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6 장

4

올해에는 례년에 없이 보리장마가 일찍 시작되려는지 보름나마 구름한점없이 땡땡 말리우기만 하던 대지에 낮때부터 물먹은 바람이 불고 먼 하늘끝에서 꾸르릉꾸르릉 뢰성이 울더니 초저녁부터는 먹장구름이 미친듯이 밀려들었다.

무슨 위협이기라도 한듯 돌덩이같은 비방울을 후두둑후두둑 뿌려던지기도 했다.

산제비들이 질겁을 하여 거리와 마을의 처마밑으로 날아들고 산골안 어느 벼랑굽에선가는 날이 채 어둡기 전부터 캥―캐갱―하는 여우울음소리가 들렸다.

날이 어둡자 장철석은 부러 거리길에 나섰다.

그는 고기파는집앞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밤손님을 치르려는지 빈지를 쾅쾅 두드리는 중년의 사나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눈은 사나이를 여겨보았지만 온 신경은 방금 자기가 걸어온 큰길쪽에 갔다. 빨간색의 야외등빛에 《해당화》라고 현판을 내붙인 술집모퉁이에서 무슨 그림자같은것이 얼씬하는 감을 느꼈다. 저놈일가? 신경이 너무 곤두서서인지 그 맞은켠 잡화상점옆의 유난스레 우람찬 벽돌굴뚝뒤에서도 무슨 기척이 나는것 같았다.

장철석은 퉤! 하고 침을 한번 내뱉았다.

이미 과업을 주었던대로 《이깔나무》와 《소나무》한테서 밀정놈들에게 오늘밤 엄선된 지하조직성원들로서 페갱으로부터 극비밀리에 화약과 도화선상자들을 옮기게 된다는 중요정보를 솜씨있게 먹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었다. 목이 타게 바라던 거사가 비로소 거행되니 놈들이 결코 눈감고있을수 없을것이다. 조직성원들의 움직임도 그렇지만 장철석에게 특히 쌍심지를 켰을것이다. 철석은 우선 그 정황을 알아보고싶었다. 밀정놈들의 눈길을 자기한테로 모아 조직성원들의 움직임을 안전하게 해주는 한편 시작전부터 놈들을 한바탕 휘저어놓아 기를 꺾고 맥을 뽑아놓고싶었다.

온 정신을 모으며 살폈으나 뒤쪽에서는 더이상 다른 기척이 없었다.

그사이 빈지가 열리고 고기파는집 주인이 돼지뒤다리 하나를 통채로 저울에 달아 사나이에게 넘겨주었다. 사나이는 아무 소리없이 값을 치르고나서 인차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주위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싶게 조용해졌다.

장철석은 생각을 굴렸다. 혹시 그 중년의 사나이가 나를 미행하던 놈은 아니였을가? 미행을 다른 놈에게 넘겨주고 사라진것은 아닐가?

철석은 쓰겁게 웃었다. 그리고는 또 휘적휘적 걸었다. 한동안 주위를 살펴보며 느적느적 걷다가는 돌연히 무엇에 쫓기우기라도 하듯이 씽 바람을 일구며 냅다 달려 골목길로 뛰여들기도 했다.

여전히 다른 기미는 없었다. 틀림없이 뒤따르는 놈이 있겠는데 보통 세련된 놈이 아닌것 같았다.

야외등불빛이 환한 경찰서와 수비대병영이 가까와졌다. 불빛만 환했지 모두 쥐죽은듯 조용했다. 보초막앞에 말뚝처럼 서있는 보초놈도 그렇지만 망할 날이 멀지 않은 병실마다의 병졸놈들이 지금 무슨 망상들을 하고있을가 하는 생각에 가소로움이 치밀었다.

장철석은 얼마간 더 동태를 살피며 먼발치에서 담배불을 붙여물고 왔다갔다하다가 돌아섰다.

그는 곧바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태연하게 집안에 들어가니 주인내외가 방금 잠자리를 펴는 중이였다. 안주인이 장마당을 다녀와서 중국동북지방에서 내왔다는 묵은 좁쌀값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여서 장철석도 한동안 장마당시세를 알아보다가 인차 잠자리를 폈다.

밤하늘에서는 여전히 우뢰소리가 울렸다.

장철석은 또 바깥동정에 귀를 강구었다.

틀림없이 어느 놈이든 집가까이에 와있을텐데 어디 있을가? 선바위밑일가 집뒤의 산딸기나무숲일가?

수고들 하시겠군! 하는 조소와 함께 소나기라도 콱 쏟아지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입귀가 벙글써해졌다.

아래방에서는 벌써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시간쯤 지나서 장철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 나서니 강아지가 콩콩거리며 발목에 감겼다.

장철석은 여느때처럼 얼른 품에 안아 잔등을 쓸어주고나서 벼짚둥우리에 밀어넣었다. 깊은 밤 주인들 모르게 집을 나설 때마다 해주군 하는 애무여서 강아지도 더는 보채지 않고 얌전해졌다.

싸리대문앞에 나서서 우정 얼마간 옴짝않고 서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꺼림없이 집뒤쪽의 오솔길로 급히 올라갔다.

페갱앞의 약속된 장소에는 예닐곱명의 광부들이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있었다. 엄밀히 선발된 조직원들―적들에게 로출된 성원들이였다.

목숨을 내걸어야 할 거사였건만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보다도 빙글빙글 웃음이 비꼈다.

장철석은 엄하게 눈신호를 보냈다. 놈들이 총질을 하거나 붙잡는 폭행같은것은 물론 안할것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기미를 채게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철두철미 실전처럼 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당부를 했댔기때문이였다.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때마침 번개가 일면서 날카롭게 일어선 칼벼랑과 아름드리나무들을 비쳤다. 어느 바위짬, 어느 나무뒤에 놈들의 눈이 박혔을가?

큰숨을 내쉰 장철석은 인차 성원모두를 페갱으로 인도했다. 굴앞에서 한사람한사람 재확인을 하듯 꼼꼼히 살피면서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자신은 맨 마감에 들어갔다.

성원들은 날쌔게 화약과 도화선상자를 하나씩 어깨에 걸머멨다.

《조심해야겠소.》

장철석은 열백의 뜻을 담아 한마디 했다.

가슴이 쿵쿵 뛰였다.

새삼스레 작지 않은 화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봉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혜영의 얼굴도 뒤따랐다.

혜영이, 우리가 얼마나 장한 일을 하고있소!

이밤으로 곧장 그가 있는 곳까지 갔으면 하는 생각이 못견디게 그리움을 낳았다.

《출발! 내뒤를 바싹 따르오.》

장철석은 제사 앞장에 섰다.

부러 울창한 나무숲속을 골라 헤치였다.

이미 며칠전부터 눈에 익혀두었던 길이여서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어둠속이건만 별로 힘들지 않게 걸었다.

곧바로 고갱속으로 들어갔다.

갱앞에 두사람으로 보초를 세우는것도 잊지 않았다.

기를 쓰며 뒤따라 왔을 놈들에게 보다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굴안에 들어가서는 준비해가지고 왔던 간데라불을 켰다. 대낮처럼 환했다. 얼굴이며 목이며 잔등은 땀으로 벌창이 되였지만 모두 싱글벙글 웃는 얼굴들이였다.

장철석도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 잘됐다. 다음일은 귀신이나 알테지!

뜻밖의 사건이 터져 앞이 캄캄해졌던 일이 생각났다. 과감히, 신심높이 벌린 오늘의 작전이 꿈같기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싸움은 앞에 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도 할수 있다.

좌상아바이가 고마왔다. 조직성원들과 토론하기를 정말 잘했다. 혼자의 머리로야 어방이나 있는 일인가, 조직성원들과 마음을 합치고 뜻을 합치면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가 나온다고 일깨워주던 봉빈공작원의 말의 참뜻을 더 깊이 깨닫게 되였다.

이런 참인간들, 성실하고 진실하고 지혜로운 성원들로 무어진 우리 조직을 뭐 어째보겠다구?

어리석은 놈들!

배심과 배짱이 더 든든해졌다.

어느 사이 홈채기안에 화약과 도화선상자들을 정히 쌓아놓은 성원들은 그 둘레를 막돌로 차근차근 쌓아 보이지 않게 위장을 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손발들이 어찌나 착착 잘 맞아돌아가는지 놀라왔다.

일을 다 끝내고 밖에 나오니 밤길을 헤쳐온 흔적마저 깨끗이 없애주려는듯 드디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번개와 우뢰가 더 요란스러워지면서 비발이 굵어져 억수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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