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6 장

3

선녀갱쪽의 어느 골안에선가 소쩍소쩍 소쩍새울음소리가 들린다. 처량하기도 하고 궁상스럽기도 하고 무엇인가 절절하여 애간장을 끓게도 한다는 울음소리였다.

장철석은 문득 그 울음소리가 《혜영, 혜영》하는 소리로 들리여 가슴이 아릿해졌다.

저 새가 혜영이 있는 밀림에서 날아온건 아닐가?

《거기서도 여기로 들어오면 안되나요?》하고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쳐다보던 얼굴이 눈앞을 꽉 채운다.

내 왜 그때 그를 더 따뜻이 대해주지 못했을가 하는 생각에 큰 숨을 후― 내쉬였다.

겉은 그랬어도 속에서는 얼마나 불같은것이 끓고있었던가.

혜영이, 우리 조금만 더 참자구.

이번엔 그의 어머니와 새빨갛게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면서 나무단을 지고다니던 나어린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녕 그들과 한집안에 모여살 날은 언제일가?

죽을 먹어도 그들과 한두리반에 모여앉아 웃으며 먹고싶었다. 하루밤을 자도 그들과 함께 내 집, 내 살림방의 뜨뜻한 구들에 누워 자보고싶었다.

꿈결에도 그리운 그 사람들의 모습은 이어 봉빈이며 영무, 저 멀리 10년전의 북주하양주공장 소년직공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되살려주었다.

영옥이와 관길이, 기철이, 《바퀴》…

이 땅, 이 하늘아래 어느 곳곳에서 어떻게들 살고있을가?

그들도 이제는 어른이 다 됐을텐데…

장철석은 끙―하고 온몸에 힘을 주면서 돌아누웠다.

두손으로 힘있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지금 어느 밭을 헤매고있는가!

그는 펄쩍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손바닥만한 뙈창이 환하게 밝았다.

벌써 날이 새는가?

아래방에서는 하루일에 지친 주인내외가 겨끔내기로 코를 골고있었다.

장철석은 속내의바람으로 밖으로 나갔다.

보름달이 휘영청 떴다.

봄밤이건만 달이 얼마나 밝은지 추석날 밤의 그 달인가 싶었다.

주인집녀인이 어느 친척집에서 안아왔다는 까만 강아지가 벼짚둥우리에서 바르르 기여나와 철석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며 맴돌이를 쳤다.

장철석은 강아지를 냉큼 들어 품에 안았다.

강아지는 고맙다는듯 킹킹거리며 더 깊이 겨드랑이안으로 파고들었다. 따스한 온기를 느끼려니 느닷없이 또 구창광산의 혜영이네 집이 그리워졌다.

혜영이 어머니와 똑똑한 어린 동생… 어머니의 병은 어떨가? 그 어린 동생이 얼마나 고생이 클가. 향수와 같은 아릿한 그 정을 불러주군 하기에 강아지와 더 친숙해지게 되는지 몰랐다.

장철석은 더욱 따뜻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마당을 거닐었다.

밤늦도록 잠못들고 굴려보던 생각이 다시금 머리속에 고패치면서 심장을 쿵쿵 울렸다. 화약운반과 함께 동시에 밀고나가야 할 제2단계작전에 대한 지시때문이였다. 비록 몇마디 안되는 집약된 지시였지만 장철석은 나날이 더 그 과업뒤에서 폭풍치는 거창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였다. 환희였다.

봉빈공작원이 만날 때마다 강조하군 하던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최후작전이 드디여 내 나라의 하늘아래, 저 울창한 랑림산줄기너머 어느 기슭에서 시작되여 당장 첫 포성을 울리는게 아닐가 하는 걷잡지 못할 환희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침착하고 주도세밀한 봉빈공작원이 누구나 알면 경악을 할 그런 모험적인 작전을 감히 펼수 있겠는가.

오늘밤도 그 흥분으로 진정을 못하던 장철석은 다시금 뜻밖에 터진 화약운반습격사건의 첫날부터 화를 복으로 돌려앉히기 위해 고심하던 나날들을 하나하나 침착하게 더듬어보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방안은 역시 조직성원들속에서 나왔다. 당장 하늘이라도 무너뜨릴듯이 기가 뻗쳐돌아치던 도경찰부장과 헌병대장놈이 돌아가고 헌병대 파견대장이란 놈이 수십명의 경관들까지 보충해가지고 들이닥친지도 네댓새가 지난후에 당상갱좌상아바이가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안을 하나 내놓았던것이다. 이미 로출된 미끼라면 우리도 대담하게 더 콱 로출시켜놓자는것이였다.

지금 화약을 보관한 페갱으로부터 서쪽골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다가 나지막한 릉선을 하나 넘으면 벼랑바위들이 험하게 솟고 참나무숲이 우거진 산탁에 또하나의 굴이 있는데 밤중에 은밀히 화약과 도화선상자들을 그 굴속으로 옮겨놓자는것이였다. 지금 화약과 도화선을 보관한 페갱주변에 밤낮으로 놈들의 눈길이 박혔은즉 우리가 밤중에 은밀히 그 상자들을 옮기면 놈들은 얼씨구 좋다! 하면서 쾌재를 부르며 따라올것이다. 우리는 그 굴안에 화약과 도화선들을 아주 《조심히》 옮겨다 《보관》한 후 굴입구를 철저히 《위장》해야 한다.

놈들은 항시 그 굴입구와 굴주변에서 눈길을 떼지 않을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 고갱이 10여년전에 물줄기가 터져 엄청난 사고를 냈다는데 있다. 그 고갱 썩 안쪽에는 여러개의 곁굴이 있는데 그때 그 곁굴들을 돌로 막아놓았다. 그 곁굴들중의 하나가 바위벼랑과 참나무숲으로 뒤덮인 험한 산너머 뒤골짜기와 통하는 굴이다. 이제는 그 굴들을 내버린지가 오랜데다가 그때 일하던 사람들도 다 없어져서 그 굴내막을 아는 사람은 좌상아바이 하나뿐이라는것이였다.

장철석은 무릎을 쳤다. 좌상아바이의 두손을 모아잡고 몇번이나 힘차게 흔들었다.

한인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일을 예견하여 그가 그렇듯 품들여 조직을 확대하는 일부터 꾸준히 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움이 북받쳤다.

긴급한 때일수록 당황해하지 말고 배심 든든히 뚫고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만날 때마다 강조하군 하던 봉빈공작원의 말도 생각났다.

좋다.

《소나무》와 《이깔나무》한테 빨리 이 작전계획을 통보해주어야겠다. 각자 밀정놈한테 접근하여 첫 화약운반작전진행을 은밀히 눈치채도록 하게 해야겠다. 그래, 그림자에 그림자작전! 누가 골탕을 먹는가 보자!

장철석은 곧 좌상아바이를 앞세우고 그 옛굴을 찾아들어갔다.

굴천정에서는 아직도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고 곳곳에 거미줄들이 늘어졌다. 박쥐들이 찍찍거리고 곰팽이냄새가 코를 찔렀다.

굴입구에서 50메터쯤 들어가니 광부들이 굴안으로 들며날며 모여앉아 휴식도 하고 작업준비도 하군 하던 널직한 홈채기가 있었다. 썩어 무너앉은 통나무긴걸상도 있었고 녹쓴 정대와 곡괭이, 망치 같은것들도 나딩굴었다. 무너져앉은 통나무걸상에는 허연 곰팽이와 절로 자라다 죽어버린 버섯들이 희끗희끗했다.

진짜 10여년동안 인적이 끊어졌던 굴이였다.

거기로부터 또 100메터쯤 들어가니 두간두간 굴벽을 버럭돌로 쌓아서 막아놓은 곁굴입구들이 나타났다. 물기가 질쩍거리고 거미줄이 츠렁츠렁 드리우고 돌먼지가 두텁게 쌓여서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굴벽인지 돌막이인지 가려볼수 없는 곁굴입구들이였다.

장철석은 좌상아바이가 점찍는대로 곁굴입구의 막돌을 하나하나 헐어보았다. 사람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만한 구멍이 펑 뚫렸다. 싸하고 눅눅한 바람이 확 쓸어나오면서 숨을 꺽 막히게 했다. 간데라불로 안을 비쳐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좌상아바이말이 산너머 뒤골안까지 나가자면 오리쯤의 굴길은 걸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옳다. 화약상자들을 저 참나무숲속에 묻힌 기본굴입구로 《은밀》히 들여와야겠다. 빼내가는것은 산너머 뒤골안굴로 들어와 이 곁굴로 해서 쥐도새도 모르게 진짜 은밀히 메내가야 한다.

장철석은 가슴이 막 터지는것 같았다.

한마차분이나 되는 화약과 도화선을 눈 빤히 뜨고 통채로 감쪽같이 떼우고나서 닭쫓던 개 울바자 쳐다보듯 할 놈들을 생각하면 온몸이 둥 떠오르는것 같기도 했다. 아니, 정말이지 이제 그 화약과 도화선들이 작탄이 되여 저놈들의 머리우에서 쾅쾅 터질제 놈들은 또 얼마나 경악을 할텐가.

어리석은 놈들, 뭐 미끼라구! 감히 누구한테 미끼를 던져!

하면서도 그날부터 통잠을 못잤다. 모든 일이 다 우리가 계획한대로 순조롭게 되겠는가 하는 불안에서였다. 천리길 걸어가 문앞에서 넘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오늘밤도 잠 못들던 철석이였다.…

마당굽을 몇바퀴나 돌던 장철석은 어느결에 대문밖으로 나와 집옆의 박우물로 가는 돌서덕길에 나섰다. 물을 마실 생각에서는 아니였다. 발길 닿는대로 걷는 걸음이였다.

사시절 마를줄 모르는 박우물에서는 바위돌짬으로 조잘조잘 흐르는 물소리가 났다.

우물주변에는 누가 심었는지 다박솔이 두세그루 섰고 오미자덩굴도 우거졌다.

찰랑찰랑 넘쳐나는 우물안에서도 보름달이 환히 웃고있었다.

장철석은 차고 깨끗한 물에 씨원히 세수를 하고싶었다.

박우물아래 빨래도 하고 산나물도 헹구느라 깨끗한 돌로 둘레를 쌓은 물웅뎅이가 있었다.

강아지가 저도 물장난을 하고싶은모양 물가를 에돌며 낑낑거렸다.

정작 세수를 하려고 물속에 손을 담갔지만 장철석은 손을 잠근채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모든 작전을 승인한다고, 짐운반을 특별히 조심하라고 강조했던 봉빈의 련락쪽지가 생각나서였다.

실수가 없어야 한다. 이번의 실수는 생명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는것이다. 정말이지 자그마한 빈틈도 있어서는 안된다. 더우기 이번 작전은 단순히 화약구입이나 도화선과 뢰관구입전에 한한것이 아니지 않는가. 놈들에게 속는척 하면서 오히려 놈들의 코를 꿰여 궁국에는 페장이 터질 엄청난 함정속에 몰아넣어야 할 비밀격전인 동시에 보다 중대한 제2단계작전으로 돌진하기 위한 모험적인 격전이였다.

또하나의 불안이 스치였다. 오늘밤 예견했던 《이깔나무》의 통보가 아직 잠잠한것이였다.

일이 생겼는가?

철석은 도리를 저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면 《참나무》나 《소나무》로부터 이미 긴급련락이 왔을것이다.

《참나무》와 《소나무》, 《이깔나무》.

얼마나 책임성높고 미더운 조직성원들인가!

신심이 북받친 장철석은 이제부터 진행하게 될 보다 대담하고 통이 큰 행동방향을 침착하게 다시 훑어보았다.

그러면서 두손으로 샘물을 듬뿍 떠서 얼굴에 활활 끼얹었다.

정신이 펄쩍 들었다.

또 한번 끼얹었다.

끼얹을수록 내장까지 시원하게 정신이 맑아졌다.

갑자기 강아지가 자지러지게 짖었다.

장철석은 등골이 오싹했다.

강아지가 더 기승스레 짖어댔다.

집아래 시가지로 통하는 큰길로 내려가는 돌서덕 오래길어구에서 《누구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철석은 소리나는쪽으로 고개를 버쩍 돌렸다.

잠잠했다.

다시 반복하는 소리.

《누구요?》

부시럭거리는 인기척과 함께 길옆에 우뚝 솟은 선바위굽에서 검은 옷을 입은 웬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나요.》

귀에 익은 소리.

이어 선바위와 좀 떨어진 길아래쪽 찔레덩굴뒤에서도 또 한사람이 나타났다.

《자네 창일이 아닌가?》

역시 귀에 익은 목소리, 리순철이였다.

《철석형님을 만나러 왔나?》

대답을 안했다.

서로 가까이 마주섰지만 여전히 잠잠했다.

분명 무슨 말인가 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강아지도 잠잠해졌다.

장철석은 여전히 온몸에 서늘한 감을 느끼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하여 다시 들려오는 소리.

《나도 급히 철석형님을 만날 일이 있어 왔네. 같이 들어가자구.》

장철석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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