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1 장

6

요사이 5층아빠트 뒤마당에서는 자주 웃음꽃이 피여나군 했다. 사람들의 가운데 앉아 웃음집을 흔들어놓군 하는 주인공은 영예군인녀성 권춘옥이였다.

그는 날마다 인민반장녀인의 잔등에 업히워 아빠트뒤마당에 내려가서는 큼직한 망치를 들고 자갈을 깨군 하였다. 춘옥은 자주 우스개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방송원으로 선동마이크를 들고 군사복무를 한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듣고나면 의미심장한 씨알이 박혀있어 누구나 좋아했다.

그럴 때면 꼬마들이 춘옥의 곁에 모여앉아 자갈을 쌓아놓는 바람에 그의 자갈더미가 남달리 높았다.

그가 허리아픔도 잊고 자갈을 호두알만큼씩 깨서 서너바께쯔나 만들어놓았을 무렵이였다.

돌격대제복차림을 한 서른살안팎의 청년이 아빠트뒤뜰에 나타나 망치질에 여념이 없는 인민반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들하십니다. 말 좀 물읍시다. 여기 인민반에 권춘옥아주머니가 계시지 않습니까?》

한창 이야기에 신바람을 내면서 망치질을 하던 춘옥은 얼굴을 들고 청년을 마주보았다.

《제가 춘옥이예요. 그런데 뉘신지?》

춘옥은 두눈이 두리두리하고 호남형으로 생긴 청년에게 의아한 눈길을 보내면서 물었다.

《제 원산시돌격대 려단정치부장입니다. 김성철동지와 함께 일합니다.》

춘옥은 너무 반가운김에 일어나고싶어 들썽거리다가 제자리에 물러앉아버렸다. 영훈이가 재빨리 춘옥의 두팔을 잡아 부축하였다.

영훈은 춘옥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채 우뚝 굳어졌다.

낯익은 모습이였다.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춘옥은 로영훈이 어째서 놀라운 눈길로 자기를 뚫어지게 보고있는지 알수 없어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그래요? 가까운 사람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가보군요.》

권춘옥이 물었다.

순간 그 녀자의 목소리가 영훈의 추억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권춘옥, 안변청년발전소 물길굴전투장에서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고동구호로 병사들을 결전에로 불러일으키던 현장방송원, 언제나 새물새물 웃음을 머금고 새별처럼 빛나던 눈이며 새까만 반달눈섭, 한쪽볼에만 옴폭 패인 볼우물, 하얀 이마에 새겨진 상처자리… 로영훈이 어찌 그를 잊을수 있었으랴.

《권춘옥동지!-》

영훈은 다함없는 격정과 이름할수 없는 감회에 잠기여 물젖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주위사람들의 망치질소리와 말소리가 일시에 뚝 멎어버렸다.

이윽고 권춘옥도 기억을 되살려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커다란 눈이 남달리 령리해보이던 과묵하고 진지한 신입병사를 더듬어내였다.

전사는 물길굴전투의 최후결사전을 앞두고 전연부대에서 지원나왔었다.

영훈은 자주 방송원고를 써가지고왔고 오락회시간에 마이크를 들려주면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이나 《보람찬 병사시절》과 같은 정서적이고 락천적인 노래를 즐겨 불러 물길굴막장을 랑만과 전투적분위기로 들끓게 했다.

권춘옥은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로영훈이, 신입병사선동원, 원산내기였지. 온참,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군요. 언제부터 우리 남편과 함께 일했어요?》

《이제 두달밖에 안됩니다. 한번 내려와본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자리를 잡느라고 바빠서 이제야 들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영훈이가 미안해했다.

《우리도 다 알고있어요. 건설장이 부글부글 들끓고있다는데 언제 시내에 내려올 짬이 있겠어요. 우리 주인은 요즈음엔 두달나마 얼씬도 안했는걸요. 여기 앉아요. 난 병사시절전우들을 만나든가 그때를 추억할 때가 제일 즐거워요.》

권춘옥은 기쁜 마음으로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의 보람찬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그때 춘옥은 영웅적위훈으로 가득찬 군인건설자들의 투쟁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으며 방송마이크를 들고 군인들의 심장의 고동을 더해주군 하였다.

부대에는 《호랑이중대장》으로 불리우던 30대의 총각군관이 있었다. 착암명수로도 이름났었다.

이름은 김성철, 고향은 원산 송천마을, 파도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랐다는 사나이였다. 붕락과 석수가 날마다 계속되는 제일 어려운 구간에서 중대장은 몇번이나 돌에 맞고 석수의 물살에 떠밀리웠다가는 다시 일어나 암벽을 내밀며 중대를 이끌었다.

긴장한 전투정황속에서 권춘옥은 언제나 마이크를 들고 석수에 온몸을 흠뻑 적시면서도 격동적인 방송선동으로 군인들을 위훈에로 고무하였었다. 그때마다 호랑이중대장 김성철은 남달리 거쿨진 체격의 가슴속 깊이에서 크낙한 감동에 젖어 쿵당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의식하군 했다.

어느날 굴천정에서 붕락을 예고하듯 이따금 돌부스레기들이 떨어져내렸다. 중대장은 날파람있고 경험있는 구대원들과 자기만 남고 모두들 막장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군인들은 명령에 순응했다.

그런데… 마이크를 틀어쥔 권춘옥중사만은 위험한 막장에 그냥 서서 고동구호를 웨치고있는것이 아닌가!

《동문 뭐요? 군인이면 지휘관의 명령을 들어야지!》

김성철중대장이 위험구역밖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중대장동지, 제발 저를 내보내지 마십시오. 전 전투원들과 함께 있겠어요.》

중대장은 순간 주춤했다.

상대의 맵짜고 도고한 자세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이처럼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드는 때에 처녀중사와 입씨름을 한다는것도 정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자기의 전투임무를 귀중히 여기며 위험속에서 전사들을 고무하는 권춘옥의 절절한 요구를 중대장은 존중해주기로 했다. 처녀중사는 격동적으로 웨치다가도 아름드리동발을 메고 석수속을 달리다가 발을 빗디뎌 쓰러질번 한 전사가 있으면 재빨리 몸을 날려 어깨로 떠받들어주군 하였다. 위험구간은 한치한지 극복되여나갔다. 바로 그무렵이였다.

《우르릉, 쾅.》하면서 한광차도 넘는 버럭무지가 천정에서 쏟아졌다. 중대장은 권춘욱을 떠박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한걸음 늦었다. 커다란 버럭이 춘옥의 허리를 세괃게 때린것이였다.

중대장은 재빨리 일어나 처녀중사를 부축해 일으켰다. 처녀는 아픔을 가까스로 참으면서도 마이크를 움켜쥐고 노래를 불러 일시 전투장에 엄습했던 불안한 분위기를 순간에 날려보내였다. 전투는 계속되였다.

춘옥은 모진 아픔으로 의식을 잃고 군의소에 후송되였다.

가까이에서 현실을 목격했던 신입병사 로영훈도 중대군인들과 함께 군의소에 면회를 갔었다. 물길굴이 성과적으로 완공된 뒤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은 혁명적군인정신의 창조자라는 고귀한 칭호를 받아안고 영훈은 다시 자기가 섰던 전연초소로 돌아갔었다.

춘옥은 스스럼없이 자기의 사생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영훈동무! 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속에서 아무런 불편도 없이 살아간답니다. 하지만 집안에만 들어앉아있자니 불행하다 할가 어쨌든 생각이 많았어요.》

영훈은 춘옥의 이 말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그는 망치를 하나 얻어들고 자갈을 깨면서 춘옥의 이야기를 들었다.

《입원생활 6개월만에 나는 영예군인감정서를 받아가지고 고향인 만포로 돌아갔어요.

생각많은 생활이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지나갔지요. 그랬던 나의 신상에 글쎄 해일과도 같은 충격적인 사변이 들이닥쳤답니다.

성철중대장이 찾아온것이였어요.》

…부모들이 모두 일나간 뒤 춘옥은 집에 홀로 앉아 책을 읽군 하였다. 만포도서관의 소설책을 거의나 읽어버려서 이따금 일기장을 펼쳐놓고 병사시절에 인상깊었던 생활의 세부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가군 하였다. 가장 가까웠던 전우들에 대하여,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군 했던 지휘관들에 대하여, 그들의 음성의 색갈이며 얼굴생김새며 눈빛에 이르기까지. 그 나날에는 평범하고 례사롭게 지나친 일들에 대하서까지 차근차근 글줄에 담는것이엿다.

그날도 춘옥은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달리였다.

글의 주인공은 김성철대위였다.

《<중사 권춘옥, 위험구역밖으로 나갈것. 이건 명령이요.>

호랑이중대장의 노한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그가 당장 나의 몸을 훌쩍 들어서 막장 멀리 내던질듯 한 기세로 다가서지만 나는 마이크를 쥔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쳐 잠시 멎어있었다.

그 눈싸움에서 나는 드디여 이겼다.

<에잇.>

중대장은 주먹으로 허공을 내지르며 돌아서더니 위험한 천반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춘옥은 거기까지 써놓고 글귀를 가다듬노라 골똘히 생각에 잠기였다.

그때 누군가 바깥대문을 두드렸다.

이즈음에는 인민반에서나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기에 대문을 걸지 않았는데 몇번이고 련달아 두드리는걸 보면 처음 찾아오는 사람이 분명하였다.

누굴가? 춘옥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제가 나가기 불편해서 그러는데 문을 걸지 않았으니 들어오세요.》

밖에서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큼성큼 군화발 내딛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앞에 이른 사나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자기를 밝혔다.

《김성철이요.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오.》

순간 권춘옥은 깜짝 놀라며 일어설듯 몸을 솟구다가 문을 열며 앞으로 넘어졌다.

성철은 처녀를 붙안았다. 춘옥은 기디렸던듯 북받치는 기쁨에 겨워 울먹거렸다.

《그리웠어요, 중대장동지랑 온 려단이.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찾아왔댔다구요. 려단장동지랑 정치위원동지는 물론이구 평소에 나와 말한마디 나눠본적 없는 군관들과 그날 막장안에 있었던 군인들 거의 모두가 왔댔어요.

중대장동지는 그때 나를 내보내지 못했던걸 늘 죄송해했댔지요.

그때문에 못 오나 생각했어요. 사실 전 고맙게 생각했드랬는데. 그래서 려단장동지한테 중대장동지를 절대로 비판하지 말아달라고 했댔어요.》

춘옥은 가슴에 무져두었던 생각을 죄다 쏟아놓았다.

활달해지고 다감해진 처녀를 보자 성철중대장은 용기를 발휘하였다.

《춘옥동무! 그동안 나를 무정하다고 욕했으리라고 생각하오. 많은 생각끝에 찾아오느라고 늦었소. 난 동무와 한생을 같이하려고 왔소. 난 절대로 동무를 동정해서 찾아온건 아니요.

춘옥동무의 헌신성과 의협심, 병사의 자각과 위훈에 대한 갈망에 매혹된거요. 사실 난 썩 이전부터, 동무가 막장에 나타났을 때부터 동무를 마음속으로 새겨두었댔소. 물론 동문 날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소. 나야 무뚝뚝하고 거쿨지고 인정미없이 생겨먹었으니까.

동문 날 차버릴수도 있소. 그건 동무의 자유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신수 멀끔한 총각군관이 영예군인처녀의 배척을 받았다고 떠들수도 있소. 그런대도 일없소. 난 량심이 가리키는대로 행동했으니까. 난 결심했소, 동무가 아닌 어떤 다른 녀성이란 나에게 있을수 없다는것을!》

그는 사격구령을 떨구는 포병지휘관마냥 단호하게 웨쳤다.

춘옥은 이렇게 갑자기 자기가 이전에 자주 마음속에 그려보았으며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으로 일기장에 적어넣군 하던 위훈자 호랑이중대장이 자기의 발치에 엎드리기라도 하듯 사랑을 고백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한순간 처녀는 생각했다.

이 총각중대장이 지나친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나머지 량심의 가책을 못이겨 찾아온것이나 아닐가. 그랬던 춘옥은 갑자기 소스라치며 도리를 저었다. 자신을 타매했다. 순간이나마 중대장을 욕되게 생각했던 자신이 미워났다.

《중대장동지, 그건 동지의 자유예요. 아니, 권리예요. 중대장동지와 같은 위훈자가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왔다니 고맙고 행복해요.》

처녀는 중대장의 널직한 품에 얼굴을 묻었다.

평소에 락천적이던 처녀는 자기가 결코 불구의 몸이 되였다고 성격마저 울적해졌다는걸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중대장은 이 결정적이고도 운명적인 순간에 귀엽게 웃으면서 롱조로 말하는듯 하는, 그러면서 아름답고도 황홀한 두눈으로 자기를 면바로 바라보는 처녀의 진속을 알수 없어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정말이요, 진실이요? 이거 롱담으로 넘겨버리자는건 아니요? 동문 나를 비웃고 경멸하고 쫓아버려도 좋소. 그러나 나의 진정을 롱으로 대한다면 용서치 않겠소. 알아두오, 난 한다면 하는 사내라는걸!》

성철의 눈이 황황 타는듯 했다. 춘옥은 온몸이 졸아드는듯싶었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사랑을 안고 천리밖에서 찾아온 중대장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성철은 분명히 춘옥이 그 어떤 조건을 내대든가 반대의사를 표명할가봐 두려워하는듯싶었다. 하나 처녀는 그럴수 없었다. 그는 왜서인지 이 진정에 넘치는 총각군관의 실팍하고도 뜨거운 가슴에 안기여 어린애처럼 왕왕 소리내여 울고만싶어졌다.

그것이 성철의 사랑에 대한 진실한 화답의 울음이라는것을 그로 하여금 절절히 느끼게 하고싶었던것이다. 처녀는 드디여 자기가 성철중대장의 품을 도저히 뿌리칠수 없으며 만약에 자기가 만기복무를 마치고 고스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하여도 종당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성철의 안해로 되였으리라는것을 절감하는것이였다.

복무의 나날에는 전혀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중대장이 그 불행의 깊이를 죄다 헤아릴수 없는 가정생활을 각오해야 하는 이 순간에는 마치나 그 불행을 남에게 가로채일가봐 겁나하듯이 성급히 사랑을 호소하는데는 감동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춘옥이 역시 자기의 이전의 감정을 그대로 실토정하였다.

《전 이미전부터 중대장동지를 존경했어요. 그걸 사랑이라고 할수 있다면 전 사랑했었다고 말할수 있어요.》

저녁이 되여 춘옥의 부모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 꿈같은 현실앞에서 행복과 기쁨의 눈물을 머금으며 끌끌하고 의젓한 성철중대장을 정답게 바라보았다.…

권춘옥은 격정에 설레이는 가슴을 부여안고 이야기를 마치였다.

그의 이야기는 영훈은 물론 주위에 둘러앉아 자갈을 깨던 인민반녀인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잠시후에 권춘옥이 물었다.

《그래 결혼은 했어요?》

영훈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사이가 없었답니다.》

영훈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런 훌륭한 신랑감을 왜 처녀들이 못 찾아낼가?》

춘옥은 이상하다는듯 두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계속했다.

《어데선가 훌륭한 녀성이 기다리고있겠지 뭐.

잔치때는 내가 꼭 찾아가서 전우의 축하를 해줄테야.》

《물론 그래야지요.》

로영훈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무렵에 거리에서 아빠트뒤로 승용차 한대가 들어와 멎어섰다.

로영훈과 권춘옥이 동시에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뜻밖에도 로철정이 자갈깨는 일에 몰두하고있는 인민반원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를 하면서 걸어왔다. 영훈은 아버지가 며칠전에 김성철려단장의 안해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일이 생각났다. 자기보고 들려보라고 했는데 지나가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차를 멈춘 모양이였다.

《아니 이거, 려단장동무의 아주머니까지 망치를 들고 나왔구만요. 불편한 몸에 누가 자갈 한바께쯔 안 낸다구 나무라겠소. 그러지 말고 쉬면서 발전소 돌아갈 날을 기다리시우.》

로철정은 공사가 어려움을 겪고있는 때에 도안의 전체 인민들이 물심량면으로 지지해주니 신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춘옥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다.

《책임자동지! 전기불 보는 사람들이야 다 뛰여들어야지요. 저야 남편이 려단장이니 누구보다 더 분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이렇게 나와서 사람들속에 휩쓸리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로영훈은 한곁에 잠자코 서있었다. 권춘옥이 그제야 생각난듯 영훈이 안변청년발전소 100리물길굴건설때 방송마이크를 들려주면 노래도 곧잘하고 《나의 조국》이나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같은 시를 읊군 했다고 로철정에게 이야기했다.

《허어, 그러니 10년전부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여기에 또 모여왔구만.》

책임자도 대단히 반가와했다.

권춘옥이 오래전부터 생각하고있던 자기의 소원을 터쳐놓았다.

《책임자동지! 전 병사시절처럼 살고싶어요. 저의 심정을 헤아려주세요. 거기 어데 제가 설 자리 하나 없을가요.

남편없는 텅 빈 방에서 홀로 지내기보다는 그편이 훨씬 나을것 같애요.》

아버지와 아들은 권춘옥의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보았다.

전에없이 절절하고 강렬한 소망이 어린 눈빛이였다. 영훈은 붕락직전의 위기일발의 순간 막장을 떠나지 않고 고동구호를 웨지던 처녀중사 권춘옥의 강잉한 모습을 다시 보는 심정이였다.

로철정이 달래듯 조용히 말했다.

《온 도가 다 떨쳐나선다 하기로서니 춘옥동무까지 현장에 나와 일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니 발전소건설이 끝날 때까지 외로운대로 좀 기다려줄수 없을가.》

애원에 가까운 로철정의 말에 권춘옥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철정은 사실 성철려단장의 안해에게 다소나마 위안의 마음을 안겨주려고 들렸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돌아가는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권춘옥이 남편에게 하려다 못한 말을 설분에 젖은 목소리로 쏟아놓았다.

《책임자동지! 예로부터 부부일심동체라고 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제남편은 저의 마음을 꼬물만큼도 알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해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런 남편이 야속스러울 때가 많답니다. 하는 일없이 창문으로 거리나 내다보는 때면…

전 그이가 왔다갈 때마다 오지 않았던것보다 허전해요. 어린애 달래듯 애무에 젖은 사탕발림의 말을 몇마디 하고는 훌 떠나버리군 하지요.

책임자동지, 그리구 영훈동무, 이즈음 제 안타까움을 좀 얘기할테니 들어보실래요?》

춘옥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당세포비서가 당비를 받으러 오는 날이면 춘옥은 아버지벌되는 그에게 마음속 생각을 다 터놓군 한다고 했다.

《세포비서동지! 왜서인지 잠도 오지 않고 도대체 입맛도 없어 사는것 같지를 않구만요.

막 몸부림이 나가고 누군가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예요.》

그럴 때면 도수높은 안경을 낀 세포비서는 춘옥의 심정을 헤아린다는듯 동정어린 표정을 짓군 했다. 도인민병원 신경과의사로 다년간 근무해온 그는 즉흥적으로 제나름의 진단을 내렸다.

《그건 애기없는 외로운 중년부인들의 신상에 자주 나타나는 스트레스의 징후라오. 이를테면 사랑을 쏟아부을 대상이 없는데로부터 오는 일종의 공허감이나 신경과민이라 할가. 게다가 남편마저 안변청년2호때부터 줄창 나가사는 형편이니…》

세포비서는 진중하고 사려깊은 표정으로 환자들에 대한 의사특유의 동정심을 드러내였다.

춘옥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의사였던 세포비서의 진단이 전혀 무근거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자기의 진정할길 없는 심리가 그 어떤 외로움이나 고독에 의한것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문박에서 벌어지고있는 건설의 마치소리와 마식령산줄기로 물밀듯 달려가는 지원군중들의 노래소리며 고동구호소리, 취주악대의 열정적인 나팔소리, 방송선전차의 격동적인 선동연설들이 그를 부르고있었다.

그 대오속에, 그 물결속에 섞이워 건설자가 되고싶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고있는것이 그의 고민이였다. 외로운 그는 늘 남편이 그리웠다.

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성철은 려단을 맡은 뒤 늘 건설장에서 살았다.

어쩌다 한번 시내돌격대원들의 가정에서 제기된 애로를 풀어주려고 내려왔다가 들려보는 남편은 항용 무슨 죄라도 지은듯 한 인상으로 들어서군 했다.

《그동안 외로웠겠소. 조금만 참소. 이제 전기가 꽝꽝 나올 때면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옛말하며 살기요.》

그러면서 안해의 눈치부터 살피는것이였다.

끼니는 제대로 끓여먹는가, 반찬을 되는대로 해먹고있지 않는가 다심하게 묻기도 하고 가마뚜껑이며 찬장을 하나하나 열어보기도 하는 남편이였다.

그런 남편이 오랜만에 들렸을 때 무언가 색다른 음식을 대접할라치면 성철은 돌격대식으로 간단히 해먹는것이 좋다면서 안해를 앉혀놓고 부뚜막으로 내려선다. 그러면 춘옥은 오랜만에 들린 허우대 큰 남편의 앞치마두른 모습이 우스워 깔깔 웃다가 문득 새침해지며 닭알색대우를 낸 마루우에 내려앉아 남편을 올리쫓는다.

《당신두 참 어쩌다 내려와서 색시 끼니대접이나 하고갈 생각이였나요?

오래간만에 제 손으로 지은 밥을 잡숫고 가세요.》

춘옥은 명절날처럼 흥이 나서 남편에게 랭동기를 열라고 당부한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려 보관했던 생물낙지며 참가재미가 칼도마우에 올랐다.

국은 남편이 좋아하는 배추국을 끓이였다.

늘 바쁘다면서 때식을 들지 않고 훌 떠나던 남편이 그날만은 어인 일인지 지그시 앉아서 안해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본다. 춘옥은 동자질을 하면서도 마음만은 건설장에 가있었다.

《여보, 압력철관로가 대단하다지요?》

춘옥의 물음에 성철은 성수나서 대답한다.

《그럼. 발전소의 동맥을 바로 우리 려단이 맡아서 건설한다오.》

보기 드물게 거방지다는 압력철관로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일떠세워야 한다니 얼마나 아름찬 일인가. 그것때문에 건설이 늦어지면 어쩌랴 싶기도 했다. 그때마다 춘옥은 울렁이는 가슴을 옥죄이면서 자기도 무언가 건설장에 기여하여 남편이 정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앞당기고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며 동자질을 하는 춘옥의 눈은 허둥거렸고 손길은 자주 헛갈렸다.

그는 이따금 기름이나 맛내기를 쳐야 할 때에 간장과 소금을 잘못 뿌려 료리의 맛을 망쳐놓군 하였다. 저가락으로 낙지회며 오이생채맛을 보던 춘옥은 두눈이 올롱해졌다. 너무 시거나 짠, 너무 달거나 매운 탓에 료리의 고유한 맛이 다 없어져버렸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남편과 식사를 함께 하니 방안엔 화기가 돌고 가슴은 기쁨으로 활랑거렸다.

그는 자기의 음식솜씨를 은근히 탓하면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수저를 놀리였다.

성철은 쓰다 달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싱긋이 웃음지은 얼굴로 수저만 놀린다. 춘옥은 음식맛에 전혀 무감각한듯 한 남편에게 퉁명스레 엇드레를 했다.

《이봐요, 남자가 좀 음식타발도 할줄 아시라요. 그래야 식성에 맞게 대접도 받아요.》

그러면 성철은 《음식맛이 짜건 싱겁건 무슨 상관이요. 짜면 물을 두든가 적게 먹으면 되고 싱거우면 소금을 치든가 많이 먹으면 될게 아니요.》라고 싱긋거렸다.

춘옥은 남편의 즉시적인 처방에 아연하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춘옥은 성철이 숟가락을 놓기를 기다렸다가 한마디 했다.

《여보, 돌격대에 나같은 사람이 일할 자리가 없을가요?》

《뭐요? 당신이 일할 자리?!…》

성철은 그런 자리가 어데 있느냐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난 춘옥은 남편에게는 자기의 소망을 말한댔자 통하지 않는다면서 로철정에게 절절하게 하소연했다.

《책임자동지! 저도 이 땅의 한사람으로 살고있는 이상 무언가 제 할바를 해야 할게 아닌가요.

어째서 저에게도 일감을 줄 생각을 못할가요? 그이 혼자서가 아니라 저까지 함께 분발하면 공사가 그만치 앞당겨질게 아닙니까? 정말 눈만 감으면 병사시절 마이크를 들고 목이 쉬게 웨치던 그때가 그리워요. 올라가시면 저의 이 소원을 전해주세요, 네?!》

권춘옥은 절절했다. 로철정은 그의 절박한 호소가 가슴속에 뜨겁게 젖어들었다.

그는 도저히 춘옥의 소원을 가로막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춘옥동무, 우리가 가서 성철동무와 토론하겠소. 그럼 소식이 올 때까지 잘있소.》

로철정이 춘옥을 긍정해주었다. 로영훈도 후더운 마음으로 《춘옥동지, 안녕히 계십시오. 저도 가면 려단장동지에게 잘 얘기하렵니다.》 하고 인사말을 했다.

춘옥은 불쑥 일어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입술을 옥물어 참으며 《안녕히들 다녀가십시오.》 하고 밝아진 인상으로 손을 들어보였다.

그랬던 그는 《아이참, 제가 우리 주인한테 제 마음을 담아 편지라도 한장 쓸걸 그랬어요.》 하고 안타까와했다.

로철정은 《일없소. 우리가 말하면 성철동문 적극 찬성할거요.》 라고 하면서 춘옥의 마음을 눙쳐주었다.

《꼭 그래주세요.》

춘옥은 다시한번 간절히 당부하였다.

《음, 념려말고 기다리오.》

철정은 확신성있게 다짐하고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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