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6 장

11

이틀동안 비가 흠뻑 내리고 또 이틀동안 해가 쨍쨍나니 산이란 산, 들이란 들은 모두 소리를 치며 일어서는것 같았다. 아니, 이 땅의 이름할수 없는 거창한 힘이 드디여 태동을 하며 움씰움씰 용을 쓰는가싶었다.

어느 골안에선가는 철늦은 뻐꾸기울음소리가 터지고 또 어느 산기슭에서는 알품던 까투리와 장끼의 울음소리가 먼 숲에까지 메아리친다.

립하를 지난지가 어제같은데 벌써 소만도 썩 넘어섰으니 잎도 꽃도 필대로 펴서 세월은 피페해도 자연은 한껏 살질대로 살쪄오르고있었다.

장철석은 또한번 임일광을 붙안고 풀판에 딩굴었다.

무성한 소나무와 참나무, 이깔나무숲속의 부근부근한 풀판이였다.

흰눈 덮였던 산판과는 달리 사방천지가 푸른 성곽안처럼 숲으로 무성한 계절이니 소리를 친들 어떻고 춤을 춘들 어떠랴.

참말이지 숨기도 좋은 계절, 감추기도 좋은 계절이였다.

한바탕 그렇게 딩굴고난 장철석은 이윽고 두손을 뒤로 뻗쳐짚고 일어나앉으며 물었다.

《그러니 끝내 도이췰란드가 항복을 했단 말이겠소?》

임일광도 천천히 일어나앉으며 말했다.

《봉빈동지의 말은 그 무전을 받은 날 근거지에서는 기쁨에 들떠있었다고 하오.》

《그래야지.》

《침략자들은 반드시 멸망한다는걸 다시금 깨닫게 되누만.》

둘은 서로 와락 그러안고 한바탕 웃어댔다.

그렇게 한참 웃고나서 임일광이 좀 정색해서 말했다.

《봉빈동지는 사령부에서 련합훈련을 더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꼭 알려주라고 했소. 곽영무동지가 락하산훈련에 참
가했다가 발을 좀 삐였댔는데 이젠 일없다는 소식도 왔다고 했소.》

《락하산훈련?》

《조국진군이 개시되면 우선 락하산부대를 우리 랑림산일대를 비롯해서 국내 곳곳에 먼저 진입시킨다는거요.》

《야, 이거!》

장철석은 두손을 힘있게 흔들고나서 임일광의 옆에 바싹 더 가까이 붙어앉았다.

《그리구 또 무슨 소식이 있소?》

임일광은 돌연 무척 신중해지면서 주위를 한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저 역시 장철석의 옆에 바투 붙어앉으며 귀속말로 번지였다.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비밀근거지는 물론 광산조직을 모두 합동하여 시급히 본격적으로 제2단계작전에 착수해야겠다는거요.》

장철석은 큰 숨을 들이쉬였다. 재확인이라도 하듯 임일광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예견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너무도 충격이 커
서였다. 하긴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임일광은 점점 더 흥분하는 장철석을 진정시키듯 그의 손을 힘있게 쥐며 나직나직 말을 이었다.

《공작원동지는 광산지하조직이 그사이 제2단계작전준비를 실수 없이 착실하게 잘해나간데 대해 무척 만족해했소. 이제는 총력량을 집중해서 무장폭동준비를 완성해야겠다고 하오. 적들의 동태를 더 경각성있게 낱낱이 장악하는 한편 지하조직성원들도 빨리 무기다루는 법을 배우게 하라고 했소.

놈들의 무기를 빼앗을수 있으면 빼앗되 아직 때가 때인것만큼 절대로 무리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오.》

장철석은 종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주먹을 탁탁 마주치면서 풀밭을 왔다갔다 했다.

임일광은 앉은채로 흥분과 격정을 걷잡지 못하는 장철석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긴 장철석이 어이 흥분하지 않으랴.

드디여 온 광산을 들썩케 할 무장폭동!

제2단계작전!!

그 작전준비를 위해 얼마나 가슴조이는 위험의 언덕을 넘어왔던가. 화약탈취전만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장철석은 임일광의 앞에 돌아와 뚝 버티고서며 물었다.

《그리구 또 뭐요?》

임일광도 천천히 일어나 마주서며 말했다.

《지하조직성원들을 발동해서 광부들과 시가지주민들속에 조국해방과 관련한 정치선전을 대대적으로 하라는거요. 놈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이를테면 사전에 놈들의 넋을 쑥 뽑아놓으라는거지. 그리구…》

임일광은 또한번 주위를 살펴보고나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장철석의 귀에 제 입을 바싹 붙였다.

장철석이 흠칫 놀라기라도 하듯 한걸음 물러섰다.

이어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표정만은 더 짙어졌다.

임일광이 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물론 모험도 아주 위험한 모험이라는데 대해서는 공작원동지도 말했소. 하지만 마지막격전, 무장폭동의 결정적승리를 위해서는 어차피 그런 모험도 해야 한다고 했소. 계속 붙잡고 돌아가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젠 우리가 먼저 대담하게 배지개를 뜰 때가 되였다는거요. 실로 내 가슴이 다 서늘해지오.》

《알겠소. 공작원동지가 몇달전부터 직접 계획한 작전인데 어련하겠소. 우리 공작원동지의 지시대로 철저히 합시다.》

이번엔 임일광이 큰숨을 내쉬였다. 무엇인가 놓친게 없는가 새겨보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믿음에 찬 목소리로 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겠는가는 철석동무의 결심에 맡긴다고 했소. 여기 실정과 정황에 맞게, 운명적인 작전인것만큼 〈이깔나무〉와 〈소나무〉를 적극 인입하라는거요.… 한영옥의 탈출작전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진행한 철석동무의 활동경험과 성과로 보아 꼭 성공하리라 믿는다고 했소. 하긴 이번 화약구입작전만도 얼마나 통쾌하게 결속했소. 십년체기가 쑥 내려가는것 같더라니… 놈들은 이제 아주 미쳐버릴거요. 내장이 뒤집힐지도 모르지. 사실 우리로서도 상상밖의 작전이 아니요.》

《그렇소. 나부터도 아직 좀 얼떨떨하오. 십년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는것 같은게…》

《하, 이거 또 철석동무답지 않게 나오는구만.… 북주하양주공장에서 찾은 교훈을 일생 새기겠다고 한 말을 잊은거야 아니겠지요?》

롱이면서도 정신 버쩍 차리게 하는 충고였다.

장철석도 후더움을 삼키며 헌헌하게 물었다.

《그렇게 보이오? 내가 또 소심해진다?》

임일광이 부러 쾌활하게 소리를 내여 웃었다.

《하하하… 됐소, 됐소.… 아 이젠 씨원하게 결산을 할 때가 되여오지 않소.》

장철석의 두눈굽에 물기가 핑 어렸다. 그는 진정으로 뜨거움을 담아 말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실은 우리의 작전이 너무도 빨리 시작되는것 같아서 그러오. 알겠소.… 결사전을 벌려봅시다. 2단계작전! 장군님의 유격대원들처럼 한다면 두려울게 있소?》

《옳소, 바로 그거요, 그거!》

이번엔 임일광이 장철석을 중심으로 풀판을 한바퀴 빙 돌았다.

그리고나서 다시 장철석의 앞에 멈춰서며 말머리를 돌리듯이 침착하게 말했다.

《〈동해호텔〉에 선을 하나 쥐였는데 며칠전에 또 다다시란 놈이 나타나 수상한자들을 불러들이는걸 봤다고 하오. 그게 누구라는건 뻔하지 않소. 오랜 시간 밀실에 들어박혀있었는데 다다시도 그렇고 그 방에서 나오는 놈들의 낯색이 아주 좋지 않더라는거요. 어깨들이 처지고 낯짝들이 침침했는데 그러면서도 두눈들에는 살기들이 뻗쳤더라고 하오. 또 무슨 끔찍한 꿍꿍이를 꾸미지 않는가 하는 예감이요. 놈들도 일본의 운명, 제놈들의 운명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건 아닐테니 말이요.》

장철석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받았다.

《공작원동지의 말처럼 놈들이 멸망을 눈치챘다면 절대로 그저 물러나지 않을건 뻔하오. 별의별 미친짓들을 다할수 있소.》

《옳소. 우리의 어깨가 무척 더 무거워졌소.》

그들은 급변한 정세에 대처하여 조직의 활동과 매 성원들과의 사업, 긴급련락방법 등 실제적인 문제들을 놓고 더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한시간나마 시간이 더 지나서야 임일광이 옆에 벗어놓았던 경찰모자를 손으로 툭툭 쳐서 머리에 쓰며 말했다.

《에― 이놈의 제복과 모자를 빨리 벗어던져야겠는데…》

장철석이 펄쩍 뛰듯이 말했다.

《무슨 소릴 하오. 임동무가 지금 얼마나 큰일을 한다구.》

그들은 철부지들처럼 얼마쯤 손을 맞잡고 걷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여졌다.

새들이 푸드닥거리고 토끼와 다람쥐가 놀라서 숨어드는 산판을 한시간나마 걸어내려오니 저 앞으로 크고작은 나무토막들과 돌덩이들을 되는대로 뿌려놓은것 같은 시가지가 나타났다.

장철석은 넙적한 너럭돌우에 올라서며 량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날 이때껏 짓밟히고 억눌리기만 했던 거리, 땅속으로 잦아들기만 했던것 같은 집집들에서 금시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것 같았다.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랑독하며 땅을 쳤다는 저기 저 장터, 3. 1인민봉기의 만세소리와 더불어 40명이나 총에 맞고 100명나마 붙잡혀갔댔다는 거리였다.

문득 지난해 가을에 보았던 부산항이 눈앞에 떠올랐다.

산더미처럼 쌓였던 각양각종의 물산들, 소영각소리, 미처 배에 태우지 못해 욱실거리던 징병, 징용징집자들과 눈물을 뿌리며 현해탄을 건너가야 했던 실향민들…

아, 이제 그네들이 제 고향마을, 제 부모처자들을 찾아 돌아올 날이 다가오고있단 말인가!

정녕 나 역시 혜영의 손을 잡고 구창마을로 갈 날이 멀지 않았단 말이지!!

동지들! 여러분네들! 나라가 곧 해방된다오!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진군을 하신다오!…

장철석은 성큼 바위를 내려섰다. 그리고 활활 풀숲을 헤쳤다.

한참만에 오솔길을 찾아 들어서니 마침 순철의 집과 잇닿은 길이였다.

순철이네 집 나무울타리를 돌아서 내려가던 장철석은 무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집마당에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섰던것이다.

한여름의 해빛은 살을 지질듯이 따가왔지만 철석은 순간에 얼음장과도 같은 찬기운을 느끼였다.

장철석은 무작정 사람들을 헤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그는 너무도 아연하여 눈을 비볐다.

문짝이 나떨어진 방안에 순철의 안해가 쓰러져있었던것이였다. 목에는 굵은 새끼올가미가 씌워져있었다. 누가 낫으로 끊었
는지 집천정의 보짱에 또 한줄기의 새끼줄끄트머리가 늘어져있었다.

치마가 찢어지고 저고리고름이 떨어져 가슴이 드러났다. 찢어진 치마사이로 드러난 종아리와 얼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안해의 옆에는 실신을 한것 같은 순철이가 어푸러져있었다. 입술이 다 터지고 어떻게 해서인지 손등이 온통 피칠갑이다.

장철석을 알아보자 순철은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입만 항 벌린채 피칠갑의 두손으로 방바닥만 짱짱 두드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응?》

장철석이 벼락같이 뛰여들며 순철이를 안아일으켰다. 순철이는 그저 두손만 허우적이면서 무엇이라 중얼거렸는데 도대체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장철석은 밖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사람들속에서 튀여나오는 말소리들을 가려들었다.

《두놈의 경찰놈들이 저 뒤산에서 내려왔대요.》

《누가 봤대요?》

《저 아래집할머니가 마침 뒤간에 나갔다가 똑똑히 봤다우다.》

《어느 썩어질 순사놈이래요?》

《헌병대파견대장놈이 끌고왔다는 그놈들이래요.》

《간나놈의 새끼들, 수개같은 놈의 새끼들… 죽이긴 왜 죽여!》

《그놈들이야 제 볼장을 보고는 달아뺐지요.》

《원 녀인이 독하기두!》

《하긴 쪽발이 수개놈들한테 몸을 바렸으니… 글쎄 제 손으로 목을 매자니 오죽했겠소.》

장철석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주먹이 떨렸다.

(가만!)

누구인가 맵짜게 소리치는것 같았다.

(덤비지 말자.)

신경이 창날처럼 날카로와졌다.

이것이 단지 짐승같은 놈들의 수욕을 채우려는 야만적인 행동뿐이겠는가?

방금전 임일광이 들려주던 말들이 생생히 되새겨졌다.

그래, 놈들도 결코 머저리는 아니다.

우리의 작전을 눈치챈건 아닐가? 선손? 우리의 눈길을 다른데로 돌려놓으려는 모략?!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놈들이 노리는것은 무엇인가?

우선 놈들의 동태부터 직접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일광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것이다. 설사 도착했다고 해도 아직은 알수가 없을것이다.

장철석은 즉시 몇명의 주민들과 함께 경찰서로 달려갔다.

헌병대파견대장이하 그놈이 끌고왔던 놈들은 이미 다 철수한 후였다.

쏘도전쟁의 종말과 함께 각 지구 경찰서들에서 동원되여왔던 경찰놈들은 각기 자기 관할지역으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철수를 앞두고 어느 녀석들인지 그런 불량행위를 저지른 모양이라고 경찰서장놈은 제법 유감을 표하기까지 하였다.

이자의 말을 정말로 믿어야 할가?

경찰서를 나서는 장철석은 차츰 저도 걷잡을수없이 호흡이 가빠났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하겠는가는 여기 실정과 정황에 맞게 자체로 결심해서 실행하라고 했다는 봉빈공작원의 말이 가슴을 쿵쿵 뛰게 했던것이다.

여기 실정과 여기 정황!

장철석은 다시금 경찰서장의 지껄임을 그대로 믿어야 할가 하는 생각에 광산사무실쪽으로 가야 하는 갈림길을 썩 지나 선녀갱방향으로 걷고있다는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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