지진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희생된 후 이찌가와 마꼬도의 가문에서 애완용동물처럼 키워낸 하녀였다. 자기를 철저히 일본아이로 알고있을뿐아니라 이찌가와가문의 《은덕》에 멸사봉공하도록 교양받은 소녀였다.

이찌가와 마꼬도는 조선아이로서 나날이 일본화되여가고있는 미쯔꼬를 《황국신민화》정책실현의 표본처럼 자랑하며 동북지방에까지 데리고갔던것이다.

이찌가와 마꼬도와 오야마 고로는 영무와 영옥이, 봉빈의 관계를 무척 흥미있게 지켜보면서 때로는 영무가 영옥이한테 쏟아붓는 사랑을 봉빈이를 극도로 미워하게 하는데 리용하기도 하고 영옥이를 살리기 위해 영무가 제놈들에게 더 충실하도록 교묘하게 계교를 꾸미기도 했다.

놈들의 이 잔인성의 진모를 미쯔꼬가 더 깊이 알게 됐다. 그는 영무와 영옥이에 대한 동정과 함께 자기 《주인》들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됐다.

생체실험대상으로 뽑힌 영옥이가 힘든 일도 하지 않았지만 나날이 더 쇠약해져 영무는 미칠지경이 됐다.

영옥이를 비롯한 실험실아이들한테서 나타나는 신체상의 이상한 점들을 제일먼저 알아차린것은 봉빈이였다. 영옥이한테 접근해보려 했지만 그애는 좀처럼 곁을 주려하지 않았다. 미쯔꼬가 분명 그 비밀을 알수 있다고 짐작했지만 항시 이찌가와 마꼬도와 감독들의 경계속에 있는 애여서 그와도 접촉할수가 없었다.

많은 생각끝에 봉빈이는 유격근거지에 있는 봉순이를 보내줄것을 제기했다. 얼마후 봉빈의 요청대로 현소재지 지하조직선을 통하여 봉순이가 공장에 들어왔다.

봉순이는 인차 영옥이와 가까와지고 미쯔꼬와도 사귀였다.

드디여 미쯔꼬는 봉순이에게 영옥이가 인차 죽게 될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주었다. 하면서도 아직 오야마 고로의 실험실내막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영옥이를 극진히 돌봐주던 봉순이는 뜻밖에도 그가 그처럼 그리워하던 친동생이라는것을 알게 됐다. 했으나 분명 제 동생으로 알고 온갖 사랑을 다 쏟고있는 영무때문에 이름 한번 부르지 못했다.

봉빈이와 봉순이, 영무와 관길이가 정성을 다 쏟았으나 영옥이는 끝내 눈을 감고말았다.

영무는 반정신이 나가버렸다. 오야마 고로를 의심하며 기어코 그의 실험실내막을 밝히려 했다. 실험실내막이 드러날 위험에 빠지자 이찌가와 마꼬도와 오야마 고로는 영무를 가차없이 죽여버릴 흉계를 꾸몄다.

이 음모 역시 미쯔꼬가 알아차렸다.

그무렵 미쯔꼬는 오야마 고로와 이찌가와 마꼬도가 주고받는 말을 통해서 자기가 조선아이라는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미쯔꼬는 위험을 무릅쓰고 놈들이 영무를 죽이려 한다는것을 봉순이와 봉빈이에게 알려주었다. 봉빈이는 사생결단으로 영무를 구원하고 놈들의 칼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영무는 비로소 영옥이가 봉빈의 친동생이였으며 자기가 그처럼 미워하던 봉빈이가 소년선봉대원이라는것을 알게 됐다. 자기가 얼마나 교활하고 간악한 놈들한테 속히웠댔는가를 알게 된 그는 즉시 소년선봉대에 입대하고 관길이와 함께 봉빈이를 대신하여 소년공들의 파업을 조직했다.

10대의 소년들, 혈혈단신 소년공들의 파업은 곧 폭동으로 넘어갔다. 닥치는대로 들부시고 짓마스는 소년공들의 폭동에 이찌가와 마꼬도는 그만 손을 들고 그들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겠다고 응해나섰다.

어른들은 3차례의 파업뒤끝에 모두 해고를 당했지만 물불을 모르는 소년공들은 첫날 첫 투쟁에서 크게 승리했던것이다.

이 폭동은 중국동북지방은 물론 일본전역의 신문, 방송들과 본영의 군부까지 크게 흔들어놓은 하나의 사변과도 같은것이였다.

… …

해빛도 잘 스며들지 않는 울창한 밀림이 끝나고 저앞으로 훤하게 트인 개활지대가 나타났다.

장철석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큰숨을 몰아쉬였다.

철석의 이야기를 듣느라 곁에 바싹 붙어걷던 순철이도 숨을 헐썩거렸다.

철석이 땀을 들이느라 한동안 말을 끊고있자 순철이는 제사 흥분해서 말했다.

《거참, 어른들도 못해낸 일을 아이들끼리 해냈단 말이구만요. 대단한데!》

머리를 기울기울하며 찬탄하던 그는 갑자기 두눈을 불꽃처럼 반짝이며 물었다.

《아, 그러니 형님은 그때 벌써 쪽발이놈들을 반대하는 싸움에 참가했댔구만요!》

철석은 손을 홱 내리그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릴…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럽소.》

그는 한숨까지 후― 내쉬였다.

순철이 의아해서 물었다.

《왜요?》

머리우에서 인기척에 놀란 산비둘기 한마리가 화드득 깃을 치며 날아올랐다.

철석은 또 한대의 진대나무를 타고넘느라 얼마간 사이를 두었다가 씁쓸하게 이었다.

《운명의 길이란 참, 아 글쎄 그날 공장에 불을 지른 영무와 봉빈이네는 주저없이 다 유격근거지로 들어갔는데 난 왜 그들을 따라갈 생각을 못했겠는가 말이요. 김일성장군님 유격대에!… 그저 또 어머니가 들려주던 고향, 조선으로 나갈 생각밖에 못했댔거든.》

《야, 거 그때 그들과 함께 갔더라면 정말 항일유격대가 됐을걸 그랬구만요. …지금처럼 징병에 끌려다니는 고생도 않구.》

순철이는 항일유격대라는 말을 힘주어 하면서 부럽기라도 한듯 철석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철석은 머리우에 드리운 소나무의 삭정이를 뚝 꺾어 내던졌다. 순철이는 괜히 아픈곳을 찔렀다고 생각했는지 얼마간 잠자코 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그 노리아끼인지 마꼬도인지 하는 놈들은 어떻게 됐어요?》

철석은 찔 흘기기라도 하듯이 순철을 쳐다보고나서 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꼬도인지 말꼬리인지 하는 그놈은 그날 공장과 함께 불에 타 죽었소. 무슨 심리학기록부인지 하는걸 건져내겠다고 제놈의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지붕이 무너지는 통에… 제 갈대로 갔지. 한데 사람의 일이란 참… 내 구창광산에서 이찌가와 노리아끼놈과 다시 만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소.》

순철이도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그럼 그놈도 조선으로 나왔어요?》

철석은 퍽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놈이 〈동척〉의 주요인물로서 중국동북지방뿐아니라 북부조선의 탄광, 광산들도 여러개 제 손아귀에 걷어넣었다는거요. 뭐 총독부는 물론이구 일본본영에도 마음대로 드나든다나보오.》

《보통 큰놈이 아니구만요.》

《돈벌이에서는 큰놈일런지 몰라두 속통은 되게두 쪼물짝한 놈이요. 그놈이 구창광산에 처음으로 나타난 날 어떻게 했는지 아오?》

구창광산의 광주는 새로 모시게 된 이찌가와 노리아끼에게 첫 인상부터 좋게 보이기 위해 심부름군소년을 시켜 그놈이 타고온 승용차를 깨끗이 청소하도록 했다. 산골광산에서 차청소를 해보지 못한 소년이 청소를 제대로 할리 없었다. 차창에 얼룩점이 몇군데 생겼던것이다. 신통히 이찌가와 노리아끼를 닮아 포악하기 이를데 없는 운전사가 노발대발해서 소년의 귀쪽을 잡아비틀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놈은 마당가에 쌓여있는 장작더미에서 홍두깨같은 장작개비를 들고 달려들었다.

광산사무실에서 나오던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그 모양을 보자 짐승같은 소리를 빽 내질렀다. 운전사가 주춤하는 사이 승용차안에서는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호신용으로 끌고다니는 말같은 개 한마리가 달려나왔다. 노리아끼놈이 소년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마디 하자 개는 사정없이 소년을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순간에 피투성이 되여 쓰러지는 소년을 보며 놈은 더 미친 놈처럼 부르짖었다.

《조선놈이나 새끼들 모두 독종들이다. 북주하양주공장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끼친다. 조선놈아이새끼들이나 모두 저렇게 물어뜯고 불태워죽이면 씨원하겠단 말이다!》…

철석의 말을 듣던 순철이는 얼굴이 새하얘서 치를 떨었다.

《짐승같은 놈, 아니, 그놈을 가만뒀어요? 그 광산엔 로동자조직도 없었나요? 우리 농촌에두 농민조합이란 조직이 있었는데…》

이번엔 장철석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어렸다. 괴롭게 고개를 돌리면서 혼자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그 조직책임자가 바로 나였소.》

순철의 두눈이 사발만큼 커졌다.

철석은 더 아픈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때는 어쩔 방법이 없었소.》

사실 그때 장철석은 어쩌는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너무도 뜻밖에 마주치게 된 이찌가와 노리아끼이기때문이였다. 북주하양주공장에서의 고역의 나날들이 한꺼번에 다 떠오르면서 오싹 전률이 일었던것이다. 야수같은 이찌가와 노리아끼도 모여드는 광부들속에서 비수처럼 섬찍하게 날아드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였다. 서리발같은 눈길의 젊은 청년의 얼굴도 얼핏 스쳐보았다. 하지만 불쌍한 소년―조선아이앞에서 터져오른 야수같은 복수심에 미처 놈은 그 얼굴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이찌가와 노리아끼가 어디선가 낯익혔던듯 한 그 얼굴을 되살려낸것은 그로부터 몇시간이 지나 광산을 돌아보면서였다. 광차를 밀고나오는 장철석을 다시 띄여보았던것이다. 동행하던 광주와 십장놈들을 통해 장철석의 경력과 함께 《형제계》조직자라는것도 알게 되였다.

《요시!》

놈의 이발이 금시 부스러지기라도 할듯이 무섭게 갈렸다.

마침 놈은 총독부 경무국의 요직인물 모리무라 다다시와 한창 친교가 무르익는중이였다.

하여 구창광산에 이미 침투했다는 모리무라 다다시의 첩자도 알게 되였다. 그 첩자의 끄나불이 《친목회》에 박혔다는것도 알았다.

사랑스러운 영옥이의 여린 생명을 쥐고 영무와 봉빈이를 우롱하는데서 쾌락을 맛보던 이찌가와 마꼬도와 오야마 고로의 본성 그대로인가, 늙다리 이찌가와 노리아끼의 낯짝에도 음충스러운 미소가 떠돌았다.

놈은 어쩌다 광산에 나타나면 극비밀리에 다다시의 첩자부터 만나군 했다. 물론 누구도 범접을 못하는 숙소나 식당의 어스크레한 구석방에서였다.

《형제계》와 《친목회》가 벌린 머리가 깨지고 코피가 터지는 싸움도 입귀가 귀쪽까지 째져돌아갈만큼의 만족과 통쾌감속에 지켜보았다.

어느 글에서였던가?

한사람이 언덕에 앉아 늪가의 풀숲에 하나둘 돌을 집어던질제 개구리 한마리가 닁큼 일어나며 성이 나서 했다는 말.

《여보, 제발 좀 던지지 마오. 당신은 심심풀이로 던지지만 그 돌에 맞으면 우린 목숨을 잃는단 말이요. 죽음!》

울안의 동물싸움을 지켜보듯 하던 이찌가와 노리아끼는 그에도 인차 싫증이 느껴지자 가차없이 《형제계》성원들을 징용, 징병으로 몰아가도록 돈뭉치까지 아끼지 않고 뿌렸던것이다. 이후 모리무라 다다시를 만난 자리에서는 여담삼아 대일본제국을 위해 본영의 대조선정책사에 길이 남을 거사라도 치른듯이 그 일을 열이 나서 자랑까지 했다.

한갖 심심풀이같은 늙다리의 허세였지만 모리무라 다다시는 자리를 차며 일어날만큼 흥분했다.

이게 웬일이냐!

당장 그날밤으로 구창광산을 비롯하여 자기 관할지역안의 주요 지점들에 박아넣었던 특수밀정들을 극비밀리에 한명씩 긴급호출하였다.

아직은 이렇듯 총독부 경무국안에서 어떤 모략이 꾸며지고있는지 알수 없는 장철석과 리순철은 지옥의 사자앞에서 뛰쳐나온듯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자기들앞에 어떤 운명의 가닥가닥이 놓였는지는 더우기 생각지 못한채 초행길에 만난 생면부지의 길손들이라 서로 소개하고 리해하려는데 마음쓰면서 걸음걸음 북행길을 다그치고있는것이였다.…

순철의 놀람에 장철석은 더우기 아픈 가책의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뇌이였다.

《정말이지 그때는 어쩔 방법이 없었소.》

순철은 여전히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듯싶었다. 새삼스럽기라도 한듯 한참이나 철석을 찬찬히 여겨보다가 무작정 그의 앞을 떡 막아섰다.

《글쎄…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형님,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요!》

철석은 쑥스러워 손을 저었다.

《됐네, 됐어. …너무 이러지 말라구. 항차 지금이야 다같이 징병에 끌려가다 도망친 몸이 아닌가.》

《그래두 어디 그런가요. 한배에 까났다구 다 수닭은 아니지요.》

《됐다니까, 어서 가자구.》

철석은 제먼저 덜썩덜썩 앞서 걸었다.

또 누구도 모르게 붙들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 하루일을 마친 장철석은 전에없이 급히 걸었다. 날이 어두우면 《형제계》성원들의 모임을 열기로 했던것이다. 되게 못되게 구는 싸리갱감독놈을 내쫓는 투쟁을 벌려 광부들의 인권을 지키면서 초보적인 로동조건이나마 보장받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려는 모임이였다. 《형제계》가 조직되여 벌린 첫 파업―대중투쟁이였다. 10년전 북주하양주공장에서의 폭동이 생각났다. 항차 10대 소년시절에도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는데 지금에야!

이제는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동지들의 회합인것만큼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 중국동북지방에서 가슴 설레이게 듣군 하던 항일유격대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더 구체적으로 해주어 이번 투쟁의 불길이 되고 기발이 되게 해주려고 했다.

흥분에 들뜬 그는 누구인가 뒤를 따르는것도 몰랐다.

어느 한 골목을 돌아설무렵 돌연 두세놈이 덮쳐들었다.

미처 손쓸 사이없이 사지를 맞들리다싶이하여 밖을 내다볼수 없는 풍차에 올리던지웠다.

풍차가 씽하고 바람을 일구며 떠났을 때에야 군복차림의 한놈이 꾸깃꾸깃 꾸겨진 징집령장을 내보이며 뭐라고 씨벌거렸다.

차안에는 열댓명의 청장년들이 서로 등을 돌려대고 앉아있었다. 조금이라도 돌아앉으려 하면 즉시에 돼지멱따는 소리같은것이 터졌다.

풍차가 정거장에 닿고 정거장에서 기차에 실리울 때에야 장철석은 먼발치에서나마 이미 끌려와있는 여러명의 《형제계》성원들을 알아볼수 있었다.

다행히 한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며 귀속말로 알려주었다. 모두 장철석처럼 불의에 붙잡혔으며 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간다는것이였다. 장철석은 비로소 심상치 않음을 느끼였다.

《형제계》성원들이 모두 붙잡혔는가?…

《형님, 저게 뭐요?》

순철이 갑자기 철석의 팔을 끌고 아름드리 소나무뒤에 붙어섰다. 그가 가리키는 오른쪽경사지에 깎아지른듯 한 돌벼랑이 솟았는데 그 돌바위에 일제를 저주하는 글자들이 씌여져있었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징병, 징용으로 끌려가다가 도망친 사람들이 써놓은게 분명했다. 하다면 여기 어디에 그들이 있다는것이 아닌가.

숨죽이고 살폈지만 인적기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얼마후에야 터질듯이 들뛰는 가슴을 두손으로 감싸안으며 조심조심 바위께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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