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6

허금호는 며칠만에 집에 내려왔다.

성준이 제대되여 처음으로 맞는 생일인데 집안이 모여앉자고 안해가 전화로 알려왔던것이다. 마침 바다에 나갔던 처남도 돌아왔다고 한다.

하긴 아들의 생일을 오랜만에 축하해주는 일도 외면할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허금호는 집대문앞에 가까이 이르자 느닷없이 피곤을 느끼며 부름종을 울리였다.

초저녁부터 찾아와서 기다리고있던 학섭이 반갑게 마중을 나왔다.

《야, 매부얼굴 한번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로군요. 건설은 뭐 혼자 다 하는것처럼 노상 나가살고있으니, 원.》

그는 물고기손질을 마저 하려고 세면장바닥에 쭈그리고앉는다.

허금호는 싱긋이 웃어보이고나서 처남앞에 무드기 무져있는 물고기를 보고 놀랐다.

싱싱한 가재미가 퍼그나 많았다.

《아니, 무슨 잔치를 한다고 이렇게 많이 구해들였나, 원.》

금호가 좀 언짢은 낯빛을 지었다.

《돌격대에선 잡곡밥에 나물국이면 그만인데 이건 지나친 소빌세.》

《매부도 참, 고기잡이에서 한다 하는 배의 기관장인 내가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조카를 위해서 이만한것도 못 가져오겠나요.》

학섭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성준이 끼여들었다.

《나도 어쩐지 이 많은걸 혼자서 다 소비하는게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어요. 이웃과 좀 나누는게 어때요?》

허금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좋은 생각이다. 여보, 책임자동무네 안해가 홀로 지내면서 때식도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소.

고지식하기란 자막대기 한가지인 그 령감이 마누라한테 내려가보지도 않고 몇달째 건설장에서 밤샘을 하는데 그 댁에도 좀 가져다주구려.》

안해가 제꺽 응대를 했다.

《나도 그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가재미손질에 여념이 없던 학섭이 서둘러 일어섰다.

《내가 집을 알아요. 제꺽 다녀오지요.》

그는 비닐구럭에다 큼직한걸루 묵직하게 주어담으며 말했다.

《거 책임자아바이는 나도 풋낯이 있어요. 우리 어로공들이 건설지원을 나갈 때마다 전기신세를 별로 지지 않는 바다사람들까지 다 동원되니 미안하다고 늘 인사말삼아 하더군요.》

그는 날이 찼지만 인차 다녀온다면서 솜옷도 입지 않고 달려나갔다.

그가 나간 뒤 안해가 그제야 생각난듯 뜨개옷을 꺼내보인다.

《키 큰 시공참모가 시내에 나오는 길에 들고왔습디다. 책임자아바이가 주면서 하는 말이 남궁일국장의 집에서 당신앞으로 보낸거래요.

추운데서 늘 수고하는데 껴입으라구요. 입어보세요.》

금호는 얼굴이 불깃해졌다. 기관지가 나쁜 로철정을 위해서 보냈겠는데 자기더러 입으라니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책임자방에다 두고나왔는데 집에까지 보낸걸 돌려보낼수도 없어 고맙게 생각하면서 양복우에 걸쳐보니 폭신했다. 하지만 남의것을 입은것처럼 거북했다.

그동안 성준은 위생실과 세면장, 전실을 돌아보면서 전등을 모두 끄고 들어왔다.

《어머니, 사람이 없는 방에 왜 불을 켭니까.

이렇게 한꺼번에 전기를 많이 쓰면 전기가 샘솟는들 당해내겠습니까?》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수선스레 말했다.

《다른데보다 전기덕을 많이 보다나니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구나. 이제부턴 채심을 해야지.》

사실 배전부에서는 허금호가 발전소건설시공을 맡아안고 밤새우며 설계도를 본다고 웬만해서는 정전을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뜨뜻한 구들에 마주앉았다.

허금호는 다 자란 아들의 듬직한 체구를 슬며시 눈짓해보면서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였다.

그는 담배갑과 라이터를 아들앞으로 밀어놓으면서 《한대 태우렴.》 하고 아량있게 권하였다.

《전 배우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는 새 세기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문명치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고 호소했습니다.》

《하긴 그렇다. 그런데 우리처럼 일때문에 속상한 사람들은 이걸로 마음을 달래기도 하지.》

허금호는 아직도 며칠어간에 있었던 정신적압박감과 피로에 짓눌려 인상을 밝게 지을수 없었다.

낮에도 로철정이 이끄는대로 칼바람을 맞으면서 폭약갱입구지점들을 확증하느라고 종일 헤매다보니 시달릴대로 시달린터였다.

처남이라는 사람은 나간지 퍼그나 오래되였건만 돌아오지를 않는다.

얼마쯤 더 지나서야 학섭이가 나타났다.

《에잇 추워, 10분도 안될 길을 지금껏 찾아다니였다니, 허참.》

잠간이면 될줄 알고 솜옷도 안 입고 나갔댔으니 떨만도 했다.

《어째 이리 늦었나?》

허금호가 측은한 눈매로 물었다.

《집을 겨우 찾았지요. 그쪽은 아직 전기불을 안 주었더군요. 전지도 안 들고 떠났댔으니 통 어데가 어덴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이집저집 문을 두드려서야 겨우 찾았지요.

그런데 발전소건설책임자네 집에 따로 조명전기도 안 주는지 아주머니가 손전지를 켜들고 나오더구만요. 물고길 내놓았더니 그런걸 받으면 주인이 야단한다면서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게 아니겠나요.

이건 무슨 뢰물이 아니라 례물이라고 하면서 사연을 이야기해서야 놓고 돌아오는 길이예요.

근데 책임자동지는 근 한달째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더구만요.》

학섭의 긴 설명을 듣고있던 금호가 되받았다.

《그댁 내외가 그렇게 꼬장꼬장하다네.

몇해전에 배전부에서 그쪽지구에 조명시간을 다른데보다 조금 늘였다가 책임자가 알고 당장 교차생산규정대로 하라고 하는 바람에 다른 구역과 꼭같이 전기단련을 받는 모양이야. 간부들이 직접 전기 그리운걸 알아야 발전소건설에 강심을 먹고 달려든다고 했다던지, 원.》

설명을 듣고있던 학섭은 《하긴 그런 일군들이 진짜배기 인민의 충복이지요. 사실 간부들이 다 그래야 하는데 제 살 궁리만 하는이들도 간혹 있다니까요.》 하면서 무슨 소리인가를 더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무렵에 부름종소리가 들리더니 탁기영이 들어왔다. 각이 진 술병과 과일이 들어있는 구럭지를 들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아드님이 돌아오자 생일을 맞게 되여 기쁘겠습니다.》

낮에 허금호에게 오겠노라고 전화를 했는데 제시간에 이르렀다.

인차 방가운데 상을 놓고 모두 둘러앉았다.

생일축하니, 사회생활의 전도니 하고 시키지 않은 말을 한창 늘어놓던 탁기영이 제가 가지고온 인삼술병의 마개를 땄다.

학섭의 인상이 약간 불쾌해졌다.

그는 마땅히 자기가 가져온 해삼술이 이 자리의 첫잔을 채워야 한다고 믿고있었는데 난데없이 탁기영이 자기보다 급이 높은 술을 가지고 나타나 잔들에 기울이는 통에 별수없이 양보를 하고말았다. 이런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그런 사소한 문제로 시비를 따지는것은 사내들의 소행이 아닌것이였다.

모두 유쾌한 기분으로 잔을 비웠다.

성준은 잔굽에 약간 입술을 대였다가 그저 내려놓았다.

《이 사람 젊은친구, 이러면 섭섭하지 않나.

내가 모처럼 부은 술인데 한잔 쭉 내라구.》

탁기영이 성준에게 다시 술잔을 들려주며 하는 말이였다.

술보다 안주 먹는 멋에 술상에 앉는다는 학섭이 성준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내가 바다에서 며칠만 더 일찌기 돌아왔더래도 성준이 너를 수출수산가공반에 받았을거다. 한데 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발전소건설자가 됐구나. 하긴 잘 생각했다. 아버지가 년세도 있고 힘든 일을 맡아 지치기도 했으니 이젠 세대교체를 할 때도 되였지. 매부, 안 그래요?》

허금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힘겹다 힘겹다 해도 지금처럼 힘든 때는 없었던것만 같네. 로철정책임자는 한겨울에 콩크리트시공을 내밀지, 이도 안 난 아이에게 콩밥 먹이듯이 30만산대발파를 우리끼리 한다면서 어벌 크게 달려들고있으니 후과가 좋지 않을 땐 집행자인 나한테 책임이 돌아올게 아닌가.

얼마전에도 내 힘이 딸린다면서 년로보장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려다가 그가 이왕 함께 내디딘 걸음을 끝까지 힘합쳐 가자고 하는 바람에 그저 물러앉고말았네. 십년이상 그 사람과 함께 울고웃으며 어려운 길을 헤쳐온 정을 생각하면 차마 외면을 못하겠지만 뒤일을 내다보면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떠오르군 한단 말이거던. 하기야 이젠 성준이가 내대신 자리를 메웠으니 물러난대도 부끄럽지는 않게 된셈이지.》

금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탁기영이 손세를 쓰면서 밀막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준공식을 할 때까지는 있어야지 떳떳하게 새집을 배정받을게 아닙니까. 마감까지 있으면서 살림집건설도 끝까지 밀어주어야지요. 제발 그런 나약한 말씀은 하지도 마십시오.》

학섭이 맞장구를 쳤다.

《아, 그런 문제가 있다면야 기왕 애쓰던거 성준이와 한초소에서 말년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새집까지 배정받은 뒤에 은퇴하는것도 좋은일이 아닌가요.》

허금호가 의사표명을 명백히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자 탁기영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공책임자동지! 책임자동지가 며칠전에 1호발전기실 철근과 세멘트소비가 엄청나게 초과됐다면서 원인을 따지는 바람에 정말 따분했습니다. 아빠트건설을 좀 앞당기자면 자재를 지금보다 곱절은 보장해주었으면 합니다.》

허금호는 쉽사리 응할수 없었다.

《그건 힘들거요. 발전소건설용을 쥐 소금 녹이듯 졸금졸금 뽑아다쓰면서 너무 크게 자리를 내면 좋지 않소.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에 그 문제로 론의가 있었소.》

《야, 책임자아바이하고야 10년도 넘게 어깨겯고 일해오는터에 그쯤한 일로 무슨 일이 생길라구요. 내 그러지 않아도 책임자동지와 허동지네 살림집은 네칸짜리로 전실에서 탁구도 칠수 있게 설계변경을 하도록 했습니다.》

허금호는 기영의 말을 덤덤히 듣고있었다.

나라가 중시하는 큰 건설을 해제낀 뒤 로철정책임자도 지금의 불비한 살림집을 내놓고 이사를 시키면 마다하지 않을것 같았다.

《그렇지만 맡겨진 대상건설물의 질을 떨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오.》

《아, 그야 물론…》

탁기영은 이렇게 합법적이나 다름없는 승낙을 받아낸 뒤라 날개돋친 심정으로 자리를 일었다.

《자, 그럼 전… 일가들속에 끼여서 인사불성이였습니다.》

탁기영이 깍듯한 인사를 남기고 나갔다.

성준은 그가 나가자 자리가 훨씬 편해진것만 같았다. 어덴가 속내가 명백치 않고 겉과 속이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탁기영의 출현으로 하여 성준은 처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가 잠시후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 부국장이라는 사람의 얼림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 이 집이 얼마나 좋아요, 터밭도 있고 과일나무도 있는. 발전소건설자재를 뽑아다 살림집을 짓는다니 그게 어디 될번이나 할 일이예요? 강재 한톤, 세멘트 한톤을 위해 밤낮 달려다니는 책임자동지한테 죄되겠어요.》

허금호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아들의 하는 말이 대견하게 들리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성준은 자리에서 성큼 일어나더니 옷걸개에서 솜옷을 벗겨들었다.

《아버지, 제가 오늘 잘못 내려왔습니다.

불도젤리데판 수백장을 재불속에 묻어놓고 풋내기친구에게 맡겨놓았는데 아무래도 빨리 올라가보아야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밤중에 어델 간다고 그러느냐면서 막아나섰지만 허금호는 묵묵히 서있었다.

그는 아들한테서 자기에게는 부족한 강의하고 대바른 성품을 발견하게 되자 이전처럼 가볍게 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편히들 주무십시오.》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남긴 허성준은 아무러한 생활의 불편도 없는 안온한 가정적환경이 오히려 불만족한듯 찬바람부는 어둠속으로 서둘러 사라져갔다.

허금호는 훌륭한 인격자로 성장한 아들을 대견한 마음으로 바래우면서 문밖에 한동안 서있었다. 그러나 심중은 바람만난 갈대숲마냥 진정을 못하고 뒤설레였다.

어덴가 자기와는 완연히 다른 인격으로 성장한 성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버지인 그자신도 어렵게 대하게 하는것이였다.

아들은 분명 복무의 나날에 그 어떤 일도 해제낄 완강한 의지의 소유자로 자랐다. 허금호는 이제부터 자기가 아버지의 자격과 권리로 성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수 없다는것을 느끼자 어덴가 소외감 비슷한 감정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막아나서야 부질없는노릇을 구태여 꾸며서 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먼동이 희붐히 터올무렵에 허금호는 집을 떠났다.

차는 천천히 굴러갔다. 밤중에 먼저 떠나간 성준이를 생각하니 어제저녁 집에 내려왔던 일이 받지 않는 음식을 먹은 때처럼 께름하였다.

로철정은 이밤도 현장에서 새웠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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