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3

경숙은 며칠째 30만산을 오르내리며 현지조사를 했다. 저녁이면 밤늦도록 지질학과 대발파참고서들을 번지면서 새날을 맞았다. 파악해들어가면 갈수록 CT탐사에 의한 대발파프로그람작성이라는게 인체의 경락이나 신경계통을 터득하기보다 헐치 않다는것이 느껴졌다.

낫을 들고 아름드리 참나무를 찍으려고 달려든 벌목공의 심정이라고 할가, 날이 갈수록 자신심이 없어지고 결과가 우려되였다.

30만산은 지질조건으로 보아 지향성대발파를 들이대기에 너무도 복잡하고 오묘하고 까다로왔다.

현재 도안의 기술력량과 설비상태, 폭약준비정도로 보아 도저히 상반년안으로 대발파를 해낼것 같지 못했다. 우선 기초적인 기술자료를 안받침해야 할 자신의 준비가 허약하다는것을 절감했다.

자료를 연구하려 도도서관에 갔다가 올라오던 날 왜 벌써 오는가고 묻던 영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발파과학의 세계를 지내 얕잡아본다는 은근한 우려는 아니였을가. 그렇다, 자신은 분명 이 길에 너무도 쉽게 생각하고 접어들었다.

이제라도 못하겠다고 손을 들고말가.

남궁일국장동지가 공연히 중앙의 대발파기술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을가.

차라리 미경이처럼 고스란히 돌격대원으로 일하는게 마음편하지 않을가.

이러한 심중의 동요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웃음이 가셔지고 우울의 그림자가 명랑하던 눈빛을 가리웠다.

산바람에 입술이 터갈라지고 잠을 설친 두눈은 불깃하게 피가 졌다.

이럴 때 성에서 대발파전문기술자 리창학이 내려왔다.

그도 30만산을 두세번 밟아보고는 휴대용콤퓨터를 펼쳐놓고 무슨 복잡한 계산을 해보더니 서서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선생은 개미가 소대가리 맡은 격이 될번 했구려.

내 계산에 의하면 객관적조건과 준비정도로 보아 성공의 확률은 극히 희박하오.》

경숙은 눈앞이 아찔하였다.

리창학은 또다시 콤퓨터로 복잡한 계산을 하더니 몇개의 수치들을 도출하여 경숙이에게 보여주었다.

다른건 다 몰라도 폭약갱굴진시일만 해도 3년이라는 답이 나왔다. 폭약소요량은 수백톤으로서 현재 가지고있는 량의 곱을 헤아렸다. 경숙은 그만에야 울상이 되였다.

이튿날 아침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로영훈이 나타나자 의기소침해지면서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입맛을 젖힌터에 오래도록 수저를 들고있기도 무엇하여 밥을 남긴채 일어났다.

《어데가 아프오?》

영훈이 물었다.

《아니, 그저 잠을 설쳤더니.…》

그러나 영훈은 곧이듣는것 같지 않았다.

경숙은 자기의 마음을 영훈이 다 들여다보는듯싶어 쫓기듯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밤새우며 대발파전문가의 계산수치들을 검산해본 경숙은 그것이 옳다는것을 확인하자 심신이 노그라지듯 피곤이 몰려와 자리에 눕고만싶었다.

그러나 조만간 영훈이 나타날것만 같아 참고서를 펼치고 앉았다. 하지만 글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 안있어 영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소?》

《예, 들어오세요.》

경숙은 눈길을 허둥대며 일어났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소?》

영훈은 선채로 물었다. 경숙은 왕청같은 대답을 했다.

《영훈동지, 전 미경이처럼 돌격대원으로 일하고싶어요.》

영훈의 두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전 다 계산해보았어요. 우리한텐 없는게 너무도 많아요. 폭약갱 뚫는데만도 몇년이상 걸릴 대발파를 과연 성사시켜 낼가요?》

《동문 또 이전처럼 얼토당토않은 계산을 해가지고 스스로 고민하고있구만.》

《결코 오산이 아니예요. 보세요.》

경숙은 불쑥 일어나 콤퓨터를 가동시키였다.

순간에 대발파의 불가능을 증명하는 몇가지 수치들이 화면에 현시되였다. 경숙은 그 수자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과학이예요. 성에서 내려온 대발파전문가도 확증했답니다.

전 사실말이지 두려워요.》

경숙은 자기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영훈은 경숙의 심리를 알만하였다.

30만산대발파와 같은 거창한 일을 지식만 가지고 해낼수 없는것이다. 담력과 배짱, 이것이 선결조건이였다. 그런데 경숙에게는 바로 그 정신적준비가 부족했다.

영훈은 경숙이 그 지경이 되도록 버려든 자신을 꾸짖었다.

그는 민망하고도 애바른 심정을 애써 눅잦히며 련민의 정을 담아 말했다.

《경숙동무, 동무는 그래 미경동무나 다른 처녀들처럼 힘이나 보태자고 여기에 나왔소?

여기엔 정보과학자인 리경숙연구사가 필요한거지 돌격대원 리경숙은 필요없소.

당에서 동무를 여기로 보낼 때 기대가 얼마나 컸겠소. 그런데 경숙동문 믿음과 기대에 보답할 자신심을 못 가지고있으니 그러다가 큰일을 그르치면 정말 야단이요.》

영훈은 자못 가슴아픈 심정으로 경숙을 측은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했다.

《경숙동무! 동무가 받아안은 과제는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니요. 온 도가 동무를 믿고 안겨준 과제란 말이요. 그러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뚫고나가야지 지금처럼 신심없이 나약한 소리를 해서는 진짜로 임무를 해내지 못하게 된다는걸 명심하오.》

영훈의 말도 경숙에게 결정적인 힘을 줄수 없었다. 영훈은 자리를 일면서 조용히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 군의선생한테 진단을 받고 좀 쉬면서 일하오.》

경숙은 촉촉히 젖은 속눈섭을 파르르 떨면서 울먹이였다.

《근심을 끼쳐서 안됐습니다.》

《글쎄. 나 하나 근심으로 끝날 일이면 얼마나 좋겠소. 이거야말로 온 건설장의 운명과 이어진 신중한 문제란 말이요.

왜 그렇게 울적해있소? 한번 후련하게 웃읍시다.》

영훈은 손아래 누이동생 달래듯 싱긋이 웃어보였다. 경숙도 그를 따라 입술을 약간 벌리며 어줍게 미소를 지었으나 꾸며낸 그 웃음은 인차 스러졌다.

경숙은 며칠째 잠 못이루고 궁싯거렸다. 그는 로영훈에게 나약한 마음을 드러내보였단 생각으로 쑥스러운 심정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이런저런 일로 주위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동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데 자기만은 안타깝게도 근심만 끼쳐준다고 생각하니 경숙의 마음은 울적하기 그지없었다. 난 왜 남들처럼 속이 트이고 시원시원하게 생겨먹지 못했을가. 그는 늘 무슨 생각인가 혼자 품고 속앓이를 하다나면 나중엔 후회만 남는다는걸 느끼군 했다. 이번에 사실 자기의 나약한 마음을 꿍져두고있다가 영훈에게 실토정을 하고나니 마음은 개운해진듯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여 안타까울 지경이였다.

이런 모대김속에서 새날이 동터오고있었다.

새벽시간이면 경숙은 늘 콤퓨터와 마주앉았다.

그 시간엔 콤퓨터도 동떨어진 전자뇌수가 아니라 자신의 두뇌와 혼연일체를 이루기라도 한듯 놀라운 속도로 답을 내군 했다.

그는 밖의 함실아궁이에서 마른 장작이 탁탁 튀면서 활활 타는 소리를 들었다.

미경이 늘 이 시간이면 남몰래 새벽불을 지핀다는것을 경숙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였다.

《미경이, 내가 뭐 귀공녀니? 이제부턴 제발 새벽불 때지마. 난 막 덥고 미안해 죽겠어.》

경숙이 아무리 말렸으나 미경은 며칠째 그 일을 계속하다가 어느날 아침에는 그만에야 실토정을 했다.

《덥긴 뭐가 더워요? 난 뙤창으로 연구사동지의 방온도계를 들여다 보거던요. 정치부장동지가 실내온도를 무조건 18도이상 보장하라고 나한테 특별임무를 주었거던요. 어마나, 이걸 어쩌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뭐라구? 영훈동지가?!》

경숙은 며칠전에 찾아와서 친오빠처럼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관심해주던 영훈이 떠올랐다.

불시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요 깜찍한 미경이 혹시나 자기와 영훈동지사이가 남다르다는걸 지레짐작하면서 아닌보살하고있는것만 같았다. 경숙의 그러한 심리를 미리 알아채고 눅잦혀주려는듯 미경은 자못 진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정치부장동지가 말하기를 경숙연구사는 우리 돌격대원들 백명이나 천명을 대신한다더구만요.

연구사의 연구사업을 빈틈없이 뒤받침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몰래 돌격대원들속에 끼여들어 일하는걸 보면 알려달라고 했답니다.》

《옳지, 미경인 나를 늘 감시하고있구나.》

경숙이 곱게 눈을 흘겼다.

《호호호, 감시하고 말고요. 정치부장동지한테 일거일동을 보고하지요. 하지만 나도 녀잔데 녀자들끼리 눈감아야 할건 알고있답니다.

난 경숙동지가 이따금씩 우리 돌격대원들과 휩쓸리는게 좋아요.》

미경은 자기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미경이 경숙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연구사동지, 내 소원 하나 풀어줄래요?》

《뭔데?》

《콤퓨터를 배워줄수 없나요?》

《왜 없겠니? 하지만 얼마전에는 뭐 착암기를 배우고싶다더니 언제 콤퓨터까지 배우겠니?》

《결심만 한다면 어느 짬이든지 배울수 있어요.

잠을 덜 자든지, 남이 쉴 때 쉬지 않고서 말이예요. 그렇지만 연구사동지의 작업시간은 방해하지 않겠어요.》

《정 소원이라면 계획을 잘 짜고 내밀어보자.》

확답을 받은 미경은 함실아궁뚜껑을 꼭 닫고나서 자기네 숙소로 돌아갔다.

방안이 훈훈해지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경숙은 이른새벽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려고 전지를 켜들고 밖에 나왔다.

1호발전기실의 산경사면에서는 수십명의 돌격대원들이 압력철관로고정대 혼합물처넣기를 마감고비에서 다그치고있었다.

산아래 양수장에서는 양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고르롭게 들려왔다. 작업장에는 물이 없기때문에 우로 올라가면서 도간도간 물탕크를 만들어놓고 3단, 4단으로 물을 퍼올려 쓰고있었다.

갑자기 맨꼭대기에 있는 작업장에서 물이 없다고 소리쳤다.

잠시후에는 그아래에 위치한 작업장에서도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경숙은 양수기가 돌아가는데 웬일일가싶어 달려가보았다.

양수기배출관의 조임나사가 풀리여 련결짬으로 세찬 물줄기가 뿜어나오고있었다. 그런데 나어린 양수공처녀는 양수기동음에 산꼭대기에서 웨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있었다. 경숙이 사연을 알리니 양수공처녀는 다짜고짜 전원을 끄고 수리공을 데려오려고 했다.

경숙은 생각했다. 여러곳에서 분초를 다투며 혼합물처넣기를 하고있는데 언제 수리공을 깨워가지고 수리를 한단 말인가.

《양수공동무, 전기를 끄지 말아요. 우선 물을 올리고보자요.》

경숙은 그 길로 차디찬 물이 분수처럼 뿜어나오는 양수기배출관 련결부위를 가슴으로 꽉 부여안았다. 분수는 순간에 멎고 물은 또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물이 올라가자 우에서는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도 모르고 활기에 넘쳐 일을 계속하였다. 경숙의 온몸은 순간에 폭삭 젖었고 옷은 꾸둑꾸둑 얼어들었다. 이발이 떡떡 맞쪼아지고 참기 어려운 강한 부담에 심장이 후두두, 후두두 흉벽을 쳤다. 양수기의 진동으로 심장의 박동이 더 빨라지는것만 같았다.

《연구사동지, 나와요. 제가 막겠어요.》

감히 물에 뛰여들 용단을 내리지 못했던 나어린 양수공처녀가 가랑가랑 눈물을 머금고 안타까이 발을 동동 굴렀다.

경숙은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속으로 뇌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탱하자. 그러면 새벽교대작업이 끝날것이다.)

경숙은 한초한초를 인내성있게 지탱해나갔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이 순간에 터져나오는 찬물을 서슴없이 막을 용단을 내리게 되였던지 알수 없었다. 한시라도 앞당겨 대소한전에 혼합물처넣기를 끝내려고 모두 분발하고있는 때이라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싶은 마음이였을것이다.

그는 지금의 자신이 못내 자랑스럽고 긍지로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모양을 누구도 보지 말았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더구나 로영훈이 보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앞섰다.

우선 온몸이 폭삭 젖은 자기의 초췌한 모습을 보이는게 부끄러웠고 또한 그가 노하여 꾸짖을가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경숙은 오만가지 생각에 추운줄도 모르고 배관을 더 으스러지게 부여안았다.

그무렵이였다.

등뒤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요?!》

목소리의 임자는 로영훈이였다. 이른새벽에 현장을 돌아보던 모양이였다.

경숙은 대답을 못하고 지그시 배관을 붙안고있었다. 영훈은 부리나케 뛰여들어 경숙을 배관에서 떼여내고 자기가 터진 자리를 붙안았다.

그리고는 양수공처녀에게 소리쳤다.

《동무! 경숙동무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오.》

나어린 처녀는 경숙을 부여안고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온몸을 떨고있는 그를 어떻게 다뤄 낼 재간이 없었던것이다.

《그럼 빨리 담요를 내오우.》

영훈의 귀띔을 듣고서야 양수공처녀는 재빨리 달려가 두툼한 담요를 내다가 경숙에게 씌워주었다.

마침 현장치료 나갔던 녀군의가 돌아오다가 동상입을번 한 경숙을 무작정 이끌고 치료실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경숙이 못 가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한동안 싱갱이가 벌어졌다.

《난 일없어요. 정치부장동지가…》

《경숙동무, 내 걱정은 말고 빨리 들어가서 옷부터 갈아입소.》

경숙이 오돌오돌 떨면서도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자 영훈은 짐짓 성난듯 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경숙은 별수없이 녀군의에게 이끌려갔다. 그는 옷을 갈아입고 구급강심대책을 받은 뒤 얼른 담요를 안고 달려나갔다.

《영훈동지! 어서 나오세요.》

경숙이 간절하게 애원했건만 영훈은 빙긋이 웃으면서 터진 배관을 더 세괃게 부여안았다.

경숙은 너무도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굴렀다.

한동안 지나서야 산꼭대기에서 작업이 끝났다는 웨침이 들려왔다. 양수기는 곧 멎어섰다.

그제서야 영훈은 온몸에 슴새여든 랭기를 가까스로 참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듯 옷자락을 꾹꾹 쥐여짜며 일어났다.

경숙은 그때까지도 온몸이 덜덜 떨려 이발을 떡떡 맞쪼으며 겨우 말을 번지였다.

《저, 정말… 수고하셨어요.》

《원참, 경숙동무두. 어찌자구 여길 뛰여든단 말이요. 동상입기 전에 어서 방으로 들어가오.》

영훈은 진심으로 경숙을 걱정해주었다.

경숙은 자기보다 오래동안 찬물을 들쓰고서도 오히려 제 걱정을 해주는 영훈이 손우오빠처럼 고맙고 미덥게 여겨졌다.

《자, 어서…》

경숙은 영훈이 다시금 재촉해서야 정보과학실로 발길을 돌리였다.

그러다가 문득 영훈이 념려되여 《정치부장동지도 어서 방에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다.

경숙은 자기때문에 영훈이 더 지체할가봐 얼른 숙소로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그는 미경이 새벽에 화끈하게 불을 때놓은 아래목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못 견디게 졸음이 몰려왔다.

잠들면 안된다고 입술을 깨물며 일어나앉으려 했지만 좀처럼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해가 퍼그나 떠오른것 같았다. 밖에서 종종걸음을 치는 발자욱소리가 들려왔다. 장미경이였다.

《연구사동지, 아침밥 가져왔어요. 따로 짓다보니 좀 늦었어요.》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선 미경이는 보온밥통과 국통을 방가운데 놓더니 경숙이곁에 다가앉으며 호들갑스레 떠들어댄다.

《연구사동진 오늘 어떤 위훈을 세웠는지 알아요?

이제 온 려단에 짜하게 소문날거예요. 속보에두 현장방송에두 나구말예요. 신동진동무가 뭐랬는지 알아요? 녀성의 몸으로 그런데 뛰여든다는건 전투때 화구를 막는 일이나 같다고 했어요.》

《미경이, 무슨 그런 말을 하니. 그런 정황에선 누구나 그렇게 했을거다.》

경숙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한 인상을 지었다.

《솔직한 말루 난 못 그랬을거예요. 양수공동무도 자기는 열번을 죽었다나도 그럴 용기가 없다고 했어요. 연구사동지야말루 남들이 다 못하는걸 했거던요. 그런게 위훈이지 뭐예요?》

《너무 추어올리지 말어. 정치부장동지는 나보다 더 오래동안 물을 들쓰고있었단다.》

《그야 남자가 아닌가요. 제대군인이구요.》

미경은 오목눈을 곱게 흘기며 밥통뚜껑을 열었다.

《괜찮게 차려주었어요. 정치부장동지가 식당에다 말했다나 봐요. 신동진동무의 어머니가 닭알탕을 끓였더구만요.》

경숙은 정성껏 차려온 아침밥을 마주하고보니 불시에 목구멍이 뜨끈해졌다. 그제서야 경숙은 영훈의 건강이 념려되여 물었다.

《정치부장동진 일없던?》

《원참, 남들이 들으면 웃겠어요. 정치부장동지야 매사에 단련된 제대군인이구 당원이라는데두요.》

미경은 딴 걱정말고 제몸이나 돌보라는듯 의미있는 눈길을 보내며 샐쭉 웃었다.

경숙은 그 말에 은근히 얼굴이 붉어졌다.

저도 모르게 영훈에 대해 관심하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니하자고 해도 그에 대한 근심이 은연중에 차오르군 했다. 경숙은 그러한 심리를 미경이나 다른 처녀애들이 눈치챘을가봐 은근히 부끄러웠다.

경숙은 별로 밥맛이 당기지 않았다.

일어나앉으니 오슬오슬 떨리면서 머리가 아팠다.

경숙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미경이 앵두빛갈의 조그만 입을 벌리며 놀란 소리를 친다.

《감기온게 아니예요? 눈이랑 빨개요.

아이 이런, 이마가 방열판처럼 화끈하구만요.》

미경은 경숙의 이마를 짚으며 야단났다고 아부재기를 친다.

《군의선생한테 갔다오겠어요.》

엉치가 가벼운 미경이 일어서려고 하자 경숙은 제꺽 그의 손을 잡아 눌러앉혔다.

《제발 소문내지 마. 집에서 가져온 아스피린알약이 있으니 그걸 먹으면 낫겠지뭐.》

《야, 돌격대에선 아픈거 숨기는걸 제일 엄하게 추궁해요. 하루이틀 하고말 일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건강한 몸으로 일하고 생활하라는거예요.

여기선 건강관리를 잘못하여 배탈이나 감기 만난것도 자기비판을 하거던요. 집단생활과 공사에 지장을 주고 나라의 귀한 약을 허비하게 한 잘못이라는거지요 뭐.

그렇지만 연구사동지의 경우야 다르지요 뭐. 공사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터진 양수기배관을 그러안고있어서 감기를 만난건데 당당하게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래서 더 부끄럽구나. 미경아, 제발 려단장동지랑 정치부장동지한테 절대로 말해선 안돼.》

경숙이 사정하듯 미경의 손목을 꼭 잡고 말했다.

《야참, 이걸 어쩌나? 이제 당장 시내에 내려가서 시원한 과일을 사올수도 없구. 얼마전에 내가 감기들어 앓을 땐 말예요, 정치부장동지가 글쎄 꿀같은 다래를 군대밥통으로 한가득 따다주었어요. 난 그걸 먹구 인차 나았댔어요.

가만, 정치부장동진 어디에 가면 아직 겨울다래가 달려있는지 알고있어요. 내가 먹고싶다고 하면 또 따올수 있어요. 가서 슬쩍 에둘러 얘기할게요.》

미경은 정말 다래를 한밥통이나 받았던것처럼 과장을 했다.

경숙은 밥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경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정말 조골조골하고 달디단 다래만은 먹고싶었다. 경숙이가 동감이라는듯 잠자코있자 미경은 달랑 일어났다.

그러던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참.》 하면서 자리에 앉아버렸다.

《왜 그러니?》

경숙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치부장동지가 오전에 시내로 나가는것 같애요. 옳아. 생각나요. 며칠전에 내가 려단지휘부에 련락갔던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려단장동지가 전화를 받고있더구만요. 가만히 듣노라니 정치부장동지네 어머니가 걸어온 전화더군요.

저쪽에서 뭐라뭐라 한동안 설명을 하는데 려단장동지의 얼굴이 환히 밝아지는게 아니겠어요.

려단장동지가 거참, 잘됐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려단적으로 제일 나이많은 로총각을 적당한 대상과 마주세워주려고 왼심을 쓰던 참인데. 웬만한 돌격대처녀들은 정치부장동지의 인격과 지성의 높이에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거던요.

그런데 또 본인은 본인대로 아예 장가들 생각이 없는지 그런 말만 하면 펄쩍 뛰군 하지요.

댁에서 맞춤한 대상을 점찍어두었다니 잘되였습니다. 내 그럼 인차 정치부장동무를 집에 내려보내겠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아마 그래서 내려갔을지도 몰라요.》

그 소리에 경숙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주위생활에 너무도 눈이 어두웠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이 더없이 민망스러워졌다.

미경이 경숙을 위안하느라고 덧붙였다.

《마음놓으라요. 어디에 경숙연구사동지만 한 대상자가 있겠나요. 부모들이 요구하니까 할수없이 선보는체 하겠지만 틀림없이 퇴자놓을거예요.》

미경의 그 말도 경숙을 달래지 못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졌다.

《더 아픈게 아닌가요? 다래는 신동진동무더러 따오라고 해도 돼요. 그 동문 속이 시원시원하고 인정이 많아요.

꽃이름 대기 하던 날 내가 우정 그 동무가 댄 꽃이름을 반복해서 함께 노래를 했어요, 두번씩이나.

우린 한동안 신랑, 각시로 불리웠댔어요. 그래서 그런지 동진동무는 나를 남같지 않게 더 가까이 대한답니다. 내가 먹고싶다면 아마 이 겨울에 딸기라도 따올거예요.

그럼 기다려요.》

미경은 날렵하게 일어나더니 따뜻한 아래목에 경숙을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고나서 재빨리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가자 불시에 방안이 허전해졌다.

가슴속이 텅 빈듯 한 공허감과 상실감, 쓸쓸함이 감기를 릉가하는 정신적인 번민으로 그를 못 견디게 괴롭혔다. 미경의 말이 사실일가. 맞아, 사실일수 있어. 나이 많은 로총각을 둔 부모들의 심정이야 오죽할라구.

사실 경숙도 집에서 몇번인가 대상자를 내세워 시집을 가라고 재촉했다. 그런걸 번마다 뿌리쳤다. 어느때부터인가 심중에 남모르게 자리잡은 영훈의 존재가 심장을 단단히 틀어잡고있은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랬다. 그것은 부인할수 없는 진실이였다.

경숙은 지금껏 영훈을 심중에 간직하고있었기에 무슨 일이 하나 생기면 그에게 조언을 받고싶었고 그가 얼마동안 보이지 않으면 남모르게 가슴을 조이며 은근히 기다리게도 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정보과학실이 려단지휘부 가까이에 있는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그였다.

하나 경숙은 영훈과 언제 한번 사생활에 대하여 론의해본적이 없었다. 오직 공사에 대한 실무적인 이야기만을 가끔 주고받았을뿐이였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대담하게 용단을 내려 왜 아직 장가들 생각을 하지 않는가고 슬쩍 물었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같은 로총각한테 누가 마음을 두겠는가고 말했다.

도대체 로영훈이라는 인간은 경숙이라는 처녀를 조금도 이성의 감정으로 대하는것 같지 않았다.

대학시절에 로영훈은 학습에서나 조직생활에서 원칙을 떠난 그 어떤 동정이나 에누리도 허용치 않았고 설사 가까운 동무들에게서 사소한 결함이라도 나타날 때면 자기 잘못처럼 안타까와하면서 고쳐주기 위하여 허심하게 애썼다.

경숙은 교정에서 가까왔던 인연을 등대고 영훈과 자신을 나란히 해보려던 생각이 얼마나 허무했던가를 절감하였다.

어쩌면 내가 그처럼 쉽사리 영훈동지의 세계에 뛰여들 엄두를 냈담.

경숙은 울 가망이 되여 스스로 자신을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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