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2 장

5

경숙은 고향도시의 바다가에 서있었다.

해안은 기막히게 들쑹날쑹했다.

만이 있어 바다물이 륙지로 우묵하게 쳐들어와 부두나 잔교들을 들이받으며 생트집을 걸듯 싱갱이질을 하는가 하면 거대한 낚시대마냥 바다가운데로 불쑥 내여민 명사십리와 호도반도 그리고 시내 앞바다에서 충직한 파수병의 눈빛인양 끊임없이 번쩍거리는 장덕섬의 등대와 잇닿은 길다란 방파제들로 이루어진 기묘한 지형지물은 바다기슭에 나선 사람들을 황홀경에 잠기게 한다.

백사장과 무성한 소나무수림, 짠물냄새에 정을 두고 아름답게 피여나는 해당화로 하여 이름높은 송도원은 자연이 준 매력과 더불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소년단야영소와 새 세기에 들어와 더욱 현대적으로 꾸려진 형형색색의 관광편의봉사시설로 하여 여름철이면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군 한다.

바다에서 들여다보면 해안가에 정박해있는 크고작은 려객선들과 대형화물선들, 부지런히 드나드는 고기배들이 떠있는 기슭으로부터 별로 멀지 않게 솟아있는 동명산의 우뚝우뚝한 흰 아빠트들이 눈부시게 안겨온다.

원산은 어느곳에서나 해안가에서 도보로 십분이나 이십분이내에 산등성이와 마주서게 된다.

이처럼 산을 가까이에 끼고있는 시가지여서 밤에 전기불이 켜지면 산기슭에 서있는 집집의 창문들에서 내비치는 수천수만의 불빛으로 하여 시내바닥은 가로등을 켜지 않은 때에도 대낮처럼 밝았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과 함께 들이닥친 동력난으로 하여 밤이면 도시는 어둠에 잠기군 했다.

어버이장군님께서 캄캄한 밤중에 고향도시를 지나 철령넘어 최전연초소로 가시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경숙은 가슴 아릿한 괴로움에 젖어들군 하였다. 하여 그는 발전소건설장에 나온것을 다행으로 여기는것이였다.

경숙은 정든 고향도시의 해안거리를 걸었다.

바라보이는 집집의 창문들이, 다가오는 갈매기형의 가로등들이 어서빨리 전기를 일으켜 항구문화도시의 풍치를 더 휘황하게 해달라고 속삭이며 당부하는듯 했다.

경숙은 지금 도도서관의 정보과학실로 가는 길이였다. 30만산지향성 대발파보장을 위한 지질자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며칠전에 있은 협의회이후에 경숙은 판자와 비닐박막을 자재로 한 보온가설막의 최소용적을 정확히 산출하여 설계실에 넘겨주었다.

설계실에선 하루나 이틀어간에 가설막설계를 내놓겠다고 했다.

로철정은 경숙을 도도서관 정보과학실로 내보내면서 전에없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었다.

《연구사선생! 내 선생을 믿고 속에 있는 소리를 털어놓소. 난 이즈음에 고민이 크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고민은 죄다 내자신이 빚어낸거요. 될수록 나라에 손 내밀지 않으면서 건설을 다그쳐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자니 기존의 모든 공법에 도전하게 되고 우리 힘으로는 안된다는것도 기어이 해내고싶단 말이요. 그러자니 앞에 어려운 과제들을 수없이 내세웠는데 일부 사람들은 주관주의니 모험이니 하고 꺼려하는구려. 사실 그럴만도 하오. 없는게 너무도 많은데다가 이전에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벌려놓자니 왜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겠소. 게다가 아직은 완벽한 과학적담보를 하지 못하고있는 일들이 대부분이요. 경숙선생도 알다싶이 매사에 과학과 기술이 안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느 하나도 성공하기가 어렵소. 난 선생이 이 일에서 크게 한몫 담당해주기를 바라오.》

경숙은 책임자의 믿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15년설의 후유증도 채 가셔지지 않았는데 자기를 그처럼 믿다니, 경숙은 맨손과 완력으로가 아니라 매사에 과학과 기술을 선행시켜 자체의 힘으로 공사를 이끌어가려는 책임자가 돋보였고 딸같은 자기에게 심중의 아픔을 무랍없이 터놓는것이 고마왔다.

《책임자동지, 제 힘자라는껏 노력하겠습니다.》

경숙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대답하였다.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며 미소를 짓는 처녀의 눈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감 같은것이 어려있었다.

로철정은 화색을 띠우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책임자의 사무탁우에서 전화종이 울렸다.

전화를 건 상대방이 뭐라고 한동안 설명을 했다.

철정의 갱핏한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

《항만보수지배인동무, 정말 수고 많았소.

잠수공들에게 나의 인사를 전해주오.》

전화를 끝낸 책임자는 경숙을 향하여 기쁨어린 눈길을 보냈다.

《걸렸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했소.

조만간 철근도 풀리고 세멘트생산도 정상궤도에 오르게 될거요.》

경숙은 오랜만에 책임자의 밝은 얼굴을 보게 되여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개운해졌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철정은 《경숙선생, 이제부터 이렇게 합시다.》하면서 경숙을 가까이 오라고 손짓으로 불렀다.

경숙은 철정이 가리키는 의자에 앉았다.

《선생은 도도서관 정보과학실에 가서 얼마동안 지질학에 대한 연구를 해야겠소. 구룡언제가 들어앉게 될 주변의 지향성대발파 대상들에 대한 지질조사가 기본이요.

파악하기 힘든 문제들은 인민대학습당과 김책공업종합대학 지질학부와의 인터네트망을 통하여 명백히 료해하도록 해야 하오.

이번에 우리는 현대적인 CT탐사법을 도입하여 종래의 시추탐사방법으로 소비되던 시간을 벌충하자는거요.

선생도 알겠지만 세계는 지금 의학분야에서 인체의 검진에 리용하던 CT법을 지질탐사를 비롯한 적지 않은 분야에 리용하고있소. 우리라고 왜 남이 하는 좋은 방법을 외면하고 종래의 방법에 매여달리겠소.》

경숙은 이미전에 CT탐사법의 원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배워둔적이 있었다.

탐사하려는 매질에 전류를 통과시켜 되돌아오는 전류의 값을 콤퓨터로 측정하면 지질속내를 구체적으로 알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콤퓨터수재라고 해도 지질학에 정통해야만 CT탐사를 원만히 감당할수 있다.

경숙은 지질학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있었다.

로철정은 경숙의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있었다.

《그럼 이번에 대학 하나를 마치는셈치고 품을 넣어서 CT탐사와 지질학에 정통해가지고 돌아오오.》

철정은 믿음과 기대가 비껴있는 눈길로 경숙을 바라보았다.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경숙은 나부시 인사를 한 뒤 책임자방을 나섰던것이다.

경숙은 며칠동안 마식령산줄기와 구룡지구의 지질구조, 특히 30만산을 비롯한 크고작은 150만립방에 달하는 산들의 지형과 심부형성에 대한 자료들을 꾸준히 연구하였다.

보름남짓한 탐구과정에 그는 드디여 CT탐사를 현지에서 진행할수 있는 준비를 원만히 갖춘 뒤 여러권의 지질참고도서까지 가지고 도서관을 나섰다.

해는 어느덧 서산우에 걸리였다.

밖에 나오니 신선한 바다바람이 써늘하게 얼굴을 스치였다. 처녀는 바다를 사랑했다. 그의 집은 동명산중턱에 있어서 창문으로 내다보면 한폭의 풍경화처럼 바다가 바라보였다. 가없이 넓은 망망대해를 마주하고있노라면 온갖 공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막혔던 프로그람의 실머리가 풀릴 때도 적지 않았다.

이제 건설장에 올라가면 오래도록 바다와 떨어져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해안유보도를 걸으며 바다에 눈길을 주었다.

해빛을 받아 수없이 반짝이는 잔물결은 산산이 부서졌다가는 다시 일어나군 했다. 갈매기들이 끼익끼익 우짖으며 날아옜다. 시인들이 투쟁과 행복의 상징으로 종종 노래하는 갈매기가 그는 부러웠다.

한동안 바다에 눈길을 주고 서있던 경숙은 문득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였다. 한초가 새로운 때에 이렇게 서있는게 아니였다. 믿음을 주어 보낸 로철정책임자의 모습이 눈앞을 막아섰다.

한시바삐 건설장으로 가야 했다.

집에 가서 서둘러 떠나야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놀라며 막아섰다.

《날이 저무는데 래일 아침에 일찍 떠나려무나.》

《어머니, 안돼요. 아까운 시간을 잃어요.》

《원, 애두. 떠나면 밤이 되겠는데 하루저녁 자고 간다고 큰일나겠느냐?》

《어머니, 모두 절 기다려요. 제가 늦으면 건설도 그만치 늦어진다고 했어요.》

《네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맡았단 말이냐? 그렇다면야 가야지.》 어머니는 드디여 겨울옷가지들과 간식, 간단한 비상약품들을 준비했던대로 꾸려주었다.

《어머니, 내 이제 머지않아 전기를 끌고와요.》

경숙은 불룩한 배낭을 지고 묵직한 책가방을 멘채 나들문을 나서며 싱그레 웃어보였다.

《오냐, 그래라. 나도 힘껏 지원하겠다.》

경숙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 뒤 걸음을 다그쳐 큰길에 나섰다. 무궤도전차정류소에서 잠시 기다리니 전차가 도착했다. 종점에서 내린 경숙은 발전소건설지휘부에 들리였다.

종합분과에 가서 1호발전소건설장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는가고 물으니 후방물자를 실은 차가 곧 들렸다가 간다고 했다.

얼마후에 대형자동차가 들어왔다.

물자를 부리고 싣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였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다.

자동차는 시내에 있는 여러 기업소와 기관들을 돌면서 일을 보느라 늦어졌다고 했다. 차가 여기저기 들리는 사이에 1호발전소로 가는 돌격대원들이 벌써 적지 않게 타고있었다.

짐싣기를 끝낸 자동차는 곧 떠날 차비를 했다.

경숙은 운전칸을 향하여 조급하게 소리쳤다.

《운전사동지, 좀 태워주세요. 1호발전소건설장까지 가는 돌격대원이예요.》

나이지긋한 운전사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짓으로 적재함을 가리켰다. 대형화물차여서 적재함이 퍼그나 높았다.

경숙은 어데로 올라가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좀 도와주세요.》

처녀는 발을 구르며 방조를 청하였다.

뜻밖에도 적재함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경숙동무로구만. 나요.》

로영훈이였다. 뜻밖에도 영훈을 만난 경숙은 무춤 굳어졌다.

얼마동안 떨어져있었지만 첫날 받았던 고까운 감정이 아직도 가슴속에 서려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정치부장동지, 어떻게 여기에 왔어요?》

경숙은 영훈을 직무로 부르며 선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훈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왔댔소. 자, 어서 배낭부터 올려보내오.》

영훈은 웃몸을 깊숙이 숙여 배낭을 받아올린 뒤 발디디개 있는쪽을 대주었다.

경숙은 공사용대형차적재함에 처음 타보는지라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다.

로영훈이 허리를 굽혀 손잡아이끌어주었다.

안깐힘을 쓰며 적재함에 올라온 경숙은 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나서 인사치레로 한마디 했다.

《영훈동지 없었으면 혼날번 했네.》

《나도 경숙동무를 만나 심심치 않게 되였소. 자, 어서 자리를 잡고 앉읍시다.》

영훈이 활달한 몸짓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차에는 후방물자를 적당히 실었는데 올라탄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기저기에 앉을 자리가 많았다.

영훈은 알맞춤한 자리에 경숙을 앉힌 다음 자기도 그곁에 나란히 앉았다.

《부모님들은 모두 잘있소?》

영훈의 물음에 경숙은 흥심없이 대답했다.

《예, 별일 없어요.》

어쩐지 이전에는 동등한 자격으로 영훈을 대했다면 지금에 와서는 인격적으로나 직무상의 간격을 느끼는 경숙이였다. 그래서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기가 어려웠다. 처녀는 객관적현실을 보는 관점이며 거기서 느끼는 감각마저도 영훈과 까마득하게 차이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건설장에 나가자마자 첫걸음으로 뛰여들었던 작업장에서 목격한 현실에 대한 견해마저도 자신은 영훈과 판이했다. 자기는 물초롱으로 기초바닥의 물을 퍼내서야 어느 세월에 공사를 끝내랴 하고 아득하게 생각했다면 영훈은 대중의 그러한 창조적열의가 모이고모여 공사가 훨씬 앞당겨진다고 했다.

경숙은 그러한 영훈의 주장이 억지스럽게 여겨졌다.

처녀는 지금도 현실을 떠난 온실안의 꽃이라고 질책하던 영훈의 서늘한 눈매가 자주 떠올랐다. 현실을 사색있게 대하라, 현실의 본질을 정학히 파악하라고 훈시하듯 하던 영훈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경숙은 로영훈도 처음 나왔을 때의 감정으로 자기를 대할것 같아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영훈이 부모들의 안부를 물으며 관심해주자 어느 정도 마음이 너누룩해졌다.

영훈은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난 경숙동무가 이렇게 빨리 돌아올줄은 몰랐소. 그래 갔던 일은 다 제대로 되였소?》

영훈은 한달이나 그 이상이 걸릴줄 알았는데 보름남짓이 있다가 돌아오는 일이 리해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경숙은 어느덧 마음이 개운해졌다. 다시는 영훈과 마주서서 입을 열것 같지 않았는데 인간의 심리란 참 알다가도 모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녀는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일은 대체로 다 되였습니다. 도서관 정보과학실의 사서들이 발전소건설장에서 내려왔다고 했더니 만사를 젖혀놓고 도와나섰답니다.

사서들가운데는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도 있었답니다.》

경숙은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정색해졌다.

《제가 능력에 비해 큰 일감을 맡은것만 같애요. 벅차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걸요.》

《경숙동무, 자연스러운 심리요. 우리 함께 힘을 합쳐서 능력껏 해보잔 말이요. 힘이 모자라면 나도 도와나서겠소.》

영훈의 열정적인 호소에 경숙은 몇십배의 힘이 샘솟는것을 느끼였다.

《가장 실리있는 대발파프로그람을 작성해서 30만산을 통채로 날려보내여 강원땅에도 이런 실력자들이 있다는걸 보여줍시다.》

《야,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가요. 그렇지만 저를 지나치게 믿지는 마세요. 공사기일을 잘못 계산했던것처럼 오발파라도 할가봐 두려워요.》

《오산이 안되도록 해야지. 정복해야 할 공사대상과 공사에 투입되는 제 요소들을 정확히 계산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제일 중요한것은 자연을 정복하고 개조하는 강원도인민들의 정신력과 의지! 이걸 첫자리에 놓아야 할거요.

경숙동무, 우리 대학이 어떤 대학이요?

조군실영웅의 이름을 지닌 대학,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띄워올리는데 이바지한 과학자들을 적지 않게 배출시킨 권위있는 대학이요.

난 이번에 경숙동무가 세상을 깜짝 놀래울 대발파프로그람을 작성하리라고 믿소.》

영훈은 경숙을 고무하고 긍정하느라니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후더워졌다.

경숙이도 영훈의 믿음어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잠시 이야기가 동강이 났다.

경숙은 영훈이 무슨 일로 시내에 나왔는가고 물었다. 영훈은 갑자르는듯 하더니 솔직히 대답했다.

《시당위원회에서 불러서 갔댔소. 이번 일(구조물사건말이요.)때문에 론의가 있었소.

려단장이 일욕심으로 시공규정을 어기고 냅다 밀 때는 정치일군이 바로잡아주어야지 함께 말려돌아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수 없다는거요.》

영훈은 기분이 퍼그나 가라앉은 인상이였다.

《옳은 지적이였구만요. 나도 처음엔 그 일을 장하게 여겼어요. 거기에 어깨를 내댔던걸 긍지롭게 생각하면서 려단장동지와 영훈동지의 일욕심을 긍정했댔지요. 그런데 책임자동지의 말씀을 듣고보니 그게 아니였어요.

사실 영훈동지한텐 즉흥적이고 과격한 성격적결함이 있어요. 가슴아프겠지만 내 말도 참작하세요.》

경숙은 이야기하면서 영훈의 기분을 가늠했다.

별로 흥뜬 기분이 아니였다.

경숙은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계속했다.

《생각나세요? 졸업시험때 콤퓨터프로그람작성에서 4점을 맞던 일말예요. 그땐 저도 영훈동지가 실수한걸로 여기면서 평상시성적을 고려하여 5점으로 올려주자고 과목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볼가 했었지요. 그러자 영훈동지는 오히려 나를 나무라면서 그건 실수가 아니라고 했지요. 역시 지금 보니 그때의 4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영훈동지,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 신중성의 부족… 아니예요? 호호. 다시한번 말하지만 꼭 참작하세요.

영원한 4점생으로 남아있을수는 없지 않아요.》

경숙은 우스개삼아 말했지민 상대방이 노여워하지나 않을가 념려되였다.

그러나 영훈은 대범하게 웃고있었다.

《웃으면서 뺨친다더니 장미꽃의 가시처럼 콕콕 찌르는구만, 허허. 몇번째나 거듭 받는 비판인데 고쳐야지.》

리경숙도 소리없이 따라웃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글쎄 뭐랄가, 경숙동무와 함께 오면서 이런 훌륭한 조언을 받자고기다린것 같기도 하구

영훈은 경숙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게 된것이 즐거운듯 이렇게 서두를 떼고난 뒤 늦어진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신동진동무 말이요, 장미경이 따르는 제대군인청년. 참, 알고보니 그들은 안변청년2호때부터 구면이더구만. 그 동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기에 가정방문삼아 뭐 좀 도와드릴게 없나 해서 들렸댔소. 그가 얼마전에 려단의 승인을 받고 저녁에 갔다가 이튿날 새벽에 온적이 있었는데 글쎄 밤동안에 겨울날 구멍탄을 빚어놓고 왔다는게 아니겠소.

동진동무의 어머니가 재미있더구만.

에미 생각에 극성인 자식이 나라일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소. 그래서 난 닭이 첫울음을 울 때 밥을 지어먹여 올려보냈다우.

참 정치부장, 내 소원 하나 들어줄라우?

조옥매녀성이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소.

어서 맡씀하십시오.

그러자 그는 나같은 기술자는 돌격대에 필요없소?하질 않겠소. 난 무슨 고급미장공이거나 설계실의 사도공쯤으로 짐작하면서 무슨 기술잡니까?하고 물었다오.

그 대답에 나는 아연했소.

병아리깨우는 기술자예요.

옥매녀성은 아주 흔연하고도 의젓한 표정으로 대답한단 말이요. 내가 빙긋이 웃으면서 어머니, 돌격대가 뭐 닭공장인줄 아십니까? 하고 도리를 저었소. 그러자 돌격대도 사람사는 동네겠지요. 거기서도 꼬끼요, 매매 하는 집짐승소리가 들려야 정상이예요. 언젠가 내 시장에 갔다가 보니 돌격대후방일군이라는 사람이 닭을 비싸게 사가는게 아니겠나요. 뭣에 쓸건가 알아봤더니 돌격대원들의 잔치상에 놓을거랍디다.

우리같은 로친네를 데려다 닭도 치고 토끼도 기르게 해보시우. 힘들게 시장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이러질 않겠소.

그 소리에 문득 떠오르는게 있더란 말이요.

아버지가 돌격대에서 닭우는 소리를 듣고나서 제법 살림살이가 잡혀간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말이요.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노라니 어머니는 계속 이야기했소.

제발로 찾아가지 못하고 이렇게 내 집에 와서야 이야기해서 미안하네. 사람들은 나더러 아들을 잘 두어 말년에 편안한 인생이 되였다고들 하지만 그건 다 모르는 소리였네.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지 육신이나 편해서 그게 어디 사람사는 멋이겠나.

그 말에 난 가슴후덥게 감동을 느꼈소. 그래서 선듯 말씀드렸소.

그럼 아들이 있는데 와서 돌격대후방사업을 해보시겠습니까.

그랬더니 어머니는 못내 기뻐하면서 집에서 기르는 닭이며 염소를 다가지고 곧 올라오겠다는거요.

홀로 산다기에 뭔가 도움줄게 없을가 하고 찾아내려갔다가 돌격대원을 한명 입대시킨셈이요. 하하.》

영훈은 즐거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마치였다.

경숙이도 옥매녀성의 모습을 눈앞에 방불히 그려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마다 제 설자리에서 삶의 보람을 찾자는거지요. 동진동무 어머니한테서 배울바가 있구만요.》

그들은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동차는 도중에 바퀴를 하나 바꿔맞추고 밤이 이슥해서야 1호발전소건설장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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