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2 장

3

추위속에서 압력관로 고정대 혼합물처넣기를 한다는 보고를 들은 철정은 이른새벽에 고정대공사장으로 달려갔다. 공사장에 다달은 그는 아연했다.

이미 맨 꼭대기까지 혼합물처넣기를 다 끝낸것 같은데도 수많은 돌격대원들이 발대목우에 올라서서 구조물주위를 겹겹이 에워싼채 휘틀이 터져나올가봐 어깨며 잔등, 두손으로 버티고있는게 아닌가. 돌격대원들은 모두 바줄당기기라도 하듯 안깐힘을 쓰면서도 멀리 평양하늘을 우러르면서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을 합창으로 부르며 꿋꿋이 버티고있었다. 나이많은 로동안전원까지 돌격대원들속에 끼워 어깨로 휘틀을 떠밀고있는것이 무언가 비정상이라는것이 느껴졌다.

자리가 없어서 발대목우에 못 올라간듯 한 콩크리트시공참모가 뜻밖에 나타난 로철정을 보자 말까지 더듬으면서 황급히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갑자기 추위가 들이닥칠것이라는 중기예보를 받은 성철려단장은 로영훈과 토론하여 이제부터 며칠동안 철야전투를 하자고 했다. 그러다가 령하 10도이하의 추위와 맞다들었다.

나래와 락엽을 넣은 수십개의 수지마대를 준비하고 혼합물치기를 진행하였다.

그날의 타입속도는 대단하였다. 로동안전원과 시공참모는 이제 더 타입을 하면 채 굳어지지 않은 혼합물의 중압이 비상히 높아져서 휘틀을 터치고 쏟아져나올거라고 위험예고를 하면서 《작업중지!》 구령을 련발하였다.

《한돌기만 더, 한돌기만 더!》

김성철과 로영훈은 배짱이 맞는 사이였다.

그들은 휘틀사이에 꺾쇠를 탕탕 쳐박으면서 설계규격대로 기어이 혼합물을 쳐올렸다.

휘틀 댄 높이는 한길도 넘었다.

작업이 마무리되였다는 안도의 숨을 쉬며 김성철이 대원들에게 뒤거두매를 하라고 지시한 뒤였다.

《휘틀이 버그러질것 같애요!》

로동안전감시근무를 서던 장미경이 새된 목소리로 아부재기를 치면서 발대목우로 뛰여올라가 금시 벌어지는 휘틀짬에서 흘러나오는 혼합물을 가슴으로 막으며 울상을 지었다.

당장 휘틀이 터지면서 수십톤의 혼합물이 사방으로 쏟아져내릴것만 같은 환각이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했다. 공포에 질린 로동안전원이 무서운 참상을 예고하면서 볼이 터지게 호각을 불어댔다.

《묻히면 다 죽는다. 물러서라!》

호각으로만은 긴급한 정황을 다 설명할수 없었던 50대의 로련한 로동안전원이 발대목우에서 삽이며 맞들이 같은 공구들을 거두고있던 돌격대윈들에게 소리쳤다.

순간 성철과 영훈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수백공수의 로력과 아까운 혼합물, 천금같은 시간을 하늘로 날려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들은 동시에 도리를 저었다.

《동무들! 우리의 힘으로 버티자!》

로영훈이 웨치면서 비호처럼 몸을 날려 휘틀에 가슴을 대였다.

《미경동무, 훌륭해…》

다급한 속에서도 영훈은 곁에 서있는 장미경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와아!

아래에 내려서서 일터를 정리하던 대원들이 나래와 락엽마대들을 안고 발대목우로 올라왔다. 잔등이며 가슴, 어깨를 들이미는 돌격대원들의 힘에 휘틀은 버그러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안심할수 없었다.

영훈은 망치를 들고 휘틀사이에 꺾쇠를 박았다.

시공참모도 로동안전원도 이제는 돌격대원들을 말릴 재간이 없다는것을 알고는 저들도 발대목우로 오르려 했다. 발대목이 휘친거렸다.

더 오르면 위험했다.

어느덧 밤이 퍽 깊었다. 돌격대원들은 벌써 두시간을 버티고있었다.

로철정이 후더운 가슴을 진정하며 시공참모의 말을 듣고나서 빨리 밤참을 준비시키라고 지시했다.

혼합물의 물기가 빠지고 초기양생이 되려면 몇시간은 더 버티고있어야 했다.

얼마 지나서 식당근무성원들이 밥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들은 두팔로 휘틀을 지지하고있는 돌격대원들의 입에 동글동글하게 빚은 줴기밥을 넣어주었다.

그들은 흔연히 미소를 지으며 밥을 받아먹었다.

《동무들, 이제 세시간만 더 지탱합시다.》

로영훈이 웨쳤다.

교대성원들이 달려왔으나 발대목우에 더 오를수 없어 안타까와 했다.

제일 힘이 약한 나어린 처녀돌격대원들을 한명, 두명씩 교대시키려 했으나 장미경을 비롯한 처녀들이 벋대는 바람에 교대를 시키지 못하고말았다.

장미경이 문득 절절한 그리움에 젖은 목소리로 노래를 떼자 돌격대원들모두가 따라불렀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

장군님 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그 순간 산밑에서 권춘옥도 그 노래를 최대출력으로 내보내였다.

한동아리로 엉켜진 돌격대원들의 심장이 뿜어내는 노래는 그들모두를 어버이장군님의 품으로 가까이 이끌어가는듯 했다.

로철정은 당장 수십톤의 혼합물이 터져나와 모두 묻힐수도 있는 위급한 순간에도 어버이장군님을 그리며 두렴없이 삶의 순간순간을 바쳐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후더운 눈물을 머금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해돋이가 시작되였다.

시공책임자가 초기양생이 끝났으니 모두 내려오라고 하였다. 돌격대원들은 휘틀에서 손을 뗐으나 대부분이 온몸에 강직이 와서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먼저 강직이 풀린 동무들이 어깨와 팔다리가 곧아져서 자체로 움직일수 없는 동무들을 하나둘 부축하여 아래로 내려보내였다.

강직이 풀리지 않은 돌격대원들을 림시로 천막을 친 구급치료실에 눕히였다. 군의들과 간호원들, 의학상식이 있는 제대군인출신의 돌격대원들은 누워있는 동무들의 강직을 풀기 위한 안마에 땀을 흘리고있었다.

로철정은 김성철과 아들의 처사에 속이 불끈 치밀었으나 나무랄수 없어 꾹 참고 돌격대원들의 모습만을 정겹게 바라볼뿐이였다.

지휘관들의 지령과 호소에 서슴없이 한몸내댄 돌격대원들이 한없이 대견하고 미더웠다.

하지만 이런 일을 장려하고 두둔할것이 못되였다.

철정은 영훈이 다른 동무들보다 먼저 강직이 풀리여 어깨부위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일어나앉는것을 보았다. 영훈은 아버지를 향하여 근심을 끼쳐 미안하다는듯 어줍은 눈인사를 보내였다. 철정은 엄한 눈길로 아들과 김성철을 질책하면서도 대원들만은 후더운 감정으로 여겨보았다. 그러던 그는 문득 놀랐다. 자주색목도리로 얼굴을 푹 싸매고 맨끝 침대에 자는듯 누워있는 리경숙을 띄여본것이였다. 군의가 방금 캄파를 놓고난 뒤였다. 그와 제일 처음으로 낯을 익혔던 장미경이 《소금꽃》언니의 어깨며 잔등을 조심히 주무르며 눈물이 글썽해서 중얼거리였다.

《우리 작업조도 아니면서 왜 날마다 올라와서 밤을 밝힌담. 전번날엔 콤퓨터조작을 하다가 깜박 졸아 큰 실수를 했다더니. 변장까지 하고 나왔으니 캄캄한 밤에 누가 알수가 있었을가.》

철정은 그앞에 이르러 말없이 서있었다.

미경은 앉은자리에서 어줍게 인사를 한다.

드디여 눈을 뜬 경숙이 화뜰 놀라며 웃몸을 일으켰다. 몹시 죄송스러운 인상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인채 로철정에게 사죄했다.

《근심을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전 약골인가봅니다.》

《아니요. 내가 일을 쓰게 못하여 선생까지 이런 일에 뛰여들게 해서 안됐소.

하지만 선생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단독임무가 있다는걸 잊어선 안되오. 육체적으로 무리하다가 콤퓨터조작에서 실수라도 한다면 건설에 큰 지장을 줄수 있소.》

이번의 일은 경숙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고초였을것이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준 계기로 되였을것이다.

영훈에게로 눈길을 돌린 철정은 하많은 생각에 잠기였다.

흔히 젊은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내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이 항용 부정적결과를 낳는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예측할수 없는 장벽에 부딪칠 때도 있는것이다.

젊은 혈기에 들떠서 일을 그르칠수도 있는 바로 이런 점을 경계해야 한다.

한편으로 로철정은 아들곁에 로숙한 지휘관이며 인정도 많은 김성철이 있는것으로 하여 마음이 놓이였다. 오늘 일만 해도 그러했다.

아무런 보온대책도 없이 그 일을 벌렸다면 철정은 돌격대원들이 그 어떤 위훈을 보여주었다 해도 결코 묵과하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면밀하고 주도세밀하였던가.

구조물둘레의 휘틀에는 나래와 가랑잎을 담은 마대들이 빈틈없이 둘러쳐있었다.

이런 일본새라면 아무리 혹한이 들이닥친다 해도 얼마든지 일을 내밀수 있지 않겠는가.

철정은 순간에 기존의 모든 공법들을 부정해버리고싶었다.

그렇다, 모든 공법들에는 그것을 수행해야 할 인간들의 의지와 정신력이 전혀 반영되여있지 않는것이다.

순간 철정은 《아니다!》 하고 자신의 사고를 부정해보았다. 자연과 법칙앞에서 랭정해야 할 자신마저 그렇게 사고해서는 안될것이였다.

그렇다면, 모든 기존의 공법에 무조건 순응해야만 한다면 과연 우리의 건설이 15년이나 걸려야 한다는 계산을 무엇으로 부정한단 말인가.

영훈은 아버지의 한걸음 뒤에 조용히 서있었다.

과묵하기도 했고 또 열변가이기도 한 아버지가 침묵을 지킬 때 그의 뇌리에서는 하많은 사색이 나래치고있다는것을 아들은 알고있었다.

영훈은 아버지의 심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하는 미립이 있었다. 그는 밤사이 김성철과 목터지게 다툰 로동안전원이 먼발치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을 보자 슬며시 아버지곁에서 자리를 떴다.

철정은 이제 로동안전원이 무슨 말을 하리라는걸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있었다.

로철정은 칭찬할수도 없고 욕할수도 없는 모순된 심정을 안고 지난밤의 고정대타입장을 올려다보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섬찍하였다.

안변청년2호건설때부터 함께 일해온 로동안전원이 철정의 곁에 다가섰다.

《책임자동지, 이거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공법의 요구와 로동안전규정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냅다 밀기만 하니 우리 같은 직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늘 훼방군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입니다.》

60나이에 가까운 로동안전원은 영훈네를 당장 터질듯 한 휘틀에서 떼여내려고 얼마나 소리를 쳤던지 목이 다 쉬여버렸다. 호각을 불다불다 소리가 나지 않아 웬일인가 했더니 입바람을 너무 세게 내뿜어서 안에 있는 거품수지알맹이가 공기구멍을 콱 막아버렸다는것이였다.

《난 성철동무의 려단에서 일할것 같지 못합니다.

정치부장도 려단장과 배짱이 꼭 맞습니다. 아무리 소리질러야 이가 들어먹습니까? 나중엔 별수없이 나까지 휘틀을 버티고서있을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눈물이 그렁하여 하소연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돌격대원들과 함께 지새운 간밤의 다섯시간이 그를 무척 격동시켰던 모양이였다.

《참 놀랍게도 담대한 사람들이거던요.》

로동안전원은 성철이네를 나무람하면서도 그들의 무비의 결단성에만은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알겠소. 로동안전원동무, 로동안전규정과 공법의 요구를 무시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주겠소.》

로동안전원이 돌아간 뒤 로철정은 《구조물사수》라는 전례없던 일을 두고 생각이 많아졌다. 성철과 영훈은 마치 커다란 위훈이라도 떨친것처럼 득의만면한 인상이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다면 그야말로 만회할수 없는 사고를 저지를수도 있는것이였다. 이것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문제였다.

철정은 아들을 불러 조용히 타일렀다.

《난 과잉타입과 소위 구조물사수라는걸 긍정할수가 없다. 너희들이 객관적인 환경과 시공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냅다 밀기만 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돌격대원들을 그렇게 혹사하는게 아니다. 우리 돌격대원들은 당장 위험이 눈앞에 닥친다 해도 지휘원들이 앞으롯! 하면 쓰러질지언정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정신력을 람용해서는 안된다.》

로영훈은 천만뜻밖이라는듯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결과는 우리가 옳았습니다. 180프로를 해내지 않았습니까.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다 가리다가는 언제 공사를 해내겠습니까.》

철정은 노여웠다.

《아니다.

대원들의 건강과 생명안전을 침해하는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나는 허용할수 없다.

돌격대원들가운데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동무들도 없지 않기때문이다.

욕망 그자체가 실적이 아니야. 너는 정치사업을 맡고있는 이상 사람들을 원칙적으로 대하는 버릇을 키워야 한다. 어느것이 옳고 그르며 어느것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한가를 정확히 판단하는 눈을 가져야 한단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네가 실력전의 요구에 맞게 두뇌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모험과 만용에 매달린다면 그건 당이 바라는 자력갱생이 아니라는걸 명심해라. 성철려단장에게도 말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완력행사는 당장 중지해라.》

아버지의 엄정한 타이름에 영훈은 고개가 숙어졌다.

철정은 무언가 잊은게 있는듯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말했다.

《그 연구사선생을 잘 도와주어라. 어제 밤처럼 그가 육체적으로 혹사하다가 본신임무에 지장을 받게 해서는 안된다.》

《알겠습니다. 그 동무는 아마 건설장에 처음 나오다보니 모든 일에 다 뛰여들어보고싶은 모양입니다.》

《그러게 너희들이 인간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방조를 주어 본신임무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하란 말이다.》

철정은 절절하게 당부했다.

《아버지, 제 한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이냐?》

《저, 경숙동무 말입니다. 지내 무거운 임무는 지우지 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담이 약하고 정신적으로 단련이 부족해서 15년설때처럼 실패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훈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게 되면 혁신적인 발견을 할수도 있지 않겠느냐. 나는 그 선생의 이러한 점을 중시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앞으로 중요한 연구과제도 주자고 한다.》

《아버지, 지나친 믿음은 실망을 가져올수도 있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우리가 잘 도와주어야지.》

철정은 아들의 걱정이 공연한것이라고 단정하고나서 문득 생각난듯 부언했다.

《가만, 너 방금전에 뭐라고 했니? 실력은 있는데 정신적준비가 부족하다? 그 론리자체가 비정상이야. 우리 시대 과학자, 기술자들의 실력이란 정신력과 별개의것으로 존재하지 않기때문이야. 얼마 지내보지는 않았지만 난 경숙선생을 믿고싶구나. 15년설이라는거야 사실 그 선생의 실책은 아니였어. 시공일군들이 모든 정보자료를 기계적으로 제공한탓이지.

우리가 잘 이끌어서 발전소건설이 끝날 때 나무랄데 없는 과학기술인재를 한명 배출시킨다면 발전소를 일떠세운것 못지 않는 자랑이 아니겠니!》

철정은 기대어린 눈길로 영훈을 바라보았다.

영훈은 비주름히 미소를 지을뿐 대꾸하지 않았다.

《리경숙선생의 정보과학실을 어떻게 꾸려주었는지 돌려보아야겠다.》

활기띤 건설장의 새날이 시작되였다. 로철정은 해가 퍼그나 올라오자 정보과학실을 찾아갔다. 성철려단장에게 정보과학실을 잘 꾸려주라고 했는데 어떤지 알아볼겸 경숙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있었던것이다.

경숙이 반색을 하며 문을 열었다. 콤퓨터가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 침대가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철정은 변압기스위치를 넣어 전압을 확인한 뒤 콤퓨터를 가동시켜보았다. 모든게 정상이였다.

《현장과 가까운 정보과학실이 괜찮구만. 우린 선생에 대한 기대가 크오. 압력관로고정대 혼합물치기를 겨울조건에서도 무조건 해야만 하는데 어제 저녁처럼 실천만을 생각하면서 공사규정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혹사하는 방법으로 해서는 안되오.

기존공법과 계절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기 위한 프로그람작성에 선생이 수고해주어야겠소. 당장은 고정대시공을 겨울조건에서 할수 있는 방법을 해결하고 그다음에는 30만산대발파와 관련한 복잡한 계산과 프로그람작성을 맡아야 하오.》

책임자의 믿음에 경숙은 가슴 뻐근한 중압을 느끼며 대답했다.

《힘자라는껏 해내겠습니다.》

《고맙소. 정보과학실의 모든 일을 실무적으로 대하지 마오.

선생의 연구결과가 대중에게 힘을 주어 건설을 추동할수도 있고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소.》

《알았습니다.》

경숙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대답하였다.

로철정은 처녀연구사의 발랄하고 생기있는 모습이 막내딸과 비슷하게 느껴져 전혀 남처럼 대하게 되지 않았다. 실례되는줄 알면서도 처녀의 나이며, 고향, 집주소와 부모들의 안부까지 까근까근 물어보았다.

경숙은 부끄럼을 타면서도 철정의 물음에 하나하나 공손히 대답하였다.

《다르겐 생각지 마오. 나에게도 연구사선생또래의 딸애가 있다오. 선생, 오늘은 좀 쉬면서 몸을 풀라구.》

철정은 이내 돌아서 나왔다.

몇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허금호가 기다리고있다가 막아섰다.

저으기 흥분된 인상이였으나 분을 누르면서 그가 말했다.

《로동무, 어제 밤 김성철동무네 려단의 소식을 들었소?》

《새벽에 직접 목격했지요.》

로철정은 침중하게 대답했다.

허금호는 매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시공책임자도 모르게 그런 모험을 저지르다니. 난 정말 심장이 졸아드는것만 같구려.

이거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가만 놔두면 어찌겠소?》

《알아들을만치 이야기를 해주었소.》

《그렇게나 해서 되겠소? 책임있는 사람들은 처벌도 하고 다시는 겨울철시공을 못하도록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아야지요.》

로철정이 진중한 인상으로 말했다.

《내가 제때에 옳은 방법론을 찾아 내놓지 못한게 잘못이요. 하지만 겨울조건에서도 할수 있는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우고 공사를 내밀자는거요.》

허금호가 못마땅한듯 혀를 찼다.

《책임자동무가 은근히 눈을 감아주니까 밑에서는 불인지 물인지도 모르고 뛰여든단 말이요.

정말 이러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겠소.》

책임자는 허금호의 흥분된 마음을 눙쳐주려고 조용한 음성으로 다시한번 사죄했다.

《이번 일은 다 내탓이요. 회의에서 비판하구려.》

《원, 책임자동무두. 한사람 비판이나 해서 끝날 일이요?》

허금호는 더 말해야 책임자를 납득시킬수 없다는것을 느끼고는 화제를 돌리였다.

《갈수록 험산이라구 시, 군들에서 이번에 교대해보낸 돌격대원들을 좀 보시우. 여기서 일을 웬만치 배울가 하면 데려가고는 책상물림의 햇내기가 아니면 전탕 녀자들만 보내거던요. 저길 좀 보시오.》

건물앞 양지쪽에 해빛쪼임을 하느라고 흩어져있는 신입대원들이 눈에 뜨이자 철정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대렬참모가 성급히 《모엿!》 구령을 주자 신입대원들이 서둘러 대렬을 지었다.

애티나는 처녀총각들이 대부분이였다.

대렬참모가 로철정의 귀전에 입바람을 끼얹었다.

《각 려단들에 데리고가다가 책임자동지한테 우정 선보이자고 들렸습니다. 우리 건설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우습게 본단 말입니다.

우에서 한번 된바람을 일으키게 해주십시오.》

철정은 묵묵히 키가 작거나 몸매가 겨릅대같은, 목이 헐끔하고 애리애리한 책상물림의 처녀총각들을 한눈에 주욱 훑어보았다.

그러던 그는 대렬앞에 다가서면서 한사람한사람 고향이며 이름들을 물었다.

《동문 어디서 왔소?》

《옛 신길남! 철령마을이 고향입니다.》

키가 작고 몸매도 약한 총각이 제법 가슴을 쭉 펴고 여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년근위대에서 배웠을 제식동작을 효과있게 써먹은 꼬맹이대원은 사람들이 자기의 모양을 보고 웃음보라도 터뜨릴가 저어하듯 엄숙한 표정을 짓기에 애썼다.

철정은 거울앞에서 련습이라도 하고온듯 한 총각의 모습이 우스웠으나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다음에 선 대원앞으로 한걸음 옮겨디디였다.

총각은 울대뻐가 전혀 두드러져있지 않는 처녀애들의 목처럼 매끈하고 말쑥한 목을 길게 솟구었다.

《대원 강창길! 351고지아래 고성군 월비산리에서 왔습니다!》

량볼이 발깃하고 눈이 작은 총각이 장한 일이라도 한듯 의젓한 자세를 취하였다.

로철정은 대렬참모의 불만을 부정하듯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참모는 철정의 마뜩지 않아하는 눈길의 의미를 리해할수 없어 어줍은 인상으로 귀바퀴를 매만지였다.

로철정은 그렇게 한사람한사람 다 마주서보았다.

대답들은 모두 씩씩했고 긍지로왔다.

어떤 친구는 1211고지 아래동네에서, 어떤 친구는 오성산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맨 마감에 철정은 키가 유난히 작고 얼굴에 솜털이 보르르한 신입대원앞에 이르러 이 친구야말로 나이를 속이고 온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몇살인가고 물었다.

《열일곱살 아홉달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는 누가 부정이라도 할가봐 저어하듯 스스로 자기를 긍정하기에 바빴다.

《고향은?》

《법동입니다.》

그 바람에 대오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법동산골내기》, 《법동감자바우》라는 말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러자 그는 《웃지 마십시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법동농민입니다.》 라고 크게 웨치며 발뒤꿈치를 높이였다.

로철정은 순간 온몸이 후덥게 달아올랐다. 벙글거리던 주위사람들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로철정은 대견한 눈길로 대오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모두가 새롭게 돋보였다.

그 어떤 이름 못할 긍지와 자부심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이처럼 훌륭한 고장에 태를 묻은 청년들을 데려오고도 겉만 보고 불만스러워하던 대렬참모가 민망스러웠다. 어느새 이 자리에 나타났는지 모를 김성철이 그 인원들을 모두 자기네 려단에 배치해달라고 했다.

《안되오. 이런 보배들은 골고루 보내주어야 하오.》

로철정은 속으로 (그래야 해, 그래야 하구말구.)라고 뇌이면서 즐거운 눈매로 대렬참모를 바라보았다.

《동문 정말 좋은 젊은이들을 데려오고도 미안해하는구만. 어서 배치하도록 하오.》

그런 뒤 철정은 대렬참모에게 조용히 일렀다.

《참모동무, 다시는 사람타발을 하지 말기요.

애어리다, 약골이다, 무기능공이다 하고 타발을 하는데 그래 하늘에서 무슨 장수들이 떨어져내려올줄 알았소? 사람타발하는건 강원도사람답지 않은 행동이요. 이 동무들의 대답을 들어보았지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강원도인민들은 전투원이라고 높이 불러주신걸 긍지로 여기는 이들은 강원땅의 물과 공기를 마시고 자란걸 대단하게 생각하고있단 말이요.》

대렬참모가 반성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느꼈으면 됐소.》

대렬참모가 신입대원들을 마당 한쪽으로 인솔해가자 철정은 허금호를 허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금호는 눈길을 피하며 어줍어했다.

《허동무, 동무는 어째서 사람들을 겉모양으로만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소? 이제 방금 신입대원들모두가 자기 고장에 대한 긍지로 가슴부풀어있는걸 보았지요. 그런 애국심을 지닌 청년들이 어떻게 일하리라는건 불보듯 명백하지 않소.》

허금호는 그럴줄 몰랐다는듯 우물우물 대꾸했다.

《그들의 대답을 듣기 전에 겉만 보고 잘못 생각했댔소.》

《그처럼 자랑높은 고장들을 늘 가슴에 지니고있는 청년들이 어려울때 뒤전에 설것 같소?》

철정의 물음에 허금호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고말았다.

철정은 이즈음에 와서 허금호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였다. 며칠전에 사업상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미스러운 문제가 제기되자 그의 입에서 이제 더는 힘들어서 직무를 감당해낼것 같지 못하다는 맥풀린 소리가 나왔다.

철정은 허금호가 이렇게 나가다가는 필경 손들고 나앉을수도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신입돌격대원들과 헤여진 로철정이 건설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먼발치에서 50대의 장년이 재빨리 달려왔다. 퍼그나 낯익은 모색이였다.

가까이에 다가온 그는 철정을 반기며 인사하였다.

《지배인동지! 제 리민영입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순간 철정의 눈빛은 반가움에 물젖었다.

그가 십여년전에 기계공장 지배인으로 있을 때 로동자로 일하면서 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산골군 기초식품공장에 자진하여 나갔던 친구였다.

《민영동무가 어떻게 왔소?》

철정은 반기며 물었다.

《저》 민영은 순간에 사연을 설명할수 없다는듯 잠시 바재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산골군 기초식품공장에서 기술일군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몇년전에는 부지배인이 되여 공장을 현대적으로 개건하고 생산능력을 확장하는데 달라붙어 공장의 면모를 일신시키였다.

그런데 문제는 전기였다. 애써 마련한 현대적설비도 전기가 제대로 오지 않으니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는 생각하던 끝에 공장에서 여러명의 로동자들을 데리고 여기로 달려왔다는것이였다.

《지배인동지! 군대때 포견인차운전사였으니 대형자동차를 하나 맡겨주시면 있는 힘껏 끌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런데 어쩐다? 대형차를 당장 맡길수 없으니. 페기되여 세워놓은 차들이 몇대 있긴 한데 공력을 많이 들여야 살릴걸세.》

그러자 리민영이 활기있게 대답했다.

《차틀거리만 있다면 제가 힘껏 주어다 맞추어 굴려보겠습니다.》

로철정은 쾌히 수긍하였다.

《그렇게 하자구. 수송대대에 련락을 해줄테니 그리로 가게. 그리고 차를 살리다가 정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찾아오라구. 가능한껏 도와줄테니.》

《알았습니다.》

리민영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돌아섰다.

철정은 미더운 눈길로 그를 바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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