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9

차는 진득거리며 차창에 부딪치는 눈발을 헤치면서 내달렸다. 이제는 바야흐로 대발파전투장을 30만산현지에 전개할 때였다. 그래서 로철정은 급기야 압력관로건설장을 떠나 언제건설장으로 가고있었다.

시시각각으로 쌓이는 눈을 짓이기며 구배심한 길을 바라오르던 승용차는 급한 경사지에 이르러 애처롭게 용을 쓰면서 맹렬하게 헛바퀴질을 했다.

차는 더 전진을 하지 못하고 멎어섰다.

철정은 할수없이 내려섰다. 뒤꽁무니에 어깨를 들이밀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밀어보았다.

배기가스를 마시며 진땀이 나도록 힘을 뽑았으나 승용차는 한치도 더 전진을 못하고 부르르 몸체만 떨뿐이였다.

랭각수가 부글부글 끓고 열받은 기관에서 윤활유 타는 역한 냄새가 났다.

운전사는 부랴부랴 바퀴에 쇠사슬을 씌웠다.

차는 한결 가볍게 달렸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언제건설장으로 가는 산협길에 접어들자 차는 헐썩거리며 힘겹게 전진하였다. 거기는 이미전부터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철정은 문득 떠나기 전에 언제건설장과 전화가 되지 않던 생각이 났다. 진눈까비로 해서 통신선이 끊어진것이 분명했다.

언제건설장을 70리가량 앞에 두고 차는 넘어서기 어려운 눈무지앞에 멈춰섰다.

차는 그만에야 무용지물이 되여버렸다.

잠간사이에 폭설은 승용차를 덮어버렸다.

운전사는 차문을 겨우 열고 밖에 나섰다.

두손으로 허우적대면서 앞시창의 눈을 쳐내버렸다.

사위가 어스름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철정은 속이 부글거려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운전사는 걸어서라도 언제건설지휘부에 련락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였다. 두끼나 번진 그가 허리치는 눈길 70리를 과연 무사히 가낼수 있겠는가.

일망무제한 눈의 세계를 휘둘러본 운전사의 두눈에도 주저하는 심리가 확연히 어리였다.

눈속에 굴을 파다싶이 하면서 몇걸음 전진하던 운전사는 실망하여 서버렸다.

화가 난 다혈질의 젊은 운전사는 허기증을 참지 못하여 눈우에 퍼더버리고앉았다.

그들은 당장 어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런 속에서도 철정은 공사장의 형편이 걱정되였다. 진눈이 들어붙어 무겁게 드리운 전기줄들과 전화선들이 맥없이 툭툭 끊어져나가는 광경이며 압력관로기초건설장의 비닐판자집들이 눈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밟힌 성냥곽처럼 찌그러지는 모양이 눈에 어려왔다.

그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심산속의 눈길에 갇혀있는 자신이 민망했다.

우선 운전사가 원기를 잃고 퍼더앉아있는것이 안타까왔다.

어슬무렵에 운전사는 결정적인 걸음으로 지척지척 눈길을 헤쳐나갔다. 철정은 자기를 만나 간난신고를 함께 하면서 뜻밖의 고생을 겪군 하는 운전사가 측은했다.

허기져 맥을 추지 못하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방안에 무언가 있음직했다. 포도당정맥주사용암풀 몇개가 있었다.

돌격대군의가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철정의 건강을 념려하여 아무때나 무력감이 올 때면 쓰라고 비상용으로 넣어준것이였다.그는 운전사를 불렀다.

《이거라도 마시고 가라구.》

뒤를 돌아본 운전사는 도리질을 했다.

《쌀알 한알이 열한걸음 가는 힘을 낸다는데 이거면 몇천걸음도 갈수 있소. 어서 오라구.》

철정은 열걸음쯤 눈무지를 헤쳐간 그를 돌따세우는것이 무엇하여 자기가 허우적거리며 그에게 다가가려고 걸음을 옮기였다. 그러자 운전사가 펄쩍 뛰며 놀라서 되돌아왔다.

철정은 포도당약갑안에 넣어둔 절개기로 암풀을 터뜨려가지고는 운전사에게 내밀었다.

《안됩니다. 책임자동지가 마셔야 합니다.》

《나야 앉아서 기다릴텐데 어서 마시고 떠나라구.》

체격이 좋고 얼굴에 항상 붉은 혈색이 돌던 운전사의 해쓱해진 모습과 떼꾼해진 눈을 바라보는 철정은 가슴이 아릿했다.

운전사는 로철정의 인정무르면서도 단호한 성격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공연히 시간만 지체할수 없는 절박한 정황을 느끼면서 포도당암풀을 받아들더니 잠시 들여다보다가 눈을 꾹 감고 입에 가져다대였다.

그리고는 그 달콤한 약물의 맛을 기억해두려는듯 한동안 입에서 굴리며 넘기지 않고있었다.

《어서 넘기라구, 이것도 마저…》

철정은 두번째 암풀도 터뜨려서 그에게 주었다.

운전사는 입안의것을 꿀꺽 소리가 나게 넘겨버리고는 사양해야 무모한짓이라는것을 깨닫고는 두번째 암풀마저 받아마셨다.

로철정이 그렇게 마지막암풀까지 다 마시게 한 다음에야 자기를 놓아주리라는것을 알고는 홱 돌아서서 고속도로쪽을 향하여 내처 걸음을 옮기였다.

그 약물이 힘이 되였는지 운전사의 동작은 퍼그나 약동하였다.

철정은 달려온 반대쪽으로 멀어져가는 운전사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그러더니 령길굽인돌이로 아예 사라져버렸다.

인적없는 흰눈의 광야에 홀로 남은 철정은 급기야 외로움을 느끼였다.

제일먼저 그립게 떠오르는것은 뭐니뭐니해도 아름찬 공사일을 함께 떠안고 힘겹게 헤쳐가는 허금호였다. 그도 지금 건설하고있는 발전소를 어떻게 하나 다른데서 일떠세우는것들보다 현대적으로 출력도 높고 힘도 적게 들이면서 완공하자니 어려울 땐 우를 쳐다보기도 하고 더러 우는소리도 하는것이 아닌가. 어쨌든 일하자는 사람이니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진심은 그렇지 않아 준공의 날까지 함께 이끌어가고싶었다.

갑자기 하늬바람이 터지면서 지동치듯 눈보라가 일어번졌다. 광란하는 눈보라는 삽시에 골을 메우고 산야를 번번하게 만들었다.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을수는 없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걸음이라도 여기를 벗어나 공사장가까이로 가야 한다. 그래서 폭설에 묻힌 건설자들의 귀틀집들과 건설장을 구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차문을 열어야 했다. 눈에 묻혀 움쩍도 하지 않았다. 안깐힘을 다하여 문을 박찼다.

드디여 눈이 다져지면서 빠끔하니 열리였다.

문짬으로 차디찬 바람이 쓸어들었다.

못 견디게 춥고 허기져 더는 일어날것 같지 못했다. 문득 운전사가 떠나가면서 정 추울 때 쓰라고 뽑아놓고간 한병의 휘발유가 눈에 띄였다. 안돼! 안돼!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에도 어째서인지 불쑥 허금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도 지금 물길굴중대들을 찾아다니면서 시공지도를 하다가 눈속에 갇히여 고생할지도 모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발파전투장을 당장 전개하느냐, 뒤로 미루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가타부타 언쟁을 하느라고 기분까지 상했었는데 이처럼 외진 곳에 버림받고보니 그가 더없이 그리워지는것이였다.

한편 물길굴굴진정형을 알아보려고 이천대대의 작업갱골짜기에 들어갔던 허금호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쏟아져내리는 폭설에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있었다.

동작이 느리기로 소문난 이천대대장은 《시공책임자동지, 오래간만에 우리 대대에 나왔는데 길이 열릴 때까지 며칠 묵었다 가십시오. 요즈음 여기에 곰만 한 메돼지가 새끼들을 주런이 달고다니는데 한마리 잡아 메칠텝니다.》 하고 으시대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눈판에서 메돼지잡는 방법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여보 대대장, 언제 그런 한가한 소리 들을새 없소. 빨리 떠나야겠소.》

《아니, 이 눈길에 말입니까? 해마다 한두번씩은 폭설에 혼나는 돌격대원들이 있는데 공연히 무슨 변을 만나자고 그러십니까? 떠나보낸 이 대대장을 무대에 올려세우자구요? 안됩니다!》

금호는 진드기처럼 들어붙어서 가지 말라고 붙잡는 대대장을 노염어린 눈길로 흘겨보면서 벌떡 일어섰다. 눈치를 살피던 운전사도 뒤따라 일어났다. 그러면서 《정말 떠나렵니까?》 하고 묻는다.

《가야 하오. 책임자동무가 새벽에 언제건설장으로 간다고 떠났는데 무인지경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겠소. 어서 찾아보아야지.》

허금호는 속이 바질거렸다.

병약한 사람이 폭설이 온다는 예보를 듣고도 굳이 새벽에 먼길을 떠날건 뭐람.

백여리 무인지경에서 눈에 갇힌다면 어찌하랴싶었다. 옷이나 든든히 입고 떠났는지? 불현듯 덧입고있는 뜨개옷이 별스레 거북하게 여겨졌다.

눈속에 반쯤 묻혀있는 승용차를 바라보던 운전사가 물었다.

《차를 끌고 가잡니까?》

《안되오. 동문 차와 함께 여기 남아있소.》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걸어서라도 함께 떠납시다.》

아무리 곁에서 여겨봐야 붙잡아두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든 이천대대장은 후방일군을 찾았다. 이윽고 간단한 길량식꾸레미를 갖춘 허금호와 운전사는 눈길을 헤치며 큰길을 향해 걸었다.

가는 동안에 그는 줄곧 로철정의 행방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면서 웅얼웅얼 그를 나무랐다.

나이가늠도 해야 할게 아닌가. 그렇게 불덤벙물덤벙하면서 달려다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어이 알겠는가. 지금쯤 어느 무인지경에 갇히여 오도가도 못하고있는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허금호는 속으로 자신도 나무랐다.

내가 너무했어. 어떻게 하나 제힘으로 해내자고 아글타글하는 사람을 떠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우는소리를 하고 뒤를 잡아당겼으니 그가 아니 가도 될 길을 달려다녀야 하지 않았는가.

진눈이 가득 달라붙어 한껏 늘어진 동력선들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툭- 하고 끊어져내렸다.

동력선이 끊어졌으니 물길굴굴진도 정지된셈이다.

겨울에는 그래도 정상적으로 실적을 올리던 굴진마저 멎어섰다고 생각하니 허금호의 가슴은 납덩이를 삼킨것처럼 무거웠다.

이제는 어차피 아무 일도 내밀수 없게 되였다.

피해복구나 하면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자연재해앞에서야 누군들 용빼는 재간이 있으랴.

책임자도 이제는 머리를 식히고 모든 타산을 바로할것이다.

눈길을 헤치고 나가 로철정을 만나게 되면 이전날 너무도 의견을 부리면서 애태워온 자신을 비판하면서도 책임자에게는 너무 주관을 앞세워 공사를 파격적으로 이끌 생각을 하지 말라고 은근히 조언을 주리라 하고 금호는 생각했다.

요행 허금호가 들어갔던 대대는 고속도로에서 얼마 멀지 않았다. 네시간을 허우적거린 뒤 허금호와 운전사는 고속도로에 나와서 군인건설자들의 기계화구분대를 만났다. 군인들은 언제건설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책임자도 언제건설장으로 떠났으니 이곳 어디 구배심한 령길에서 허우적대고있을테지.

허금호는 언젠가 지휘부에 찾아와서 세멘트와 철강재를 나눠쓰자면서 로철정이 힘들게나마 승인을 하자 너무 기뻐 《백승》담배 두갑을 내놓고 떠나갔던 상좌와 반갑게 상면했다.

앞에서 대형불도젤이 눈을 치면서 굴착기들과 여러대의 중소형언제다짐차들을 이끌고 느리게 전진했다. 그러느라니 날은 이미 어두웠다.

얼마 안 가서 지척지척 눈길을 헤치면서 오고있는 로철정의 운전사를 발견한 허금호는 불도젤우에서 뛰여내려 허둥허둥 달려가 그를 붙안았다.

《책임자는 도대체 어떻게 됐소?》

그는 창황히 묻다보니 말이 다 잘되지 않았다.

《저어기 눈속에…》 하고 뇌이던 운전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책임자를 혼자 두고 떠나면 어찌오? 헉.》

허금호는 억이 막혀 흐느낌이 나갔다.

군인들이 뛰여내려 책임자의 운전사를 불도젤우에 끌어올려 눕힌 뒤 군용밥통에다가 밥을 짓게 하였다.

눈보라의 세찬 타격에 쓰러진 로철정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얼굴을 들 힘도 없었다.

정신이 흐리마리해지면서 못 견디게 졸음이 몰려왔다. 이대로 잠이 들면 영영 깨여날것 같지 못했다. 더럭 겁이 났다. 그대로 운명할수 있다는 생각때문만은 아니였다.

어버이장군님으로부터 받아안은 건설과제를 앞에 두고 편안히 눈을 감는다는것은 죄되는 일이다.

백설의 이 벌판에 자기 혼자 있다는 공허감과 외로움을 이겨내면서 그는 앞으로 기여갔다.

팔다리가 점차 저려들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기력이 진하여 더는 기여갈수도 없었다. 이대로 쓰러져있어야 하는가. 그는 자기의 온몸이 점점 눈에 묻히는것을 가까스로 느끼면서 한동안 엎드려있었다.

동틀무렵이였다.

그는 혼미한 의식속에서 거대한 눈사태가 일어난것처럼 땅이 우릉와릉 진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어느때쯤이였는지 철정은 누군가 자기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면서 울먹이며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로동무! 정신을 차리시오. 이 눈판에 뭣하러 나와서 이 고생이요? 헉.》

그건 분명 날마다 듣군 하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임자는 눈물을 머금고있었다.

여러사람들이 자기를 날라다 운전칸안에 올려눕히는것을 그는 의식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철정은 눈을 떴다. 허금호와 운전사들 그리고 뜻밖에도 비주름이 미소를 짓고있는 장대식상좌의 검실검실한 얼굴을 그는 띄여보았다. 허금호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미음을 떠서 철정의 입에 넣어주고있었다.

《난, 난… 그만 아까운 사람을 영 잃는줄 알았소.》

허금호의 얼굴에서 눈물이 굴러내렸다.

장대식상좌를 띄여본 철정은 안깐힘을 써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장대식은 누운채 미음을 들면서 이야기를 들으라고 했다.

…그곳 군인건설자들이 맡겨진 대상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내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군인들에게 세멘트와 철근을 보장해준 강원도인민들의 구룡언제건설을 도와주라고 중기계구분대를 보내주신것이였다. 로철정은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한없이 고마운 감정으로 뜨거운 눈물을 드르륵 흘리였다.

군인건설자들은 명령받은 즉시로 길을 떠나왔다.

그들은 함경남도와 강원도지경에 이르러 수십년 례의 폭설을 만났던것이다.

언제건설장에서 로철정은 장대식상좌로부터 기계화대렬을 인계받았다.

대형불도젤과 여러대의 진동다짐기, 100마력짜리 권양기를 바라보는 로철정의 가슴에는 기쁨이 차넘치였다.

떠나기에 앞서 장대식이 로철정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책임자동지! 군민이 합심하여 발전소를 하루빨리 일떠세워 최고사령관동지께 기쁨을 드립시다.》

《그럽시다!》

로철정은 기꺼이 화답했다. 그러던 그가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상좌동무, 딸을 만나고 가지 않겠소?

저기 가까운 곳에서 미경이가 일하고있다오.

이제는 많이 단련됐을거요.》

장대식은 흐뭇이 웃음지었다.

《알았습니다. 미경이 소식을 알려주어 고맙습니다. 딸애를 잘 이끌어주십시오. 후에 오면 만나겠습니다.》

장대식은 차에 올랐다.

차는 새뽀얀 눈가루를 휘뿌리며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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