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2 장

2

겨울해는 늦잠이라도 잔듯 높은 산마루에 느즈막해서야 얼굴을 올리밀었다가 추위에 쫓기듯 서둘러 우죽부죽한 서산중턱에 걸터앉았다.

로영훈은 골짜기의 가랑잎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면서 깊은 산협으로 올라갔다.

그가 오늘 저녁무렵에 산중으로 접어든것은 요즈음 미경이 감기에 걸렸지만 일터에 나오는데 입맛을 젖혀 밥을 잘 먹지 않는다기에 다래라도 한줌 따볼가해서였다.

얼마쯤 얼음에 지치면서 올라가서야 그는 팔뚝만치 굵은 다래덩굴이 참나무를 감고 올라가 나무우듬지우에 말큰말큰한 다래를 조롱조롱 달아매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있는것을 띄여보았다.

그는 힘겹게 참나무를 타고 올라가 말큰하고 달디단 다래를 한알두알 따가지고 종이고깔을 만들어 거기에 한가득 채웠다.

다래를 따면서도 그의 생각은 줄곧 돌격대원들에게 가있었다. 이즈음 대원들의 감정과 정서는 좀 저기압이였다.

려단에 제일 걸린것은 공사에서 제기되는 난관보다도 돌격대원들과 일부 초급지휘원들속에 은연중 자리잡은 동요의식이였다.

15년이 걸려도 공사가 완공되기 어렵다는 모의건설결과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가뜩이나 어려운 공사조건과 후방생활조건을 타개하기 어려워 쩔쩔매던 사람들은 하나둘 손맥을 놓기 시작했다.

영훈은 시급히 리경숙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싶었다.

그가 어떻게 그처럼 엄청난 오산을 했을가, 시공일군들은 어째서 과학성없는 그런 수자를 경솔하게 공개했을가.

우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도 있는 일부 돌격대원들을 깨쳐주기 위한 사상사업을 해야 했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퍼그나 기울어졌다.

신동진네 작업조는 발전기실의 타빈실로 들어가는 압력관로기초구뎅이를 파느라고 줄땀을 흘리며 분발하고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넉대의 착암기가 겨루기를 하면서 넓혀나가던 기초구뎅이작업장들이였다.

그런데 광산에 두대를 지원보내고나니 지금은 함마와 정대가 기본이였다.

청석암반짬으로 지하수가 솟아올라 여러명의 돌격대원들은 한줄로 늘어서서 초롱과 바께쯔로 물을 퍼내고 신동진네 작업조는 착암을 하는 한편 함마전을 들이대고있었다.

마식령쪽에서 썰렁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첫추위의 예고였다.

타빈실로 내려가는 기초구뎅이는 점점 깊어졌다.

지하수를 처리하지 못하고서는 한치도 전진할수 없기에 숱한 로력이 세교대로 물을 푸지 않을수 없었다. 역시 여기서도 양수기를 탄광에 조절해보낸것이였다.

밖에 올라온 물바께쯔를 멀리 내다쏟지 않으면 물이 다시 기초구뎅이 안으로 흘러들기때문에 밖에 서있는 장미경이가 바빠했다.

압력관로기초건설장에서 하루해를 거의다 보낸 영훈이 여기에 나타난것은 저녁무렵이였다.

영훈은 15년설이 공사장에 파다하게 퍼진데다가 신동진네 소대에서는 그 일때문에 다툼질까지 있었다기에 그것을 절대로 믿지 말도록 사상사업을 들이댈 심산이였다.

영훈은 미경이의 새파란 솜옷주머니에 다래봉지를 넣어주면서 일렀다.

《미경동문 비판을 좀 받아야 해. 열이 나면서도 일나오는건 규정위반이거던.》

《제발 눈 좀 감아주십시오. 누워있으면 언제 나을지 모른답니다.》

그러자 영훈은 미경이 금방 받아올린 물초롱을 받아 쏟으면서 익살기있게 눈웃음을 짓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수 있지만 난 다 알고있어. 미경이가 신동진소대장과 늘 함께 있고싶어서 아파도 눕지 않고 일나온다는걸.》

《아무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미경은 그 소리가 싫지 않은듯 눈웃음을 지으며 영훈을 밉지 않게 샐쭉 흘겨보았다.

영훈은 미경의 어깨를 정답게 다독여주고나서 서너길도 넘는 기초구뎅이아래로 사다리를 디디고 내려섰다.

장미경은 느닷없이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는 물바께쯔를 받아들기 바쁘게 너덧걸음을 내달려 경사진쪽에다 뿌연 돌가루물을 쏟아버리고는 그길로 돌아서서 빈 바께쯔를 아래로 내려보내주는 동시에 물초롱을 받아서 내다쏟는 동작을 쉬임없이 반복하느라고 량볼이 새빨갛게 익었고 코잔등에 땀방울까지 맺혔다.

바로 그때 웬 처녀가 달려오더니 안깐힘을 쓰면서 금시 찰랑찰랑 물이 들어찬 초롱을 무겁게 받아올리는 장미경의 손에서 재빨리 그것을 받아주었다.

《아이, 수고하누만요. 같이 일하자요.》

장미경보다는 너덧살 더 나이들어보이는, 건설장에 처음 나타난 처녀였다.

《일없어요. 이건 제가 맡은 일이예요. 지원하러 왔으면 이제 저기 밑에서 일하는 신동진소대장이나(동진은 며칠전에 소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우리 려단정치부장동지한테 정식으로 제기해서 어디 적당한 일자리를 받으라요.》

바께쯔를 놓아준 미경은 일하기가 한결 홀가분해졌지만 낯모르는 처녀에게서 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는것이 별로 달갑지 않은 인상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새로 나타난 처녀는 곤색작업복바지에 물을 흘리면서 미경의 일을 돕기에 바빴다.

도시처녀들이 흔히 신는 뒤축이 둔하면서도 높은 겨울용솜신이 인차 물에 젖어버렸다.

연갈색의 맵시있는 다후다직누빈솜옷은 나들이용으로 만든듯 길고 목깃과 팔소매에 값진 인조털까지 댄것이여서 일하기가 거치장스럽게 보였다.

해맑은 얼굴에서 시원스러운 깜장눈이 귀엽게 보였지만 어덴가 몸가짐이 가볍지 않고 인상이 숙연하고도 경박하지 않은 처녀여서 미경은 은근히 어려움을 느끼였다.

《야, 장화랑, 작업복이랑 없어서 어쩌나?》

미경은 걱정해주면서도 처녀가 하자는대로 련이어 물초롱을 그의 손에 넘겨주고는 또다시 빈 초롱을 되받아 아래로 내려보내였다.

밑에서 《휴식!》 하는 신동진의 듣기 좋은 중음이 울려왔다.

《이건 함마전을 하는 사람들만 쉬는거예요. 물은 조금만 늦춰도 막 차오르기때문에 우린 쉬지 못해요.》

미경이 빨깃한 앵두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밑에서 함마와 정대를 잡았던 친구들까지 물푸기에 달려들었는지 물초롱들은 곱절로 빨리 올라왔다.

《힘들면 좀 쉬라요. 난 단련돼서 일없어요.》

미경은 제법 돌격대구대원티를 내면서 해쭉 웃었다.

《나도 이쯤한 일은 일없어요.》

《동문 예술선전대 독창가수지요?》

미경은 새로 나타난 처녀의 둥실하고 하얀 얼굴의 한쪽볼에 옴폭 패이군 하는 볼우물이 부러워 몇번인가 할끔할끔 훔쳐보면서 물었다.

《글쎄,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해도 이제부터 단독임무를 수행해야 하니 독창가수인셈이예요.》

령리하고 귀여운 깜장눈을 깜빡거리는 처녀는 미경을 골려주듯 생글거렸다.

《단독임무요? 돌격대엔 단독임무가 없어요.

맞들이도 둘이서, 함마질도 정대잡이와 함께, 물을 푸는것도 보라요. 저아래서 이 꼭대기까지 사다리우에 여러명이 올라서서 질서있게 주고받아야 일이 된답니다.

도대체 단독임무란건 뭐예요? 오-라, 여기에 단독임무 수행하는 방송원이 있어요.

우리 려단장동지네 아주머닌데 영예군인이예요.

한참 현장방송을 할 땐 말예요, 인민방송원 거 누구더라, 하여튼 그 방송원목소리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못하진 않아요. 목소리가 청청하면서도 부드럽고 감정표현이 아주 섬세해요.

어떨 때 가까이서 보면 후더운 눈물을 지으면서 열정적으로 웨치는데 그럴 땐 우리 돌격대원들이 사기가 올라서 잔등에 땀이 즐벅하도록 달린답니다. 참 좋은 방송원아주머닌데 글쎄 허리를 잘 못쓰는 영예군인이여서… (미경의 목소리가 울먹했다.) 3륜차가 오르기 험한데서 우리 정치부장동지가 누님! 하고 잔등을 들이대면 방송원아지미는 부끄럼도 타지 않고 뉭큼 업힌답니다.

알고보니 안변청년발전소건설때부터 아는 사이래요.

글쎄, 여기선 그런 일이나 단독임무라고 할지 그런 일 말고 혼자 할 일이 뭐겠어요?》

미경은 오목하고 류달리 반짝이는 작은 눈으로 새로 나타난 처녀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자, 동무들, 이제부터 꽃이름대기요!》

휴식구령을 떨군 듣기 좋은 중음이 기초구뎅이안에서 웅글게 들려왔다.

새로 온 처녀가 미경에게 물었다.

《꽃이름대기라는건 뭐예요?》

미경은 그런것도 모르느냐는듯 새물새물 웃으면서 신이 나서 대답했다.

《건 말이예요, 물바께쯔를 받은 동무가 다음동무한테 넘겨주면서 꽃이름을 부르는 오락이예요. 남이 부른 꽃이름을 부르거나 꽃이름이 미처 생각나지 않아서 물초롱을 넘겨받은 뒤에 주심이 천천히 하나, 둘, 셋 하고 셀 때까지 대지 못하면 쉴참에 노랠 부르거나 시를 읊어야 해요. 남이 부른 꽃이름을 반복했을 땐 먼저 그 꽃이름을 댄 동무와 2중창을 시키는데 처녀총각일 땐 며칠동안 신랑, 각시라고 놀림받기도 한답니다. 그러다가 정식 사랑하게 된 동무들도 있어요. 정신 바싹 차려야지 실수를 반복하면 멍청이칭호를 받는답니다.》

미경이는 그 놀음을 기다렸다는듯 재미있게 설명했다.

《자, 시작! 나팔꽃!》

신동진이 물을 듬뿍 퍼담은 초롱을 사다리우에 있는 처녀에게 올려주면서 다 듣게 큰소리로 웨쳤다.

돌격대원들은 흥이 나서 차례차례로 꽃이름을 주어대였다.

《진달래!》

《철쭉꽃!》

《나리꽃!》

《호박꽃!》

꽃이름과 함께 물초롱이 한계단, 두계단 올라왔다.

꽃이름을 불러댈 때마다 익살군들은 처녀거나 총각이거나 관계없이 꽃의 모양과 의미에 맞는 억양과 표정을 지어내여 동무들을 웃겼다.

《나도 해야 되니?》
지원자처녀는 그 놀음이 처음이여서 은근히 속이 떨리는지 걱정어린 눈매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문요. 어차피 대렬속에 들어서지 않았나요! 그렇다구 미리 꽃이름을 하나 생각해두진 말라요. 앞에 동무가 그 꽃이름을 먼저 부르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미처 떠오르지 않아서 하나, 둘, 셋 반칙에 걸려 노래하게 돼요.

뭐, 동문 노래를 괜찮게 할것 같은데 첫인사삼아 한곡 부르고싶으면 반칙해도 일없어요, 호.》

미경은 오목눈을 반짝 빛내이며 웃었다.

그사이에 어느덧 물초롱은 미경이한테 올라왔다. 그는 《장미꽃!》 하고 발쭉거리며 지원자에게 물초롱을 넘겨주었다.

한데 그때 보조개 패인 그의 얼굴이 순간에 빨개졌다.

그도 장미꽃을 생각했던 모양이였다.

처녀는 얼결에 《서리꽃!》 하고 불렀다.

《반칙이다!》

구뎅이아래에서 《호박꽃》을 불렀던 총각이 웨쳤다. 서리꽃은 식물계의 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누가 반칙이요?》

신동진이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지원자예요!》

미경이 대답했다.

《그럼 한번 용서! 세번만엔 노래요!》

또다시 꽃이름들이 불리워졌다.

찔레꽃, 민들레꽃, 사과꽃, 앵두꽃, 할미꽃, 냉이꽃에 이르기까지 돌격대원들이 그 나이에 보고 듣고 꽃밭에서 직접 피워보기도 한 수십가지의 꽃이름들이 한번도 반복됨이 없이 련이어 불리워지는 동시에 물초롱들은 부지런히 오르내렸고 바닥의 물은 점점 줄어들었다.

신동진이 또다시 물초롱을 올려보내면서 《도라지꽃》을 불렀다. 이름이 부르기 좋고 볼만 한 꽃들은 이제는 거의다 불리워나왔다. 미경이 차례가 되였을 때 처녀는 이미 신동진이 주어댄 《도라지꽃》을 반복하여 불렀다.

짝짜그르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노래! 장미경동무와 신동진동무의 2중창입니다!》

누군가가 신명이 나서 웨쳐대자 모두들 좋아라고 웃으며 손벽을 쳤다.

미경과 동진은 자기 위치에서 그냥 노래를 불렀다. 물초롱들은 노래박자를 타고 쉴새없이 오르내렸다.

《우등불 타오르네 불타오르네》라고 시작되는 랑만적인 돌격대원들의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자 물초롱은 또다시 꽃이름과 함께 우로 올라갔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꽃이름을 찾아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강냉이꽃, 수수꽃, 솔꽃까지 불리워나오자 미경이는 또다시 남의 꽃이름을 반복했는데 공교롭게도 방금전에 2중창을 한 신동진이가 불러낸 《패랭이꽃》이였다.

동무들은 왁작 떠들었다. 그때까지 돌격대원들의 재미있는 놀음놀이를 등뒤로 들으면서 착암기에 기름을 주던 로영훈도 웃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참지 못했다.

령리한 장미경이 어째서 두번씩이나 신동진과 2중창을 하게 되는지 마치도 사랑의 약속이라도 한것만 같았다.

영훈은 장미경이 이전부터 동진의 일솜씨에 반해서 제대군인총각을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지내던 나머지 그런 실수를 반복했다고 공개하였다. 돌격대원들은 듣고보니 그럴듯하다고 재미있게 웃었다.

미경은 로영훈의 롱말이 싫지 않았다.

처녀는 사실 신동진을 오빠처럼 따르면서 무언가 녀자손으로 해줄수 있는 일이라면 도맡아해주군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2중창도 아주 잘되였다.

점심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곰곰히 생각해야만 할수 있는 꽃이름대기를 계속하였다. 그래도 기지있고 령리한 젊은 친구들은 동무들이 부른 꽃이름을 반복하지 않고 련이어 새로운 꽃이름을 찾아내였다.

미경은 겨우 《맨드라미꽃》을 부르고는 곁에 있는 지원자가 이번에는 틀림없이 오발을 하거나 입도 못 벌리여 노래를 부르게 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원자는 물초롱을 닁큼 받아들고는 《소금꽃!》 하고 쨍쨍한 목소리로 크게 웨쳤다.

지원자가 물을 쏟고 초롱을 내려보낼 때까지 대원들은 잠잠하였다.

《소금꽃》이라니? 이것 역시 식물계의 꽃이 아닌것이다.

이번에도 밑에서 신동진이 《거 누구요?》 하고 물었다.

본인은 잠잠했다. 미경이 대신했다.

《지원자예요.》

그런데 잠시 조용했던 돌격대원들이 《만점이다!》 하고 웨쳤다.

착암기를 멈추고있던 영훈은 그 목소리의 임자를 드디여 알아맞혔다.

우정이라도 대학에 내려가 만나려던 리경숙이 문득 나타나 일터에 자진하여 뛰여든것이 아닌가. 돌격대원들사이에서 잠시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누가 만점이라고 해? 소금꽃도 꽃이야?

한패는 이렇게 우겼고 다른 한패는 그 꽃이야말로 건설장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라고 주장했다.

잠시 오해했던 친구들이 역시 감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잔등과 어깨를 적시던 줄땀이 소금꽃으로 하얗게 피여나군 하던것을 감동깊게 그려보면서 그 기지있고 사색깊은 대답을 한 지원자처녀를 빨리 보고싶어했다.

미경이 언니벌되는 지원자의 지혜를 부러워하면서 물었다.

《동문 정말 수재구만요. 어쩌문 그렇게 남들은 생각조차 못할 꽃이름을 척척 댈수 있었는지 한번 얘기해봐요.》

지원자처녀는 별게 아니라는듯 상글거렸다.

《동무네야 이 놀음을 거듭했을테니까 척척박사들처럼 됐을게 아니예요. 그래서 나는 자연계의 꽃이 아니면서도 돌격대원들이 다 접수할수 있는 그런 꽃을 생각해낸거예요. 다음번에 내 차례가 오면 웃음꽃을 대려던 참이였어요.》

그 소리에 미경은 까르르 웃음보를 터쳤다.

《야, 동문 참 기딱막힌데요. 웃음꽃이야말로 우리한테 늘 붙어다니는 꽃인걸요. 하루에도 일터에서 수십번이나 피여나군 하는 꽃이지요 뭐.

동무가 늘 우리곁에 있으면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미경은 감탄사를 련발하면서 지원자를 추어올렸다.

《내 한가지 묻자꾸나. 그런데 이런 훌륭한 로동유희를 누가 발견했니?》

지원자가 물었다.

《그건 저, 우리 정치부장동지랍니다.

돌격대에는 거의나 젊은이들이 모였는데 뚝힘만 쓰면서 머리를 써버릇하지 않으면 현대인의 자격을 저버린 단순한 로력자로밖에 될수 없다고 하면서 이 놀음을 해보라고 했답니다. 이런 놀음을 하면 좋은게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일자리가 푹푹 나서 힘들지 않구요 세상리치에 대한 학습도 된답니다. 머리쓰기 싫어하던 동무들도 점차 머리가 트인다고들 해요. 동무들하고 사이도 좋아지구. 하여튼 좋은게 많아요.》

미경은 쉬임없이 재깔거렸다.

지원자처녀는 한결 밝아진 인상이였다.

미경은 경숙에게 건설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하여 애썼다.

《얼마전엔 기분나쁜 일이 있었답니다. 뭔가 하니 어느 대학의 콤퓨터전문가라는 선생님이 글쎄 우리의 이 건설이 15년이나 걸린다는 답을 냈다나봐요. 어떤 동무들은 울적하고 어떤 동무들은 격분해서 막 다투기까지 했답니다.

정치부장동지도 그 일때문에 속을 무척 태우고있답니다. 아마도 그런 잡소리를 돌리는 사람들에게는 사상투쟁의 집중포화를 들이댈거예요.

사람이 일하다가 간혹 실수를 할수도 있겠지만 이번 일은 의도적이라고도 한답니다.

그걸 잘못 계산한 콤퓨터수재라고 소문난 당사자는 지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한다나봐요.

글쎄 어쩌면 그런 엄청난 오산을 할수 있었을가요?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의도적인것 같다면서 모두 분해하고있어요.》

지원자처녀에게 자랑삼아 말하던 미경은 그의 이상한 거동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기지있는 처녀는 그만에야 무릎을 폴싹 꺾고 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왜 그래요? 어디가 아픈가요?》

그러나 새로 온 처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언저리를 찍으며 일어났다.

그무렵에 돌격대원들이 구뎅이안에서 올라왔다.

신동진이 새로 나타난 지원자앞에 다가서더니 먼저 인사를 건네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엊그제부터 소대장을 하오. 그런데 동문 기막힌 문학수재로구만. 서리꽃도 물론 기지있는 발견이였지만 저, 소금꽃이라고 했을 때 내 제깍 그 의미를 알아채고 만점이라고 소리쳤단 말이요. 우선 우리 동무들과 인사하오.

아 참, 여기 우리 정치부장동지가 마침 올라오고있소.》

경숙은 먼저 올라온 동무들과 눈인사를 하거나 나이들어보이는 축들에게는 고개를 숙이면서 단정하게 인사를 보내였다.

《경숙동무!》

사다리를 타고 방금 밖으로 올라온 로영훈의 두눈에 알릴가말가하게 미소가 떠올랐다가 스러졌다.

《안녕하세요?》

경숙은 눈길을 발치에 떨군채 조용히 인사했다.

영훈은 심드렁하게 《오느라고 수고했소.》 라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경숙은 영훈의 랭랭한 대접이 응당한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어쩐지 노여움이 울컥 북받쳐 금시라도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그는 더 다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옹색한 심정으로 로영훈과 마주선적은 없었다. 어떻다고 말할수없이 울적했다.

교정에서는 어깨가 높고 의젓했던 자신이 여기에 나와서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아직도 15년설을 타매하던 현장방송의 구절들은 처녀의 심장에 날카롭게 못박혀 자기 존재의 무력함을 일깨워주는듯 하였다.

무언가 리해할수 없는 엄청난 실책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는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경숙은 영훈을 외면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장미경이 호기심어린 눈길로 자기와 영훈의 어성버성한 상면을 곁눈질해보고있다는것을 경숙은 알지 못했다.

경숙의 부자연스러운 심리를 짐작한 로영훈이 조용히 일렀다.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경숙은 기계적으로 영훈을 따라 걸었다. 그는 로영훈과 나란히 걷기 무엇하여 반걸음쯤 떨어져서 따라갔다.

《난 경숙동무가 조만간 나오리라고 믿었소.》

로영훈이 무표정한 인상으로 덤덤히 말했다.

경숙은 그 말의 의미를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몰랐다.

영훈이 한달전에 대학에 와서 건설장에 나올것을 권고했을 때 그것을 흥뜬 기분으로 받아들였던 자기의 《용단》을 치하하는 말인지, 아니면 15년설의 오유를 씻기 위해서 반드시 나올줄을 알았다는것인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그는 지금껏 자기의 실책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가슴에 묻어들수만은 없었다. 그는 건설장에 나온것이 결코 탄원이나 자원이라고 말할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난해한 문제를 해명해야 할 의무감과 공민적자각같은것이 자신을 떠밀었다고 할가.

그는 조만간 자기가 여기로 오게 된 진의도를 영훈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울적한 심사를 애써 숨기느라고 오자마자 돌격대원들의 일판에 뛰여들어 그들의 오락에도 참가했건만 아까 현장방송을 들은 뒤로는 심장을 조이는것과 같은 압박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이처럼 15년설이 일으킨 파문은 건설자들에게보다 경숙이의 마음속에 몇배나 더 큰 충격을 가했던것이다.

경숙은 조만간 자기가 엄청난 오산을 하게 한 원인을 기어이 까밝혀야 했다.

처녀는 자기를 맞아준 영훈의 인상이 이처럼 어두우리라고는 생각못했다.

영훈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성격과 같이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때맞추 오긴 잘했소.》

영훈은 한마디 짤막하게 던진 뒤 또다시 침묵했다.

그들은 어느덧 려단정치부앞에 이르렀다. 돌격대건물로서는 가설건물이 아닌 블로크단층건물이였다. 공사가 끝난 뒤 운영기업소에 넘겨주기 위하여 제식대로 지은 건물이라는것이 첫눈에 알리였다.

경숙은 영훈을 뒤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검소했다. 색을 내지 않은 소나무침대 하나, 앉은책상과 그우에 놓인 책꽃이, 작은 서류함, 한쪽벽에 치우쳐 수수한 흑백색텔레비죤이 놓여있었다. 바닥엔 밤색비닐레자가 깔려있었다.

경숙은 불편스레 무릎을 모아세우고 앉았다.

로영훈이 아래목을 가리키며 편안히 앉으라고 해서야 그는 자리를 약간 옮기며 무릎을 폈다.

경숙은 선듯 화제를 꺼내지 못하고 로영훈이 무슨 말을 하겠는지 기다릴뿐이였다. 영훈은 사색을 가다듬으려는듯 잠시 그 무슨 서류인가를 뒤적거리고있었으나 그 행동은 형식에 불과한것이였다.

경숙은 영훈이 피차 나누기 어려운 과제를 꺼내야 할 때 이처럼 심사숙고하면서 서슴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영훈은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을 하나 상기시켜 어성버성한 분위기를 깨버리려 했다. 그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을 떼였다.

《경숙동무, 우리가 대학때 프로그람작성에서 간혹 실수하여 오산을 했을 때 동무는 랭정한 눈매로 곱지 않게 흘겨보면서 쏘아붙이듯 말했지. 생각나오?》

경숙은 잊지 않고있었다. 그는 영훈의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갔다.

《생각나구말구요. 저는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동무들에게 연극배우가 대사를 외우듯 한자도 틀리지 않게 말하군 했어요.

과학자의 순간의 실수가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하늘로 날려보낸다는걸 잊지 마세요.

경숙은 그 나날의 억양과 인상을 그대로 지어내며 진지하게 말했다.

《옳소. 나는 그때 그 말의 의미를 가슴깊이 새겼댔소. 여기 건설장에 나와서는 그 말의 의미를 더욱 절감하게 되였구. 아무리 천재적인 과학자의 두뇌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을 외면하고 주관에 빠질 때에는 한갖 공상이나 빚어내고만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소. 과학자의 실력이란 곧 애국이요.

실력과 실적으로 나라에 유감없이 이바지하는 과학자가 바로 애국자가 아니겠소.》

영훈이 신중해지자 경숙은 더욱 옹색해졌다. 처녀는 눈길을 방바닥에 떨구며 영훈을 외면했다. 영훈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경숙동무, 동무가 진행한 모의건설결과로 돌격대원들과 일부 일군들속에서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소. 지어 일부 돌격대원들은 사기가 떨어져 배낭을 꿍져지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소. 우리 아버지도 15년설에 노하여 한동안 일손을 잡지 못했소.》

경숙은 심각해졌다. 사태가 그렇게까지 엄중하게 번져질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였다. 처녀는 맘속으로 도리를 저었다.

그는 자신의 실책으로만 생각할수 없는 모의건설결과를 전적으로 부인하고싶지 않았고 그 어떤 책임추궁과 같은 질책을 받는것이 억울하였다. 경숙은 자기의 생각을 서슴없이 터놓았다.

《영훈동지, 전 뭐가 뭔지 도저히 리해할수가 없어요. 저에게 제공한 이곳 시공책임일군들의 기초자료들은 모두 명백했어요. 설계와 시공, 설비자재보장조건과 투입될수 있는 로력이며 후방조건을 비롯한 공사의 모든 요소들이며 공사대상의 지형학적 및 자연기후적영향들이 빠짐없이 장악되여있었으니까요. 저 역시 15년이라는 답이 나왔을 때 놀랐어요.

그것을 부정해보려고 시일을 소비하면서 수십차례나 거듭하여 다시 계산해보았어요. 여러가지 방정식들과 공식들을 죄다 활용하여 프로그람을 짜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어요. 도대체 오산했다는 근거를 찾을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 모의건설의 결과를 믿고 답을 독촉하는 시공책임일군들에게 서둘러 공개해버린거예요. 물론 지금과 같은 물의가 일어나리라는건 예견하지 못했지요.

영훈동지, 전 누가 뭐란대도 계산의 정확성은 주장할수 있어요.》

경숙은 열렬히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답은 확고부동했으며 도저히 부정할수 없는것이였다.

경숙은 처음으로 영훈을 고깝게 생각했다.

경숙은 자기가 지금껏 알고있던 로영훈과는 전혀 다른 그를 대하는 심정이였다. 그것은 인정과 아량을 떠난 서늘한 인간의 모습이였다.

처녀에게는 영훈의 랭랭한 모습이 그가 초면에 안겨주었던 향기그윽한 꽃다발에 대한 일종의 배신처럼 생각되는것이였다. 경숙은 대학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훈을 선망과 존경의 감정으로 따랐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동무들이 간혹 이성문제에 대하여 론할 때면 저도 몰래 영훈의 얼굴을 눈앞에 그려보며 가슴 두근거린적이 있었을뿐 그를 감히 앞날의 배우자로 점찍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저도 몰래 영훈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있었다. 그랬던 영훈이 지금은 까마득하니 멀어보이는것이 아닌가.

영훈은 경숙의 심리에는 아랑곳없이 보다 더 엄정해진 인상으로 계속했다.

《일부 사람들이 동무를 온실안의 꽃이라고 하던게 공연한 말은 아니였구만. 동무는 자기가 목격한 현실의 엄연한 진리를 리해하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되였다는걸 알기나 하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예요?》

경숙은 오연한 눈길로 영훈을 마주보았다. 얼굴이 대번에 새침해졌다.

《멀지 않게, 자신이 직접 뛰여들어 돌격대원들과 함께 힘내기도 했고 오락에도 참가했던 방금전의 일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경숙은 그 말의 의미를 직선적으로 리해했다. 처녀는 인력으로 양수기를 대신하고있던 그 현실을 자기의 15년설을 증명하는데 리용했다.

《옳아요. 그 일이야말로 15년설을 실증할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증거라고 생각해요. 초롱이나 바께쯔로 지하수를 퍼내야 한다면 건설기일이 하염없이 길어지리라는걸 왜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요?》

영훈은 단호히 부정했다.

《아니요. 돌격대원들은 세멘트생산을 늘이려고 거기에 있던 양수기를 탄광에 보냈소. 그들은 양수기가 올 때까지 기다릴수도 있었소. 하지만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찬물속에 뛰여들어 양수기를 대신하고있단 말이요. 건설장을 다 돌아보오. 이런 일들은 허다하오.

그래 콤퓨터가 과연 이런걸 계산할수 있었겠소? 동무가 막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바로 15년설을 타파하는 유력한 증거라는걸 동무는 인정할수 없었지. 온실속에만 있었으니까.》

영훈은 지나치게 격식화되고 딱딱해지려는 론리를 유연하게 하려고 빙그레 웃으며 롱말처럼 끝을 맺었다.

경숙은 영훈의 룡말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그는 영훈의 말을 부정하듯이 《어마.》하고 입을 반쯤 벌리였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15년설을 부정하기 위해서 미경이처럼 돌격대원들의 일판에 뛰여들어 《온실안의 꽃》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벗어던지자. 그는 이렇게 속으로 반발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듯싶었다.

영훈은 15년설에 대하여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쯤했으면 경숙이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앞으로 현실을 사색깊이 대하기 바라오. 왜나면 우리는 지성인이니까 현실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단 말이요.》

영훈은 조언하듯 진중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따분하고도 어성버성한 대면을 매듭짓자는것 같았다.

경숙은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살며시 자리를 일었다.

영훈의 방을 나선 그는 압력철관로건설현장에 나와있는 건설책임자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를 만날 일이 은근히 우려되였다.

책임자 역시 아들과 꼭같은 감정으로 대하면 어쩌랴 하는 생각에 만나기 전부터 마음이 죄여들었다. 15년설때문에 몹시 상심하던 나머지 그것을 계산한 장본인을 되게 추궁하려고 벼른다는 소리를 들은때문이였다.

현장지휘부앞에서 처녀는 호- 하고 날숨을 톺으며 한동안 서있었다.

안에서는 청높은 목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어째서 시공참모들을 현장에 내보내서 15년설의 부당성을 이야기해주지 않소? 물론 그걸 믿을 사람은 몇 안되지만 한두사람이라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된단 말이요.》

분명 책임자의 꾸짖음이였다.

경숙은 가슴이 한줌만 하게 졸아들었다.

어쩌면 바로 이런 순간에 나타났단 말인가.

경숙의 가슴은 불안으로 호듯호듯 뛰였다.

그 순간 나들문이 벌컥 열리면서 허우대 큰 허금호가 이마에 땀이 줄편해가지고 나오다가 경숙을 띄여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어떻게 왔소? 15년설때문에?》

허금호가 성급히 물었다.

《아닙니다. 파견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경숙이도 서둘러 대답하였다.

《파견장을 가지고 왔다?!》

금호는 두눈을 치뜨며 의문을 표시했다가 그건 내 알바가 아니라는듯 씽하니 마당으로 달려갔다.

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안에서 내다보던 로철정이 낯선 처녀를 띄여보자 예감이 들었던지 《아, 대학연구사선생이요?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던 참이요.》 하고 반겨주었다.

경숙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였다.

《추운데 어서 들어오시오, 연구사선생!》

로철정은 경숙을 선생이라고 깍듯이 존대해부르면서 의자를 권하였다. 그러나 경숙은 앉을념을 못하였다.

철정은 방금전 허금호와의 감정마찰로 흐려진 기분을 전환하기도 전에 들어선 연구사처녀에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입을 닫고있었다.

해말쑥하고 순진하게 생긴, 딸처럼 여겨지는 처녀연구사를 마주하고보니 얼마전까지 한번 되게 꾸중해주자던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연구사선생, 사업보장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시내에 있는 건설지휘부의 정보과학실에 자리잡으면 집에서 출퇴근하기도 좋고 여러모로 편리할텐데 그렇게 하는게 어떻소?》

잠간 생각하던 경숙은 가만히 도리를 저었다.

《그러지 마시고 여기 건설현장 어디에 자그마한 방이나 하나 정해주십시오. 돌격대원들속에 있고싶습니다.》

《현장에 있겠다?! 그게 오히려 낫지. 이번 모의건설의 교훈을 봐서도 현실을 떠난 과학자의 앞길은 암담하기마련이요.》

경숙은 부드럽게 질책하는 책임자의 말에 쥐구멍을 찾아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무안해하는 처녀의 마음을 헤아린 철정이 헌헌한 기색으로 말했다.

《모의건설실수때문에 너무 상심을 마오.

잘못은 선생한테 있는게 아니라 우리 시공일군들에게 있었소. 모의건설목적자체에도 문제가 있었고. 그러니 지내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달려들면 되는거요.

그럼 여기 시려단지휘부가까이에 방 한칸 내서 현장정보과학실을 꾸리도록 합시다.》

《책임자동지! 그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숙은 개운한 마음으로 사의를 표시했다.

《사업상문제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애로가 있게 되면 인차 제기해주오.》

《알겠습니다.》

경숙이 대답하고 앉아서 기다리는 사이에 철정은 전화로 김성철려단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정보과학실로 쓸 아늑한 방 한칸을 내달라고 했다.

철정은 앞으로 경숙이 해야 할 연구사업방향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건설현장이 처음인 경숙에게는 대체로 난해한 문제들이였다.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될수 있소. 그때마다 서로 토론하면서 풀어나가자구.》

경숙은 아버지처럼 친근감이 느껴지는 책임자앞에서 점차 어려움과 옹색함을 잊게 되였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손기척소리가 나더니 이미 낯을 익힌 장미경이가 방시레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책임자동지! 연구사선생의 방을 거두어놓았습니다.》

《오, 벌써?! 시려단이 귀한 손님을 알아보는구만. 연구사선생, 그럼 어서 가서 짐을 폴어놓소.》

로철정은 우선우선한 인상으로 말했다.

미경은 려단지휘부 정치부장방에 놓았던 경숙의 배낭과 들가방을 먼저 가지고 앞장서 걸어갔다.

시려단에서 정해준 방은 녀군의가 들어있는 군의실 옆방이였다. 늘 손님방으로 리용하던 방이여서 깨끗했다.

중년나이의 정숙한 녀군의가 앞으로 가까이 지내자는듯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녀들은 몸이나 마음속에 병이 생기면 숨기는게 탈이예요. 날 언니처럼 허물없이 생각해요.》

경숙은 군의녀성의 말이 고마왔다.

《알겠어요.》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