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4 장

7

분망한 날들이 살같이 지나갔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철정은 하나의 시름거리에 다좇기게 되였다.

근심거리는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수 없고 일에 다몰려 잠시 머리속을 떠났다가도 문득 떠올라 그를 괴롭히군 하였다. 그 시름거리란 다름아니라 얼마전에 중앙에서 실태료해로 내려왔던 성원들이 가지고올라간 건설장의 실황을 그대로 수록한 록화물이였다. 록화물에 담긴 처절한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자다가도 문득 일어나군 하였다.

로철정은 자신이 못내 민망스러웠다.

어버이장군님께서 그 화면들을 보시면 얼마나 시름겨워하시겠는가.

이런저런 뼈아픈 자책의 감정으로 잠 못들던 그는 자정이 지나서야 불편하게 허리를 꼬부리고 꿈나라에 갔다.

꿈은 생시와 반대라는 말은 맞는가보았다.

근심속을 헤매다가 잠든 그는 문득 꿈속에서 황홀경에 맞다들었다.

…원산청년발전소의 모든 발전기들이 맹렬하게 돌아가고있었다.

온 도시가 불야경을 펼치였다.

하늘은 마치도 방금 해돋이가 시작된 때처럼 선홍빛으로 붉게 타올랐다.

울긋불긋 불빛장식을 한 아빠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시가지로 발전소준공을 축하하여 달려나온 시민들이 북을 치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활기있게 행진해가고있다.

동명산마루의 우뚝우뚝한 탑식아빠트들도 금빛채광에 휩싸였다. 먼바다에서 들어오던 큰 배들이 도시의 야경에 취한 선원들을 싣고 바다를 빙빙 돌고있다.

대양에서 들어오던 외국선박의 선장이 기관실에다 속도를 죽이라고 지령한다. 얼마전에 들렸던 원산시는 가로등도 못 켠 어둠의 도시였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변모되다니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해도를 잘못 보고 침로를 삭갈린게 아닌지 모를 일이였다.

로련한 선장은 또다시 무전수에게 원산항이 맞는가를 물어보라고 지령한다. 그리고 자신은 원산항의 등대불신호를 몇번이고 다시 확인한다.

분명 원산항등대다. 항에서도 원산이 옳다는 답신이 온다.

오! 이 무슨 기적인가?

선장은 수십년간 수십개의 항구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오지만 오늘의 원산처럼 휘황찬란한 불야경은 처음 본다.

선장은 로철정에게 《오, 당신들 제일! 조선사람들, 강원도사람들 제일!》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철정은 홀로 네거리복판을 걷는다.

밤이였는데 도시가 대낮처럼 밝았다. 전지를 든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아빠트에서 장식등들이 끝없이 명멸하면서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내리기도 하며 오르기도 한다.

어데를 둘러보나 불빛이다. 불! 불! 불야경!…

수도의 밤하늘을 밝히던 축포야회의 밤하늘이 여기에 펼쳐진듯싶었다.

그는 무아경에 잠겨 네거리복판에 서있었다.

그러던 그는 평양쪽에서 달리여오는 장군님의 야전차를 띄여보았다.

야전차는 로철정이 서있는 도로 한복판에 슬며시 멈춰섰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그를 향해 마주오시였다.

철정은 서둘러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좋구만. 원산시민들이 밤을 모르게 되였소.

보시오. 제힘을 믿고 결사의 의지로 일떠선 인민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로동무, 수고했소. 인민대중의 정신력에 의거해서 새 세기의 창조물을 일떠세우느라고 말년의 힘과 지혜를 남김없이 바쳤구만.》

장군님께서는 로철정의 두손을 꽉 잡아주시고나서 철령쪽으로 야전차를 몰아가시였다.

철정은 장군님의 야전차가 멀어져간 철령쪽하늘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장군님! 이제 더는 철령을 넘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목청껏 웨쳤으나 그 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뿐이였다. 철정은 모지름쓰며 갑자르다가 잠을 깨였다.

눈을 떠보니 꿈이였다.

가슴은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한없이 달아올랐다.

자리를 차고 일어선 그는 우중충한 산발들이 앞을 가로막은 창밖의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사회주의전초선을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한평생 선군장정의 길을 헤쳐가시는 인민의 어버이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눈에 어려왔다.

낮과 밤에 이어 초강도강행군으로 애국헌신의 나날을 수놓아가시는 위대한 장군님.

《로철정동무, 건설장에 들리지 못하고 전연으로 나갔다고 서운해마오. 원쑤들의 준동이 심해서 또다시 철령을 넘지 않을수 없었소. 동무들이 발전소건설을 끝냈다는 소식을 보내오면 내 꼭 거기에 가보겠소.》

철정은 마치나 장군님께서 직접 자기에게 말씀하시는것만 같이 느껴져 감격의 눈물이 그들먹이 차올랐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래간만에 집무실에 계시였다.

최전연초소들에 대한 현지시찰에 뒤이어 북방의 야금기지와 공장과 농촌을 찾아 쉬임없이 초강도강행군의 나날을 보내신 어버이장군님이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던 여가에 시급히 비준을 요하는 문건들을 보아주시고나서 록화테프를 들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최근에 강원도인민들이 일떠세우고있는 원산청년발전소의 건설실태를 수록한 록화물이였다.

얼마전에 그곳 건설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여 보고하라고 했더니 일군들이 직접 내려가 며칠동안 묵으면서 건설장의 실황을 빠짐없이 록화해가지고왔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록화기를 가동시키시였다.

화면에는 마식령의 험산준령이 흘러가고있었다.

모래와 자갈이 든 마대를 자전거에 싣거나 이고지고 고속도로를 꽉 메우며 행진해가는 지원군중들, 경사급한 산비탈에서 혼합물이 철철 넘치게 담은 맞들이를 들고 달리는 돌격대원들, 진흙마대를 둘러메고 인력상차대우로 달려올라가는 녀맹원들, 손에다 붕대를 처매고 함마를 휘두르는 녀성돌격대원, 언제를 다지며 굴러가는 불도젤운전칸에서는 40대중년녀인의 얼굴도 보인다.

영예군인방송선동원…

꽁꽁 언 붓을 입으로 불어 녹이며 전투속보를 쓰고있는 나어린 총각 돌격대원…

파철과 파동을 모아 손수레에 싣고 달려가는 지원자들.

허리치는 석수를 극복하면서 굴진을 계속하는 물길굴려단의 전투원들… 《하루 80탕을 뛰자!》는 글을 적재함에 써붙이고 달리는 대형자동차들, 얼음을 까고 뼈를 에이는 찬물속에 뛰여들어 골재와 모래를 채취하는 돌격대원들…

악전고투속에서도 랑만적인 웃음을 짓고있는 건설자들의 모습이 무성화면으로 오래동안 흘러갔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굳게 틀어쥐시였다. 강원땅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모습이 그이의 심중을 후덥게 해드린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시여 눈굽을 찍으시였다.

로철정이 꺼칠하게 살이 빠진 얼굴로 돌격대지휘원들앞에 나서서 《30만산지향성대발파설계도》를 열렬히 설명하는 모습이 언듯 화면에 비쳐지자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쩌릿이 젖어드시였다.

제 몸을 전혀 돌보지 않고 생사판가름의 의지로 아름찬 공사를 이끄는 그가 한없이 미더우시였다.

이윽고 화면은 꺼졌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곁에 앉아있는 부관에게 격정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강원도사람들이 참 용소. 그들은 손내밀줄 모르는 사람들이요.

우리가 원래 원산청년발전소를 크게 건설하라고 할 때 정 힘들어하면 국가투자를 해주려고 했는데 기어코 자체의 힘과 기술, 자체의 자금으로 건설하고있거던. 그래도 무엇이건 애로가 있으면 제기하라고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자체로 하겠다면서 한번도 손을 내밀지 않고있소.

참 외유내강한 강원도사람들이요.

나는 이 록화물을 보면서 눈물을 금할수 없었소.》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잠시 창밖의 먼하늘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흙마대를 지거나 맞들이를 들고 내달리던 돌격대원들과 녀맹원들의 모습을 눈앞에 삼삼히 떠올리시였다.

나라의 살림이 긴장하지만 강원땅건설자들의 고된 일을 다소나마 덜어주고싶으시였다.

《부관동무! 강원도사람들이 다른것은 다 제힘으로 해결한다 해도 대형자동차만은 자체로 해결하기 어려울거요. 원산청년발전소건설장에 륜전기재들을 보내주도록 해야겠소. 그래야 그곳 건설자들이 좀 허리를 펼수 있고 내 마음도 어느정도 편안할것 같소.》

부관은 그이의 다심하신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 두눈을 슴벅이면서 곧 집행하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 문득 생각난듯 말씀하시였다.

《참 부관동무도 보았지. 그곳 건설을 책임지고있는 로철정동무의 축간 모습을 말이요.

안변청년2호발전소준공전야에 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때보다 퍼그나 수척해졌고 늙어보이오.

나이도 많은데 자체의 힘으로 아름찬 공사를 해내자니 얼마나 힘겹겠소.

책임자동무가 앓고있는것 같은데 알아보고 필요한 치료약과 보약을 보내주도록 하여야 하겠소,》

부관은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올린 뒤 곧 집무실밖으로 나갔다.

며칠 지난 어느날 이른새벽이였다.

로철정은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원산청년발전소건설장에 보내주시는 대형자동차 100대와 설비들이 곧 도착하게 된다는것이였다.

철정은 송수화기를 틀어쥔채 격정에 흐느끼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선군장정의 길에서 사회주의조국수호전을 힘있게 이끄시는 나날에도 원산청년발전소건설실태를 속속들이 헤아려 제일 부족한 륜전기재문제를 풀어주신것이였다.

이튿날 해안광장은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명절처럼 흥성거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설비를 전달하는 모임이 곧 진행되는것이였다.

하늘은 가없이 넓고 푸르렀다. 바다도 이날은 잔잔했다.

흰갈매기들이 유유히 날아옜다. 그것들도 강원땅의 경사를 축하하듯 광장상공에까지 날아들어 빙빙 원무를 하며 돌아갔다.

선물전달모임이 시작되였다.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 로철정에게 선물설비명세를 정중히 넘겨주었다.

모임이 끝나자 로철정은 선두차의 적재함우에 올라 기쁨에 넘쳐 춤추는 돌격대원들속에 섞이였다.

시민들은 요란한 취주악대의 환영곡에 맞춰 꽃다발을 흔들면서 자동차운전사들을 환영하였다.

끝없이 긴 행렬을 이룬 자동차대오는 발전소건설장을 향하여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어버이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목메인 건설자들과 시민들이 련이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차들이 광장을 떠나 시내도로에 들어서자 군중들은 자동차행렬을 뒤따라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도 감격하여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따라갔다.

로철정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속에서 정성껏 골라 깨끗이 씻은 자갈을 손수레에 싣고 건설장으로 찾아왔던 가두아낙네들의 얼굴을 찾아보았다.

어버이장군님께서 마대전으로 밤밝히던 청년돌격대원들의 수고를 헤아려 수많은 륜전기재를 보내주시였다고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과 함께 솟구치는 감사의 마음을 억제할길 없었다.

리민영의 기초식품공장에서 달려나온 지원대원들이 자기네 공장돌격대원이 받은 자동차에 올라 유리도 알른알른 닦으며 민영이가 수송에서 선두에 설것을 당부하였다.

《리민영동지! 우리 마음을 담아서 언제나 앞장서 달려주세요!》

처녀로동자가 정성껏 마련한 꽃방석과 눈처럼 하얀 차걸레를 안겨주며 말했다.

《알겠소! 동무들, 내 기어이 발전소준공의 날 어버이장군님께 승리의 보고를 올리고 공장으로 돌아가겠소.》

리민영은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에 겨워 자동차를 살붙이처럼 정답게 쓸고 닦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바야흐로 봄볕이 따사로와지고있었다.

겨우내 메마른 북서풍에 시달리던 헐벗은 수림이 물기를 머금고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두텁게 얼어붙었던 고미탄천이 풀리여 얼음장들이 쏜살같이 떠내려갔다.

로철정은 지휘관들과 함께 발전소지휘부로 와달라는 도당위원회의 지시를 받고 아침 일찌기 30만산을 떠나왔다.

오전 첫시간에 박경진비서가 건설지휘부에 나왔다. 건설지휘부의 당행정지휘일군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였다. 장내에는 숙연한 침묵이 드리워있었다.

누구도 모임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도당위원회 박경진비서를 비롯한 책임일군들이 여러명이나 나와있었다.

장내가 정돈되자 박경진비서가 연탁에 나왔다.

그는 정기도는 눈길로 낯익고 친숙한 공사지휘관들의 얼굴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나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동무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번에 내려왔던 료해조 성원들이 올린 록화물에서 병약해지고 수척해진 공사책임자동무의 얼굴이 화면에 잠간 비친것을 헤아려보시고 로철정동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약과 보약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순간 로철정은 끓어오르는 감사의 정을 억제 못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며 《흐흑.》 하고 어깨를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쪽잠과 줴기밥으로 해와 달을 보내시면서 언제 한번 자신의 건강을 돌보신적 있었습니까! 제가 한 일이 무어라고 이처럼 하해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입니까!

그는 터져나오는 격정을 참느라고 입술을 꾹 깨물고 서있었다.

박경진비서가 계속하였다.

《동무들, 오늘의 이 영광을 어찌 로철정동무의것이라고만 할수 있겠습니까.

이 행복, 이 영광은 우리모두의것, 강원땅 전체 인민들의것입니다.

우리모두 이 사랑의 불사약을 가슴마다 간직하고 발전소를 우리의 힘으로 앞당겨 일떠세워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립시다.》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박수가 일었다.

로철정은 다함없는 흠모와 감사의 정을 담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모임을 마치고 떠나기에 앞서 박경진은 로철정을 만났다.

《책임자아바이! 30만산이 우리 뜻대로 호락호락 옮겨앉을가요?》

로철정은 어덴가 신중하면서도 확신성있게 대답하였다.

《좀 어렵기는 합니다만 머리를 맞대고 방법론을 찾고있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지층에서 대붕락이 오는통에 지질구조가 달라져 프로그람을 다시 짜야 하는데 리경숙연구사가 심부동굴에 직접 들어가서 현장탐사와 CT탐사를 하면서 분발하고있습니다.

지식인처녀치고는 놀랄만 한 헌신성과 투신력이 있는 동무입니다. 우린 그 선생을 크게 믿고있습니다. 얼마전에 내놓았던 프로그람도 거의나 완성에 가까왔었는데 이번의 대붕락으로 많은 변동이 생겨 다시 하는데 인차 완성할겁니다.》

박경진은 로철정이 경숙을 믿고 치하하는 말을 들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철정은 그 미소의 진의도를 알수 없어 의아한 눈으로 마주보았다.

《책임자아바이! 아바인 리경숙연구사와 같은 며느리를 소원해본적이 없습니까?》

박경진이 정색한 얼굴로 물었다.

《과남하지요. 어느 부모치고 그처럼 헌신적이고 지성적인 처녀를 탐내지 않겠습니까.》

로철정이 진정으로 부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허, 아바인 젊은이들의 세계엔 영 깜깜인 모양이군요. 우린 리경숙연구사가 로영훈동무에게 정을 두고있다는 얘기를 이미전에 들었습니다.

우선 처녀가 친척들이 내세우는 뜨르르한 총각도 마다하여 부모들의 속을 태운 사연이며 영훈동무 역시 로총각이지만 어떤 처녀도 넘보지 않는것은 다 우연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학시절에도 류다른 인연을 맺고있었더군요.

그런 청년들이 벅찬 건설장에서 다시 만났으니 지난날의 잊지 못할 인연이 사랑으로 이어지는거야 응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박경진은 전에없이 다감해진 음성으로 기쁨에 겨워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런걸 이 아버지라는 사람만 모르고있었군요.》

로철정은 행복에 겨워 만시름을 잊고 벙글거렸다.

《그런데 비서동지는 그런걸 어떻게 다 알고있었습니까?》

박경진이 능청스레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속내에 밝은 정치부장들이 모여앉으면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리지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는데서는 귀신같은 친구들이니까요.

하여튼 책임자아바이! 아들의 대상자문제는 마음놓고 대발파를 성공시킵시다.》

박경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임자아바이, 어버이장군님께서 근심하시지 않게 건강을 잘 돌보십시오.》

《관심해주어 고맙습니다. 30만산을 날릴 때까지는 무조건 버텨야지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건설이 끝나면 또 다른 건설이 기다릴텐데요. 강원땅을 일떠세우는데 우리 함께 한몸 바쳐야지요.》

박경진의 말에 로철정은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였다.

《당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하여 한생을 다 바쳐 노력하겠습니다.》

로철정은 심중에 끓어넘치는 격정과 흥분으로 잠들지 못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기쁨만이 아닌 삶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굳은 확신이였다.

그는 지금껏 겪어온 모든 시름과 걱정따위는 자기가 받아안은 행복과 환희에 비하면 하등의 의의도 없고 보잘것없는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는 자기만큼 복된 인생이 없다고 느껴졌다. 순간 그는 그 행복을 안겨주신 어버이장군님의 하늘같은 은덕에 보답해야 한다는 열의로 심장이 높뛰였다.

CT탐사조와 대발파설계조의 집체적지혜에 의하여 대발파프로그람은 드디여 완성되였다. 리창학의 노력과 방조가 적지 않게 깃든 프로그람을 리경숙이 최종적으로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로철정과 허금호, 남궁일은 하루종일 프로그람을 검토하였다.

처녀연구사의 이전보다 훨씬 더 하여진 담력과 배심이 요소마다에서 느껴졌다.

그것은 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정복한 지성인의 결실이였다.

남궁일과 허금호는 대단히 만족하였다. 로철정도 리경숙의 성장을 두고 더없는 기쁨을 느끼였다. 로철정은 프로그람을 다시한번 검토하기로 했다.

랭정한 심의자의 눈으로 다시 검토한 그는 어덴가 아쉬움을 느끼며 사색에 잠기였다.

까닭모를 불만과 실망이 슬며시 머리를 들었다. 무엇때문일가?

처음부터 다시 세밀히 검토해본 철정은 드디여 원인을 밝혀내였다.

지하공간과 지하수처리문제가 원만하지 못한탓이였다.

그 처리가 보다 원만했더라면 부여된 폭발력으로 산을 언제가까이로 수십메터나 더 멀리 날라갔을것이였다. 대발파에서 수십메터는 물론 허용할수도 있는 수치이다. 하지만 그는 만족할수 없었다. 돌격대원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더 덜어주어야 하는것이다. 일군들이 좀더 머리를 쓰고 심사숙고하면 그만큼 헐해질것을 성급하게 만족해버린것이 그의 불만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만족하고 기뻐마지않는 일을 두고 그는 또다시 고심해야 했다.

책상을 마주앉아 머리를 쥐여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였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새벽어둠을 전지불로 쫓으며 그는 30만산으로 올라갔다. 얼마 가지않아서 누군가 전지를 비치며 뒤따라왔다.

《책임자동무!-》

귀에 익은 허금호의 목소리였다.

철정은 무춤 서버렸다. 어데서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는가싶어 불안해졌다.

숨가쁘게 다가온 그가 전지불초점을 발치에 던지며 헐떡거렸다.

《내가 프로그람에 부족점을 남겨둔것 같소.

책임자동무가 준 임무를 뼈심들여 해내지 않고 헐하게 굼때버렸던때문이요.》

철정은 드디여 그가 여기까지 달려온 까닭이 헤아려졌다.

《방도를 찾았소?》

철정의 물음에 그는 확답을 못했다.

《아직은, 그래서 다시 심부공간에 들어가 보자는것이요.》

철정은 기뻤다.

《나도 거기로 가는 길이요.》

《그렇소?!》

두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일치한것이 다행스러워 마음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자, 어서 들어가서 론의해보기요.》

그들은 굴길로 접어들어 걸음을 다그쳤다.

휑뎅한 지하공간의 아득한 수면우로 전지불을 비치면서 철정은 신기한 생각에 잠겼다. 보기 드문 그러한 묘한 자연이 인간의 두뇌와 겨루기를 하려고 생겨난듯싶었다. 아무렴 인간이 자연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단 말인가.

두사람은 각이한 방향에서 방도를 모색하고는 서로 납득될 때까지 끝없이 론의하고 론쟁했다.

오전시간을 다 허비하면서 지하저수지의 울퉁불퉁한 기슭을 따라 방도를 찾아헤매던 그들은 너무도 힘이 진하여 석수에 즐펀해진 바위우에 물러앉았다.

(여기서 또 주저앉고마는가?)

철정은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달래며 사색에 몰두했다.

제출된 프로그람에 수표해주기를 바라며 한밤 지새웠을 경숙이의 수척해진 얼굴이 눈앞에 밟혀오자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두사람은 막연한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였다.

어데선가 돌돌돌 가냘픈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틈사이론가 지하수가 흘러나가는 소리였다.

방향을 가늠해보니 이전에 리경숙이 빠져나갔던 동굴의 밑바닥으로 얕게 깔려 흘러내리는 물소리였다.

순간 철정의 뇌리에서는 지하수위를 높여주고 동굴의 바닥을 낮추어주면 그리로 순간에 많은 량의 지하수가 빠져버릴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론리가 정립되기 전에 흥분이 앞서면서 심장이 높뛰였다.

철정이 확신성있는 어조로 말했다.

《허동무,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소?

저 자연동굴의 물곬을 깊이 파주고 대발파전에 천정을 물러앉히는 소발파를 하면 물이 차넘쳐 죄다 빠져나가버릴거란 말이요.》

허금호는 설명을 채 듣기도 전에 리치를 깨닫고 철정의 가슴에 정차게 주먹을 안기며 기뻐했다.

《로동무, 그건 발견이요. 성공의 전주곡이요.》

금호는 자기로서는 여러날동안 머리를 쥐여짤대로 짜내면서도 생각못했던 발견을 한 철정의 두손을 부여잡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허동무, 빨리 경숙연구사에게 알려줍시다.》

그들은 서로 손잡아 이끌면서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나갔다.

30만산 심부의 지하수와 거대한 공간처리방도까지 정확히 반영된 대발파프로그람은 최종심의에서 무수정 통과되였다. 건설지휘부에서는 대발파를 앞두고 하루 휴식을 주었다.

로영훈과 경숙은 나란히 바람새 사나운 30만산의 정수리에 서있었다.

산바람은 두 청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그 무슨 사연이라도 전하듯 쉬임없이 뒤채이였다. 마식령쪽에서 불어치는 대륙풍이 숨을 꺽꺽 막히게 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 무슨 연고로 이 산정에 이끌어왔는지 모르게 약속이나 한듯 발볌발볌 정점에 오른것이였다.

해볕과 눈비에 시커멓게 고삭아버린 이깔나무 삼각표고표식주가 래일을 마감으로 서있는 정점에는 키낮은 새초와 띠풀따위가 바위틈사리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있었다.

지금껏 하고픈 이야기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잠재워온 두 청춘이였다.

시련도 있었고 체험과 교훈도 적지 않았던 한해 겨울이였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위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저으기 심사숙고해야 했다. 그래서 한동안 말을 삼가하였다.

그들은 몇달전에 여기에 올랐던 때처럼 황홀해진 눈길로 동서남북을 내려다보았다. 거창한 대자연은 아름답고 기세찼다.

영훈과 경숙은 가슴들먹이며 발아래에 펼쳐진 험준하고 기묘한 대자연에 심취되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기란 즐겁고 유쾌한 법이다. 자연의 황홀경에 취한 영훈은 경숙이 깊은 상념에서 깨여나기를 기다리듯 말없이 멀고 가까운 곳의 광활한 자연경개에 눈길을 주고있었다. 처녀도 역시 먼저 이야기를 떼지 못하고 자연에 빠져버렸다.

마식령의 하늘아래에는 태고적에 태여난 자연경치와 어울려 인간의 온갖 창조물이 조화롭게 수놓아져있었다.

가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맞붙은 동해, 바다를 끼고 일떠선 항구문화도시며 높낮은 구릉들에 펼쳐진 논밭들과 우줄우줄 뻗어내린 산봉우리들, 그 사이로 하나와 같이 바다를 향하여 줄달음치는 여러 갈래의 크고작은 강과 시내들… 양지바른 산기슭과 벌가운데에는 빨갛거나 희읍스레한 기와를 얹은 농촌문화주택들과 로동자구의 살림집들이 아슴푸레하게 보이였다.

경숙은 저처럼 많은 도시와 마을들의 집집마다에, 공장과 광산, 탄광들에 가닿아야 할 전기를 일으키기 위하여 심산속에서 보낸 한해 겨울이라는 길지 않은 나날이 지금까지의 자기의 생활에서 가장 의의있는 나날이였다고 생각되였다. 그것은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거치른 자연과 맞서 당황하기도 했고 뒤돌아설 마음도 가져보았던 힘에 부친 나날이기도 했다.

하나 그는 이 시각 승리의 기쁨을 안고 이 산정에 서있는것이다.

처녀는 환희로 설레이는 가슴을 잠재우며 슬며시 영훈을 바라보았다.

영훈도 경숙의 심정을 헤아린듯 눈길을 돌려 마주보았다.

경숙은 깊은 숨을 들이긋고나서 입을 열었다.

《전 이런 날이 오리라는걸 생각 못했어요. 건설장에 온걸 후회했댔지요. 영훈동질 원망했고 다시는 마주서지 않자고 맘먹었댔어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영훈은 덤덤히 듣고있었다. 그도 무언가 후회하면서 자책하는듯 했다.

《그건 내탓이기도 했소. 나는 경숙동무의 기술만을 믿었던거요. 결코 두뇌 하나만으로 해낼수 없는것을…》

경숙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야 뭐 제자신의 불찰이였지요. 저는 너무도 많은걸 계산하지 못했어요. 모의건설결과를 15년으로 발표해놓고 그 오산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것은 결국 저의 무지의 표현이였어요. 점차 자신의 정신적준비와 능력이 주어진 현실을 따르기에 너무도 떨어졌다는것을 느꼈을 때 저는 두뇌로가 아니라 돌격대원들처럼 육체적로동으로 이바지할 생각까지 했댔지요. 제가 어쩌면 그리도 쉽사리 나약해지고 동요하게 되였던지 모르겠어요.》

경숙은 솔직히 고백하였다.

영훈도 자책에 겨운 인상으로 경숙을 마주보았다.

《나 역시 이번에 적지 않은 교훈을 얻게 되였소. 동요하는 경숙동물 진심으로 이끌어주지 못하고 이 길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을 했거던.

동무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단정했댔지. 결국 믿음을 주기에 린색했던거요. 남을 자신처럼 믿는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요.》

경숙이 머리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제가 믿음을 받도록 준비되여있지 못했던거예요. 쉽사리 진지를 리탈할 생각을 했으니까요. 이제와서 생각하면 가끔 여기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것을 모르는 모자라는 인간으로 남아있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경숙은 계속하여 이 건설을 추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 이 시대를 이끄는 정신력을 깨달은 때로부터 자신의 힘과 능력도 백배해졌다는것을 말하고싶었다. 모든것을 지배하는 정신력이야말로 건설을 힘있게 떠밀었을뿐아니라 경숙이라는 인간도 새롭게 성장시킨것이였다.

경숙이 자기의 심정을 허심하게 말했다.

《결국 사람이 산다는건 뭘 말하겠어요. 정신력을 지니고있다는걸 의미하겠지요. 그것이 없는 목숨은 죽은거나 다름없고요.》

영훈은 단순하고도 명백한 그 리치를 경숙의 목소리로 듣는것이 더없이 기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어주었다.

경숙은 계속했다.

《전 우리가 어째서 멀리 갔다가도 때없이 모교를 찾아 조군실영웅의 동상앞에 서게 되는지, 영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있는지 그 의미를 지금이야 명백히 알았어요. 영웅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영원한 삶을 지니라고 말하고있어요.》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삶. 옳소, 영웅은 그렇게 살았고 우리모두에게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있는것이요.》

영훈이 긍정하였다.

경숙은 문학소녀와도 같은 감상에 잠겨있는 동안 숨소리마저 죽이며 침묵을 지켜 사색을 같이 해주는 영훈이 고마왔다.

이 순간 경숙은 오랜 나날 가슴속에 지울래야 지울수없이 간직해온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오름을 느끼였다.

영훈은 지금껏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린적이 없었다.

그 열렬한 사랑이라는 낱말이 귀중한 과제를 안은 처녀의 가슴에 부담이 되리라는 우려때문이였는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청춘의 행복이 아직은 가늠 못할 앞에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 정점을 향하여 꾸준히 톺아오르느라 여념이 없었던 때문인지 경숙은 그의 심정을 단정하기 어려웠다. 하나 어느때건 이런 날이 꼭 오리라 믿어온 경숙이였다.

영훈이 격정어린 눈길로 경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경숙동무! 동무는 이번에 무척 억세여졌소. 난 동무가 앞으로 순간을 살아도 영웅의 최후처럼, 한생을 살아도 영웅의 최후처럼 빛나게 살자는 우리의 약속을 굳게 지키리라는것을 믿고싶소.》

영훈은 뜨겁게 달아오른 손으로 경숙이의 손을 굳게 잡았다.

《믿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들은 밝게 빛나는 눈길로 마주보았다.

사랑과 애무에 젖은 한없이 부드러운 눈빛이였다. 그들은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먼 수평선을 향하여 나란히 섰다.

영훈이가 시정에 잠긴듯 가없는 수평선 저 멀리에 눈길을 보내면서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숙동무! 우린 아직도 얼마나 험난하고 먼길을 헤쳐가야 할지 모르오. 과학의 최첨단을 돌파하는것은 말이나 욕망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다오.

신들메를 단단히 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각오로 달려들 때라야만 달성할수 있는거요.》

경숙은 영훈이의 말에 긍정하였다.

《저도 이번에 많은 교훈을 얻었어요. 그 어떤 훌륭한 최첨단과학기술이라 해도 강한 정신력을 지닌 지성인의 손에서만 은을 낸다는것을 절감했답니다.》

두 청춘은 생각깊은 눈길로 오래동안 마주보았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