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7 장

4

까만 치마우에 풀색 군복을 입은 심혜영은 어깨에 멘 보총의 부혁을 한손으로 움켜쥔채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고있었다.

오늘 그는 망원초의 보초를 서는 날이였다.

귀틀집들이 있는 삼송밀영에서 오리쯤 나와있는 이 망원초는 신통히도 바다우에 솟아난 섬바위처럼 천리수해에 우뚝 일어선 산봉우리의 절벽벼랑바위우에 자리잡았다.

주변에는 물푸레나무와 시닥나무, 두릅나무, 층층나무들이 우거졌고 바위츠렁에는 진달래며 애솔포기, 오미자덩굴이 뒤덮였다.

그 절벽바위밑에 네댓명 들어가 잠도 잘수 있는 자그마한 귀틀집을 지었는데 지금 거기서는 대기성원들이 휴식을 하고있었다.

보초의 위치는 푸른 잎이 무성한 물푸레나무밑이였다. 거기서는 주위 사방 10리어방은 어디나 눈여겨 살필수 있었다.

어디선가 목덜미가 빨갛고 앞가슴은 희고 잔등은 검푸른색의 부리가 긴 중병아리만한 새 한마리가 날아와 물푸레나무가지에 앉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혜영이를 내려다보았다.

《히야, 곱네!》

혜영은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았다.

아름다운 새는 저를 곱다는데 신바람이 났는지 빨간 주둥이를 벌리면서 쭁쭁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혜영이는 인차 정신을 가다듬었다. 보초는 순간도 헛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매번 강조하군 하던 지휘관들의 말이 생각나서였다.

혜영은 발을 구르며 으름장을 놓았다.

《휘― 날아가, 방해 돼!》

총을 벗어들고 쏘는 흉내도 냈다.

아름다운 새는 아무리 그래도 혜영이가 자기한테 피해를 줄 처녀가 아니라는걸 알기나 한듯 까닥도 않고 그냥 쭁쭁 울어대다
가 이윽해서야 푸른 하늘로 까마득히 날아오르더니 멀리 수림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미안해, 잘 가!》

혜영은 새가 사라진쪽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문득 어머니생각이 났다.

혹시 저 새가 어머니소식을 안고 날아왔던건 아닐가 하는 철부지시절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음 왜 난데없이 내 머리우에 날아와 쭁쭁 하고 이상스럽게 울었을가!

어머니의 병이 더해지지는 않았을가, 어린 동생이 얼마나 고생할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찌르르 하면서 눈굽이 화끈했다.

구창광산동지들이 잘 돌봐준다고 한 철석의 말을 믿고 지금까지는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그리움을 이겨온 그였다.

어쩌나,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갚을가!

혼자 조용히 보초를 서느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게 된다.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이어 철석에게로 생각이 갔다.

그를 만났던것이 눈이 강산을 덮었던 한겨울이였으니 벌써 몇달이 잘 지났다.

《거기서 잘못되면 난 정말 죽고말겠어요.》하면서 떨어지기 서운해했던 일이 생각나며 얼굴이 붉어졌다.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만을 했을가.

《내가 혜영일 지켜줘야지.》하던 말이 가슴을 쿵 울린다.

혜영은 그 말뜻을 그와 헤여진 후 봉빈공작원을 통해서야 뜨겁게 알게 되였다.

《어쩜 사람이, 정말 뚝바우야!》

그날 너무도 미안하고 야속해서 그만 저도모르게 봉빈공작원앞에서 터뜨렸던 말이였다.

《철석오빠!》

옛정그대로 입속으로 가만히 불렀다.

이름할수 없이 속이 쩌릿하면서 코안이 매워났다.

지금 어떻게 지낼가?

조국해방의 날이 각일각 다가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누구보다 더 가슴을 조이게 되는 혜영이였다.

철석이때문이였다.

놈들앞에 다 드러내놓은 몸이고보면 미치광이같은 놈들이 해방을 앞두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어이 알랴 하는 걱정에서였다.

총독부에까지 이름이 올라있었다는 광산지하조직성원들이 하루아침에 여라문명이나 근거지안에 줄레줄레 나타났을 때는 가슴이 막 울렁거렸다. 틀림없이 장철석도 나타나리라는 믿음에 목이 탔지만 끝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광산마을의 지하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실망하여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을번 했었다.

그는 광산조직원들을 통해서야 자기가 매일 만들고있는 작탄의 화약과 도화선, 뢰관구입을 위해 장철석을 비롯한 광산조직성원들이 어떤 위험의 고비고비를 넘겼는가를 알았다. 말만 듣는데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옥죄였다. 자기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작탄이 이제 틀림없이 맞이하게 될 무장폭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구상하신 조국해방최후작전을 위하여 한몸그대로 방풍림이 되여 나서겠다고 그리도 긍지로와하던 철석오빠!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정말 무슨 일이 없어야겠는데.…

그 심정을 눈치챈듯 며칠전에는 봉빈공작원이 직접 그를 불러앉히고 철석동무는 안전하게 지하로 깊숙이 들어가 활동하고있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각별히 신심과 고무를 주었었다.

혜영은 고마우면서도 한편 더 가슴이 조여났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작탄을 만들 때도 문득문득 그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군 했다. 밤이면 그에 대한 꿈을 꾸었다. 총소리 콩볶듯하는 싸움판에서 빨리 작탄을 달라고 안타깝게 손을 내젓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둘이 나란히 손잡고 어머니앞에 나서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꿈이야 얼마나 좋은 꿈이랴만 깨여나서는 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못잤다. 꿈은 생시와 반대라는 말이 생각나군 해서였다.

정말이지 그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가?

오늘 보초근무가 끝나면 봉빈공작원을 꼭 만나리라 생각했다. 그를 만나면 무슨 소식이든 알게 될것 같았다.

참 그가 돌아왔을가?

혜영은 밀영에 들어와서도 퍽 후에야 이 랑림산일대에는 자기네 삼송근거지외에도 그와 같은 비밀근거지가 한두군데만 있지 않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봉빈공작원은 며칠씩 때로는 한달 가까이나 그 밀영들에 나가있군 했다. 여름철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걸음이 더 잦아졌다.

혜영은 그것이 여기 삼송비밀근거지와 상풍광산, 목재소뿐아니라 랑림산일대의 각곳에서 들고일어나게 될 전민항쟁, 무장폭동준비의 마지막단계때문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봉빈공작원이 더 하늘처럼 우러러보이고 먼발치에서나마 그의 모습을 보게 되면 힘이 나고 신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만큼 또 믿음이 가고 모든것을 의탁하고싶었다.

(공작원동지가 혹시 이번 길에 철석동무를 만나고 오지는 않을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에 저도모르게 뜨거운 숨을 호― 내쉬던 혜영이는 순간 무엇인가 긴장되는감을 느끼였다.

바싹 정신을 가다듬으며 서남방향으로 길들이 패여나간 골안을 살피였다.

쇠스레나무며 층층나무, 산오리나무, 참나무들이 무성한 골안에서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사람의 형체를 보았던것이였다.

(잘못 보았을가?… 산짐승?)

뚫어지게 살펴보았지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허우대가 큰 남동무가 교대를 올라왔다.

《왜 그러오?》

남동무도 긴장해서 물었다.

혜영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말을 못하고 그냥 골안만 살폈다. 그러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 봤나봐요.》

눈길만은 골안에서 떼지 못했다.

남동무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했다.

《저게 뭐요?》

방금 혜영이가 살펴보던 곳보다는 좀 아래켠쪽에서 분명 사람이 움직이는것이 보였다.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는 사람처럼 숲속에 사라졌다나타났다 하던 그 사람은 얼마후 다시 골안 웃쪽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깨우에 삐죽이 솟은것은 분명 총이였다.

혜영는 급히 물푸레나무에 매여놓은 노끈을 힘차게 잡아흔들었다. 벼랑아래 귀틀집에 비상정황을 알리는 신호줄이였다.

보초책임자가 먼저 뛰여올라오고 다른 두 대원도 달려올라왔다.

정황보고를 받은 책임자는 곧 허우대가 큰 남동무에게 지시했다.

《동문 여기서 잘 살피오. 절대 자리를 뜨지 마오.》

그는 혜영에게서 보총을 넘겨받으며 벼랑아래로 내리달렸다.

보초소에는 총이 두자루 있었다. 보초를 인계하고 인계받는 사람들이 가지는 총이였다.

혜영이와 다른 두 대원도 급히 책임자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귀틀집안에서 두개씩의 작탄을 허리에 차고 야장간에서 만든 날창과 칼들을 손에 들었다.

망원초가 생긴이래 아직 한번도 외래자의 침습을 받아보지 못했었다. 그들은 금시 어마어마한 싸움이라도 붙을것처럼 긴장했다. 더우기 그들을 그렇게 긴장시키는것은 골안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총을 가졌기때문이였다.

그들은 곧 앞길을 차단하고 포위환을 펼치면서 숲속에 매복하였다.

얼마후 그들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전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쌍알배기사냥총을 메고 잔등에는 불룩한 배낭을 진 중년의 사나이였다.

《섯!》

보초책임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사나이는 기겁을 하며 펄썩 주저앉았다. 얼굴이 재빛이 되여 사방을 헤둥헤둥 살폈다.

보초책임자가 다시 맵짜게 소리쳤다.

《당신 누구요?》

사나이는 말을 못하고 두손만 내흔들었다.

자기는 아무 죄도 없다는 뜻인 모양이였다.

보초책임자가 또 소리쳤다.

《총을 앞으로 내던지오!》

사나이는 얼른 총을 벗어서 앞으로 내던졌다.

보초책임자가 풀숲에서 일어나 사나이한테로 걸어갔다. 혜영이와 다른 대원들도 앞으로 뛰여나갔다.

사나이는 사방에서 나타나는 무장인원들을 보자 엉치걸음으로 뒤걸음쳤다.

《나… 난 약초캐는 사람이요, 산삼을… 지금 산삼철이 아니요.》

사나이는 급히 배낭을 벗어 풀어헤쳐보였다. 배낭안에는 정말 푸른 이끼에 정히 싼, 오방초꽃망울들이 발깃발깃한 산삼이 대여섯뿌리나 들어있었다.

《산판에서 길을 잃었수다. 이 아근은 처음이 돼서… 무슨 산판이 그리도 험한지 원!》

보초책임자가 사냥총의 총신을 꺾고 약통실에서 탄약들을 뽑아내며 물었다.

《약초캐러 다니는 사람이 사냥총은 뭐요?》

사나이는 기다렸던듯이 대답했다.

《여름엔 약초를 캐지만 겨울엔 사냥을 하지요. 본시는 사냥군이 돼놔서…》

허나 그 사나이는 연약한 녀대원이 남다른 눈으로 자기를 더 찬찬히 살피고있는줄은 몰랐다.

그들은 곧 보초소귀틀집으로 향했다.

보초소 벼랑바위우에서는 벌써 허우대 큰 남동무가 밀영의 보초에게 알리는 붉은 신호기발이 물푸레나무우에로 올라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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