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4 장

1

허성준을 병원으로 떠나보낸 그날부터 30만산돌격대원들은 누구나 말이 적어졌다.

잠시 쉬는것조차 수치로 여기였다.

압축기를 올려앉힌 뒤 며칠만에 동음을 울려 사람들의 심장을 더 뜨겁게 했다.

늘 자책에 잠긴듯 한 과묵한 인상으로 총총히 달려다니는 처녀가 있었다. 성준이 대차밑에 몸을 던지는 순간 《앗!》 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무릎꿇고 물러앉았던 리경숙이였다.

그날부터 처녀는 앓았다. 육체적인 병마는 결코 아니였다. 경숙은 육중한 대차가 자기의 육체가 아닌 연약한 넋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면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로 와당퉁당 굴러내리는 꿈을 꾸었다. 그때부터 항상 가슴속에 커다란 불뭉치를 안고있는 심정이였다.

때가 오면 조군실영웅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고 마음속에 다짐했던 경숙이였다. 하나 자신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며 동요했던것으로 하여 그는 낯을 들지 못했다. 돌격대원들이 자기를 보고 어서 따라서라, 아니면 아예 떨어지라고 꾸짖는것만 같았다.

붉은기는 생사를 판가리하는 결전장에서만 버리는게 아니라고 노엽게 뇌이던 영훈이앞에서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영훈은 너무도 응당했다. 그가 자기를 어루만지고 위안하려 했다면 경숙이라는 존재는 이미 온실안의 시든 꽃이 되였을것이다.

이제라도 누구인가 불쑥 나타나 영훈이 안긴 매질보다 더 모질고 뼈아픈 매를 안겨 자기를 부쩍 정신들게 해주었으면싶었다.

처녀는 심중의 번민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밤새껏 모대기였다. 그러다가 새벽에는 드디여 결심을 굳히였다.

그렇다. 물러앉아서는 안된다. 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불태워 최상으로 완성된 대발파프로그람을 내놓아야 한다.

경숙은 불쑥 일어나 아침밥도 들지 않은채 수심이 가셔지지 않은 얼굴로 탐사갱에 들어갔다.

전지불을 비치며 얼마쯤 들어갔을 때였다.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눈부신 전지불빛이 비쳐나오면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탐사조와 설계조원들이겠거니 짐작하면서 마주 들어가던 경숙은 뜻밖에도 책임자가 앞장서나오는것을 띄여보고 엉겁결에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인사를 하면서 길을 내주려고 한옆으로 비켜서자 로철정은 반색을 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 경숙연구사요?! 이 험한 굴길을 날마다 드나들자니 얼마나 수고 많았겠소.》

로철정은 돌서덜이 우죽부죽하고 차거운 석수가 뚝뚝 떨어지는 굴천정을 올려다보면서 경숙이 석수를 맞을세라 자리를 비켜주었다.

《산의 심부도 들여다볼겸 선생을 만나려던 참이였는데 마침 잘되였소. 나가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경숙은 책임자를 뒤따라 나왔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제구실을 못했으면 책임자가 이른새벽에까지 왔을가 하는 생각에 죄송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밖에 나왔을 때는 아침식사시간이였다.

《보아하니 경숙연구사도 아직 식전이겠구만. 같이 식사나 하고 이야기하자구.》

철정은 경숙과 함께 돌격대식당에서 간소한 식사를 한 뒤 밖에 나와 휴식장의 통나무의자에 앉았다.

경숙은 로철정이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생각을 더듬으면서 잠시 기다렸다. 철정은 경숙의 기색을 살피면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험산중에서 불편이 많을텐데 잘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안되였소. 이번에 산의 심부를 몇군데 돌아보면서 허금호나 리창학동무들이 신심이 없어하는 까닭도 우연치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러니 연구사선생인들 왜 고민이 없었겠소.

선생을 한순간 동요하게 만든 내 불찰이 크다는 생각이 드오.》

경숙은 큰 짐을 지고 사방으로 달려다니는 책임자에게 부담이 된 자신이 너무도 민망하여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이, 책임자동지, 절 선생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제가 무슨 선생구실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철정은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워하는 딸자식을 타이르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우린 모두 선생을 믿고 큰일을 성사시키자고 하는데 스스로 자신을 낮추다니.》

경숙은 책임자앞에서 솔직해야 한다는걸 느꼈다.

《책임자동지, 제가 못난 마음을 가졌댔습니다. 맞다든 정황과 조건에 위압되여 결과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동요하고 주저했습니다.》

경숙이 얼굴을 붉히며 사죄하려 하자 로철정은 이내 그를 밀막았다.

《알고있소, 알고있다니까. 그건 죄다 우리가 일을 쓰게 못한탓이요. 선생에게 과학적담보를 줄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안받침하지 못했고 가까이서 신심과 용기를 주지 못했소.》

경숙은 철정이 자기반성을 하자 어찌할바를 몰라 눈길을 허둥거렸다.

《자, 지나간 일은 죄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용기를 내여 대발파프로그람을 완성하자구. 그래서 경숙선생이 현실속에서 단련된 선군시대 과학자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떳떳하겠소.

난 그걸 바랄뿐이요.》

《책임자동지, 고맙습니다.》

경숙은 철정의 다함없는 믿음에 가슴 뻐근해짐을 느꼈다.

로철정이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경숙선생, 내가 한가지 잘못한게 있소.

선생에게 대용폭약의 위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어야 하는건데 수자로만 적어주었거던, 그걸 쉽게 믿을수 없었겠지. 적지 않은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속에서도 참나무숯가루를 비롯한 대용폭약을 믿지 못하는 현상이 있소.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직접 위력시험을 해보이자는거요.

그리고 알겠지만 몇톤의 뜨로찔도 바다에서 건져냈으니 폭약도 념려 없게 됐소.》

로철정이 정한 시간이 가까와오자 언제건설장과 30만산대발파지휘부의 지휘관들이며 신동진소대를 비롯한 폭약갱굴진돌격대원들이 압축기실 앞마당에 모여들었다. 폭파수가 폭약통을 내려놓으며 시험준비를 다 갖추어놓았다고 보고했다.

《시작하기요.》

로철정이 지시했다.

나이 지숙한 폭파수는 각이한 비례로 참숯가루를 섞은 대용폭약으로 광차레루를 절단하며 바위를 깨는 시험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폭파수는 로철정이 가르쳐주는대로 디젤유를 분무한 참숯가루에다가 폭약을 섞어서 싼 다음 도화선이 설치된 뢰관을 끼워넣었다. 주먹만 한 대용폭약꾸레미를 레루의 절단할 부위에 비끄러맨 뒤 도화선에 불을 달았다. 철정은 멀리 피하지도 않고 폭발의 순간을 기다렸다. 짧은 도화선이 다 타들어가자 딱-하는 맵짠 소리와 함께 광차레루가 칼을 대고 자른듯이 맵시있게 동강이 났다.

철정은 다시금 여러가지 비률로 참숯가루를 좀더 섞으면서 시험을 반복하게 했다. 번마다 레루들은 요구한 길이만치 잘라졌다.

나중에 철정은 송아지잔등만 한 크기의 청석바위돌이 있는 곳으로 일행을 이끌고가서 주먹보다 작은 대용폭약을 밑에다 장치하게 한뒤 불을 달았다. 이번에는 돌파편이 멀리 날아날것을 예견하여 모두 대피시켰다.

수류탄 터지는 때와 같은 폭음과 함께 바위는 다루기 좋은 크기로 깨여졌다.

《야, 참나무숯이 저렇게 쎈가!》

대용폭약의 위력을 처음으로 목격한 돌격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해마지않았다.

깨여진 바위가까이로 다가간 경숙은 《어마!》 하고 입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연길폭탄.》 하고 뇌이였다.

감동에 겨운 모습으로 그린듯 서있는 경숙에게 로철정이 말했다.

《경숙선생, 어떻소?》

로철정은 의미있게 웃고있었다.

리경숙이 생각깊은 얼굴로 대답했다.

《책임자동지, 지금까지 저는 자력갱생이란 하나의 구호로만 알고있었습니다.

이미 작성했던 프로그람을 모두 백지화하고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기요.》

로철정도 한결 밝아진 인상이 되였다.

경숙은 한결 개운해진 심정을 안고 로철정과 헤여졌다.

그무렵에 탐사조와 설계조원들속에서는 30만산심부의 물주머니로부터 밖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균렬과 동굴들을 모두 발견하지 못한다면 지향성대발파가 불가능하다는 론의가 제기되였다.

그때문에 경숙의 프로그람작성은 더 전진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경숙은 자기가 담당한 산의 서쪽방향으로 물이 새나가는 균렬들을 죄다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물길들은 오르내리기도 하고 돌버럭에 묻히기도 하여 탐사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 곳으로는 폭약가스가 새버릴수 있기에 마지막까지 모두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나 그 균렬들과 물곬을 죄다 찾아낸다는것은 경숙의 혼자힘으로써는 헐한 일이 아니였다.

방조를 청할수 있는 적임자는 영훈이였다. 그러나 경숙은 분망한 그에게 손내밀기가 미안했고 이즈음에는 더구나 만나기조차 어려웠다.

어제 저녁 밤늦게까지 동굴속에서 헤매던 경숙은 지칠대로 지친데다가 축전지까지 소모되여 가까스로 굴길을 찾아 올라왔었다. 쓰러질 지경으로 피곤했던 그는 축전지를 충전시킬 생각도 못한채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축전지생각이 든 경숙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계기를 들여다보니 축전지전압이 정상이였다.

탐사조장의 말에 의하면 로영훈이가 경숙의 축전지가 다 방전된것을 알고 밤새 충전시켜 가져다놓았다는것이였다.

영훈이 말없이 자기의 일거일동을 지켜보면서 살펴주고있다고 생각하니 가슴뜨겁게 마쳐오는 고마움에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날 경숙은 또다시 밖으로 흘러나가는 물곬들과 균렬들을 찾기 위하여 심부동굴의 물주머니까지 들어갔다. 그는 한눈에 끝을 볼수 없는 땅속호수의 기슭을 돌아 헤매면서 물이 새나가는 곳을 여러군데나 발견하였다.

경숙은 산의 외부를 탐사할 때 서쪽벼랑턱으로 외가닥의 물줄기가 떨어져내리는것을 발견한적이 있었다. 분명히 산의 심부물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물이였다. 그런데 그 물곬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였다. 물곬의 입구가 허물어져 쉽사리 눈에 뜨이지 않기때문이였다. 한동안 아래도리를 적시며 물가를 헤매던 경숙은 멀찍이 떨어진 반대쪽물가에서 유난히 밝은 전지불이 번득이는것을 보자 가슴이 후두두 높뛰였다. 그것은 분명 영훈의 전지불빛이였다.

영훈은 말없이 남몰래 지하저수지에 들어와 마지막물곬을 찾느라고 애쓰고있는것이 분명했다.

경숙은 영훈이 자기 일을 끝낸 뒤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험한 땅속의 물주머니주변에서 아래도리를 적시는것을 발견하자 가슴이 쩌릿이 젖어들었다. 경숙은 물건너편으로 달려가고싶었고 영훈을 이쪽으로 와달라고 소리쳐부르고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경숙이 몇걸음 내디디였을 때였다.

그는 발밑의 돌서덜짬사이로 물흐르는 소리를 분명 가려들었다. 오랜 신고끝에 물곬을 찾은 경숙은 몸을 옹송그리고 미끌미끌한 틈사리로 들어갔다. 굴은 도간도간 허물어져 바위돌로 막혀버린 곳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CT탐사때 잘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경숙은 물흐름을 따라 버럭을 헤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몸을 옹송그리기도 하면서 겨우 앞으로 나갔다. 어떤데서는 무릎을 치는 차디찬 물이 빠르게 흘러내리는 바람에 몸가누기가 힘겨울 때도 있었다.

물곬을 따라 퍼그나 나갔을 때였다.

《경숙동무-》 성량이 크고 울림이 좋은 영훈의 목소리가 지하공간을 울리며 메아리쳐왔다.

순간 경숙은 뒤로 돌따서며 앞으로 전지를 비치였다.

《영훈동지! 제 여기 있어요.》

경숙이 비치는 전지불초점은 얼기설기 막아선 바위서덜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 굴길에 막히여 영훈이 있는 곳까지 이르지 못했다.

《어디? 어디요?》

헤덤비는듯 한 영훈의 목소리가 가까와지는듯 했다.

경숙은 멀지 않은 곳에서 관심해주는 손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든든해져서 나가던 길로 몇걸음 더 내짚었다. 그는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밖의 싱그러운 공기를 감촉했다.

굴길이 거의나 끝난듯싶었다. 물가에 옥같이 맑은 얼음버캐가 구슬무늬를 수놓은것이 황홀하게 눈에 어려왔다.

한두걸음을 더 바깥쪽으로 내짚던 경숙은 그만에야 얼음을 잘못 디디여 허양 미끄러지면서 물미끄럼대를 탄것처럼 외줄기 물기둥과 함께 둬길나마 되는 높이에서 날아내렸다.

첨버덩.

경숙이 떨어진 곳은 자그마한 물주머니였다. 그통에 전지가 물속에 가라앉아버려서 그는 순간에 앞을 가려볼수 없었다.

그는 잠시 허우적거려서야 온몸이 폭삭 젖은채로 물가에 나와 옷에서 물을 짜며 헤덤볐다.

그러던 그는 갑자기 오한이 났다.

아무도 모르게 외진 벼랑턱우에서 헤매다가는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고독감이 물밀듯이 뇌리에 차올랐다.

불시에 영훈이 그리워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으니 그도 분명 이 물곬을 찾아 나올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았다.

그리고는 힘껏 소리쳤다.

《영훈동지- 제 여기에 있어요.》

그무렵이였다.

가느다란 물기둥이 날아내리는 곳에서 《경숙동무-》 하고 성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숙은 대답할수 없었다. 헤아릴수 없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목이 꺽 잠겨버린것이였다.

얼마후에 둬길나마 되는 물기둥을 환히 밝히며 눈부신 전지불이 비쳐졌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쉬임없이 떨어져내리면서 물주머니우에 일으키는 물보라가 흩날리고 쏴아- 하는 물소리가 제법 요란하게 들리였다.

아래를 비치며 사방을 더듬던 불빛초점은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경숙의 방수비옷에 와닿아 멈춰졌다. 경숙은 기슭에 앉아 떨고있었다.

《아니, 경숙동무!》

영훈은 외마디 부름과 함께 전지를 비쳐든채 물주머니를 피하여 뛰여내렸다.

그는 경숙에게 가까이 다가서면서 물었다.

《어디 다친덴 없소?》

《일없어요. 그런데 전혀 움직일수가 없어요.》

《몸이 폭삭 젖었구만.》

영훈은 경숙을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고 자기의 큼직한 솜옷을 벗어서 씌워주었다.

《경숙동무, 내가 세심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소.》

영훈이 사죄하듯 부드럽게 뇌이였다.

순간 경숙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어이없게도 웃음이 터지려는걸 가까스로 참았다.

《영훈동지야 원래 서서히 달아오르는 성격이라고 했지요. 제가 맹꽁이였어요. 멀지 않게 영훈동지가 있는걸 알면서도 혼자서 물곬을 찾아나오다가 이 지경이 되였어요. 에이, 난 못난이.

산의 서쪽비탈면지형을 잘 알고있는 영훈은 경숙을 완만한 경사면으로 데리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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