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10

바람은 잠풍하고 날씨는 푸근했다.

흐린 하늘에서는 아직도 큼직한 눈송이들이 푸득푸득 날아내리고있었다.

동력선두절과 통신선절단, 기동로차단 등으로 공사장엔 정적이 깃든듯 했다.

《허어, 자연두 사람들이 지내 볶이우지 말라는 모양이군. 오랜만에 좀 쉬라고 고요를 베풀어주니 말이요.》

군인건설자들이 언제우의 눈을 말끔히 쳐낸것을 보고 현장지휘부로 들어오던 허금호가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철정은 그때까지 앞상에 마주앉아 최근의 당면과업수행자료를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허금호가 무슨 말을 하는가 하여 의아한 눈길로 마주보았다. 철정의 눈매는 총기가 돌았다.

해종일 눈속에 묻혔다 나온 사람같지를 않았다.

그는 오전내껏 공사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벼다니면서 사업포치를 했다. 눈길을 치고 통신선과 동력선을 복구하며 작업갱들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게 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로철정이 너무도 민망스러웠던 허금호는 단둘이 있는 기회에 한마디 건늬였다.

《로동무! 내 이 며칠어간에 많은 생각을 했소. 병약한 책임자와 마음맞춰 공사를 내밀 대신 우를 쳐다보며 울상을 짓기도 했고 푸접없이 엇드레를 하기도 했소. 어찌겠소. 일은 아름차지, 있는것보다 없는것이 더 많지,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니 물러앉을 생각도 했던거요. 이제는 동력선과 통신선도 단절되고 수송로도 막혔으니 설을 앞두고 며칠 쉬우면서 경리작업과 위생사업이나 하게 합시다.》

금호의 말은 한결 부드러웠다.

《글쎄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그처럼 사람들이 손맥을 놓게 하면 일은 까마득히 뒤로 밀리고마오.》

로철정이 부드러운 억양으로 설득력있게 말했다.

《아무래도 30만산에야 봄에나 나가서 붙어야 할게 아니요.》

《허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로철정의 짙은 눈섭이 쭝깃 모아졌다.

《이번의 폭설피해를 수습하재도 숱한 시일이 걸리겠는데 말이요.》

허금호는 평온한 어조로 설복했다.

《아니, 한시도 늦잡을수 없소. 언제건설려단 정치부장동무랑 벌써 눈속을 헤치면서 동력선을 잇고 아직도 진눈이 얼어붙어 활등처럼 늘어진 동력선구간을 살려내고있단 말이요. 조만간 통신도 모두 복구하게 되오. 폭설을 극복하고 나갈 생각을 해야지 대피할 궁냥만 하면 어느 세월에 공사를 내밀겠소.》

로철정은 말을 하면서도 미진된 일들을 포치하기 위한 조직사업에 골똘하면서 문건들을 계속 훑어보고있었다.

허금호는 엊그제 눈에 갇혀 헤매는 로철정을 찾아 떠날 때 느껴지던 련민과 우애의 감정이 점차 노여움으로 변한듯 얼굴에 분기가 어리였다.

로철정은 사업상면에서 제기된 문제로 하여 서로 감정까지 거칠어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회에든지 허금호와 인정적인 대화를 나누고싶었는데 마침 이야기거리가 생기였다.

허성준이 이즈음에 맡겨진 공사과제를 매일 넘쳐해낼뿐만아니라 불도젤 리데판 열처리를 맡아서 책임적으로 해내고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은근히 허금호를 추어주었다. 허금호는 다 알고있다는듯 심드렁히 듣고있었다. 그러다가 지난밤 근무를 설 때 제기된 문제들을 보고하였다.

기분이 저으기 가라앉은 음성이였다.

《기분잡치는 일들이 몇건 제기되였소.》

《무슨 일이요?》

철정은 어덴가 과장기가 있는 허금호가 사태를 더 크게 과장하는것만 같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탁기영부국장동무 말이요, 그가 크게 상정되였다는구려.》

《그야 미리 예견했던 문제가 아니요.》

로철정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허금호가 타협조의 억양으로 조심히 말하였다.

《탁기영이야 건설물계에도 밝고 또 건설자들에게 좋은 집을 지어주자고 뛴 사람인데 우리가 나서주면 무난해질수 있지 않겠소. 워낙 걸고늘어지기 잘하는 성미인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옷이 없다구 우에다 제기한다, 신소를 한다 시끄럽게 굴면 책임자동무나 나나 기껏 수고한 보람이 없이 기분나쁜 말을 듣게 될거란 말이요.》

철정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금호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허동무의 의도를 알겠소.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오. 탁기영의 문제는 당에서 옳게 결론할거요.》

허금호는 노여운 기색으로 로철정을 바라보았다.

《로동무, 남궁일국장동지가 조만간 우에서 실태료해소조가 내려올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이제 우에서 내려오면 강추위속에서 한 압력관로 고정대시공이랑 성의 기술진이 내려온 뒤에 하라던 30만산대발파문제를 비롯한 숱한 문제들이 반영되겠는데 그때가서 책임을 누가 감당하겠소. 괜히 사람들을 불만스럽게 만들지 않는게 상책이란 말이요.》

로철정은 매정하게 잘라말했다.

《그러니 허동무는 책임문제가 제기될가봐 미리 방패막이를 하자는거로구만.》

허금호는 실망했다.

《책임자동무는 점점 달라져가고있소.

그래 그 가슴속에 사소한 아량도 없단 말이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아래사람들의 의견은 왜 조금도 참작하지 않는가 말이요?》

허금호는 불쾌한 인상을 지었다.

《달라진건 허동무요. 일이 점점 어려워지니까 중도반단하고 모든 책임을 모면하자는게 아닌가 말이요. 허동무, 제발 더는 제동을 걸지 말고 발전소건설에 어깨를 들이밀어주오.》

철정은 느긋한 음성으로 타협하듯 말했다.

허금호의 목청이 거칠어졌다.

《난 지쳤소. 더는 버텨내지 못하겠단 말이요. 이제 보시오. 30만산 심부의 물주머니가 터져나와 인원과 설비를 쓸어버리고 철선인양작업장에서 기뢰가 터져 사고가 나면… 그때가서 후회해야 늦소.》

허금호는 큰소리로 자기의 우려를 터놓았다.

로철정은 설득력있게 대답했다.

《허동무는 너무도 신경과민이 왔소.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켜나간다면 피해를 다 막을수 있소.》

허금호는 도리를 저으며 다가섰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대발파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보오. 아직은 시기상조요.

리창학연구사도 우리의 준비상태와 현재의 지질상태로 보아 거의나 불가능하다고 했소.》

철정은 단호하게 잘라말했다.

《허동무, 어떤 일이 있어도 빠른 시일안에 대발파준비를 다그쳐끝내야 하오. 우리에겐 능력이 있소.》

허금호는 쓴웃음을 짓고나서 퍼그나 누긋해진 억양으로 말했다.

《로동무, 너무 고집쓰지 마오. 우리끼리 변변한 준비도 없이 내밀었다가 랑패를 본다면 갖은 고생을 이겨내며 따라온 사람들이 뭐라겠소.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을 고쳐해보오.》

철정은 울화가 치미는것을 겨우 참았다.

《무슨 말을 하는거요? 15년설의 여운이 가라앉을가 하니까 또 무모하게 제동을 걸자는거요?

그러지 않아도 내 말 좀 하자던 참이였소.

리경숙연구사한테 위협하듯이 과학자로서의 운명이 뭐 순탄치 않을거라고 했다면서? 무슨 목적으로 그런 소릴 했소? 그래 방금 현실에 나와 싹트고 뿌리내린 연약한 어린 모를 그렇게 모질게 짓밟는 행위의 목적은 뭔가 말이요?

내 인차 그를 만나 알아보겠지만 아글타글 애쓰면서 처음 해보는 CT탐사를 손에 익히고 15년설의 오유를 씻느라고 모지름쓰고있는 처녀연구사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서 얻을게 뭔가 말이요? 어쩌면 막내딸이나 며느리벌밖에 안될 처녀연구사의 기를 그렇게도 꺾지 못해 안이 달아하오?》

로철정의 목청은 갈리였고 분격으로 치떠진 눈에는 뜨거운것이 그들먹이 고여 번뜩이였다.

그는 이 시각 대발파를 훼방하려는것보다도 한 인간 과학자의 운명에 먹칠하려는 금호의 처사에 더 울분이 치솟았다.

《허동무, 내 한가지 물어봅시다. 동무는 대발파가 중요하오? 아니면 한 인간의 운명이 중요하오?》

허금호는 잠시 생각하여야 했다. 드디여 평소에 생각했던대로 대답했다.

《건설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로서야…》

철정은 노여운 인상으로 허금호의 대답을 부정했다.

《흔히 그렇게 대답할수 있소. 모두다 대발파의 성공을 위하여 밤잠을 잃고 뛰고있으니 말이요. 대발파는 물론 비길데없이 중요하오.

하나 우리는 대발파를 한다고 하면서 어느 한 인간의 운명도 허술히 대해서는 안되오.

무엇보다 중요한건 이 공사에 뛰여든 리경숙선생의 과학자로서의 운명이요. 이제 와서 그를 제껴놓는다는것은 그의 인격과 존재자체를 묵살시키는 행위나 다름없단 말이요. 우린 반드시 리경숙선생이 훌륭한 프로그람을 내놓아 그가 과학자로서 성공하고 대발파도 성공하게 해야 하오.》

철정은 잠시 기침이 멎은 사이에 재빨리 말하였다. 그러자 금호는 중언부언 변명했다.

《난 처녀연구사가 하루빨리 옳바른 견해를 내놓아 책임일군들이 결심채택을 바로하게 되길 바랐을뿐이요.》

《아니, 곁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소. 객관들도 간담이 서늘할 소리를 해놓고 배포유하게 발편잠을 잘수가 있소?》

《그건 억측이요. 요즈음 이 건설장에서 나처럼 불면증에 시달릴 사람이 어데 있겠소?》

《자기보신을 위한 불면증이겠지.》

허금호는 억울하여 대답을 못하였다.

그 순간에 경비책임자가 달려와 전화가 왔다고 일렀다. 철정은 기침이 터져나와 금호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금호가 새까맣게 죽은 얼굴로 철정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오?》

허금호가 잠시 바재이다가 대답했다.

《철선인양작업장에서 불길한 소식이 왔소.》

《무슨 소식이요?》

《수중절단작업을 하던중 기뢰와 폭뢰가 들어찬 창고가 발견되였다는거요. 자칫하면 큰 폭발을 일으킬번 했다는 소리에 난 심장이 졸아드는것 같아 송수화기를 겨우 들고있었소.

이제 곧 책임자동무와 토론하여 철수지령을 떨굴테니 그 수역에서 모두 떠나라고 했지요.

잠수돌격대원들은 지금껏 거의다 절단하여 토막토막 끌어올릴수 있게 된것을 버릴수 없다면서 절단작업을 계속한다는게 아니겠소.

하긴 그 사람들이 누구말을 호락호락 듣겠소?

후방제대군관지배인이라는 사람도 기뢰창고가 나타났다는 소리에 잠수복을 입고 물밑으로 들어갔다는구려.》

철정은 한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당장 귀전에서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리는것만 같았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마음을 안정할수 없는 일들이 련이어 들이닥치는것이다.

어데부터 가보아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대책해야 할지 당장엔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철정은 불쑥 걸음을 내짚었다.

우선 항만보수사업소부터 나가보아야 했다.

그 수역이라는게 수백메터주변에 천해양식장들이 널려있고 불과 한두마일 떨어진 곳으로 려객선들과 화물선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폭발물해제대책을 세워 그 수역을 안전하게 해야 한다.

《가만, 로동무, 가지 마오. 내가 가겠소. 가서 보고 정 위험하면 아예 중지시키고말겠소.》

허금호가 황급히 말했다.

《중지시키다니? 좋소, 내가 나가겠소.》

로철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허금호는 노여운 인상으로 철정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이 허금호가 나가면 될일도 안되고 로동무가 나가야만 안될 일도 된다는거겠소. 그럴바에야 나라는 존재는 무슨 필요가 있소.》

그 순간 철정은 가슴이 섬찍했다. 실지로 자신은 금호를 믿기 어려웠다. 그가 항만에 나가면 어떻게 해서나 출로를 찾을 대신 무조건 인양작업을 중지시키고 돌아올것만 같았다.

허금호가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넘겨짚는다는것이 철정의 마음을 몹시 언짢게 했다.

허금호가 측은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동무, 믿어주지 않는 사람과 더는 일을 못하겠소.》

금호는 솜옷단추를 벗기더니 품속을 더듬어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얼마전부터 년로보장신청을 하려댔는데 이제는 결심이 굳어졌소. 여기다 수표나 해주오.》

철정은 종이장이 아니라 허금호의 두눈을 면바로 보면서 저력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요?!》

《정말이요!》

두사람은 전혀 친분이 없었던것처럼 서늘한 눈길로 마주보았다.

로철정은 속에서 울화가 불끈 솟구치는것을 느끼면서 노염어린 목소리로 허금호를 책망했다.

《허동무, 생각해보오, 그래 이 건설이 단순히 몇만크바의 전기나 얻자는거요? 아니요!

적들과 직접 맞선 우리 도가 제국주의의 고립과 압살을 박차고 위대한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며 자력갱생의 본때를 보여주자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거요. 이 길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열걸음 물러서게 되고 나중엔 자멸하게 된단 말이요.》

허금호도 다 아는 론리로 그를 설복한다는것은 불가능했다. 로철정은 년로보장신청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철정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자 허금호도 분을 삭이며 그를 외면했다. 외면한채 울먹이면서 말했다.

《난 이젠 떠나간 몸이요. 하지만 로동무, 지내 시원해하진 마오. 내가 그리울 때도 있을거요.》

누구도 보지 않는데서라면 그는 분명 흑흑 흐느낄 정도로 격해있었다.

그리울 때도 있을거라?… 철정은 아릿한 심정으로 그의 말을 뇌이였다.

금호는 이처럼 설음에 겨운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휘청휘청 걸어갔다.

철정은 그의 뒤모습이 눈뿌리 아프게 밟혀왔다.

한창 긴장한 때에 년로보장신청을 낸 사람의 심정이 오죽하랴. 몇날 밤을 새우며 고심하다가 끝내 결심했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달려가서 그를 돌따세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싶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이야기는 이미 끝난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누구를 설복하며 누가 누구에게 양보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철정은 그가 모든 인간들의 정신력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해진 선군시대에 따라서지 못하는것이 더욱 가슴아팠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붙들고 가타부타 씨름할 때가 아니였다.

철정은 한편으로 그를 측은히 동정도 하고 한편으로는 질책도 하면서 이미 전에 문이 열려져있는 승용차에 올라앉았다.

아까부터 대기하고있던 운전사는 부르릉 발동을 일구어 쏜살같이 항만으로 내달렸다.

가로수들이 누운듯이 휙휙 스쳐지났다. 네거리교통보안원이 높은 속도로 질주하는 승용차를 멈춰세우려다가 낯익은 책임자의 차를 알아보고는 자못 경건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신심잃은 금호를 뒤에 두고 나온 철정은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무언가 후덥거나 따끔한 말을 못한것만 같아 속이 알찌근했다. 인생에 대한 일가견을 가질만큼 가진 그를 한마디로 꾸짖어 돌려세우지 못한 자신이 민망했다.

자신을 긍정하고 부정하기도 하는 사이에 차는 어느덧 항만보수사업소 정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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