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3 장

11

의자에 앉아 잠간 쪽잠에 들었던 철정은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자기가 깊은 밤중에 언제건설지휘부에 도착했으며 밤늦도록 현장을 료해하다가 얼마전에 현장지휘부에 들어왔다는것을 상기했다.

며칠동안 건설장과 련관부문들을 달려다니느라고 발편잠 한번 변변히 자보지 못했던지라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졌다.

려명전야였다.

문서들을 들여다보던 그는 손기척소리에 눈길을 들며 《예, 들어오시오.》 하고 대답했다.

문이 열리자 영훈의 침통한 얼굴이 어줍게 바라본다. 말없이 목례를 한 아들은 조심스레 걸어왔다.

《며칠전부터 만나려댔는데 아버지가 늘 나가다니시기에… 몸은 좀 어떻습니까?》

《일없다, 일속에 묻혀야 아픈게 잊혀지지.

그런데 무슨 긴박한 일이라도 있느냐?》

철정은 아들의 흐려진 낯색을 보고 물었다.

《제가 큰 실책을 저지른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리경숙동무 말입니다. 사실 제가 여기로 이끌어온거나 다름없는데 신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니 저러다가 큰일을 망쳐버릴가봐 우려됩니다.》

로철정은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두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렴.》

영훈은 며칠전에 경숙이를 만났을 때 그가 신심이 없어했다는 이야기며 그래서 좀 자극이 될만 한 말로 맵짜게 꾸짖었노라고 말했다.

그날의 사연을 자초지종 여겨들은 로철정은 못내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랬단 말이지.》

철정은 입속으로 뇌이면서 아들을 민망스레 마주보았다.

《한가지 묻자. 너는 경숙선생을 대할 때 다년간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학우로 대했느냐, 아니면 정치부장으로 대했느냐?》

그의 물음에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물음의 의미가 심중을 무겁게 자극한 모양이였다.

철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해보았다.

경숙이 어째서 이제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던 자기의 고충을 영훈에게 말했겠는가.

그것은 적지 않은 나날 교정에서 맺어진 인연을 통하여 믿음과 우정을 지니게 된 영훈에게 의지하고싶고 위안과 조언을 받고싶었던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직은 단련이 부족한 그를, 부모들이 《온실속의 꽃》이라면서 걱정한다는 그를 사상투쟁이라도 하듯 다그어대였다니 될법이나 한 일인가.

그들의 인연과 현재의 생활로 미루어보아 처녀는 은연중 영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처녀의 솔직한 하소연을 듣고 힘과 위안이 될 말을 해줄 대신 그처럼 투박하게 욱박지르다니.

철정은 아들의 미흡한 점을 발견하게 되자 심중에 얼음물이 차오르는듯 한 써늘한 느낌이 들었다. 남들은 영훈에게 인간적측면이나 사업상측면에서 원만하고 결함이 없다고들 했지만 아버지의 눈으로 보기에는 허점이 적지 않았다.

철정은 아들에게 가슴아프지만 쓰거운 말을 해야 했다.

《너는 경숙선생과의 관계에서 볼 때 정치부장이기 전에 학창시절에 맺어진 학우의 정으로 뜨겁게 얽혀있다.

교정에서의 그 우정과 의리는 무엇보다 귀중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처녀는 지성인이기 전에 인간이야. 인간이기때문에 동요하는거지. 그리고 인간이기때문에 믿음이 가고 정이 가는 대상에게 심중의 고민을 그대로 토설한거야.

너는 그가 완성된 혁명가라고 생각하느냐?

붉은기를 버리였다는 엄엄한 말로 그를 욱박지르다니. 그처럼 어마어마한 감투를 씌우면 안된다.

사상교양사업이란 인간의 준비정도에 맞게 해야 하는거야. 그래 네가 큰 실책을 저질렀다는건 무얼 말하는거냐?》

철정은 아들이 처음에 말한 의미를 명백히 알고싶었다.

아버지의 묻는 뜻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영훈은 자기가 생각하고있던대로 말했다.

《경숙동무를 이 거창한 건설장에 이끌어온자체가 큰 실책이 아니였을가요.》

《아니야. 그건 실책이 아니라 오히려 잘한 일이지. 너의 잘못은 그에게 힘을 주고 신심을 줄 대신 그를 위축되게 만든거야. 너는 그를 학창의 벗으로 인정있게 대해주어야지 그를 정치실무적으로 따분하게 대하여서는 오히려 그의 믿음을 잃게 되고 그의 사업에도 지장을 주게 된다.

그가 동요없이 대발파를 성공시키도록 진심으로 도와주어라.

경숙선생이 이 대발파만 성공시키면 그의 지성세계도 정신력도 크게 전진할거다.

이건 일거량득이다. 건설도 하고 그 과정에 지성과 정신력을 겸비한 인재를 키워내니 말이다.

우리의 일이란 건설만이 아니라 인간들을 참되게 키워내는 일이 아니겠니.》

로철정은 담담한 억양으로 차근차근 말했다.

영훈은 자기의 실책이 무엇이였던가를 뒤늦게야 깨닫고 아버지앞에 고개를 숙이였다.

《인간을 아끼고 믿어주고 사랑하라는 말을 나도 잘은 한다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게 안타깝구나. 너나나나 이걸 명심하자꾸나.》

《알았습니다, 아버지.》

영훈은 신중한 인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나들문을 열고나갔다.

아들이 나간 뒤 철정은 허금호를 생각했다.

그가 어쩌면 그처럼 모질게도 처녀연구사의 운명문제까지 거들면서 위협적인 말을 할수 있었을가.

가까이에 있다면 어째서 그랬는가고 그 원인을 캐묻고싶을 지경이였다. 그런데 그가 고혈압으로 뇌출혈을 일으키기 직전이라니 년로보장으로 넘겨 안정치료를 받게 해주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사람이 그 지경이 되도록 큰 짐을 지워서 끌기를 바란 자신이 민망스럽기도 하였다.

하다면 정녕 허금호를 버려야 한단 말인가.

후임으로 앉힐 사람은 없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어떻게 신심잃고 헤매는 동지를 손쉽게 대오에서 내보낸단 말인가.

안돼, 그를 버려서는 안된다.

준공의 날 어버이장군님께서 오시여 시공을 책임지고 일하던 동무는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물으신다면 무어라고 대답올리겠는가.

지금은 그가 병석에 누웠다니 문안이라도 가보아야 했다. 그러나 자신도 촉한의 여독으로 몸가누기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누워있을수는 없었다. 30만산에 력량을 새로 전개하기로 한 이상 거기를 먼저 나가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 허금호를 만나도 늦지는 않는다.

영훈은 아버지를 만난 뒤 자신을 심각히 돌이켜보았다.

그는 바람세찬 30만산중턱을 가로질러 바위코숭이를 딛고 지나면서 서쪽벼랑턱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내뻗치는 곳에 이르렀다. 물은 산의 지충깊이에서 내뿜고있는것 같았다. 언젠가 경치가 볼만 하다면서 신동진이 동무들을 이끌고와서 물줄기가 떨어져서 만든 자그마한 물웅뎅이주변에서 점심을 먹으며 즐기였다는 곳이다. 그 경치 아름다운 기묘한 지형지물은 경숙을 비롯한 CT탐사조와 대발파설계조에 커다란 위구와 장애를 가져다주고있었다. 산의 심층 어느곳에서 어느 짬으로 그런 물줄기가 내뻗치고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대발파를 효률높게 성공시킬수 없는것이였다. 이처럼 오묘한 산의 속내때문에 경숙은 우려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힘을 주고 신심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위혁적인 말만 해주었으니 그가 갈팡질팡할것은 불보듯 명백한 일이였다. 물줄기는 거침없이 쏟아져내리면서 바람소리와 어울려 영훈의 귀를 멍하게 했다. 그 소리가 영훈의 상념을 더더욱 부채질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결함이 하나도 없는것이 결함》이라고 곧잘 말하군 했다. 그러나 영훈은 사람들이 경숙과 자기와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존재하는 결함을 발견하고 놀랄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원칙적이고도 아량이 있으며 믿음과 포옹력도 있다는 평판을 들어온 자신이 경숙을 대함에 있어서만은 이토록 안절부절하는지 지금껏 깊이 생각지 못했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영훈은 곰곰히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언젠가 아버지가 일껏 용단을 내려 경숙을 며느리로 맞았으면 하는 의향을 비쳤을 때 그 처녀는 20대, 30대 박사가 되여야 할 나라의 귀중한 인재라고 하면서 그런 녀성을 가정에 매여두는것은 나라에 죄되는 일이라면서 그 자리를 모면했던 생각이 났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뒤로 경숙은 영훈의 가슴속에 더 깊이 자리를 잡았다. 부모들이 몇몇 대상자를 내세웠으나 흔연히 웃으며 여유있게 사양해온것 역시 심중에 경숙을 고이 간직해온때문이였다. 영훈은 그가 누구보다 귀중했다. 때문에 그는 경숙이 실패의 심연에 빠져 가혹한 운명에 처하도록 내버려둘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숙을 이 벅찬 건설장으로 이끌어온 자신을 후회했으며 아버지에게는 은연중에 그를 교대시켰으면 하는 의향을 여쭈었던것이다.

자신은 이것을 경숙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만난 뒤로는 자기의 리기적이고 눈먼 사랑에 대하여 뼈저리게 뉘우치였다. 아니, 아니야. 나는 결코 그를 보람찬 현실로부터 후퇴시켜 또다시 《온실》로 되돌아가게 할수 없어. 그것은 경숙에 대한 참된 사랑이 아니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연한 물소리를 들으며 그는 잠시 앞으로 경숙을 어떻게 대할것인가 하는 물음을 지녀보았다. 이제 그를 서둘러 만나 구구히 사죄를 하든가,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정황에 어울리지 않고 자존심도 허락치 않는 일이였다. 말없이 그를 도와야 한다. 용기를 주고 신심을 안겨주도록 방송에도 내고 속보판에도 올리며 내자신 지하의 물주머니에 들어가 그의 탐구에 도움을 주자. 모든것이 성공한 다음에 그를 만나 지나온 일을 돌이키면서 우정과 사랑을 더 두터이하리라. 영훈은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물가에서 일어났다.

로철정은 아침 일찌기 고미탄천을 건너갔다.

그가 30만산기슭에 당도하자 모두 기다렸던듯 인사들을 하며 반기였다.

철정은 허성준과 신동진을 비롯한 청년돌격대원들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어제 떼목으로 고미탄천을 건넌 육중한 대형압축기는 튼튼한 고무바퀴가 달린 대차우에 올라앉아있었다. 수십명의 청장년들은 대차에 바줄을 걸고 금시라도 구령만 내리면 산중턱으로 끌어올릴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여러명의 돌격대원들이 고성기가 매달린 권춘옥의 《꼬마철집》을 맞들고 먼저 산경사면을 올라갔다.

그무렵에 남궁일이 나타났다.

로철정은 그를 반겨맞으며 붉은 신호기를 높이 쳐들어 산중턱을 가리키였다. 돌격대원들은 구령받은 포수들마냥 성급하고 단호한 동작으로 달려들어 바줄들을 거머잡았다.

몸이 장대한 허성준은 굵은 참나무장대기를 고무바퀴밑에 지레대처럼 밀어넣고 뒤로 밀리지 않도록 든든히 버티고있었다.

신동진은 맨 앞장에서 달려나갈 일념으로 바줄을 허리에 칭칭 동여 감았다.

허리가 끊어질지언정 단 한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결단성있는 자세였다.

청장년들의 대오에는 끼우지 못했지만 1선에까지 따라온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미경은 신동진이 땀에 젖은 옷을 입고있는것이 마음에 걸린듯 깜장눈섭이 약간 모여든 인상이였다.

동진은 허리에 바줄을 감고 산정을 향하여 얼굴을 건듯 쳐든 대범한 자세였으나 몸매작은 처녀의 애모쁜 심리를 예민하게 포착하고있었다.

꾹 다문 입,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목덜미, 긴장한 눈빛은 《공연한 걱정… 이 직사포를 고지우에 끌어올리고나면 온몸이 또다시 물주머니가 될텐데.》 하고 처녀를 시까스르며 안심시키는듯 했다.

처녀는 샘물통을 안고 등에는 배낭을 지였는데 거기엔 기름에 노릿노릿하게 구워낸 열묵어튀기와 참쌀완자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직사포병》들이 힘이 진할 때 목을 추기고 원기를 돋구어주기 위하여 따로 마련한것이였다.

원래 원산시려단에서 30만산대발파지원조인원을 뽑을 때 장미경이는 셈에 들지 못했었다.

그러자 늘 웃음이 새물거리던 처녀의 얼굴이 새침해지고 쓸쓸해졌었다.

얼마동안 오빠처럼 따르던 신동진과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서운함이 처녀를 울적하게 만들었던것이였다. 영훈이 성철려단장에게 처녀와 총각의 류다른 인연을 이야기해서야 그러한 인간문제에 어지간히 눈이 어두운것을 자책한 려단장이 쾌히 승낙하여 장미경도 탐사갱굴진조에 망라된것이였다.

《목표 산중턱 기발표식이 있는 곳까지 앞으로-》

로철정이 구령을 떨구자 돌격대원들은 일시에 《와-아!》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과 함께 치솟는 억제할수 없는 힘의 분출로 하여 압축기가 실린 대차는 앞으로 씽씽 올라갔다.

돌격대원들은 밋밋한 경사지를 기세차게 달려갔다.

그러던 대차의 속도가 점차 떠지기 시작하였다.

산경사가 점점 급해진것이였다.

철정은 놀라운 눈길로 바위톱우에서 한치한치 올리구는 고무바퀴를 긴장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앞에서 끄는 돌격대원들이 《영차.》 하고 용을 쓰면 뒤에서 미는 성원들이 이내 《올라간다-》 하고 소리치면서 안깐힘을 쓰며 버티였다.

돌격대원들과 함께 권춘옥도 마이크를 억세게 틀어쥐고 고동구호를 웨치며 돌격대원들을 고무하였다.

압축기는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 바위톱에서 일진일퇴하면서 돌격대원들의 맥을 뽑았다.

바퀴는 한번 용을 쓸 때마다 반바퀴도 못되게 굴러갔다. 그러다가 멈춰설 때면 허성준이 참나무지레대를 써야 했다.

이제 열댓걸음만 더 올라가면 마지막계선이였다.

남궁일은 땅뗌하기에 지친 바퀴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 바질바질 속을 끓이며 뒤를 따라갔다.

그는 어덴가 돌격대원들 틈에 끼워 자기의 힘도 보태고싶었으나 손 들이밀 틈이 없었다.

가장 경사급한 된고비에서 압축기대차는 떡 버티듯 멈추어섰다.

로철정은 지친 대원들에게 잠시 숨돌릴 틈을 주어야 했다.

앞에 섰던 신동진을 비롯한 바줄잡이들이 재빨리 바줄끝을 주위의 참나무기둥에 든든히 휘감아매였다. 온몸이 땀으로 질펀해진 그들은 너럭바위우에 퍼더앉았다.

장미경이 재빨리 샘물통을 기울여 목마른 동무들에게 물고뿌를 돌리였다.

그들은 서로 먼저 들기를 사양하면서 한모금씩 마셨다.

처녀는 간식배낭을 끌러 열묵어튀기와 찹쌀완자를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신동진은 자기가 들기 전에 먼저 로철정과 남궁일에게 열묵어튀기와 완자를 권하였다.

《옛적에 죽어가는 왕을 살렸다는 고미탄천의 유명한 열묵어를 튀긴겁니다. 맛보십시오.》

신동진이 눈짓으로 미경을 가까이 불러 같이 들자고 했다. 미경은 직사포를 고지에 올리는 전투원들에게만 차례지는 특식이라며 사양했다.

미경이 한입이라도 먹는걸 보아야 자기도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처녀도 탁구알같은 완자 한알을 손에 들었다.

남궁일도 열묵어튀기를 한입 베여물었다.

이즈음에 그는 입맛을 잃었었다.

그런데 그 열묵어튀기가 입에 들어가자 입맛이 한결 동하였다.

그제서야 그는 오늘 아침에 밥을 몇술 뜨는둥마는둥 하고 여기에 뛰여든것을 생각했다.

외면할수 없는 책임감이 그를 떠밀었던것이다.

어떻게 하든 압축기를 무사히 제자리에 올려야 하는데…

그가 이런 생각에 잠겨 서있는데 미경이가 다가와 비닐봉지에 담은 완자를 더 권했다.

《어허, 돌격대원들걸 축내면 되나.》

그는 헌헌한 인상으로 미소를 지으며 뻣뻣한 머리를 쓸어눕히면서 비닐봉지를 받았다.

《국장동진 뭐 돌격대원이 아닙니까.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우리와 함께 압력관로건설장에랑 또 여기 험한 산에까지 오시지 않았습니까!》

미경이 방긋 곱게 웃으며 하는 말에 남궁일은 마음이 한결 훈훈해졌다.

강원땅의 건설자들이 자신을 한가마밥을 먹는 한식솔로 치부하고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개운해졌던것이다.

그래, 모든 일이 잘되여야 한다. 그래야 하구말구.

궁일은 자기가 오늘 그 자리에 나와선것이 더없이 긍지로왔고 다행하게 여겨지였다.

허성준의 땀에 즐펀한 얼굴을 바라보던 로철정은 그 순간에 문득 허금호 생각을 했다.

그도 이 자리에는 없지만 이 대차가 어서 올라가기를 바랄것이다. 그러자 여기에 오지 못한 그가 못내 그립기도 하였다. 떠나가면서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리울 때도 있을거라고 못박던 허금호의 말이 집게처럼 심장을 꽉 움켜잡는듯 했다. 그야말로 그가 그리웠다.

남궁일은 멀지 않게 떨어져 모두숨을 쉬고 앉아있는 허성준을 보면서 나직이 뇌이였다.

《신통히도 아버지모색이군. 큰일을 맡아할 재목이요.》

그러던 궁일은 로철정의 귀전에 입을 대고 속삭이였다.

《책임자동무! 거 웬만하면 본인의 요구대로 허금호동무가 발편잠자게 년로보장으로 넘겨주는게 옳지 않겠소? 이제는 저렇게 끌끌한 아들이 뒤를 이어 달리고있으니 말이요.》

철정은 의아한 눈길로 남궁일을 마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난 어쩐지 자꾸 주저하게 되는군요.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것 같아서.》

《앞길을 막다니요? 본인의 의향을 들어주는데.》

《하긴 그렇게 생각을 할수도 있지요.

난 자주 이전 책임비서 최원익동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그 동지는 나이가 많고 병약하여 년로보장으로 들어간 몸이였소.

그 나이의 년로보장자들이 아들, 며느리의 부양을 받으면서 그늘에 모여앉아 장기를 둘 때 최원익동지는 전시공로자들로 로병예술선전대를 뭇고 건설장들에 달려나갔고 가두인민반생활에도 누구보다 앞장에 섰소. 이처럼 나라에 보탬을 주려고 한시도 쉬지 않고 아글타글하는 동지의 애국충정의 마음을 헤아리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년로한 나이에도 패기와 활력에 넘쳐있는 그의 말년의 삶을 귀중히 여기시여 다시금 중책을 맡겨주시였소.

우리 도에 책임비서로 부임되여왔을 때 첫 인사말이 감동적이였소.

동무들, 나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소. 남은 삶의 초초분분을 나라위해 깡그리 바치고싶은 심정이요. 우리 함께 어깨겯고 위대한 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십시다.

그야말로 최원익동지는 삶의 마지막나날을 불같이 살아왔소.

동지는 림종을 집안의 울타리안에서 맞이하지 않았소.

동지들과 건설자들의 바래움속에서 웃으며 떠나갔다오.

최원익동지는 우리 도가 자체로 중형수력발전소를 일떠세우도록 발기하고 신심을 주었을뿐더러 성공의 날로 이끌어 장군님께 기쁨드린 일군이였소.

동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소.

이런 인간을 두고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가요.

국장동무, 난 지금도 길지 않은 나날 안변청년2호발전소건설을 앞장에서 이끌어준 최원익동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처럼 고귀한 넋을 지녀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울렁거리는걸 느끼군 하지요. 그런만큼 십여년세월 발전소건설장에서 운명을 함께 해온 허금호동무도 삶의 마지막까지 같이 달리고싶은 심정이요.

사실말이지 허동무에게는 아직 힘이 있습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어려운 현실앞에서 주저앉았을뿐입니다.》

로철정은 긴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남궁일의 동의를 요하듯 진지한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음- 그렇단 말이지요.》

궁일은 허금호의 운명문제를 지내 가볍게 속단해버린 자신을 뉘우치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책임자동무의 생각이 웅심깊습니다. 리해가 됩니다.》

그무렵에 대오를 책임지고있는 중대장 허성준이 《동무들!》 하고 돌격대원들에게 예령을 떨구었다. 대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자기 위치로 달려갔다.

이야기의 매듭을 지은 로철정과 남궁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격이 실한 돌격대원들이 앞장에서 바줄을 허리에 동여매였다.

때를 같이하여 권춘옥이 또다시 《결전의 길로》를 꽝꽝 내보내면서 열띤 즉흥방송을 들이대였다.

《월미도의 영웅전사들이런가, 1211고지의 직사포병들이런가, 미제의 고립압살을 짓부시고 사회주의조국을 사수하기 위한 판가리결전에 나선 강원땅 영웅전사들의 후손들이여!

50년대 불굴의 기상과 90년대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승리를 거듭해온 우리 아니던가!

장군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장군님께서 우리가까이에 계신다.

모두다 용기백배하여 마지막극한점을 극복하고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

열걸음을 앞에 두고 급한 경사가 이루어졌다.

한걸음한걸음이 힘겨운 악전고투였다.

바퀴뒤에 매번 돌이나 참나무토막을 받치면서 한치한치 전진하였다. 대원들은 극한점에 이르러 헐떡거렸다.

마지막바위톱을 넘지 못한 바퀴는 선자리에서 주춤했다. 누군가 재빨리 참나무토막을 바퀴밑에 바싹 밀어넣어 뒤걸음치지 않게 해야 했다.

그것은 민첩하고 단호한 동작을 요구했다.

자칫하면 거방진 중량물이 뒤로 밀리여 돌격대원들을 깔고 내리굴 판이였다.

바퀴밑에 밀어넣은 참나무토막도 내리구는 대차의 엄청난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바퀴는 참나무토막을 타고넘어 멈출수 없는 묵중한 힘으로 허양 내리쏠리였다.

바로 그 찰나에 허성준이가 우람찬 체구를 바퀴밑에 밀어넣었다.

바퀴는 엄청난 무게로 성준의 어깨와 잔등을 으스러지게 짓누르며 가까스로 멈춰섰다.

《성준이!-》

로철정은 부르짖으며 바줄잡이성원들에게 늦추지 말고 계속 당기라고 구령쳤다. 돌발적인 비상사건은 돌격대원들에게 필사의 힘을 내게 했다.

된고비를 넘긴 압축기는 날개가 돋친듯 우로 올라갔다. 돌격대원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허성준에게로 우르르 밀려들었다.

영훈이 성준을 둘쳐업고 산아래로 내달렸다.

신동진도 뒤따라갔다.

로철정도 부리나케 내리달렸다.

그는 현장군의가 림시구급처치를 끝낸 뒤 성준을 승용차에 태우고 도병원으로 내달리였다.

성준은 구급소생실의 침대에 자는듯이 누워있었다. 의사들이 긴급협의회를 열고 치료전투에 진입하였다. 수혈, 산소주입, 골절부위고정 등 구급치료가 끝난 뒤 철정은 과장에게 물었다.

《과장선생, 부모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가요?》

과장은 랭엄하게 도리를 저었다.

《아직은 필요없습니다. 치료에 지장을 줄뿐입니다. 아들이 의식을 찾은 뒤에 와도 늦지 않습니다.》

철정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우선 뜻밖에 들이닥친 불상사를 당에 보고해야 했다.

그는 전화로 박경진비서를 찾았다.

사연을 들은 비서는 저으기 놀랐다.

《허금호아바이한테 그런 훌륭한 아들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곧 나가보고 최선의 대책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날밤 로영훈이 성준의 침대머리에서 밤새움을 했다. 이튿날 이른아침에 로철정은 또다시 병원으로 달려내려왔다.

치료정형과 치료대책을 물어보고있는데 박경진비서가 오전에 예견했던 회의를 뒤로 미루고 황황히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는 접수실에서 주는 눈처럼 흰 위생복을 팔도 꿰지 않고 등에 걸친채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성준의 입원실에 나타났다. 담당의사와 과장, 간호장이 뒤따랐다.

성준의 침대맡에 이른 경진은 이미전에 와있는 로철정부자에게 무거운 인상으로 눈인사를 보내고는 아들이나 혈육을 대하듯 진지하고 애바르게 환자의 얼굴을 살피였다.

첫눈에 그는 건강한 아버지의 모색을 방불케 하는 성준의 자는듯 한 모습에서 다소 위안을 느끼며 붕대감은 환자의 어깨부위를 애틋이 어루 더듬었다. 그리고는 환자의 상태를 묻듯 과장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진정제를 주사했습니다. 보기 드물게 억센 체격이여서 치료효과가 빠를것입니다.》

과장의 확신성있는 답변에 위안을 얻은 경진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허금호동무는?》

경진은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것이 이상하여 로철정을 바라보았다. 과장이 철정을 대신했다.

《환자의 아버지는 혈압이 높아져서 며칠째 집에서 안정치료를 받는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의식을 깨칠 때까지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혈압이 높아졌다?! 거 안되였구만.》

경진은 짧게 이르고나서 또다시 성준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그는 성준이 대차바퀴밑에 몸을 들이대던 그 위훈적인 순간을 그려보는듯 덤덤히 말이 없었다. 동안이 지나서야 비서는 머리속에 떠오른 사색을 정리해가며 무게있게 이야기했다.

《누구나 쉽게 할수 없는 일이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약 그 위치에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타진해보았을거요.

제 한몸보다 귀중하고 위대한것을 위해서 선듯 목숨 내대는것을 흔히 영웅적인 행동이라고들 하오. 그러나 만이면 만사람 다 그렇게는 못하오. 하기에 그러한 위훈적인 순간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고있소. 조군실영웅의 최후와 같이…》

경진은 영웅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대학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그의 이야기는 로철정부자에게는 물론 성준의 소생을 책임진 의료일군들에게도 커다란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들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성준을 기어이 되살릴뿐만아니라 육체를 원상회복시켜야 한다는 각오를 굳게 지니는것이였다.

경진은 치료에 대하여 길게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영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허성준의 소행을 가지고 정치사업을 힘있게 내미시오.》

경진은 확신성있는 어조로 다짐하고나서 의료일군들을 향하여 《믿소!》 하는 단마디 말을 남긴 뒤 걸쳤던 위생복을 담당간호장에게 넘겨주고는 나들문으로 바쁜걸음을 놓으려 했다.

그러던 그는 무언가 미심했던지 성준의 얼굴을 다시한번 더듬어보면서 무어라고 입안의 소리로 웅얼거리였다. 로철정은 분명히 《용사야, 장해. 암, 일어나구말구.》 하는 말마디를 가려들었다.

박경진은 성준이 자꾸 끄당기는것만 같아 주춤거리였으나 기다리는 회의에 이끌리여 성급히 걸어나갔다.

로철정은 밖에까지 따라나갔다.

경진은 책임자가 자책의 말을 하려는줄 알고 오른손을 활 털어버리며 《너무 상심마십시오. 의료일군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관심하겠습니다. 그러니 30만산을 기어이 날려보냅시다.》라고 말했다.

《예!》

철정은 짧게 대답하고나서 몇걸음 더 뒤따르다가 또다시 망설이였다. 이 시점에서 허금호문제를 이야기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주저하게 되였다. 그러나 건설을 담당한 상급당일군의 조언을 꼭 받고만싶어 지금껏 혀끝에 매달렸던 말을 쏟아버리자고 작정했다.

《비서동지! 허금호동무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본인이 앓아누운데다가 성준이마저 저렇게 되였으니…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게 어떻습니까?》

경진은 대뜸 반응했다.

《소원이라니요? 년로보장으로 넘기는것 말입니까? 아니, 그렇게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성준의 미거가 오히려 허금호아바이를 일떠세울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 힘도 능력도 있습니다.》

로철정은 좀더 박절하게 이야기했다.

《현장에선 시공지휘관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심을 잃고 허탈상태에 빠져서 앓아눕기까지 했으니…》

경진은 더 론의하지 말자는듯 다시금 오른손을 사선으로 내리그어 그의 말을 막아버렸다.

《나는 아들을 훌륭히 키워 나라에 내세운 허금호동무가 분연코 자기앞에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병마를 털고 일어날것을 믿습니다.》

말을 마친 경진은 손목시계의 분침을 성급히 흘깃 여겨보고는 달음질하듯 도당위원회로 향하였다.

(믿는구나!)

철정은 허금호에 대한 경진의 관심을 고맙게 여기면서 괴로움으로 쓰라렸던 가슴에 신선한 밖의 공기를 그들먹이 채워넣었다.

철정은 어제까지만 해도 허금호를 그의 소망대로 년로보장으로 넘겨주자던 남궁일의 의향을 지지할수 없어 긴 이야기로 그를 리해시키였다.

한데 오늘은 허금호의 처지가 각박해졌다고 해서 그에 대한 믿음을 줴버리려했던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박경진비서가 아니였다면 허금호의 말년에 어떤 그늘을 지웠을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허금호의 문제를 공연히 상정시켰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박경진의 조언을 받기 잘했다는 느낌이 앞섰다.

철정은 아릿한 마음으로 자신의 짧은 소견을 두고 후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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