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2 장

8

공사지휘차는 구배심한 산골길을 오래도록 달린 뒤에야 언제건설장에 이르렀다.

로철정은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벌써 적지 않은 협의회참가자들이 모여왔다.

수많은 돌격대원들가운데서 키가 크고 끌끌한 청년이 다가서며 인사를 한다.

《책임자동지, 안녕하십니까? 허성준입니다.》

《아니, 이런 름름한 장부가 되여 돌아왔구만. 얘길 들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지휘부사무실에서야 어디 만나뵐수 있어야지요. 여기서 협의회가 있다길래 공사차신세를 졌습니다.》

《정찰을 앞세운셈이구만. 여기로 오겠다고 했다면서? 잘 생각했네. 협의회가 끝난 뒤에 토론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도록 하자구.》

《알았습니다, 힘든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허성준은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음, 그래야지.》

로철정은 빙그레 웃음지은 얼굴로 성준을 눈여겨보았다. 체격이며 얼굴모색이며 판에 박은듯 한 아버지였다. 너무도 신통하여 너덧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있는 허금호한테 눈길을 주었다. 그는 무안한듯 고개를 돌리였다.

그때 언제건설지휘부의 직일관이 달려나오더니 성에서 전화가 왔다고 알리였다.

《자, 그럼 후에 또 만나자.》

로철정은 허성준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였다.

《배치받고 찾아뵙겠습니다.》

성준이 바쁜 정황을 헤아려보고 말했다.

철정은 급히 달려가 책상우에 내려놓은 송수화기를 들었다.

《로철정이 전화받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높은 남궁일의 목소리가 전류를 타고 날아왔다.

《아, 로동무요? 건강은 어떻소? 사무실번호로는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 찾던중이요.》

활기에 넘친 음성이였다.

《그동안 편안했습니까?》

《내 집에 왔으니 편안해야겠지만 그곳 생각에 늘 마음이 불안하오. 그래 압력관로고정대시공은 계속하오? 음, 등탈이 없게 해야 하오. 상동지와 수력건설담당부상동지를 만나 거기 실태를 사실대로 반영해드렸소.

령하 18도에서 고정대혼합물을 처넣던 날 된바람에 보온막비닐이 펑하고 구멍이 뚫리자 제꺽 솜옷을 벗어서 틀어막던 장미경의 소행을 말할 땐 눈물을 다 보였소.

그러면서 내친김에 속에 있던 말을 다 했다오.

강원도사람들이 보채지 않는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고 편안해서 그런게 아니다. 어려운게 많아도 어떻게 하나 제힘으로 해서 장군님께 짐이 되지 않자고 아글타글하는데 그럴수록 우에서 더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의깊게 듣고있던 성의 간부들도 퍼그나 감동된 빛이였소.

다른건 몰라도 동이나 연유 같은것은 도가 자체로 해결할수 없다면서 꼭 도와달라고 했더니 국가계획위원회에 반영해서 풀도록 하자고 했소.

그리고 압력철관로용철판은 국경역에서 곧장 김철로 날라다 제관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니 만곡기때문에 공연히 걱정을 마오.》

《국장동무, 철판만곡기 대형치차가 몇차례의 실패끝에 드디여 성공했다고 합니다.》

로철정이 어제 보고받은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이제 조립한다, 시험한다 하고나면 어느때에 성공하겠소.

동무네가 수송에 드는 연유때문에 걱정하는 모양인데 다 받기로 했으니 마음놓소.》

로철정은 남궁일의 방안이 고맙기는 했지만 그것이 국가에 부담이 되는 일인 까닭에 무작정 응할수 없었다. 그는 만곡기조립현장에 나가보고 결심하기로 했다.

남궁일이 계속하였다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는걸 보아서 곧 내려가겠소. 성의 일군들이 날더러 강원도사람이 다되였다는거요. 말 한마디를 해도 강원도의 립장에서 한다고 말이요. 강원도사람들이 날 감동시켰다고 했소.

그런데 무슨 협의회를 하오?》

《30만산대발파를 위한 협의회입니다. 초급지휘관들과 함께 현장을 직접 밟아보자는겁니다.》

《으음-》

남궁일이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며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잡도릴 단단히 해야 하오.

각지에서 대발파를 하는데 제기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요. 어떤 단위에서는 시추탐사단계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자연동굴과 물주머니가 폭약갱굴진때에 문득 나타나는 바람에 대발파를 포기한다, 설계를 다시 한다 하면서 야단이요.

동굴과 물주머니를 발견하지 못한채 대발파를 했더라면 틀림없이 헛발파가 될번 했소.

모르긴 해도 거기 지형 역시 대단히 복잡할것으로 생각되오. 특히 석회암매질에서는 반드시 동굴이 있기마련인데 오발파가 되면 큰일이요.》

《잘해야지요.》

《정말 심중히 해야 하오. 탐사조원들, 특히 CT탐사를 주관한다는 리경숙연구사에게 간곡히 당부해주오. 사실 CT탐사도 강원도에서는 별로 못해보았으니 시일이 좀 걸리더래도 재래식시추탐사를 하는게 어떨는지. 하여튼 등탈이 없도록 잘해주시오.》

철정은 얼마후에 곧 내려오겠다는 남궁일과 전화상에서 더 론할 필요가 없어 입을 다물고말았다.

《뭐 긴요하게 성에다 요구할건 없소? 없다, 그럼 됐소. 당부하건대 책임자동무, 지내 무리하지 마시오. 앓는 몸으로 해발 천메터도 넘는 산정에 오른다니 우려되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바라오.》

《념려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철정은 진정을 담아 말하고 송수화기를 놓았다.

남궁일은 성과 국가계획위원회에다 강원도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여 긴장한 설비와 자재, 자금을 풀겠다고 했지만 철정의 마음은 개운치 못하였다.

그러자면 도의 건설실태가 어차피 어버이장군님께 보고될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종당에는 국가에 손내미는것으로 되고 그이께 근심을 끼쳐드리게 될것이다.

그는 아릿한 가슴을 달래며 밖으로 나왔다.

잠시후에 도당위원회 박경진비서가 도착하였다.

《빨리들 모여왔구만요.》

경진은 철정과 금호가 고개숙여 인사하자 답례를 하면서 말했다.

《이번에 모의건설결과를 경솔하게 내돌린것은 일군들의 정신사상적준비에 빈구석이 있다는걸 말해줍니다. 동기는 어떻게 되였든 그 후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 계산을 한 처녀연구사가 30만산대발파프로그람을 맡게 된다는데 정신적준비를 든든히 하고 달려들도록 합시다.》

박경진의 부드러운 질책이 어린 말에 로철정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허금호는 얼굴이 지지벌개져가지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경진은 때마침 가까이에 나타난 로영훈을 손짓으로 불렀다.

《정치부장동무! 얼마전에 대오를 떠나갔던 대원이 돌아왔다지. 시당위원회에서도 15년설의 후과로 대오안에 어수선한 공기가 떠도는데 대하여 신호가 있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바람이 불어도 돌격대원들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하오. 누가 뭐라든 제갈길을 가면 될게 아니요. 마음의 준비들을 잘해가지고 30만산을 성과적으로 날려봅시다!》

박경진은 사뭇 기백이 느껴지는 손세를 쓰면서 로영훈에게 힘을 주기 위해 왼심썼다.

《비서동지! 우리를 믿어주십시오. 대오를 더 굳게 단합시켜 동요하는 현상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영훈의 대답에서는 군인의 기백이 느껴졌다.

로철정은 박경진과 함께 초급지휘관들이 모여앉은 곳으로 갔다.

초급지휘관들은 대발파를 위한 폭약갱굴진대대의 새로 임명된 일군들이였다.

대대는 제일 힘있고 조직력이 강한 수산대대를 골간으로 하고 각 려단들에서 모범적인 돌격대원들로 보충하였다.

시려단에서는 항상 앞장에서 나가는 신동진소대를 파견하고 도당위원회에서는 로영훈에게 대발파가 끝날 때까지 정치사업을 맡겨보내기로 했다.

설계실에서는 폭약갱설계를 해본 유능한 설계가들을 세명 선정하였다.

제일 중요하게 선행시켜야 할것은 CT탐사였다.

거기에는 탐사경험이 있는 지질전문가들이 망라되였고 콤퓨터프로그람작성은 리경숙이 맡았다.

조장은 50대의 지질탐사일군이였다.

로철정은 미더운 눈길로 대발파지휘일군들을 바라보았다.

박경진이 협의회참가자들에게 모임의 목적에 대하여 명백히 이야기했다.

《저 건너편에 보이는 30만산은 언제사석수요량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로서는 처음으로 해보는 지향성대발파이니만치 애로와 난관이 허다할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30만산대발파만 성공하면 뒤이어 15만산, 10만산, 5만산 같은것들은 식은 죽먹기로 날려보낼수 있을겁니다. 도자체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안팎에 없지는 않지만 도당위원회에서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동무들을 현지에 부른것입니다.

그럼 우리모두 30만산에 올라가봅시다.》

일군들은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서둘러 일어났다.

산은 물살빠른 고미탄천을 건너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거방지게 틀고 앉아있었다.

허구한 나날 이름없이 솟아있던 천여메터의 산봉우리는 인간세상의 희로애락과는 무관계하다는듯 묵묵히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산은 가파로왔다. 60°이상의 경사지에 부식질이 덮이지 않은 너럭바위가 곳곳에 드러나있고 아찔한 낭떠러지도 허다하였다.

철정은 이 산을 통채로 들어올려 언제가까이에 주저앉히기 위해서 폭약갱입구는 어디어디에 정하며 압축기실은 어디에 자리잡게 하고 공기배관은 어떻게 끌어야 할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톺아올랐다.

모든 지휘관들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위치들을 점찍어두었다가 정점에 모여앉아 토론하자고 했다. 남먼저 정점에 오르려고 헤덤비던 젊은 친구들이 눈얼음판에 잘못 걸려 서너길씩 지쳐내리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부축하면서 웃고 떠들며 일어나서는 또다시 씨엉씨엉 활기있게 올라들 갔다. 로철정도 가랑잎밑에 얼어붙은 눈얼음을 잘못 디뎌 몇번인가 넘어질번 했다.

허금호는 주의깊은 눈길로 지형지물을 세심히 살피며 올라갔다. 날카로운 바위서덜과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곳에는 어디에도 물이 없었다.

물을 모두 산밑에서 길어올리자면 약차한 노력이 들어야 할것이다. 압축기랭각수와 습식착암용물을 찾아내야 대발파굴진을 원만히 보장할텐데 그것이 제일 안타까왔다.

철정은 영훈이 붉은 기발을 들고 가파로운 산정점으로 치달아오르는것을 보았다.

영훈은 기발대를 정점의 날선 바위틈에 꽂느라고 한참 애쓰고있었다.

세찬 산바람에 기폭이 힘차게 나붓기였다.

기발은 머지않아 있게 될 대발파의 성공을 상징하는듯 했다. 그러나 철정은 아직 그 성공에로 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군 했다.

산정가까이에 오른 철정은 은연중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였다.

거창한 대자연속에 들고보니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용단을 내리던 때와는 전혀 다른 타산과 위구심이 갈마들었다.

디디고앉은 30만산의 내장이 과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해나면서 떠나오기 전에 남궁일이 전화로 하던 말이 귀전에서 맴돌았다.

뜻하지 않게 나타날수 있는 석회암동굴과 물주머니들…

철정은 은연중에 대발파를 주관하게 될 허금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까마득하니 내려다보이는 언제건설장에 눈길을 준 그의 얼굴은 침침하게 흐려있었다. 박경진이 철정과 허금호의 우려하는 심리를 가늠한듯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동무들! 몇달후에는 이 덩지 큰 산봉우리가 바로 저아래 언제 가까이에 날려가게 됩니다.

그걸 우리가, 여기에 앉은 동무들의 힘과 지혜로 해내야 합니다. 우리에겐 그걸 해낼 힘도 있고 지혜도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진행하고있는 압력관로고정대 혼합물치기하듯 하면 못할것도 없습니다. 당에서 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겠소.

우리의 건설에서 이 겨울은 결정적인 계절이요.

이 겨울을 잃어버리느냐, 아니면 주저없이 공사성과를 확대해나가느냐 하는데 건설의 전반적인 운명이 달려있소. 모두 운명을 걸고 달려들 때라야 이 일을 해낼수 있다는걸 명심합시다.》

경진은 부드럽고 잔잔한 억양으로 말하였으나 듣는 사람들은 그속에 깔려있는 힘과 열정을 느끼고있었다. 그는 말을 맺고 주위에 둘러선 지휘원들의 얼굴이며 눈빛을 살펴보았다.

로철정은 박경진비서를 미덥게 마주보았다.

그는 경진의 말에서 신심을 느끼였다.

로철정은 30만산을 가리키면서 경진비서와 일행에게 이미 시작한 대발파설계에 대하여 륜곽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산의 지형에 기초하여 압축기실의 위치며 여러개의 폭약갱입구의 위치, 폭약갱들의 총연장길이, 소요되는 력량과 설비, 자재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력점을 찍어가면서 리해하기 쉽게 이야기했다.

박경진의 낯빛은 점점 심중해졌다.

건설지휘부가 설계도면으로 만들어 제안한것을 책상우에서 볼 때와 막상 현장에서 거방진 산악을 마주한 감상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빈주먹으로 건설을 시작했을 때 자금을 마련하려고 도내 각지 광산들에 돌격대를 조직하여 보내였으며 탄광, 세멘트공장, 강철공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당지도소조와 숱한 로력을 파견하던 때와 다름없는 인적, 물적소모를 요하는 공사대상이 앞에 막아선것이였다. 그때에도 동요하고 더러 반기를 들던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역시 이번의 지향성대발파에 신심을 못 가지고 의문시하는 사람들의 견해에도 일리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릇 자그마한 소총탄환이나 수만톤급뜨로찔등가량을 가진 핵탄인 경우에도 불발이나 오발이 있을수 있지 않는가. 우려하는 사람들은 공사전개의 아름찬 소모를 먼저 생각하거나 천번중 단 한번의 헛발파를 생각할수도 있는것이다.

더우기 상급지도단위 일군들이 그처럼 거창하고도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수준을 요하는 대발파를 다른 도에서라면 몰라도 강원도에서만은 해내기 어려울것이라고 하면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현지에 나와보니 그것도 리해가 되였다. 하나 만약 우리 강원땅 사람들의 머리에도 이런 관념이 완고하게 자리잡게 된다면 어차피 15년이라는 콤퓨터모의건설의 결론을 따라야 할것이 아닌가.

박경진은 로철정의 설명을 들으면서 일부 숨이 막힐 정도로 방도가 묘연한 측면들도 적지 않게 있다는것을 간파할수 있었다.

60°이상의 벼랑이나 다름없는 경사면에 압축기와 같은 육중한 설비를 끌어올려 설치하는 문제며 착암기압축공기보장용배관을 수천메터나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헐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로철정은 흔연히 증강된 한개 대대의 인원을 붙여서 다음해 봄에는 대발파스위치를 누르게 되리라는 락관을 표시하면서 설명을 끝마쳤다.

박경진은 지금껏 머리속에 떠돌던 기술실무적인 문제의 해결방도에 대해서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자기의 일은 그것이 아니라 그 모든 걸린 문제를 맡아안고 풀어나가야 할 사람들의 정신사상적준비를 앞세우는것이였다.

《기술일군들과 대중의 의향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발벗고나서면 하는것이고 우물쭈물하면서 갑자르면 시간만 허비하면서 성공할수 없을것입니다. 우리앞에는 넘어서기 어려운 봉우리들이 수없이 가로놓여있을것입니다.

그때마다 제발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남의 등에 업혀가느냐 하는 문제가 나서게 됩니다.

이건 단순한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운명적인 문제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맞받아나가는가 아니면 굴복하여 붉은기를 버리느냐 하는 신념에 관한 문제란 말입니다. 우리는 오직 자기의 힘과 지혜로 시련과 난관을 뚫고 현대적발전소를 일떠세움으로써 강원도를 강한도로 불리우게 만들어야 합니다.》

박경진은 자기의 비유를 로철정과 허금호를 비롯한 지휘원들이 어떻게 리해하는지 가늠하려는듯 잠시 그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로철정과 대다수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그들은 박경진의 표현들이 아주 신심있고도 재치있는것임을 알고있었다. 로철정은 그가 마치나 강원도에 대한 송가라도 읊는듯 격동된 심정으로 말하는것을 들으면서 자기도 은연중 자부심과 긍지에 넘치는것을 느끼였다.

년중 꼽아보면 어버이장군님께서 사나운 눈비를 맞으시면서 험준한 마식령과 철령, 직동령을 넘으시여 강원땅의 최전연초소로 가시는 때가 제일 많다, 하여 선군시대에 꽃펴난 철령의 철쭉과 울림폭포의 메아리와 같이 그이께서 직접 찾아주시고 세상에 높이 일러주신 명소가 두군데나 있지 않는가. 이처럼 자랑높고 긍지높은 강원땅에 살면서 제고장을 지상락원으로 꽃피우는 일에 우리가 그 누구의 힘과 지혜를 바란단 말인가.

로철정은 무엇보다도 강원도를 강한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통한 비유가 아주 귀맛좋게 들렸다.

《책임자아바이!》

박경진은 자기보다 근 10년이나 년장자인 로철정을 늘 이렇게 친근한 호칭으로 불렀다.

로철정도 그 부름이 은연중 귀에 익고 싫지 않았다.

《허금호동무랑 손잡고 대발파준비를 실속있게 잘합시다. CT탐사와 폭약갱설계를 잘하고 폭약을 비롯한 자재를 미리 잘 준비했다가 짧은 시일안에 쾅- 소리를 울려 우리 강원도에도 기술이 있고 힘이 있다는걸 세상에 보여줍시다.

동무들! 할수 있겠습니까?》

박경진이 초급지휘원들을 향하여 물었다.

그의 힘있는 호소에 모두 의기양양한 기세로 대답하였다.

《할수 있습니다.》

그들의 합창이 연줄연줄 뻗어간 마식령의 산줄기를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쳐갔다.

박경진의 말에 이어 로철정이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조직사업은 내려가서 하도록 합시다.

선행해야 할것은 CT탐사조의 활동입니다. 설계조도 아예 여기에 나와서 탐사조와 함께 숙식을 하면서 폭약갱설계를 따라세워야 합니다.

폭약갱입구들의 위치가 정해지는데 따라 압축기실위치도 정해지기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히 맡은 일을 앞당겨야겠소. 허금호동무는 대발파가 끝날 때까지 대발파지휘부사업도 겸하여 이끌어주시오.》

허금호는 선듯 대답하지 못했다.

로철정은 그의 이마에 바질바질 내돋는 땀을 띄여보았다. 겁먹은듯 한 눈길이 허공을 떠돌다가 문득 로철정의 눈길과 마주치자 서둘러 피해버렸다.

허금호의 활기찬 대답을 기다리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있던 박경진이 다그쳐물었다.

《신심이 없어서 그러는건 아닙니까?》

《하긴 처음 해보는 일이니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좋기는 성의 대발파기술력량이 내려온 뒤에 했으면 하는데 시일이 긴박하다니… 어쨌든 하긴 해야지요.》

허금호의 신심 부족한 대답이 있은 뒤 협의회는 끝났다.

내려오는 길은 더 험한듯 했다. 급경사에 깔려있는 눈얼음을 잘못 디뎌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르르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가는 지휘원들도 있었다.

그래도 젊은 축들은 뭐가 좋은지 시종 웃고떠들며 밀치닥거리면서 내려갔다.

산중턱에 이르니 키높이 자란 도토리나무들이 빼곡이 서있었다. 잎 떨어진 우듬지들을 휘여잡고 노니는 산바람의 휘파람소리와도 비슷한 휘유-휘유 하는 소음이 쉬임없이 들려왔다.

《아차!-》

앞장에 섰던 신동진이가 급기야 허공을 그러안으며 허우적거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무엇엔가 미끄러진것이였다. 방금 지나온 자리를 살펴보던 지휘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오목한 너래바위의 오목하게 패운 곳에 담겨있던 도토리알들을 밟아 로라스케트를 탄것처럼 미끄러졌던것이다.

그는 원래 이번 협의회참가대상은 아니였지만 로철정이 신동진소대를 척후대로 내세우려고 그를 참가시킨것이였다. 어이없어 허허 하고 웃고난 동진이 즉흥적으로 꾸며낸 고미탄천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갔다.

《여기 심산속에는 자연동굴이 많았더라네.

동굴속에는 산속의 제왕이노라는 호랑이와 늑대, 승냥이들이 살았고 드문히 곰들도 거처를 정하고있었다네. 마가을에 곰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하여 무엇이건 닥치는대로 먹어 배를 불리였다네. 도토리가 그중 제일 많고 또 영양가도 높았던 모양인지 추위가 닥쳐들무렵에는 살집이 하도 팽팽히 불어나 웬만한 벼랑턱에서는 떨어져도 아픈줄을 몰랐지.

이제는 굴을 찾아가 겨울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한 곰은 땅거미가 질무렵에 어슬렁어슬렁 제 살던 굴을 찾아 떠났다네. 그런데 온밤을 헤맸지만 종내 굴을 찾지 못했다는게 아니겠나.

기진맥진해진 곰이 날밝을무렵에는 아예 맥이 진할대로 진하여 깊은 골짜기에 주저앉아 우리 조상은 어찌하여 이토록 산이 험하고 골이 깊은 곳에 나를 낳아 이 고생을 시키노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했다는게 아니겠나.

이처럼 곰이 탄식한 고장이라고 하여 이곳 지명을 고미탄이라 했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내물을 고미탄천이라고 했다네.》

신동진은 구수하게 엮어대였다. 옛날부터 구전되여내려오던 고미탄천의 진짜 유래와는 판이하게 꾸며낸 이야기였다.

지휘관들은 키크고 재미있는 소리 잘하는 신동진소대장이 분명 즉흥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의 이야기재간에 반해서 와하하 하고 웃어들대였다.

로철정만은 웃지 못했다. 신동진의 이야기속에 나오는 동굴들이 실재로 산의 심부에 존재하면 어쩌랴싶은 위구심이 뇌리에서 맴돌고있었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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