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4 장

2

밤은 바닥없이 깊어가고있었다.

로철정은 온밤 허금호와 함께 성준의 침대곁에 앉아있었다. 성준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무의식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하였다. 금호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아들의 상처자리를 조심스레 어루더듬고있었다. 성준이는 쇄골과 어깨뼈분쇄골절에 페장파렬이라는 치료하기 어려운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적지 않은 출혈까지 하여 무의식상태에서 수혈을 받고있었다. 선홍색의 피가 가느다란 점적관을 통하여 성준의 혈관으로 들어가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들은 하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성준은 금호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였다.

성준의 할아버지는 손자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늘 말하군 했다고 한다.

《성준이 자라는 품이 다른 애들과는 딴판이구나.

도량이 있구, 동무들과 노는걸 보면 의협심이 대단하거던. 뭔가 생기면 애들과 나눠가지구. 자길 바칠줄 안단 말이야.》

그럴 때면 허금호는 약간 불만스러운 인상으로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버지, 난 그게 오히려 불만이예요. 사람이 제것 귀한줄도 알아야지 지내 헤퍼선 뭣에 쓰겠어요. 간식같은것도 며칠 먹을걸 사다주면 하루도 못 가서 거덜낸다니까요.》

허금호의 말에 전쟁로병인 그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지난날을 추억하였다.

《그게 난 좋다는거야. 우리가 진지방어전을 할 때 미국놈의 함포와 비행기폭격에 후방보급로가 차단되면 며칠씩 물 한모금 구경 못하구 하루에 강냉이 한이삭을 먹으며 바위를 굴려 놈들을 함정골에 쓸어버렸었지. 어찌다 후방에서 원호물자가 오게 되면 분대장은 제일 맛있는 음식을 막내전사에게 주었어. 그러면 그 전사는 그걸 배낭에 깊이 간수했다가 분대에 식량이 떨어졌을 때 꺼내놓았지. 그럴 때면 분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이 똑같이 먹지 않고 건사했던 제몫을 꺼내놓군 했어. 모두 감격해서 말 한마디없이 눈들만 슴벅이군 했지. 물통 한개가 온 중대를 돌았으나 한방울도 줄지 않았다는 일화도 바로 그무렵 우리 중대에서 생겨났다니까. 나도 그때 적의 기관총화력을 동무들로부터 나에게로 유인하느라고 자기를 로출시켰다가 중상을 입었던거야.

이런 우리 세대가 전후 천리마를 타고 나라를 복구했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해서 피와 살, 지어는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쳤거던. 이걸 명심해야 해.

사람은 이 사회에서 무언가 바라기에 앞서 바칠걸 먼저 각오해야 하는거야.》

허금호는 로철정에게 지난날을 이야기하고나서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계속했다.

《난 도저히 육중한 대차바퀴밑에 어깨를 들이밀지 못했을거요. 마치나 우리 애가 나의 나약한 마음을 신칙하느라고 그런 용단을 내린것처럼 생각되오. 군복을 입었던 아들이 장하게만 여겨지는구려.》

로철정이 허금호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할 심산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성준이는 자기의 청춘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를 옳게 배운 청년이요. 허동무는 아들을 정말 잘 두었소.》

철정은 자는듯 누워있는 성준을 바라보면서 금호를 치하하였다.

《성준이가 온 건설장을 들끓게 했소. 폭약갱굴진실적이 어제 2. 5배나 올라갔소.》

로철정은 보태지 않고 말했다.

허금호는 묵묵히 앉아있었다.

문안삼아 찾아오는 돌격대원들과 일군들모두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로 그들부자를 한꺼번에 떠받들어주었다.

그러나 허금호는 전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이따금 한숨만 내불군 하였다.

오랜 침묵끝에 드디여 그가 뜨직뜨직 말했다.

《성준이가 앞으로 온전한 몸이 되겠는지 모르겠구려. 이젠 되려 내가 이 애를 돌봐야 할 처지가 되였으니… 허참.》

허금호가 뒤말을 잇지 않았으나 철정은 그의 심리를 어렵지 않게 헤아릴수 있었다.

철정은 사실 허성준의 장한 모습을 통하여 허금호가 긍지를 느끼고 일떠서게 되기를 바랐다.

하나 그의 마음의 준비는 철정을 서운케 했다.

철정은 무슨 말로 그를 위안하며 어떻게 그를 일떠세워야 할지 몰랐다.

일군들의 정신적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그 누군들 모르겠는가.

잠시 화제가 동강났을 때 담당의사와 간호원이 들어왔다. 맥박과 체온, 혈압을 재고 주사를 놓고는 저으기 안심된 기색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간 뒤 얼마 안되여 성준이 정신을 차리더니 가까스로 눈을 떴다.

허금호의 얼굴에 기쁨과 함께 당황한 기색이 어리였다. 철정은 반대로 헤아릴수 없는 격정이 쩌릿하게 가슴을 지지른것을 느끼였다. 그는 허금호가 어째서 당황해하며 불안해하는가를 뒤늦게야 헤아리였다. 지금까지 세상을 잊고 자는듯 평온을 지켜오던 성준이 강렬한 상실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소리를 치며 나약한 소리라도 하면 어쩔가 하는 위구심을 안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걱정이 부질없는것임을 보여주듯 눈을 뜨는 첫순간에 모진 동통을 애써 누르며 입가에 벙글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껏 불안에 허둥거리던 아버지의 고충을 잠재우려는듯 했다.

《성준아!》

금호는 그 순간에 눈굽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샘솟는것을 겨우 참고있었다.

(아버지!)

성준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다만 알릴락말락한 입모양으로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모습을 금호는 지켜보고있을뿐이였다.

아들은 두눈을 껌벅거리며 고개를 약간 기웃거렸다.

철정은 성준이 자신의 삶에 의문을 품고있다는것을 륙감으로 알아 맞혔다.

성준은 분명 자기가 살아있는것을 의심하고있었다.

그런즉 그는 그 위기일발의 순간 삶에 대한 추호의 미련도 지니지 않은채 죽음을 각오하고 주저없이 바퀴를 제동시킨것이였다.

그런 각오는 누구나 쉽게 가질수 없는것이다.

허금호로서는 지금껏 지녀본적 없는 그러한 결사의 각오를 아들이 지니고있은것으로 하여 사람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된것이였다.

잠시후에 성준의 입에서는 똑똑히 가려들을수 있는 음절이 또박또박 울려나왔다.

《아버지! 압축기가… 돌아… 가지요?》

《그래그래, 돌아가구말구. 네가 병원에 실려온 뒤 온 대오가 너를 본받아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자고 밤새워가면서 분발하고있다는구나. 그 소식을 가지고 여기에 책임자동무도 와있지 않느냐.》

허금호가 등뒤에 앉아있는 로철정을 아들에게 보이도록 자리를 비켜주자 성준은 책임자를 알아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그는 아버지가 여기에 와있는것이 이상하다는듯 두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위를 돌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괴롭게 얼굴을 실그리였다.

건강했던 아들의 육체를 되찾으려는듯 허금호는 성준의 웃몸을 어루만지며 안타까와했다.

순간 성준은 압축기가 돌아가면 이제는 더 바랄것이 없다는듯 스르시 눈을 감아버리는것이였다.

《성준아, 성준아! 정신차려라.》

허금호는 숨진 아들을 부르듯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로철정도 그 순간에 더럭 겁이 났다.

정녕 이대로 운명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온갖 사색이 정지되고 뇌리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박동과 함께 웅- 하는 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왔다. 성준아, 구만리같은 청춘을 이대로 버려서는 안된다. 그 역시 성준의 한손을 움켜잡고 정신을 차리라고 절절히 뇌이였다.

밖에서 그들의 겁질린 소리를 들은 직일의사와 간호원이 다급히 달려들어왔다. 들어와서는 또다시 산소주입과 구급강심대책을 취하면서 서둘렀다.

철정은 오로지 성준의 생명의 불꽃이 제발 꺼지지 말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빌어마지않았다.

의사가 성준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심음을 듣는 순간에 철정은 문득 생명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했다.

어째서 어떤 생명은 빛나고 어떤 생명은 허전하게 마감짓고마는것일가.

누리는것이 삶일가? 바치는것이 삶일가.

왜 삶이란 낱말앞에는 종종 《참된》이라는 수식사가 붙어다니는것일가.

그렇다.

누리는것도 참되게 누리고 바치는것도 참되게 바치라는 의미가 아닐가.

그러나 누구나 한번 주어진 삶을 남보다 보람있게 누리고 빛나게 바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이란 정신력에 의하여 지배되기때문이다.

정신력의 강자야말로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을 지니게 되는것이다.

그런즉 성준의 한순간의 헌신적인 행동은 그 순간에 빛발친 즉흥적인것이 결코 아니였다.

성준은 이미 인생의 첫걸음마를 뗄 때부터 무언가 아버지인 금호와 달랐다. 그는 군사복무의 나날에 청춘의 삶을 어떻게 빛나게 바쳐야 하는가를 배운것이였다.

압축기가 돌아간다는 소리를 들은 성준은 자는듯 평온하게 누워있었다. 그러던 그는 급기야 경련을 일으키며 아픔을 참느라고 모지름 썼다.

허금호는 당황하여 성준의 손을 꼭잡고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애타게 중얼거렸다.

뒤미처 경련이 멎은 성준이가 두눈을 밝게 뜨더니 평안하고 평온한 자세로 되돌아가 또박또박 그루를 박아 뇌이였다.

《아버지가 책임자… 아바이하고 같이 있으니… 제 맘이 편안하군요. 늘 그렇게…》

성준은 다시 눈을 감으며 말을 맺지 못했다.

그는 마치나 숨을 넘긴 사람처럼 감감해졌다.

로철정과 허금호는 겁질린 눈길로 마주보았다.

이 애가 심중에 있던 말을 한건 아닐가.

둘이 동시에 생각했다.

허금호는 순간 성준이 아버지인 자기에게 무언가 더 하고싶은 말을 간략해버렸다는것을 알았다.

그랬으나 금호는 방금 아들이 남긴 말이 비록 유언이라 해도 그걸 지켜주기에 자신이 준비되여있지 못했음을 통절히 느끼는것이였다.

그는 아들을 흔들어도 보고 가슴에 귀를 대여보기도 하면서 성급히 서둘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의 생각은 종횡무진으로 방황했다.

《일없다니, 잠시 정신을 차렸다가 잠든거야. 숨소리가 고르지 않나.》

로철정이 허금호를 위로했다.

밤새움을 하면서 구급환자들을 돌보던 의사들도 의자에 앉은채 잠간 쪽잠에 든 새벽이였다.

성준은 아직 정신을 잃고있었으나 심장은 여전히 고르롭게 뛰고있었다.

회진시간에 담당의사가 왔다.

50대의 진중한 몸가짐을 한 유능한 외과의사였다. 그는 며칠만 지나면 분쇄골절된 견갑부위의 뼈를 재생시키는 새로운 기술로 수술하게 된다면서 더는 념려말라고 위안했다.

의사는 허금호의 흐린 낯색을 띠여보고나서 말했다.

《아니, 그런데 아버지의 인상은 어째서 점점 침울해지십니까? 환자의 병세때문에 그런다면 달리 생각마시고 락관하십시오. 아드님은 보기 드물게 억센 체질입니다.》

허금호는 마음이 놓이였다.

환자의 맥박이며 호흡, 흉부소견을 세심히 진찰한 의사는 흔연한 표정으로 철정에게 말했다.

《두분이 다 건설장에서 몹시 찾는분들인데 돌아가보셔도 다른 일은 없을겁니다. 소견에 의하면 환자는 인차 의식을 찾게 됩니다.》

실무적이면서도 환자들과 가족들을 안정시키는 의사특유의 부드러운 억양이 금호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동녘이 붉게 탈무렵이였다.

로철정은 성준의 건강과 함께 수백리 판도의 건설장일이 마음에 걸리여 진정할수가 없었다.

금호도 그의 심정을 헤아렸음인지 나직이 귀띔했다.

《바쁜 일이 많은데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어찌겠소? 어서 올라가 보구려.》

철정은 허금호의 말이 고마왔다.

《허동무! 건설장일은 걱정말고 수술립회도 서면서 아들을 잘 돌보오. 뭐 다른 일은 없을테니 당분간 건설장에 올라오지 말구려.》

뒤이어 자리를 일어난 철정은 자는듯 감감한 성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허금호의 바래움을 받으면서 병원을 나섰다.

로철정이 떠나간 뒤 허금호는 허전한 마음으로 아들의 침대곁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자기 혼자 건설장으로 훌쩍 떠나가면서 언제까지나 성준이곁에 붙어있으라던 책임자의 권고가 고맙기에 앞서 고깝게 여겨지였다.

그것은 이즈음에 자기를 지배한 심리와는 전혀 상반되는 모순된 감정이였다.

어째서 바쁜 일이 허다한데 아들은 병원에 맡겨두고 함께 올라가자고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니 내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란 말인가.

금호는 영문을 딱히 알수 없는 울분이 가슴속에 그들먹이 차오르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로철정을 뒤따라가 어째서 나를 떨궈두고 혼자만 가는가고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지금 30만산대발파전투장을 전개하고 모두 떨쳐나 총돌격전을 벌리고있는데 나한텐 아들의 침대머리나 지키라고 한단 말이요?

그래 로동무가 지금껏 그처럼 인정이 뜨거운 사람이였소? 두 딸의 잔치때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먼 출장지나 건설장에서 축하한다는 전보나 쳐주고 말지 않았소. 그리구 막내딸 경란이의 결혼식에도 내려가 보지 못할것 같다구?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나에게만은 그처럼 후더운 《인정》을 베푸는거요?…

사실 그러한 심리는 허금호의 본심은 아니였다.

다만 자기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듯 한 책임자에 대한 순간적인 울분이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로철정이 건설장으로 함께 올라가자고 손잡아끌었다고 해도 따라갈 준비가 못되였던 허금호였다.

그는 한동안 모순된 론리에 빠져 헤매인 자신을 어이없이 생각했다.

허금호는 맥없는 걸음으로 아들의 침대가에 다가갔다.

그가 아무리 부정하려 했으나 랭정한 현실은 너무도 명백히 금호의 눈앞에 피배인 붕대를 웃몸에 감고 자는듯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력력히 보여주었다.

성준아, 네 꼭 그 길로 가야만 했더냐?

금호는 은연중 또다시 로철정이 나타나기 전에 머리속을 번거롭게 하던 상념에 포로되여버렸다.

나는 이런 인간이였던가.

그런즉 나는 얼마나 리기적인 인간이란 말인가.…

허금호는 이렇게 자책은 하면서도 건설장으로 올라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이제 올라가면 또다시 결과를 가늠할수 없는 대발파의 중하를 걸머지고 달려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건설장의 곳곳에서 얼마나 아름차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새라새롭게 제기되여 책임문제를 운운하게 될것인가.

며칠후에는 성준의 수술립회를 해야 한다. 아무리 현대적인 의술로 수술을 한다고 하여도 아들은 불구의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는 생각이 갈마들 때마다 때없이 억이 막히고 가슴이 쓰라리였다.

성준이마저 쓰러진 정황에서 그는 공사를 활기있게 이끌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즈음 과중한 정신적부담으로 자주 혈압이 오르군 했다. 병원에서는 금호가 이제는 없어도 된다고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건설장에 미련이 가지 않았던것이였다.

제기한 년로보장문제는 로철정이 당조직과 합의해서 인차 결론을 줄것이였다.

자기를 대신할 후임도 없지는 않을것이다.

엄청난 상실을 당한 자기가 이제 나앉는다 한들 이전과는 달리 비겁하게 전투진지를 떠난 놈이라고 비난하지도 못할것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자기가 무난히 은퇴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번거로운 상념은 다 뒤로 물러가고 마음이 안정되는것 같았다. 하지만 조용한 집안에 들어앉아있으니 심신은 편안한것 같았으나 무언가 소일거리가 없어 감질이 날 지경이였다.

그는 어이없게도 추운 겨울철이건만 창고에서 낚시대를 꺼내가지고 주무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해를 지우고나니 어덴가 허무했다.

무중력상태에 들기라도 한듯 몸가누기가 부자연스러웠다.

해는 서산에 지고있었다.

불현듯 부름종소리가 들렸다.

금호는 무거운 동작으로 일어나 나들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뜻밖에도 로철정이 신중한 기색으로 서있었다.

금호는 얼떠름한 인상으로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뭣때메 서있나?》 하고 물었다.

철정은 움직이지 않고 선채로 물었다.

《몹시 아픈가?》

《그저 좀…》

《지금쯤은 올라오리라고 기다렸네.》

《나를?!》

허금호는 공연한 일이라는듯 눈을 내리깔았다.

《바람을 쏘일겸 좀 걷지 않겠나?》

로철정이 당부하자 허금호는 말없이 뒤따랐다.

약속도 없이 스적스적 걸어나온 곳은 장덕섬등대쪽으로 가는 방파제였다.

대양에서 굼닐며 달려온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천만갈래로 부서졌다.

날은 추웠다. 북서풍이 솜옷자락을 물어챘다.

그들이 이른 곳은 언젠가 둘이서 낚시질경기에 참가했던 그 부근이였다. 그 모퉁이 방파제바위등에서는 얼음버캐가 번들거리며 석양을 반사했다.

로철정이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번에 섭섭했네. 30만산이 기다리는데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허동무를 두고 모두 생각들이 많아졌네.

솔직히 말해서 난 동정을 싫어하는 사람이네.

그것은 동정받는 대상이 모욕으로 느낄수 있기때문일세. 펼펄뛰던 아들을 병원에 눕혀놓고 그 회복을 가늠할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허동무를 건설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네. 한사람같이 허동무네 가정의 아버지와 아들을 선망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고있단 말일세.》

허금호는 어차피 자기를 변명하지 않을수 없었다.

《무얼 숨기겠나? 기력이 딸리네. 혈압이 올라 누워있은걸 알지 않나.》

《그래 건설이 한창인데 시공책임자가 년로보장을 받겠다는 원인이 그게 단가?》

로철정이 노여운 눈빛으로 물었다.

《능력이 모자라네. 이 어려운 때에 무작정 제힘으로 밀고나가자는 로동무와 박자를 맞추기가 정말 힘에 부치네.》

허금호는 더는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원인이 또 있을테지. 안온한 생활에 대한 갈망! 아닌가?》

로철정의 물음에 허금호는 불쾌해했다.

《그야 말년의 인간들이 바랄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더우기 이 나이에 이르도록 발이 부르트게 달려다닌 우리같은 사람들한테서 말이지. 솔직한 말로 이제는 낚시대를 들고 바다가에 앉고싶기도 하네.》

허금호의 억양에는 소원이 어려있었다.

로철정이 의문짙은 눈길로 허금호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구만. 하지만 알맹이는 그게 아니야.

아름찬 일들이 앞에 막아나서니 도피하자는거지.

내 이미 말했지만 혁명을 그만두려는 투항주의! 아닌가?》

허금호는 항변했다.

《그건 너무하네. 한생을 거의나 건설에 바쳐온 이 사람한테 그건 모욕이란 말일세.》

금호의 이마에 피줄이 살아나 풀떡거렸다.

한차례의 차거운 파도가 갈기를 날리여 두사람의 가슴노리에 끼얹어졌다.

《한생을 건설에 바쳐왔다구? 무슨 소린가? 삶의 마지막순간까지도 깡그리 인민을 위해 바쳐야 참된 인생일세! 허동문 마치나 자기가 시대와 사회에 희생되여온것처럼 말하는구만.

잘못된 생각일세. 우린 오히려 사회의 보살핌속에서 성장해왔네.

선군시대는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만을 부르네.

나아가기 힘들어하고 앉아뭉개는 사람은 사실상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무용지물일세.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선군시대엔 우리모두의 지혜와 의지, 높뛰는 심장이 필요하지. 오늘의 총돌격전에서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생명이 없는 존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말일세.》

성이라도 난듯 청높이 웨치는 철정의 목소리는 소연한 파도소리를 짓누르며 금호의 귀청을 때렸다.

금호는 유감스러운 눈길로 철정을 바라보았다.

《십년세월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함께 달려온 나를 붉은기를 버린 비겁분자취급을 하려나?

제발 그러지 말게. 난 누구보다 떳떳하네.》

로철정이 금호의 의도를 간파하고 노엽게 뇌이였다.

《물론 떳떳할테지. 성준이가 목숨걸고 이 포성없는 싸움판에 서슴없이 한몸 내대였으니까.

그러나 허동문 이 건설에 운명을 걸고 나선 사람이 아니야. 가다가 힘에 부치면 돌아서고 나라일은 어찌되든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겠다는 혁명의 배신자, 비겁분자나 다름없단 말일세!》

허금호가 놀란듯 두눈을 흡뜨고 소리쳤다.

《뭐라구? 다시한번 말해보게.》

《배신자, 비겁분자!》

철정은 준절히 웨치고 돌따섰다.

금호는 《헉.》 하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억울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그는 다시 일어설것 같지 못했다.

결말이 이러할줄 알았더라면 무엇하러 공연히 파도사나운 곳에 그를 끌어내여 피차 괴로운 심사를 겪어야 했던가. 허금호가 이처럼 변질되였으리라는걸 알았더라면 찾아오지나 말았을걸 그랬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는 후회를 털어버리듯 발부리로 조가비껍질을 냅다 차버리며 성난 걸음을 씽- 하고 내짚었다.

끊어진 잔교사이를 쇠바줄로 이어놓은 구간에 들어섰을 때였다. 누군가 훼방이라도 하듯 쇠바줄다리의 판자를 쿵닥쿵닥 짓밟으며 따라왔다. 허금호였다.

그는 파도사나운 방파제우에 자기를 끌어내다 배신자딱지를 붙여 내팽개치고 혼자 가버리는 철정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불그락푸르락 이지러진 얼굴로 뭐라뭐라 웨치면서 비척비척 따라왔다. 금호의 몸무게가 쇠바줄다리를 허둥지둥 흔들자 철정은 더는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버렸다.

《배신자, 비겁분자라구? 당장 취소하게!》

그 순간 한차례의 파도가 쇠바줄다리우로 솟구쳤다.

《취소 못해!》

철정은 매정하게 내쏘았다.

《왜서?》

허금호는 눈에 들어간 짠물때문인지 두눈을 연방 껌벅이며 따져물었다.

《전투진지를 리탈했으니까.》

《그래 떠민건 누군데?》

《내가 떠밀었다구?》

《아무렴.》

《모든게 어려워지니까 도피한거야. 자넨 정말 아들보다 못해!》

《뭐라구?!》

금호는 그만에야 급소타격을 받은 사람처럼 욱하고 두눈을 디룩거리더니 출렁대는 판자바닥에 쿵- 하고 물러앉아버렸다.

또 한차례의 바다물이 금호의 웅크린 몸우에 들씌워졌다. 그는 억이 막혀 울고있는듯 했다.

어깨가 눈에 뜨이게 들먹거렸다. 철정은 마지막에 한 말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던가싶었다.

금호의 아린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되지 않았는가. 아버지만 한 아들이 없고 부모는 자식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산다는 말도 있는데 성준이와 같은 훌륭한 아들을 둔것을 긍지로 여기는 그에게 그런 말을 했으니 노염을 살만도 했다.

성을 돋구고 약이나 올려주자고 그를 예까지 데려왔단 말인가. 철정은 다시금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금호와의 대결에서 손들고만것만 같은 생각에 앞길을 가늠 못하며 허둥지둥 걸었다.

금호가 비겁분자, 투항분자였다면 지금껏 그와 어깨겯고 만난을 헤쳐온 자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동안 내처 걷던 철정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몇차례의 파도에 온몸을 흠씬 적셔버린 금호는 란간의 쇠바줄을 거머잡고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세우더니 더는 뒤따라올념을 하지 않고 먼바다쪽을 망연히 바라보며 서있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눈여겨보던 철정은 두다리에 납덩이가 매달린듯 걸음을 떼기가 괴로왔다. 한걸음, 두걸음 허금호와 멀어질수록 무언가 귀한것을 버리고가는것과 같은 상실감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달음으로 달려가 부둥켜안으며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라고 호소하고싶었다.

그러면 과연 그가 호응할수 있을가.

철정은 잠시후에 도리를 저었다.

방금전에 랭정하게 떠밀어버린 사람을 한순간도 못미처 포옹한다면 어떻게 진심이라고 호응할수 있으랴.

(너무했어. 그 사람의 심리엔 전혀 아랑곳없이 너무도 야박하고 모질게 그를 괴롭혔어.)

로철정은 가슴허비는 후회를 안고 무겁게 발걸음을 떼였다. 그는 언젠가처럼 허금호를 뜨겁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뼈저린 자책으로 한참이나 서있다가 다시금 기계적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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