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5

싸늘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미경은 소대 저녁총화모임이 끝난 뒤 신동진이 따로 남으라는 바람에 호실에 들어가지 않고 휴식장주위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가까이 다가선 소대장은 마음을 다잡느라고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따지듯 물었다.

《장미경동무, 동무는 어째서 저녁취침시간에 보고도 없이 자주 없어지군 하는가?》

그러자 미경이 서슴없이 대꾸했다.

《보고해야 해결될수 없는 문제기때문이였어요.》

《뭐라구? 개별적으로 애로가 제기될 때마다 소대에서 못 풀어준적이 있었는가!》

《있지 않구요!》

《뭔지 말하시오.》

《난 착암기술을 배우고싶었어요. 그런데 소대장동무는 그걸 못하게 했지요. 녀자들은 함마질을 하지 말라, 착암기도 잡지 말라, 힘과 기술을 요하는 일은 다 남자들만 하라는 법이 어데 있어요. 그래서 난 물길굴중대에 착암배우러 다녔어요.》

미경의 대답에 동진은 깜짝 놀랐다.

물길굴전투장이라면 십리남짓이 먼 거리에 있다.

밤중에 무인지경을 오가면서 착암일을 배우느라 며칠째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일터에 나오군 했던 미경을 너무도 모른 신동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으나 잠시후에 단호히 말했다.

《다시는 가지 마시오.》

《가겠어요.》

《정 가고싶으면 아예 적을 옮겨가란 말이요.

난 소대장으로서 그런 자유주의를 허용 못하겠소.》

《자유주의라고요? 아니예요. 소대장동무의 행동은 녀자들의 자주성을 짓밟는 행위예요. 정 그렇게 나오면 난 다른 중대로 가겠어요.》

미경은 북받치는 분을 참지 못하여 얼굴을 싸쥐고 향방없이 어데론가 달려갔다.

동진은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줄 몰랐다.

참 맹랑한 일이였다.

동진은 일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몰라 휴식장의 나무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법동내기 손철남이 스적스적 다가왔다.

《형님 아니, 소대장동지, 너무하지 않았어요?

어이, 거 눈물 흘리면서 달아나는거 보라요.》

《철남인 몰라서 그래. 착암이라는게 남자들도 베찬데 녀자가 어떻게 한다고 그러는가 말야.

사실 몇날밤을 잠 못 자서 눈에 피가 져있는걸 보는 내 마음도 언짢아서 그래.》

동진은 그야말로 가슴이 아린듯 웅근 소리를 냈다.

《체, 그런 눅거리동정이 뭐 사랑이나요? 멸시하는거지. 미경동진 늘 세상에 태여난 이상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해보고싶다고 했어요.

녀자라고 한쪽구석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고싶지는 않다고 했단 말이예요. 콤퓨터도 배우겠대요.

우리 선생님은 뭐랬는지 알아요?

자주적인간의 창조적욕망을 묵살하는건 제일 큰 범죄라고 했어요.》

《어랍쇼, 이 법동내기 말하는거 좀 봐.》

동진은 어둠속에서도 철남의 정색해진 얼굴이 보이는듯싶어 눈을 크게 떴다.

《사실이 그렇지요 뭐.

소대장동지, 미경동지하구 화해하라요.

직접 말 못하겠으면 내가 도와줘요.》

철남이 제법 어른스레 조언했다.

《철남이, 너 정말 해낼수 있니? 서툴게 놀아가지구 둘이서 꾸민 광대극이라는게 빵짱나면 큰 손해 봐. 미경인 간단한 처녀가 아니거던.》

《헤, 나한텐 녀자들 앵돌아진 마음을 바로잡는 재간이 있거던요. 손우 누나가 다섯이나 된단 말이예요. 나처럼 녀자들 속내를 환히 꿰뚫고있는 남자도 드물어요.》

《야, 그럼 재간껏 해보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침실에 가야 만나지 못할거예요. 보나마나 아까 그달음으로 물길굴중대에 달려갔지요 뭐. 내가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만나서 이야기할래요.》

동진은 온지 얼마 안되는 철남이 그런 일을 스스로 맡아나서는게 대견하여 잔등을 쓸어주었다.

《하여튼 소대에서 달아나지만 않게 하라구.》

《알겠어요.》

신동진은 스적스적 호실로 향하였다.

철남은 혹시나 미경이 있을가 해서 녀성호실에 갔다가 없다는걸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는 30분만에 한번씩 깨여나다가 벽시계가 네시를 알릴무렵에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추위에 떨지 않으려고 든든히 껴입은 철남은 길목을 지키고있었다.

얼마 안있어 미경이 전지불을 비치면서 달려왔다.

사실 미경의 이 비밀을 미리 알고있은건 철남이였다. 그는 미경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서너번 잔기침을 먼저 한 뒤 《미경동지, 나 철남이예요.》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철남이, 너 왜 새벽녘에 나와 서있니?》

미경이 놀라며 물었다.

《나 혼자 나왔을게 뭐예요?

소대장동지가 밤새 잠 못 들면서 미경동지 들어오면 사죄하겠다고 기다렸어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더러 대신 사죄를 좀 해달라고 하겠지요 뭐. 제발 잘못했으니 소대를 뜨지만 말아달래요. 그러면 30만산 폭약갱굴진할 때 착암을 배워주겠다고 했어요.》

철남이 재간껏 꾸며댔으나 미경은 흥-하고 코바람만 내불었다.

《철남이, 너 그따위 서푼짜리 광대극에 뛰여들어 어리광대처럼 놀지 말아. 녀자를 업신여기는 그따위 버릇을 뚝 떼여버리기 전에는 아예 상종을 안하겠다고 전해라.》

미경은 차겁게 말하고나서 침실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니 소대를 떠나진 않지요?》

《내가 왜 소대를 떠나? 떳떳하게 우리 소대에서 준공의 날을 맞을테다.》

《야, 그럼 됐어요. 소대장이 아침까지 맘 편히 잘거예요.》

철남은 춤이라도 추듯 껑충거리며 소대침실로 달려갔다.

로철정은 깊은 밤에 물길굴을 돌아보고있었다.

남궁일과 허금호도 로철정과 동행하였다.

어느 한 물길굴막장에 이르렀을 때였다.

남궁일이 미경의 파란 솜옷을 띄여보고 물었다.

《책임자동무, 저 처녀가 어떻게 여기서 착암기를 잡고있소?》

로철정도 영문을 알수 없었다.

다만 며칠전에 압력관로공사장에서 미경이 녀자들은 그런 일을 하면 안되는가고 물었을 때 본인의 열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했는데 이처럼 멀리 떨어진 물길굴막장에 달려와 착암기를 잡고있을줄 어찌 알았으랴.

로철정이 가까이 다가가자 미경은 얼른 착암기를 착암수청년에게 넘겨주고 어줍게 웃으며 인사했다.

착암수청년이 미경을 대신해서 이야기했다.

《소대가 곧 30만산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는 착암수로 일하겠다고 합니다.》

로철정은 놀랐다. 허나 내색하지 않고 처녀를 눈여겨보았다.

불깃하니 피가 진 두눈과 귀여운 볼우물, 꼭 다문 입술… 해사한 용모의 처녀에게 어디서 저런 담력이 생겼을가.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려는 미경의 지향이 아름다왔다. 그것이 대견했고 고맙기도 했다. 녀성은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담당한 무시할수 없는 존재이다.

로철정은 애무와 긍정에 젖은 느슨한 미소가 떠오르는것을 느꼈다.

미경은 그 미소에서 위안을 얻은듯 방시레 웃었다.

착암수청년이 미경을 은근히 치하했다.

《이 동무네 소대장이 몹시 통제한답니다. 밤시간마다 몰래 달려오군 하는데 열성이 대단합니다.》

미경이도 스치는 말처럼 자기네 소대장이 녀성을 얕잡아본다고 볼부은 소리를 했다.

허나 로철정은 소대장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갱에 들여보내여 힘든 일을 시켜서는 안된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네 소대장이 좋은 사람이요, 녀성들을 아끼고 사랑할줄 알거던.》

《예?》 미경은 책임자의 속마음을 알수 없어 순간에 어리둥절했다.

철정은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착암기를 배우겠다는 미경의 일욕심은 물론 좋은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 나라 로동법에도 어긋나는 일이야. 장군님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니.》

미경의 얼굴은 활딱 붉어졌다. 자기가 얼마나 큰 실책을 저지른것인지 이제야 깨달은것이다.

《그럼 전… 어쩝니까?》 미경은 울상이 되였다.

소대와 소대장앞에 나설 일이 난처하게 된것이다.

《소대장동무한테는 내가 잘 말해주마. 그리고 이왕에 무언가 남들보다 더 많은것을 배우고싶거든 콤퓨터기술을 배우거라. 리경숙연구사가 대단한 콤퓨터수재다.》

《알았습니다.》 미경은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철정은 미경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나서 물길굴상태를 료해한 뒤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남궁일과 허금호도 함께 탔다.

구룡언제건설장으로 가는 길이였다.

아침 일찌기 겨울철 언제쌓기와 관련한 긴급협의회가 있어 미리 떠난것이였다.

차가 한동안 달렸을 때 남궁일이 입을 열었다.

《로동무, 그러니까 인차 대발파준비에 진입하겠다는거요?》

로철정이 명백히 대답했다.

《이미 대렬편성을 끝냈습니다. CT탐사와 설계는 이미 착수했고 설계가 끝나지 못해도 굴입구만 정해지면 폭약갱굴진도 곧 시작하겠습니다.》

남궁일이 신중한 인상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성에서는 명년상반년안으로 북부내륙지대의 수력건설에 동원된 대발파기술진을 보내겠다고 했소. 그때에 가서 국가적인 기술력량에 의거하여 대발파를 진행하는게 안전하지 않을가. 수백톤의 폭약도 국가계획에 물려서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허금호동무! 어디 말해보시오. 시작했다가 난관이 겹치여 중도반단하기보다는 국가적후원을 받으며 하는것이 낫지 않을가.》

허금호는 별로 신심없는 기색이였다.

《어쩐지 난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당적과업으로 대발파시공을 맡아안았으니 죽으나사나 하긴 해야겠지만 생판 처음 해보는 일이니 우리끼리 한다는게 좀 미타합니다.》

로철정은 허금호의 준비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동무는 왜 뜨뜨미지근한 소리를 하오?

대발파야 누구든 처음이지요. 그래도 발전소건설 두세차례에 작은 발파들은 여러번 주관하지 않았소. 당에서 믿고 시공을 맡겼으니 이제부터 기술을 련마하면서 자력갱생한다는 각오로 달려들면 못할게 뭐겠소? 리경숙연구사는 뭐 CT탐사가 처음이 아닌줄 아오? 그래도 며칠째 기초지식을 쌓고 달려들 차비를 다 했단 말이요.》

허금호가 미심쩍은 눈길로 철정을 돌아보았다.

《난 사실 우리가 최첨단탐사방법인 CT법을 제대로 활용해내겠는가 우려되는바도 없지 않소.》

로철정이자신도 우려가 없지 않은것은 아니다.

CT탐사란 종전의 시추탐사와는 달리 전자기파를 리용하여 콤퓨터로 땅속을 들여다볼수 있게 하는 최신탐사법이다. 세계적으로도 흔히 도입되지 못한 탐사법을 강원도가 도입한다는게 허금호로서는 가히 믿어지지 않을만도 했다.

철정은 허금호나 남궁일에게도 강원도에 대한 인식을 옳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장동무! 우리 강원도의 자랑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강원도에도 광명성1호를 쏘아올릴 때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들을 키워낸 조군실원산공업대학이 있고 전국프로그람경연에서 1등을 쟁취한 수재형의 인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못미더워 그럽니까? 그 옛적 암하로불이나 물강원도라는 대명사에 너무도 인백인게 아닙니까?》

로철정은 자신의 억양이 지내 높아진것을 의식하였다. 은연중 발딛고있는 고장에 대한 억제할수 없는 자부심과 긍지심이 조수처럼 밀려왔던것이다.

남궁일도 역시 로철정의 그러한 감정과 심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하였다.

그는 이런 경우에 공법문제나 기술실무적인 문제를 거론한다는것은 거의나 불가능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강원도사람들은 무엇이 안되면 조상탓이라는 말과는 반대로 어려운 일이 앞에 나서면 지난 세기 50년대의 선렬들을 내세우면서 자기 힘을 과시하기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이 암하로불이나 물강원도라는 말을 질색한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남궁일이였다.

철정은 계속했다.

《우리 도가 비록 전쟁의 피해를 제일 많이 입었고 자연지리적으로 불리하여 경제력이 약하고 공업토대가 빈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정신력마저 뒤떨어졌겠습니까. 우리야 직접 전기덕을 보게 될 발전소의 주인들이 아닙니까.

어떻게 우에서 도와주기만을 기다리겠습니까.

힘껏 하다가 정 힘들 때 도움받는게 주인된 자세가 아닙니까.

내가 언젠가도 말했지만 이전 도당책임일군의 사업기풍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것이라고 생각하오.

안변청년2호발전소건설때 있은 일이요. 구조물공사를 시간다퉈 해야 할 순간에 철근이 모자랐소. 나는 대뜸 성과 내각에다 전화를 걸어 큰일났다고 하면서 한시바삐 도와달라고 우는 시늉을 했지요.

하는 대답들이 심드렁했소. 발전능력이 얼마 안되는 중소형발전소를 지으면서 무슨 그런 우는소릴 하는가, 내부예비를 찾아보라, 그래도 정 없다면 계약된 단위들을 다 보장한 뒤에 보자고 하는것이였소.

그게 언젠가고 물었더니 6개월 아니면 다음해에나 가서야 보자는것이였지요. 우에서도 사정이 그렇긴 하겠지만 은근히 약이 올라 송수화기를 탕 소리나게 내려놓고말았습니다.

이제는 별수없이 다른 도들에 있는 제강소나 제철소들과 개별공작을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였소. 각이한 규격의 철근을 가득 실은 큰차 한대가 공사장에 나타났습니다. 이게 웬떡이냐 하고 기뻐서 달려나가니 운전칸에서 책임비서동지가 벙글서 웃으며 내리는것이였소.

알고본즉 일은 이렇게 된것이였지요.

당장 철근 십여톤이 걸렸다는것을 안 최원익책임비서동지는 생각던끝에 시내를 한바퀴 돌았소. 그러다가 아까운 철근으로 빙 둘러가면서 울타리를 친 공장기업소에 들어가 지배인, 당비서들을 만나 호소했다는거였소.

동무들, 당장 철근이 필요해서 그러니 저 철근울타리를 철수합시다.

그대신 내 유원지관리소에 말해서 생울타리감으로 심는 수종이 좋은 나무모들을 보내주도록 할테요. 그러면 전기생산을 앞당기니 좋고 도시의 록지면적을 늘여 환경보호도 잘되니 좋아, 꿩먹고 알먹는 격이 아니겠소.

공장, 기업소 책임일군들은 즉시에 호응했소.

그렇게 되여 딱 걸렸던 철근문제가 즉시에 해결되였고 그 공장, 기업소들은 생울타리를 멋지게 해서 도시미화의 본보기단위로 되였던거요.

이처럼 무슨 일이 하나 제기되면 먼저 제힘으로 할 생각을 하고 뛰는 사람에겐 순간에 길이 열리게 되는것이 아니겠소.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나는 책임비서동지의 일본새를 본받기 위해서 매사에 심사숙고하는 버릇이 생겼소.》

철정은 은연중 갈마드는 긍지감과 자부심에 겨워 흔연히 미소를 지었다.

남궁일은 차가 목적지에 거의 이르러서야 자기의 의사표명을 명백히 했다.

《내 이번에 정말 교훈을 얻었소. 제힘으로 하겠다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우에다 손내밀내기를 하다보니 희극적인 인물이 되고말았소그려.

동무네가 말없이 날 따끔히 비판해주었소.》

철정은 남궁일의 말뜻을 잘 알고있었다.

그것은 얼마전 평양출장길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돌아온 뒤 궁일은 강철판만곡기조립현장에도 나가보고 동예비를 얻어낸 제련소에도 다녀왔다.

그는 현실에 내려와있으면서도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덮어놓고 도와주어야 일떠세울수 있다는 주관적사고에 몰두한 나머지 희극적인물로 되였던 자신을 가끔 돌이켜보았다.

하지만 엄혹한 현실과 맞다들고보면 뚫고나갈 방도보다도 먼저 우에다 실태를 반영하여 도움을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앞서군 했다.

사실 대발파기술집단을 한번 움직인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일껏 조직해놓은 일을 기다려내지 못하고 시작한 이상 남궁일로서는 발벗고나서서 도울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의 력량으로 한번 해봅시다.

이미전에 내려온 성의 대발파전문가동무가 능력이 있소. 그 동무를 CT탐사소조에 망라시키면 소득이 클거요.》

남궁일이 그렇게 나오자 로철정의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다.

《그 동무도 이미 현장에 나와있습니다.》

로철정의 말에 남궁일은 자기의 생각을 앞질러 멀리 내닫는 현실을 새롭게 느낀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차는 드디여 언제건설장에 도착하였다.

밤은 깊었지만 건설장은 들끓었다.

진흙을 실은 차들이 들어와 부리우고 나가면 불도젤들이 달려들어 골고루 펴놓는다. 그러면 수많은 돌격대원들이 아름드리 참나무토막으로 만든 달구를 힘껏 들어올렸다가 내리쳐 진흙을 쾅쾅 다진다. 짐차가 몇번 굴러가면 되련만 하나뿐인 그 기대가 수리중인것이다.

시공검사원처녀가 감마선다짐측정기로 매 구간의 다짐정도를 깐깐히 측정하여 부단히 반복작업을 시키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터놓는 사람이 없다.

자정이 지나자 혈압이 높은 허금호는 몹시 피곤해했다. 철정은 금호와 궁일을 숙소로 먼저 들여보낸 뒤 건설장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작업진척정형을 료해하였다.

결정적으로 자동차와 불도젤, 다짐기가 걸렸다.

그것들이 부족하니 인해전술밖에 할수 없지 않는가.

자동차와 연유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반드시 30만산대발파를 앞당길 결심이 굳어졌다.

로철정은 생각했다.

이처럼 커다란 공사를 책임진 자신이 신념이 약하여 주저하거나 주위사람들의 우려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좌왕우왕하다가 건설을 늦잡는다면 어버이장군님께 드린 맹세를 어기게 된다.

그러면 지금껏 용기백배하여 따라오던 건설자들은 손맥을 놓고 실망하게 될것이다.

이 추운 겨울 심심산중에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밤밝히는 돌격대원들이 하루빨리 전기를 이끌고 고향집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깊은 밤이다.

준공의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고 돌격대원들이 사방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밤일에 몰두하고있었다.

그는 밤을 밝히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수많은 홰불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기자들과 정치일군들은 헤일수없이 많은 돌격대의 우등불과 홰불에 대하여 그리고 그 불빛밑에서 밤샘을 하는 돌격대원들의 자랑찬 위훈에 대하여 즐겨 기사를 쓰고 속보자료를 만들수 있을것이다. 하나 자신은 저들이 우등불과 홰불을 모두 꺼버리고 따스한 돌격대침실에서 발편잠을 자면서 낮동안의 피로를 풀게 해주어야 하는것이다.

그런즉 한초한초 대발파의 폭음을 미루는것이야말로 엄청난 과오가 아니고 무엇이랴.

철정은 이밤 숙소에 들어간다 하여도 저 불길들이 다 꺼질 새벽까지는 잠들것 같지 못했다.

그는 뻐근한 가책을 느끼며 잠들지 않는 언제건설장을 끝에서 끝까지 밟아보았다.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이 자기들과 함께 밤밝히는 책임자의 모습에서 커다란 고무를 느끼며 일에 더욱 성수를 내였다.

기계화대대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물었다.

《불도젤들이 몇대밖에 가동하지 못하는 원인은?》

《제가 그 문제때문에 책임자동지를 만나려던 참입니다. 이거 중앙제품 리데판을 공급받아야지 도에서 자체로 생산한것들은 얼마 못 가서 깨져나가든가, 엿판대기처럼 우그러들어서 못쓰게 됩니다. 그래서 서너대나 서있습니다.》

로철정이 아래에 내려올 때마다 흔히 듣게 되는 우는 소리였다.

지금 온 나라 각지에서 다투어 찾는것이 리데판이다. 여기서도 계획분을 다 받아왔다.

불도젤들을 쉬임없이 몰아대니 리데판인들 견디여내겠는가. 그래서 그것을 자체해결해보자고 도안의 용선로가 있는 단위들에 호소를 했더니 강질이 맞지 않아 깨지거나 우그러든다는것이다.

《우리자체로는 해결할수 없을가?》

로철정이 물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기계화대대장이 눈을 치뜨며 되물었다.

철정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잠시 생각했다.

군대때 중형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발파도 해보고 열처리도 해보았다던 허성준이 문득 떠올랐다.

《여기에 허성준이라고 얼마전에 배치받은 제대군인동무가 있을텐데 찾아보오.》

얼마 안있어 달구질을 하느라고 땀흘리던 성준이 큰소리로 대답하면서 달려왔다.

《허성준이 여기 있습니다.》

《야간교대에 나와서 혁신하는구만.

저기 더미로 쌓여있는 리데판들을 보라구.

어떤건 얼음처럼 깨여져나가고 어떤건 엿판대기처럼 우그러들어서 못쓰고있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그러자 성준의 눈빛이 홰불에 환히 빛났다.

《아, 그것 말입니까? 우리도 군대때 건설하면서 리데판때문에 혼났습니다. 그래서 자체로 열처리를 해서 썼습니다. 강해서 깨여져나가는건 벼겨나 톱밥불에 서서히 달구었다가 서서히 식히는 방법으로 소둔하고 엿판대기처럼 무른건 센불에 달구었다가 급히 랭각시켜 강하게 만들면 됩니다.》

《이것 보우, 군대에서 못 배운게 없이 다 배웠구만. 좋소, 그럼 성준동문 오늘부터 저기 쌓여있는 리데판들부터 열처리하여 불도젤들을 뛰게 하자구.》

로철정이 성준의 잔등에 손을 얹고 지시하자 그는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집행하겠습니다.》

철정은 허성준의 의젓한 몸매며 락관적인 성품을 두고 생각이 깊어졌다.

철정은 아버지의 모색이 남아있으면서도 어덴가 결단성이 느껴지는 성준의 모습을 대견한 눈매로 바라보았다. 그는 종종 어렵고 난감한 일에 부딪쳤다가도 이런 활기있고 진취성있는 청년들을 보게 되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능히 제힘으로 해낼수 있다는 자신심이 생기군 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인재로군. 군대때 크고작은 발파도 여러번 해보았다니 30만산대발파조에 지휘원으로 보내면 크게 한몫 하겠어.)

철정의 생각을 알아맞추기라도 한듯 성준이 진중하게 청을 드렸다.

《책임자동지, 인차 30만산대발파조를 올려보낸다지요? 저도 거기에 망라되고싶습니다.》

로철정은 무등 기뻐했다.

《내 생각과 다름없군. 한번 본때있게 해보오.

이 발파만 성공시키면 30만산을 7초동안에 언제 가까이로 옮겨놓게 되는데 이건 대형자동차 수십대가 수백톤의 연유를 태우면서 넉달동안이나 꼬박 날라야 할 물동량이요.

이걸 우리 힘으로 하자니 걸린 일이 허다하오.》

철정은 더 말하지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걸린 문제는 대발파를 주관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일군들의 마음의 준비가 부족한것이였다. 공사실무적인 부담을 이겨내기보다 더 어려운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철정은 성준이 대발파조에 망라되면 허금호에게 힘이 되고 고무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도우면서 우리 함께 30만산을 점령하자구.》

로철정이 성준의 두팔을 부여잡으면서 미덥게 뇌이였다.

《알았습니다!》

성준은 명령받은 전사마냥 차렷자세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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