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일
장편소설 《고요한 격전》

제 7 장

8

경찰서 무기고는 T형으로 이어진 널마루복도 북쪽 끝에 있었다. 다른 방들의 두배나 두터운 콩크리트벽체에 손바닥만한 뙤창만 한개 냈다. 뙤창에는 팔뚝같이 굵은 강철살창을 댔다. 육중한 철문에는 소발통만한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열쇠는 서장이 직접 가지고있었다.

복도쪽 창문에도 무기고 뙤살창 못지 않게 굵은 쇠살창을 댔다.

창문앞으로는 가시철조망을 석줄이나 둘러얹은 키를 넘는 벽돌담장이 마주섰다.

담장안에 무기고를 가리우느라고 심었는지 모를 두그루의 전나무가 유난했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창문들은 활짝 열어놓았다.

임일광은 담배를 피우는척 하며 무기고앞의 창문에 마주서서 전나무를 내다보고있었다. 두대째 연거퍼 피우는 담배였다.

아무 생각없이 담배를 피우는것 같았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철문에 매달린 자물쇠에 가있었다.

장철석에게서 받은 과업대로 어떻게 하면 유사시 저놈의 철문을 열어제낄가 하는 신통한 방안이 서질 않아서였다.

그 과업뿐이 아니였다. 임일광은 이즈음 몇배 더 정신적긴장상태에 있었다. 비밀근거지에서 유인체포한 밀정으로 해서였다. 장철석은 물론 봉빈공작원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위험을 무릅쓰고 품들여 준비한 그 작전으로 밀정놈을 솜씨있게 유인하여 체포하긴 했지만 그 밀정놈이 박상이로 가장했던 그렇듯 흉측스러운 놈일줄은 전혀 몰랐었다. 정말 교활한 놈들과의 격전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놈들의 모략도 보통 아니라는 생각에 자연히 더 긴장해서 주위를 살피게 되고 놈들의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이 날카로와지군 했다.

긴장중의 긴장은 이놈들 역시 내 정체를 알면서도 모른체 하는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였다. 이놈들이 그렇게도 감쪽같이 제놈들의 화약작전때 나를 끌어들였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면 한밤중에 몸서리가 쳐지군 하였다.

더우기 서장놈의 언행이 자못 이상스러웠다. 보는 눈길부터가 이전같질 않았다. 무엇인가 바싹 옹크리고있는듯한 경계심과 함께 칼날처럼 예리한데가 느껴졌다. 때로는 의아하리만큼 그 어떤 기대와 선망의 빛같은것이 어리여 임일광을 어리둥절하게도 만들었다.

놈의 속심은 과연 무엇인가?

지금도 그 생각에 가슴을 조이고있는데 뒤쪽에서 바람새는 휘파람소리같은 쇠붙이 갉히는 소리가 났다. 서장방의 나들문접철에서 나는 소리였다. 서장방의 사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듯 며칠전부터 나기 시작한 기름기 마른 마찰음이였다.

복도로 나오던 오또기같이 생긴 서장이 문도 채 닫지 않은채 임일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임일광은 모른척 하면서 그냥 담배연기만 날리였다.

서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두세번 젓고나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내장이 비틀리우기라도 한듯 얼굴을 험상스레 찡그리였다. 한동안 그러고섰던 그는 이윽하여 뚜걱뚜걱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접수실로 나갔다. 당직순사에게 무어라 귀속말을 몇마디 하고난 그는 인차 돌아서더니 곧바로 임일광의 곁으로 다가왔다.

임일광은 온몸의 피가 멎는듯 했다. 서장이 등뒤로 가까이 왔을 때에야 급히 몸을 돌리면서 차렷을 했다.

서장은 한손을 쳐들었다. 그리고나서 자기도 머리쉼을 하려는듯 창문앞에 다가서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임일광은 여전히 차렷자세로 절반도 타지 않은 자기의 담배불을 껐다.

서장이 의미심장하게 권했다.

《왜 그러나? 피우라구.》

《고맙습니다. 다 피웠습니다.》

서장은 부러 천천히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면서 일체 말이 없었다.

임일광은 그냥 부동자세였다.

담배 한대를 다 태우고난 서장은 돌연 임일광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눈길이 여간 날카롭지 않았다.

임일광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내색은 안했다.

비수처럼 날카롭던 서장의 눈길이 차츰 부드러워졌다. 그는 또 한숨을 깊이 내쉬고나서 자기 방쪽을 향해 눈짓을 하였다. 이어 무슨 일이 있었더냐싶게 태연히 돌아섰다.

임일광은 서장이 자기 방문앞에 다 걸어갈 때까지 꼿꼿이 서있었다.

서장이 다시금 따라오라고 고개짓을 해서야 조심스레 걸음을 뗐다.

무슨 일일가? 정말 눈치를 챘는가?

서장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도 오락가락 책상앞을 거닐었다.

임일광은 등골로 서리가 돋는것 같았다.

서장의 묵중한 량수책상옆에는 은행 대형금고 못지 않는 커다란 철궤가 놓여있었다.

한참동안 철궤앞에 서있던 서장은 책상빼람에서 한줌이나 되는 열쇠묶음을 꺼냈다. 그리고나서 대형금고의 번호를 돌리고 우정 그러듯 열쇠소리를 절그덕거리면서 철궤문을 열었다.

거기서 얄팍한 문건 하나를 꺼냈다. 주저하듯 잠시 문건의 제명에 눈길을 박고있던 서장은 단호히 결심을 한듯 임일광이 마주 서있는 앞상우에 문건을 쑥 밀어놓았다. 총독부 경무국장의 시뻘건 네모꼴도장이 찍혀져있는 《징병제실시준비위원회》가 내려보낸 문건이였다.

임일광은 서장을 면바로 쳐다보기만 했다.

서장은 손을 홱 내리그었다.

그때 벽전화기가 요란스레 울었다.

서장은 펄쩍 놀라 문건을 당겨쥐더니 방안을 황황히 둘러보았다. 이어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임일광이 앞에 밀어놓았다.

전화기가 더 요란스레 울었다.

서장은 급히 전화기앞으로 뛰여갔다.

《하, 하,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하, 하.》

서장은 수화기를 걸어놓기 바쁘게 복도로 달려나갔다.

임일광의 눈빛이 번쩍했다. 서장의 책상우에 열쇠묶음이 그냥 놓여있었던것이다.

유별나게 큰 무기고열쇠가 눈뿌리를 뜨끔 지졌다.

임일광은 저도모르게 서장의 책상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열쇠의 본을 뜨는데는 1분도 안걸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북치듯 했다.

문득 그는 굳어지듯 섰다.

검토? 함정??

강을 다 건너가 여울목에서 넘어지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장철석의 말이 생각났다.

침착하자.

저놈이 제 목숨처럼 귀중히 여긴 열쇠묶음을 저렇게 내놓을수 있을가?

임일광은 돌아섰다. 문건도 펼쳐보지 않았다.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서장이 뛰여들어왔다. 사색이 된듯한 얼굴이였다. 무작정 책상앞으로 달려간 서장은 열쇠묶음부터 덥석 걷어쥐였다.

안도의 낯색이 서장의 얼굴에 퍼졌다.

혹시?… 하는 눈길로 임일광을 쳐다본것은 다음순간이였다.

검토는 아니였다. 놈의 실수가 분명했다.

임일광도 후둑후둑 뛰던 가슴이 진정됐다.

이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무슨 일일가?

더욱 명백해진것은 서장이 누구보다 자기를 신임하는것 같지만 속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것이였다. 하긴 이놈도 일본 사무라이후손이 아닌가.

서장은 스스로도 부끄러웠던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들문앞으로 다가간 서장은 자물쇠를 절컥 잠그고는 천천히 자기의 둥글걸상으로 걸어가서 틀지게 앉았다.

《앉으라구.》

서장은 턱으로 걸상을 권했다.

임일광은 례절있게 앉았다. 이놈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자 배심이 더 든든해졌던것이다.

《봤나?》

서장이 문건을 눈짓하며 물었다.

임일광은 단마디로 대답했다.

《안봤습니다.》

《왜?》

《제가 볼 문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

서장은 눈을 꾹 감으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임잔 너무 똑똑해.》

침묵.

임일광은 모든것으로 보아 이놈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모모―1》인 우메즈 사부로의 체포는 물론 자기의 정체에 대해서도 감감 모르는게 분명했다.

배심이 생겼다.

어디 마지막까지 맞붙어보자!

한동안 눈을 감고있던 서장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임일광의 앞에 가까이 옮겨앉았다.

그리고는 임일광을 찌르는듯 여겨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내가 자넬 우리 일본사람들보다 더 신임한다는걸 인정하나?》

임일광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음, 지난번 화약사건때 도경찰부장과 헌병대 대장앞에서 자네를 보증한건 내 목숨을 내댔던 일이야. 일생에 한번밖에 없을, 비상시국에 군법이 어떤것이란걸 자네도 알테지?》

《저 역시 목숨으로 서장님을 위할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그럴 기회가 없는것이 유감입니다.》

《진정인가?》

《저도 사나이란걸 믿어주십시오.》

《사내대장부는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임일광은 다시금 무게있게 고개를 숙였다.

서장도 뜻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고맙네.》

잠시 앞상우에 손을 얹고 똑똑 손가락그루를 박던 서장은 이윽고 임일광의 앞으로 웃몸을 쑥 내밀었다.

《이 방엔 우리 둘밖에 없네.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당직순사에게 일렀소.》

아직 무엇인가 안심치 않은듯 임일광을 찬찬히 여겨보던 서장은 걸상등받이로 몸을 한껏 젖히며 말했다.

《에또… 임순사가 누구보다 똑똑하고 총명하니 알고있겠지만 우리 일본의 운명도 이딸리아나 도이췰란드와 다를바 없을거요. 불보듯 뻔해.》

임일광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서장의 진심이 분명했다. 이즈음 정세연구에 각별히 몰두하는 서장이였다. 별치 않은 여론에도 여간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네놈도 알긴 아는구나!)

쾌재가 터졌으나 더욱 무표정했다.

서장은 또 한참 임일광을 저울대에 올려놓은듯 뚫어지게 마주보다가 물었다.

《우리 일본이 패전을 하는 경우… 그래그래. 전쟁에선 패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 조선사람들이 임자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것 같은가?》

어지간히 위협기가 섞인 말투였다.

예상밖의 질문이여서 임일광은 고집스레 침묵으로 대답했다.

서장의 목소리가 타협으로 바뀌였다.

《인생은 엎음갚음이란 말이 있지.》

임일광은 눈이 번쩍 틔였다.

지난번 화약사건때 도경찰부장과 헌병대 대장앞에서 목숨을 내걸고 보증했노라고 각별히 력점을 찍던 방금전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이놈이 그때부터 벌써 앞일을 예견했댔단 말인가?

임일광은 다시금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면서도 그 기색을 감추려고 단호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엎음갚음이란 말은 모르겠지만 제가 할바라면 불속에라도 뛰여들겠습니다.》

서장의 두눈이 확 커졌다.

《진심인가?》

《방금 사내대장부는 일구이언을 안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

서장은 책상앞을 돌아 임일광의 옆에 바싹 붙어앉으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임순사가 순사옷을 입었지만 이곳 사람들한테 그리 밉게 굴지 않은건 아주 잘한 일이야. 선견지명이지.… 내 임순사한테 부탁할건 하나뿐이요. 하나!》

서장은 둘째손가락을 꼿꼿이 펴보였다. 이어 급하게 방안을 둘러보고나서 숨가삐 말했다.

《우리 일본이 항복하게 되는 경우말이요. 임순사가 무슨 방법으로든 나와 우리 가족의 목숨만! 대신 내 집과 재산은 모두 임순사에게 넘기겠소. 특히 명심할건 우리 아버진 일본의 손꼽히는 재력가라는거요. 큰 공장만도 일곱개나 가지고있소. 총명한 사람은 앞을 더 중히 내다보는거요.》

임일광은 모욕감을 느끼였다.

(어리석은 놈, 네놈도 꾀를 쓰기엔 머리통이 너무 궁글었어!)

그러나 임일광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선서라도 하듯 차렷자세로 웨쳤다.

《신임을 대의명분으로 여기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이제는 네놈의 숨통을 움켜쥐였다는 승쾌감의 분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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