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1 장

5

돌벼랑밑에 여라문명은 넉근히 들어가앉을만큼 너름하고 길지 않은 굴이 있었다.

그들은 환성을 올렸다. 군침이 돌도록 노랗게 구운 강냉이이삭들이 굴벽 한 곳에 주런이 놓여있었던것이다. 무명천으로 정히 지은 자그마한 주머니도 있었다. 풀어헤치니 한사발가량의 소금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겨끔내기로 구운 강냉이이삭을 뜯기 시작했다. 욕심스레 소금도 집어먹었다. 며칠만에 맛보는 소금이여서 소금알갱이들이 사탕처럼 달았다.

한이삭한이삭 다 뜯어먹은 송치들은 그것대로 한옆에 나란히 줄맞춰놓았다. 그 강냉이를 구워놓은 주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어찌 구운 강냉이뿐이랴. 지금까지 오면서 이런 주인모를 도움을 한두번만 받았던가. 어떤 곳에서는 깨끗이 손질해놓은 콩청대자리를 만나기도 했고 또 어떤 골짜기에서는 두세가마니는 실히 될 밤송이들을 구워놓은걸 발견하기도 했었다. 징병, 징용기피자들이 한 소행이였다. 물론 저들이 먹기 위한것들이였다. 허나 그들은 저들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이 도움을 받은 그만큼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마음을 쓰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것이다.

하기사 1940년부터 1943년사이에 징병,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도망친 청년들, 그에 응하지 않고 기피한 청년들의 수가 수십만명, 철석이네가 도망을 치던 바로 그 10월의 열흘어간에만도 놈들이 극력 줄여서 발표한 자료로 만여명이나 되였으니 이 나라 산중에 숨어든 청년들이 과연 얼마였으랴!

마음이 훈훈했다.

결코 구운 강냉이와 소금을 먹어서만이 아니였다.

저들도 무엇인가 장한 일을 한것같은 긍지와 자부에서였다. 그래 조선사람이, 이 나라 청년들이 다 죽은줄 알았더냐!

마냥 제집의 뜨뜻한 온돌방에라도 들어와 앉은것처럼 기분이 흥해진 철석은 네활개를 쭉 펴며 돌바닥우에 드러누웠다.

그는 곧 만사태평처럼 잠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다릉다릉 코까지 골았다.

얼마쯤 그렇게 달게 잤을가?

철석은 갑자기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앉았다.

《혜영이가 누구슈?》

순철이 미안스럽게 물었다.

철석은 어줍게 웃었다.

《내가 잠꼬대를 했소?》

순철은 한발 더 들이짚었다.

《색시요?》

철석은 부러 기지개를 한껏 켜고나서 말했다.

《아직 색시는 아니요. 그저 날 무척 생각하는 처녀지.… 집에는 랭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님이 계시구 열두살나는 남동생이 있소.》

《예―》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순철은 마침 생각난듯 바위벽에 세워놓았던 긴 참대통같은것을 조심스레 들어다 권했다.

《물이예요. 밖을 좀 살펴보러 나갔댔는데 이 바위뒤에서 샘줄기가 졸졸 흘러내리지 않겠나요. 꿀처럼 달아요. 어서 마셔봐요.》

굵은 벌싱아줄기를 칼로 잘라 만든 물통인데 둬사발의 물은 실히 들어간듯싶었다.

목이 컬컬하던 참이라 철석은 정신없이 마셨다. 정말 꿀처럼 달았다.

시원하게 물까지 마시고나니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는 또 한번 기지개를 켜고나서 다시 돌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염없이 나무가지들사이로 어룽거리는 가을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참 그러고있다가 순철이쪽으로 돌아누우며 물었다.

《참, 순철인 고향이 어디요?》

순철은 시무룩이 웃었다. 이어 괴롭게 입술을 씹고나서 말했다.

《난 아까 형님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내내 울었시다. 꼭 내 얘길 하는것 같아서 말이예요.》

그는 또 괴롭게 한숨을 쉬고나서 이었다.

《나도 고향이 어딘지는 모르우.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얼굴도 모르구요. 우리 어머닌 날 낳자마자 남의 집 대문밖에 버렸대요. 그 집에서 날 키웠는데 또 이집 손에 넘어가고 저집 손에 넘어가다보니 어느 집에서 진짜 날 정들여 키웠는지도 모르우. 나중에 자란 집이 어느 잘사는 집이였는데 뭐 그집 양아들이라는겁니다. 글쎄 먹구 입는것 걱정은 없었는데 날마다 일본사람들과 묻어다니면서 일본공부하고 왜놈말 배우라고 하는게 딱 싫더군요. 하긴 그 덕에 일본글과 일본말을 좀 배우긴 했지만… 하여튼 그게 왜 그렇게 싫던지, 난 그만 그집에서 뛰쳐나오고말았지요. 못해본 일이 없수다. 바다가에 나가 조개도 캐봤구 구들놓는 사람들도 따라다녀 봤구요. 산판에 들어가 나무도 찍구 사냥몰이군도 돼봤어요. 그러다 나같이 불쌍한 한 처녀를 만나 내손으로 머리를 얹어줬지요.…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농사가 제일입디다. 그래 그 사람하구, 색시말이우다. 이제부턴 어디 가서 정착을 하구 둘이서 농사나 짓자구 했지만 어디 땅이 있소. 다행스럽게두 우리 그 사람네 외숙 한분이 린산이란데서 산다기에 찾아갔지요. 올여름에 말이우다. 외숙분의 노력으로 거처할 집두 얻구 땅뙈기두 생겨서 이젠 좀 사람답게 사는가부다 했는데… 허참, 이런 변을 당하지 않았겠어요. 에― 그, 불쌍한게 나 없으면 죽겠다고 울고불고 하며 따라왔댔는데… 그 꽁한게 정말 목이라도 매지 않았는지 모르겠수다.》

순철은 흐흑 흐느끼였다.

철석은 흥이 다 깨져버렸다. 흥그럽던 가슴이 매운재를 들쓴것처럼 쓰리고 저렸다.

한동안 덤덤히들 있었다.

얼마간 그러고있다가 철석이가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요? 다신 그 마을에 돌아갈수도 없잖소?》

순철은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철석이 조용히 일어나앉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난 말이요. 이길로 북간도로 가자는거요.》

순철이는 뚫어져라고 그를 쳐다보았다.

철석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순철이, 나랑 같이 두만강을 건너가자구. 집사람도 데리고 말이요.》

순철은 얼굴이 해쓱해서 마주보기만 했다.

철석은 그의 두손을 더 힘있게 모아쥐며 말했다.

《이것 보라구, 순철이. 일본놈들은 꼭 망해. 사람들 하는 말 못 들었소? 어린애들 꼭지숟가락까지 뺏아가는걸 보면 왜놈세상은 다 된 세상이라고 하는 말 말이요. 그건 그렇구… 이미 이딸리아가 손을 들었구 도이췰란드도 쏘련군대한테 얻어맞구 쫓겨가기 시작했다지 않소. 쓰딸린그라드란데서 되게 얻어맞구 말이요. 일본이라구 무사하겠소?》

철석은 얼른 동굴밖을 살피고나서 계속했다.

《지금 두만강건너에선 말이요, 김일성장군님 항일유격대가 왜놈들의 마지막숨통을 조일 준비를 단단히 하고있다고 하오. 이제 왁 밀고나올 날이 멀지 않다는거지. 이런 때 피가 한동이씩 끓는 우리 젊은것들이 가만 있어 되겠어? 항차 이제는 산속에서 숨어지내야 하는 우린데… 무슨 일이든 마지막대목이 더 힘들다는데 10년나마 산에서 싸우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어려움이 한두가지겠어? 유격대들도 그렇구… 같은 값이면 우리도 거기 찾아가서 하다못해 쌀배낭 하나라도 져다주는게 옳지 않아? 어때?》

순철이는 얼굴이 희다못해 파래져서 경풍을 만난 사람처럼 떨었다.

철석은 의아해서 물었다.

《순철이, 왜그래?》

순철은 한걸음 물러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 난 그런 일은 못해요. 난 그저 농사나… 그런 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요.》

《따로 있다는건 무슨 말이야? 내가 말하지 않았어, 양주공장얘기. 나와 함께 일하던 영무, 봉빈이, 관길이, … 뭐 특별한 사람들인줄 알아? 다 우리처럼 못살구 천대받던 사람들이란 말이야.》

《글쎄, 난 못해요. 총쏘구, 사람죽이구… 에이!》

순철이는 몸서리를 쳤다.

철석은 성을 왈칵 냈다.

《젠장, 그 염통가지구 왜놈보초는 어떻게 죽였어?》

순철은 금시 벼락이라도 맞은것처럼 질겁을 했다.

《그 말 하지 말아요. 제발!》

철석은 그만 그앞에서 물러앉았다.

새삼스럽게 고개를 떨구고있는 순철이를 찬찬히 여겨보았다.

하긴 그렇지. 사람이 사생결단을 할 순간이면 못하는 일이 없지. 도망치던 쥐도 막다른 골목에 들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는가.

《에잇!》

손을 홱 내저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 그만 가자구.》

철석은 제 먼저 굴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말한마디 없이 걷기만 했다.

순철이 저 사람이 진짜 발끝까지 무장한 왜놈보초를 칼로 찔러눕히고 향방조차 알수 없는 생소한 부산시가지에서 나를 이끌며 사지판을 헤쳐나오던 그 사람이 옳은가싶었다.

한 십리쯤 그렇게 내처 걷고있을 때에야 철석은 끓던 가슴이 좀 가라앉았다. 걸음발을 늦추고 뒤도 가끔씩 돌아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오던 순철이는 더더욱 죄스러워 고개를 못들었다.

철석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 없으면 죽고 말겠다고 울면서 따라왔다던 안해를 눈앞에 둔 순철이고보면 그 심정도 리해해야 할게 아닌가.

철석은 저으기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제 마을에 돌아가면 어떻게 하려오?》

순철은 한동안 갑자르다가 대답했다.

《그사람 만나면 빨리 짐을 꾸리라 하구… 어느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이나 해먹을 작정이예요.》

철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우. 절대로 붙잡히지 말구.… 이제 잡히면 주리를 틀자고 할게요.》

또 한동안 침묵속에 걸었다.

아득히 보이던 등성이우에 올라서니 또 끝없이 이어진 첩첩 메부리였다.

시원한 바람에 목덜미의 땀을 식히고났을 때 이번엔 순철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두만강을 건늘래요?》

철석은 순철은 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생각엔가 골똘하던 순철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턱대고 강을 건너간다구 그 어른들을 찾겠어요?》

철석은 저도모르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봉빈이네 오누인 어린 나이에두 유격대를 찾았다지 않소.》

순철이는 더이상 말을 않고 어디서 뜯었는지 모를 분지나무잎의 동글동글한 이파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던졌다. 잎사귀를 다 뜯어던지고 앙상하게 남은 잎줄기를 살살 돌리고있던 순철이는 무슨 결심이 생겼는지 철석의 곁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저… 형님, 형님 결심이 정 그렇다면 두만강쪽으로가 아니라 상풍광산을 찾아가보우.》

《상풍광산?》

《예. 실은 내가 올여름 린산으로 가던 길에 기차에서 사귄 사람이 한사람 있는데요, 상풍광산에서 일하는 사람이래요. 인정많고 세상물정에 환한 사람인데 날더러 저의 광산에 가서 함께 일하자는게 아니겠소. 그 사람두 형님처럼 왜놈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함께 손잡고 싸우자고 합디다.》

철석은 눈이 번쩍 띄였다.

《그래서?》

순철은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목소리가 낮아지는 대신 얼굴빛이 긴장해지면서 눈에서 강렬한것이 번쩍이였다.

《형님.》

그는 또 한번 주위를 살피고나서 말했다.

《솔직히 내 지금껏 형님한테 말을 안했는데…

이제야 뭘 숨길게 있겠어요. 그 사람 말이 그 광산은 일본놈들의 군수생산에 필요한 광석을 캐는데기때문에 징병, 징용도 뽑지 않는다고 합디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난 알아차렸어요. 그 광산에서 반일조직을 크게 뭇고 싸우기 위해 그런다는걸 말이예요. 그 사람 거기서 뭔가 큰 일을 하는게 분명해요. 항일유격대이야기랑 이제 그 유격대가 조선땅으로 왁 밀고나올것이란 말이랑 했는데… 분명 강건너와 련계가 있는것 같았어요.… 틀림없다니까요.》

장철석은 뚫어져라고 순철을 마주보다가 물었다.

《그 사람이 정말 강건너와 련계가 있단 말이요?》

순철은 제사 더 흥분하여 대답했다.

《글쎄 틀림없다는데두요.》

순철은 어떻게 그 말을 믿게 할가 생각하는듯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손으로 제 무릎을 치며 말했다.

《옳아요. 기차가 어느 역에 거의 이르렀을 때… 밤중에 떼를 타고 강을 건너가군 했다는 말을 얼핏 했는데… 급히 차안을 살피면서 몹시 긴장해하더라니까요. 왜 그렇게 급해했겠나요.》

장철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저도모르게 급히 물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요?》

이번엔 순철이가 철석의 두눈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솔직하게 말해줘도 일없을가 하는 눈치였다.

장철석이 나무람을 썼다.

《자 이런, 그렇게 못미더울것 같으면 그 사람 말을 꺼내긴 왜 꺼냈소.》

순철은 얼마간 더 바재이고서야 조심스레 알려주었다.

《박상이, 박상이란 사람을 찾으라고 했어요.》

철석은 이깔나무사이를 왔다갔다했다.

순철이는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깨끗이 다 털어놓는다는듯 확신있게 말했다.

《그 사람 말이 뭐 나같이 죽을 고생을 다한 사람들이 반일전에 나서야 한다나요. 특히 로동계급속에 들어가야 한다고요. 멀지 않아 일본이 망하고 나라가 해방될텐데 그땐 나같이 천대받고 못살던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야 한다면서… 말하는 품이 벌써 다르지 않아요.》

철석은 제앞의 이깔나무밑둥을 탕 쳤다.

옳다, 순철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 큰 인물이다. 상풍광산이라면 압록강대안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얼마든지 강건너와 련계가 있을수 있다. 순철이 거짓말을 할수 없다. 하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수 있겠는가. 이런걸 두고 하늘이 돕는다고 하는걸가? 좋아, 우선 상풍광산부터 찾아가보자. 박상이, 박상이란 말이지.…

철석은 순철의 손을 힘있게 쥐며 말했다.

《고맙소. 내 꼭 거기부터 찾아가보겠소.》

순철은 얼굴이 환해졌다. 하면서도 여전히 미안스레 말했다.

《고맙기까지야 뭘… 실은 여기까지 오면서 내 혼자만 속으로 생각하며 선뜻 말을 못했수다. 열번도 더 가고싶었지만 이젠 절대 다른데 안가겠다던 집사람때문에… 하여튼 나도 정 못견딜 형편이면 그리로 가겠어요. 형님까지 거기 있게 될텐데.… 징병, 징용을 뽑지 않는다니 그것만으로도 맘놓을수 있잖아요.》

철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의논해보우.… 어서 가자구.》

그는 제먼저 성큼성큼 등성이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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