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1 장

1

맑게 개인 하늘은 가없이 넓고 푸르렀다.

키높은 수삼나무 우듬지에서 가을매미들이 맥없이 찌르럭대고 꽁지빨간 잠자리들이 허공높이 날아옌다.

돌격대제복을 단정히 입은 청년이 명석동골짜기로 깊숙이 들어가 동명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공업대학으로 올라갔다. 대학은 청년의 모교였다.

청년의 부얼부얼한 얼굴에서 영채도는 검은 두눈이 대학시절 낯익힌 길가의 나무들과 오래된 단층집들을 더듬었다.

주위의 모든 지형지물이 청년을 애틋한 추억과 그리움의 세계에로 이끌어가고있었다.

유난스레 깍깍대는 까치 한쌍이 대학정문을 가까이 하고있는 그의 머리우를 휘돌다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에로 옮겨앉기도 한다.

(까치들도 내가 반가운 모양인가?)

청년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깜하얀 까치들을 바라보았다. 까치들은 청년에게 희망찼던 대학시절을 추억하게 했다. 그때 정보과학학부의 두학년 선배이면서 나이는 아래였던 리경숙이라는 동무가 까치소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는 까치들이 우짖는 소리를 공부 잘하는 동무들을 축하하는 노래소리라고 했다. 마음도 외모도 남달리 아름답던 리경숙을 그려보는 청년의 가슴은 잔파도처럼 들레이기 시작하였다.

대학정문에 이르자 애티나는 녀학생이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그를 맞이했다.

《어데서 오십니까?》

《원산청년발전소건설장에 있소. 시려단정치부장이요.》

《예, 그렇습니까?》

녀대학생의 억양에서는 은연중에 반가움이 느껴졌다. 온 도가 발전소건설을 관심하고있는 때였으니 대학생처녀도 은근히 선망의 눈길을 보내고있는것이 확연했다.

《교직원학생들이 왜 한명도 보이지 않소?》 청년은 의문어린 눈길로 물었다.

《일요일이여서 거의다 발전소건설장에 지원나갔습니다.》

《그렇소?!》

그제서야 청년은 교정이 별스레 조용한 까닭을 깨치며 혹시 헛걸음이나 아닐가 저어하면서 물었다.

《정보과학실연구사 리경숙동무도 발전소건설장에 올라갔을가?》

녀대학생은 정치부장이 헛걸음하지 않게 된것이 다행이라는듯 두눈을 반짝이며 방긋 웃었다.

《아닙니다. 그 연구사선생님은 요즈음 발전소건설장에서 청탁한 계산때문에 몹시 바쁘다고 합니다.

정보과학실에 가보십시오.》

청년은 활기띤 얼굴로 처녀에게 눈인사를 보내면서 교정에 들어섰다.

축구선수였던 그는 운동장중앙선을 따라 성급히 걸어갔다. 경기장이 끝나는 곳에서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정면에는 중기관총압철을 턱으로 눌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고있는 조군실영웅의 동상이 있었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영웅의 동상을 향하여 거수경례를 했다.

불을 토하는듯싶은 영웅의 두눈, 억세게 두드러진 관골, 총탄과 파편에 맞아 쓰지 못하는 두팔, 시시각각으로 줄어들고있는 생명…

영웅은 오늘도 여전히 가증스러운 원쑤들과의 판가리결전을 이어가면서 반세기도 넘는 오랜 나날 후대들에게 인생의 값높고 고결한 의미에 대하여 어느 교수도 할수 없는 수업을 계속하고있는것이였다.

조군실영웅의 동상앞에 그린듯이 서있던 청년은 교사정문으로 경사지게 올라간 계단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였다.

영웅의 동상을 배경으로 정성스레 가꾸어진 정원에는 감나무들이 줄지어섰는데 아지마다엔 한창 익어가는 감알들이 주렁져있었다. 경사진 꽃밭에는 한껏 붉어진 백일홍과 흰다리야가 만발했다.

그는 교사나들문으로 향한 넓은 계단을 두계단씩 밟으며 씨엉씨엉 올라갔다. 그가 나들문으로 들어서려는데 몸매가 무용수처럼 호리호리한 처녀가 살며시 자태를 드러내며 나왔다.

연구사 리경숙이였다.

마주선 두사람의 가슴은 기쁨에 겨워 잦은가락으로 물결쳤다.

《경숙동무, 잘있었소?》

《아이, 영훈동지, 꼭 오실것만 같더니. 창문으로 내다보고 달려나오는 길이예요.》

그들의 정한 눈길은 허공에서 부딪쳐 잠시 멎어있었다.

경숙은 외로왔던 심정을 그대로 터놓았다.

《건설장으로 달려가고싶었어요. 그런데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 그만.》

로영훈은 교문에서 직일녀학생이 하던 말이 떠오르자 경숙이 홀로 떨어져있는 일이 우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많겠소.》

영훈의 인사말에 경숙은 어덴가 쑥스러운 인상으로 대답했다.

《저야 뭘요. 건설장에 나가있는 영훈동지가 더 수고하지요 뭐.》

경숙의 얼굴에는 시름이 비껴있었다. 그들은 정보과학실에 들어가 마주앉았다.

영훈은 항상 명랑하던 경숙의 밝지 못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나서 물었다.

《그래, 무엇때문에 홀로 남아서 고심하고있소?》

경숙은 영훈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했다.

발전소건설장의 시공일군들이 몇가지 계산을 의뢰하였는데 그중에는 발전소건설이 대체 몇년이 걸려야 완공될수 있는가 하는것을 콤퓨터모의건설로 확답해달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건설을 위한 30만산대발파의 가능성을 확증할데 대한 문제도 있었다.

대학에서는 이 과업을 누구에게 줄것인가를 론의하다가 콤퓨터기량이 제일 높은 정보과학실의 연구사 리경숙에게 위임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숙은 오늘도 발전소건설장에서 의뢰한 계산을 하라는 교무부의 지시를 받고 콤퓨터에 마주앉아있는중이였다.

경숙이 근심어린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글쎄 방금전에도 건설장에서 모의건설결과를 시급히 보내달라는 전화가 오지 않았겠나요.》

영훈은 의문이 앞섰다.

숱한 자료들을 입력시켜 모의건설을 진행하자면 자신이 건설의 제요소들에 정통할뿐만아니라 현지에도 익숙해야겠는데 여기에 앉아서 무슨 계산을 한다는것일가.

《건설이 몇해째 계속되고있는데 이제 와서 모의건설을 해서는 무얼 하자는거요?》

경숙이 영훈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모든 설계와 선택된 시공법들이 실현가능한가, 혹은 불가능한가, 공사기일은 얼마나 걸리며 로력과 자재, 자금은 얼마나 더 동원되여야 하는가 하는것들을 정확히 알아보자는거라고 하더구만요.》

《음.》

영훈은 시공자들로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묵묵히 수긍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경숙동무는 여기서 발전소건설을 하고있는셈이로구만.》

《글쎄, 그렇다고 해야 할지.》

경숙은 자신없이 말끝을 흐리였다.

영훈이 말머리를 돌리였다.

《경숙동무, 현장에 나가보니 머리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더구만.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력건설에서도 과학과 기술이 필요하단 말이요. 그래서 나는‥》

여기서 영훈은 말을 끊고 긴장한 눈빛으로 경숙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가 경숙이를 찾아 대학으로 오게 된 진의도를 밝혀야 했다.

경숙은 영훈의 생각을 넘겨짚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건설장에 우리같은 과학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요?》

《옳소, 두뇌전을 하자니 실력자들이 필요하단 말이요.》

《저도 발전소건설장에 나가고싶어요.》

영훈은 정어린 눈길로 경숙을 마주보았다.

경숙의 부모들은 외동딸을 온실의 꽃이라고 하면서 안온한 일자리가 차례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딸이 발전소건설장에 나가겠다면 퍼그나 놀랄것이다. 영훈이 역시 경숙의 결심이 기쁘기도 했고 한편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결심했다니 정말 고맙소.》

《고맙다니요. 그건 오히려 제가 해야 할 인사인걸요.》

경숙은 진정을 담아 뇌이였다.

영훈과 쉽사리 한마음이 된 경숙은 오래전부터 늘 간직하고있었던 심정을 허심하게 터놓았다.

《사실 제가 그런 결심을 내리게 된것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영훈동지를 비롯한 제대군인대학생들속에서 배운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예요. 전 대학기간 그들에게서 많은걸 얻었어요.

끊임없는 향학열이며 불타는 정열이랑… 그런 의미에서 영훈동지는 저의 학업과 생활에서 스승이기도 했어요.》

영훈은 빙그레 웃음을 짓고 경숙의 말을 조용히 밀막았다.

《무슨 그런 말을 하오. 우리한테 콤퓨터의 눈을 틔워준게 누구라구.》

경숙은 잔잔한 억양에 자기의 주장을 담으며 기쁜 얼굴로 영훈을 바라보았다.

《배우는게 어찌 학과목뿐이겠어요. 대학시절에는 일상생활에서 옳게 사고하고 행동하는걸 본받는것도 학업 못지 않게 중요했어요.》

영훈은 속으로 처녀의 말을 긍정했다.

경숙이 자기의 결심을 누구도 흔들수 없다는듯 입술을 옥물고나서 덧붙여 말했다.

《제가 이제 건설장에 나가면 많이 배워주고 이끌어주세요.》

《경숙동무의 소원대로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일해봅시다.》

영훈은 헌헌한 인상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럼 건설장에서 기다리겠소.》

영훈의 당부에 경숙은 매력있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즐겁게 마주보았다.

영훈의 뇌리에서는 경숙을 처음으로 알게 된 대학생시절의 나날이 주마둥처럼 스쳐지났다.

리경숙은 제대군인대학생이였던 로영훈보다 나이는 너덧살 아래였지만 두학년 선배였다.

경숙이 전국대학생 콤퓨터프로그람경연에서 우승을 쟁취하고 돌아왔을 때 신입생이였던 영훈은 선참으로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흔치 않은 백리향이 호함지게 피여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생신한 꽃다발에는 제대군인대학생의 열정의 상징인양 빨간 산나리가 몇송이 어울려있었다. 경숙은 그 꽃다발에서 풍기는 취할듯 한 향기보다도 몇번인가 복도에서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군 했던 로영훈의 어글어글한 눈빛에서 강렬한 정열과 매력을 느끼며 수집고도 정겨운 눈길로 사례했다.

《고맙습니다.》

《신입생 로영훈이요. 앞으로 많이 배워주길 바라오.》

영훈의 진지한 눈빛이 처녀에게 진정을 담아 호소하였다.

《아이, 제가 무얼 안다고요. 함께 배우자요.》

경숙은 소박한 한마디 말로 로영훈의 기대에 대답했다.

로영훈도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경숙의 말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것을 인연으로 그들은 가까운 사이가 되였다.

둘이 다 학부청년동맹 위원으로 사업하게 된 기회에 영훈은 콤퓨터수재인 경숙에게 개별학습방조를 요구하였다. 경숙은 영훈의 청을 쾌히 받아들이고 사심없이 꾸준히 도와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박사원생으로 남은 경숙은 영훈을 진심으로 도와 제대군인들이 제일 어려워하던 정보과학부문의 실력을 눈에 뜨이게 끌어올리였다.

어언간 세월이 흘러 로영훈이 졸업시험을 치게 되였다.

그런데 어이하랴.

영훈은 콤퓨터과목에서 그만 4점을 맞았다. 그것은 영훈에게는 물론 그의 콤퓨터학습을 꾸준히 도와준 경숙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였다.

영훈은 아쉽지만 전과목 최우등을 할수 없게 되였다. 경숙은 가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저녁무렵에 영훈을 만났다.

《영훈동지! 제가 한번 과목담임선생님한테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겠어요. 평시성적을 고려해달라고 말입니다. 시험위원들도 영훈동지가 실수했다고 말했답니다.》

경숙의 말을 들은 영훈은 서운한 인상으로 말했다.

《아니, 나는 실수하지 않았소. 자신을 지내 과신했던거요. 설사 실수였다고 해도 그자체가 완전무결한 실력을 지니지 못했다는걸 의미하는거요. 그러니 제발 평시성적고려요, 뭐요 하면서 찾아다니지 말아주오. 인정으로 올려준 점수는 백해무익하다오.》

경숙은 활딱 얼굴을 붉히였다.

자기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던 나머지 도고하고 결백한 제대군인대학생의 자존심을 건드릴번 한 자신의 실책이 부끄러웠던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로영훈은 상급당의 조치로 단기교육을 마치고 시당위원회 부원으로 배치받았다가 곧 돌격대정치부장으로 임명받아 건설장에 나온것이였다.

그동안에 경숙은 박사원을 졸업하고 정보과학학부 연구사로 눌러앉았다.

경숙은 건설장의 일들을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었다.

영훈은 정치부장으로 배치받은지 두달밖에 안되였지만 알고있는만큼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아름찬 건설을 도자체의 력량과 자금으로 해내면서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도입하자니 건설실무적인 문제들에서 심각한 론점들이 제기되고있다는것을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게다가 건설을 책임지고있는 아버지가 년로한 몸에 자꾸 앓기까지 하니 나에게도 마음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요.》

영훈은 자신의 괴로운 심정도 스스럼없이 터놓았다. 경숙은 영훈의 고충이 남의 일같지 않아 눈빛을 흐리였다.

시간을 가늠해보고난 영훈은 자리를 일면서 말했다.

《이젠 돌아가야겠소. 몇군데 돌격대원들의 가정에도 들려보고 아버지의 병문안도 하고 올라가야 하오.》

《바쁘신데 여기까지 들리셨군요.》

《사실은 여기에 찾아온게 제일 중요한 일이였소. 건설장에서 경숙동무와 같은 과학자들을 기다리고있으니까. 경숙동무, 그럼 기다리겠소.》

《알겠어요.》

경숙은 영훈을 따라 교문에까지 나왔다.

그들은 머지않아 건설장에서 만날것을 다시금 약속했다. 경숙은 교문을 나선 영훈이 멀어질 때까지 손저어 바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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