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2 장

7

로철정은 허금호와 나란히 공사지휘차에 앉아있었다. 30만산대발파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도당위원회가 조직한 협의회에 참가하려고 언제건설장으로 가는 길이였다.

이즈음에 와서 허금호는 말수더구가 퍼그나 줄어들었다. 그는 자기의 견해와 주장이 때때로 로철정에게 방해가 되고 그의 마음에 짐으로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철정은 허금호가 사업에서나 생활면에서 자기와 대면하기를 어색해하면서 점점 외면하려고 할 때마다 대범해지려고 애쓰는것이였다. 이따금 그는 허금호와의 어성버성해진 감정적공간을 메워보려고 왼심썼으나 마음먹은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럴 때면 인정미 있고 눈치도 빠른 남궁일이 제꺽 둘사이에 뛰여들어 활기띤 이야기를 곧잘 펼쳐놓아 굳어진 분위기를 가셔버리군 하는것이였다.

며칠전에도 그랬었다.

보온가설막의 비닐박막이 터져나갔을 때 미경이 자기의 솜옷을 벗어서 틀어막자 로철정과 남궁일은 다같이 그 모습에 감동되고 그들이 하는 일에 안도의 숨을 내쉬였지만 허금호는 반대로 이거 자칫하면 사람도 얼구고 구조물도 얼구는 사고를 내겠다면서 안심치 않아했다. 그러자 남궁일이 제꺽 나서서 《여보, 허동문 훌륭한 청춘들을 못 보았소! 어느 소설책에 나오는 사랑은 죽음도 이긴다는 소리가 무언가 했더니 그 순간에 깨도가 되더란 말이요, 허허허.》 하고 통쾌하게 웃어제끼는것이였다. 허금호도 그 순간에는 비죽이 따라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로철정은 림기응변의 기지가 있는 남궁일이 은근히 고마왔고 돋보였다.

그런 일이 있은 때에는 순간에 기분전환이 된 허금호도 이야기판에 끼여들군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둘이 다 말없이 묵묵히 앉아 차체의 진동에 몸을 맡긴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로철정은 지금과 같은 때야말로 남궁일이 그리워졌다. 그는 어제저녁에 내각의 호출을 받고 급히 올라갔다. 로철정은 그를 갑자기 부른 원인은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수력건설에서 특별히 제기된 기술적난문제를 협의하거나 강원도수력건설의 구체적인 실태를 보고받아 대책을 세우려는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지루한 침묵에 싫증을 느낀 운전사가 록음기를 틀어놓았다.

세 고개를 넘어 구룡언제가 가까와지자 산세는 더욱 험악하였다.

북대봉산줄기와 마식령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내리뻗고 백암산, 저두봉, 추애산, 봉황산, 명의덕산 등 해발 천메터이상의 봉우리들이 스무개이상이나 우뚝우뚝 치솟은 모양이 높고푸른 하늘아래 거대한 병풍을 둘러친것 같았다.

그 산줄기의 골짝마다에서는 탐나리만치 맑고 차디찬 샘물이 모이고모여 급류를 이루어 흘렀다. 물량도 많았다.

제일 높은 백암산에 시원을 둔 고미탄천은 이 나라 중부산악지대를 꿰고지나 서해로 흘렀다.

그 험산과 물살 급하고 갈개기 잘하는 강줄기를 길들이는 일때문에 그들은 때때로 다투었고 앞으로 또 다투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것이였다.

철정은 안변2호건설때에는 늘 한천막안에서 한가마밥을 먹고 세계명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허다한 유모아로부터 신변잡사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면서 허금호와 재미있게 일해왔는데 공사가 비할바없이 아름차진 지금에 와서는 가까이 마주앉아 맥주 한고뿌 정담아 기울여본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그것을 어찌 공사의 어려움탓이라고만 하랴.

철정은 문득 자신에게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인정미가 부족하다는것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이즈음에는 허금호와도 정담 한마디 주고받은적이 없었다.

이래서는 안된다. 다툴 땐 다투더래도 그는 준공의 날까지 함께 앞채를 메고 끌어야 할 일군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금호에 대한 련민의 정이 그들먹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워낙 줄담배를 피우군 하는 금호였으나 그는 철정을 생각하여 담배갑을 이따금 주무르며 차의 진동에 따라 웃몸을 흔들고있을뿐이였다.

그는 지금 철정이 담배를 피우라고 해도 결코 피우지 않을것이였다.

아직 길은 얼마쯤 남아있었다. 철정은 잠시나마 공사실무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졌다.

철정은 눈앞에 바라보이는 자연경개를 관망하면서 입을 열었다.

《허동무, 저 강줄기를 왜 고미탄천이라고 하는지 아오?》

《고미탄천이라?! 부르기가 좀 특이한 이름인데 무슨 연고로 그렇게 부르는지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소.》

허금호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느 고장에 가보나 지명에는 그럴듯한 유래가 있기마련이요. 내 고미탄천이라는 강이름의 래력을 이야기할테니 한번 들어보오.》

로철정이 한담을 꺼내겠다는 바람에 허금호의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가 어리였다.

철정은 법동군 해랑리와 건자리, 구룡리, 금평리를 비롯한 이전의 이천군 웅탄면지구를 편답하면서 마을의 식자있는 늙은이들과 지리와 력사에 밝은 교원들한테서 얻어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때 어느 왕대에 있은 일인지는 잘 모르나 삼국사기조선봉건왕조실록의 어느 갈피에는 분명 기록되여있는 이야기요.》

…어느 태평성대의 백과무르익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왕은 림진강상류까지 주욱 거슬러올라가면서 자연경치를 구경하고싶다고 했다.

신하들과 라졸들을 거느린 긴 행차가 림진강을 따라 올라갔다.

신하들의 어깨에 떠받들린 왕의 행차가마는 무인지경의 강기슭으로 흥떡흥떡 떠갔다.

차디찬 물이 급류로 내리쏟치는 상류부근에 이르렀을 때 왕은 하나의 황홀한 풍경을 발견하고 행차를 멈춰세웠다.

아아한 산골짜기에서 폭포를 이루며 줄달음쳐내리던 골개수가 한곳에 모여 쪽빛으로 빙빙 섯돌며 다리쉼을 하는것이였다.

왕이 웃몸을 건들거리며 호기있게 뇌이였다.

《내 바라고 온 고장이 예인듯 하노라. 내려오던 물이 다리쉼을 하노니 오르던 우리도 예서 쉬자꾸나.》

왕은 시조라도 읊듯 즐거운 기분으로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시퍼런 물이 넓게 고여있는 소에는 명주실꾸리가 열자는 넘게 풀려 들어갈것만 같은데 그 물빛갈은 얼마나 고운지 희디흰 옥양목을 담그면 연두빛저고리감이 될것 같았다.

푸른 소곁에 펼쳐진 너럭바위우에 차일을 치고 왕의 처소를 만들었다.

왕은 낚시질도 하고 땡볕이 쬐는 한낮엔 차고 시원한 산골샘물로 몸을 씻기도 하면서 그간 왕궁에서 울울했던 심경을 한껏 풀었다.

맑은 소에는 흔히 보지 못했던 고기가 욱실거렸다. 신하들은 그 고기를 잡아 왕이 좋아하는 매운탕을 끓여 대접했는데 왕은 매끼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천하진미였다.

잣송이들이 한창 잣알들을 떨구는 계절이라 여러 신하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잣을 까서 통통 살이 진 속알을 짓부셔 정히 잣죽을 쑤었다.

잣죽과 신기한 고기로 끓인 매운탕으로 하여 꺼져들어갔던 왕의 두볼이 부등부등해졌다.

후에 알고보니 그 고기는 우리 나라에 흔치 않은 산골물고기로서 십년을 자라야만 알쓸이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을 열묵어라고 했다던지.

왕은 얼마동안 그 고장에서 기쁜 나날을 지냈다.

그러다가 소슬한 마가을 찬바람이 불어와서야 아쉽지만 거기를 떠났다.

후세사람들은 왕이 놀다가 갔다고 해서 그곳 소이름을 왕노소라고 불렀다. 심신이 즐거워진 왕은 신하들에게 떠받들리워 왕궁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곳 경개와 잣죽이며 열묵어매운탕을 못 잊어했다 한다.

그러던 왕은 늙마에 되게 앓아누웠다.

백약이 무효했다.

왕은 수저를 멀리하고 림종의 시각만을 기다렸다.

겨끔내기로 왕의 침전에 달려온 신하들은 무엇이 잡숫고싶은가고 애절하게 물었다.

왕은 며칠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드디여 떠오른듯 옛시절 림진강상류에서 놀던 때 먹었던 잣죽과 열묵어매운탕이 제일 그립노라고 했다.

신하들은 만사를 젖혀놓고 이전날 거처했던 왕노소를 찾아가 열묵어를 잡고 잣을 따다가 잣죽을 쑤고 매운탕을 끓여 대접했다.

신기한 조화가 일어났다. 식음을 전페하고 림종을 기다리던 왕이 그것을 맛나게 들더니 얼마후에는 건듯 병환을 털고 일어났다.

그뒤에도 왕은 열묵어매운탕과 잣죽을 종종 요구하였다.

어느날도 예전처럼 그것을 배불리 먹고난 왕은 여러 신하들이 모인 앞에서 이야기했다.

《오호, 내 젊었던 시절에 먹었던 잣죽과 열묵어매운탕의 고미(옛맛)는 변하지 않았도다.》

그래서 력사를 기록하던 신하들은 림진강상류의 시내이름을 잣죽과 열묵어매운탕의 옛맛으로 왕을 살렸다는 의미에서 고미탕천이라 기록했다.

그 말이 세월과 함께 점차 고미탄천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허허, 듣고보니 고미탄천이 임금을 살려냈구만그래.》

허금호가 빙그시 웃었다.

《그렇네. 우리는 저 고미탄천을 길들여 온 강원도를 일떠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네. 서해로 흐르던 고미탄천을 동해로 역류시켜 그 물에서 불을 얻어내는 일이야말로 강원땅의 행복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로철정은 의미있게 말을 맺었다. 마치나 그 말을 끄집어내려고 고미탄천의 유래를 이야기한것 같았다.

허금호는 그 말에 생각이 자못 깊어졌다.

(강원땅의 행복을 창조한단 말이지. 하긴 그래서 온 도가 남녀로소 가림이 없이 떨쳐나서지 않았는가.)

허금호는 지금껏 이 건설을 그처럼 행복의 열쇠와 같은것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생활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탓이기도 했다.

정원에는 터밭도 푼푼하여 감자와 무우, 배추, 고추를 비롯한 신선한 남새가 풍성하게 자랐고 다행스럽게도 건강하고 부지런한 마누라는 돼지, 닭, 염소를 애착을 기울여 길러서는 식탁을 기름지게 했다. 그리고는 두루 여유를 마련하여 때때로 돌격대에 지원을 하여 사회적인 평가도 받군 했지만 그것이 무슨 큰것이랴.

이 어려운 공사장에서 목숨도 서슴없이 바친 유명무명의 돌격대원들과 지원자들도 없지 않는것이니.

허금호는 당의 신임을 크게 받고있는 자기라는 존재가 그들중 어느한 인간과도 대비할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릿하였다.

운명을 걸고 뛰지 못하는 자신이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든 사람에게는 무에서 유가 생기는 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때에도 앉아뭉개는 법이다.

허금호는 이렇게도 혹은 저렇게도 가공되여 구전으로 내려왔을 고미탄천이라는 지명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로철정의 의도에 따라 자기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했다는 느낌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허금호는 어떤 내용으로든 화제를 돌리려고 왼심을 썼으나 도저히 혀가 돌지 않았다.

사실 그도 이즈음에는 로철정의 애타하는 모습에 감심이 되여 두주먹을 쥐고 달려다녔다.

그래서 심신이 노그라지듯 피로가 엄습해을 때가 적지 않았다.

확실한 로년의 징조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그 나이에 너무나 아름찬 공사의 시공을 안아맡고있다는 걱정이 갈마들었다. 허금호는 한동안의 침묵끝에 드디여 화제거리를 찾아내였다.

《우리 성준이가 제대되여왔소. 사관장을 하댔는데 후임이 늦어져 지체되였다오.》

로철정은 무척 반가와했다.

《몰라보게 숙성했겠는걸.》

군복을 입고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을 때 두툼한 학습장 서너권을 주어보낸게 눈에 선하였다.

《배치는 어데로 받게 했소?》

로철정의 물음에 허금호는 허심하게 대답했다.

《로동무도 아다싶이 그 앤 외아들이 아니요.

외삼촌이 나서서 부모들을 모시려면 직업을 잘 잡아야 한다면서 수입도 괜찮고 일도 헐한 곳을 알선해주었는데 모교에도 다녀오고 동창생들도 두루 만나보더니 결국 여기 발전소건설장에 오겠다는구려.》

허금호는 무표정한 인상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로철정이 기뻐했다.

《사관장을 하다가 왔다니 통솔력이 있겠구만. 손탁 센 제대군인지휘원들이 필요한데 마침이군.》

허금호는 아들에 대한 칭찬이 싫지 않았다.

《조만간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소.》

이야기는 또다시 여기서 동강났다.

잠시후에 로철정이 문득 생각난듯 화제를 꺼냈다.

《허동무, 탁기영동무가 맡아서 시공하는 아빠트건설 말이요. 허동무의 묵인하에 공사용자재를 뒤로 빼내간다는 소리가 있소. 압력관로고정대건설장에랑 세멘트와 철근이 긴장한데 살림집건설장에서는 가설창고에 그것들을 가득채웠다는거요.

그걸 가지고 목재를 바꿔오고 건구들도 비싼것으로 사들인다는데 잘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소.》

허금호는 솔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사람이 오랜 건설자들의 살림집을 해결할데 대한 과업이 자기에게 지워졌다면서 하도 도와달라기에…

사실 난 압력관로고정대공사를 이 겨울에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소. 그래서 탁기영이 요구하는대로 먼저 돌려주었던거요.》

로철정은 허금호가 공사보다 살림집건설에 더 관심하는것이 못마땅했다.

《탁기영이 오랜 건설자들의 살림집때문에 뛰는척 하지만 사실은 제 리속부터 차리자는 속심이 뻔하오. 내 이미 탁기영에게 말했지만 당장 도로 갖다가 공사에 쓰게 합시다.》

허금호는 속이 울울했다. 아무래도 탁기영이 그에게만 이야기한 내 속을 터놓을수밖에 없었다.

이틀전 저녁에 성준이가 온것을 축하한다면서 탁기영이 술과 당과류 구럭을 들고왔었다.

기영이 하는 말이 로철정책임자가 며칠전에 살림집건설장에 와서 초과지출된 세멘트와 철근을 당장 공사장에 실어가라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로철정과 허금호를 비롯한 책임일군들의 집은 건평도 넓게 네칸짜리로 시공하고있으니 살림집건설이 끝날 때까지 눈 꾹감고 도와달라는것이였다.

《로동무, 솔직한 말로 우리는 10년가까이 도안의 수력건설을 도맡아하면서도 제가 살 집에 대해선 생각이나 했소? 오래동안 우리는 단층집에서 살아왔으니 고급아빠트에서 살고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더란 말이요. 로동무네도 그렇지 않소?

영훈이 장가들면 지금 사는 집이 옹색할거요.》

허금호는 타협조로 밀했다.

《허동무! 동문 점점 세상 보는 눈이 어두워지고있소. 우린 지금 쓰고사는 집이면 만족하오. 책임일군들을 내세워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탁기영의 수에 넘어가면 안되오. 상급에 제기해서 그 사람을 당장 소환하구 살림집건설은 공사가 끝난 다음에 봅시다.》

로철정은 단호했다.

《로동무, 아무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중도반단하면 살림집에 기대를 가졌던 오랜 건설자들이 의견을 가질수 있소. 다시한번 고쳐 생각하시우.》

철정은 숙어들지 않았다.

《탁기영이 공사용세멘트를 가져다쓰고 대신 일반세멘트를 밀어넣을 작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소. 이런걸 묵과하면 후과가 좋지 않소.》

허금호는 로철정의 단호한 립장에 할말을 찾지 못하였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