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1 장

7

마침 로영훈도 건설장으로 올라가는 길이여서 아버지와 함께 차에 올랐다.

철정은 달리는 차창밖에 눈길을 던지고있었지만 눈앞에선 정열에 넘치는 권춘옥이 애모쁜 웃음을 짓고 마주보는것이였다. 춘옥의 소원을 어떻게 하면 만족스럽게 들어줄수 있을가.

철정은 줄곧 그 생각에 잠겨있었다.

돌이켜볼수록 자신의 몫을 찾아하려는 그의 지향과 소망이 한없이 대견하고 고마왔다. 모든 사람들이 권춘옥과 같이 자기앞에 스스로 과제를 세워놓고 뛰여든다면 아름찬 공사를 훨씬 앞당길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오늘 권춘옥을 만나 외롭고 울적한 심리를 위로해주려 했던 자신이 오히려 큰힘을 얻고 가는 심정이였다.

이제 춘옥이 건설장에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사람에게 커다란 힘과 용기를 안겨줄것이다.

더구나 춘옥은 혁명적군인정신이 창조된 안변청년발전소 100리물길굴전투장에서 위훈 떨친 녀병사가 아닌가. 그를 데려다앉히면 돌격대원들에게 안변땅에서 창조된 혁명적군인정신을 이어받게 하는데서도 큰 도움이 될것이다.

그러니 그의 소원을 하루빨리 이루어주는것은 우리 건설장에도 절박한 문제가 아닌가.

한데… 무슨 일을 맡겨준다?

철정은 생각에 몰두하여 옆에 앉아있는 영훈의 존재마저 감감 잊고있었다.

영훈은 아버지의 깊은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침묵을 지키면서 제나름의 생각을 더듬고있었다.

《영훈아, 권춘옥이야말로 큰일을 할수 있는 녀성이야. 아쉽게도 빈방에 홀로 앉아있자니 왜 속에서 불이 일지 않겠니.

너 좀 생각해보았니? 권춘옥을 어데다 앉혔으면 좋겠는지.》

《아버지, 저도 지금껏 춘옥동지한테 어떤 일감을 맡겨주었으면 좋을가 하고 생각하던중입니다. 통계원이나 정량원이라고 해도 모두 현장으로 늘 달려다녀야 하는 직분이니 죄다 적합치 않고 방에 들어앉아 문서필사나 시킨다고 해도 일감이 눈에 차지 않는걸 그가 만족할수 있겠습니까. 그는 늘 제 손으로 원고도 쓰고 즉흥선동도 들이대면서 힘과 능력을 다 내여 일하고도 성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영훈은 아직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운 인상이였다.

철정은 이 순간에도 도저히 하나의 생각에만 집착할수 없었다.

세멘트와 철강재, 목재를 비롯한 긴장한 자재구입과 식량, 부식물공급에 이르기까지 머리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한동안 지속된 침묵에 지겨웠던 운전사가 철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한곡 넣으랍니까?》

《들려주오.》

로철정은 쾌히 승낙했다.

이윽고 은은하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가 즐기는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였다. 철정은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전후 빈터에서 벽돌공장을 일떠세우던 때를 추억했다.

여기저기 묻혀있던 치차와 전동기들을 파내여 벽돌성형기를 자체로 만들어낼 때 그 누구의 방조를 바랐던가. 그때처럼 모두다 어깨겯고 달려들면 못해낼 일이 무엇이겠는가.

철정은 노래를 들으면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수십메터 바다속에 가라앉은 철선들을 죄다 건져내여 철근을 뽑아낼 결심을 굳히였다.

노래가 거의 끝날 무렵이였다.

그 어떤 발견과도 같은것이 뇌리에 빛발쳤다.

권춘옥을 안변청년발전소 물길굴건설때처럼 방송선전원으로 내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였다.

나도 노래를 들으면서 힘과 용기를 얻지 않았는가. 그에게 마이크를 들려준다면 그는 물론 돌격대원들모두가 좋아할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춘옥으로 하여금 자기의 소질로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하여 공민적의무를 다하게 함과 동시에 온 건설장이 부글부글 끓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허리쓰기를 불편해하는 그의 생활은 미경이와 같은 처녀들이 돌보게 하자.

철정은 성급히 영훈에게 자기의 의향을 말했다.

《내 생각엔 권춘옥을 려단정치부 방송선전원으로 앉히는게 좋을것 같구나.》

그의 말에 영훈이 적극 찬성했다.

《야, 정말 그게 좋겠습니다.

방송기재일식과 3륜차 같은거나 하나 마련해주면 잘할수 있을거예요. 그건 제가 맡아서 해결하겠어요.》

로영훈은 그길로 시당위원회에 달려가서 그 문제를 제기했다. 시당위원회에서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며칠사이에 3륜차와 증폭기와 고성기, 록음기와 마이크를 갖추어주었다.

영훈은 아버지의 승용차를 끌고 춘옥을 데려왔다.

시려단지휘부에 온 춘옥은 3륜차와 방송기재를 만지며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

《로영훈동무! 어쩌면 이렇게 빨리…》

그는 자기의 소원이 성취된것이 너무 기뻐 눈물로 두볼을 적시였다.

영훈도 춘옥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그들먹해졌다.

얼마후에 시려단지휘부에 있던 로철정과 춘옥의 남편인 김성철을 비롯하여 돌격대지휘원들이 모여왔다.

영훈은 춘옥을 3륜차에 편히 자리잡게 한 다음 그가 천천히 손돌리개를 돌리면서 마당을 한바퀴 돌게 했다.

《춘옥동지, 이젠 정식으로 방송선전을 개시합시다.》

《알겠어요.》

춘옥은 격정에 젖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증폭기와 록음기의 전원스위치를 눌러 전원을 투입하였다.

순간 건설장의 온갖 소음과 물소리, 바람소리만 가득차있던 골안과 산릉선을 꽝꽝 울리며 장쾌한 혁명가요의 선률이 울려퍼졌다.

압력철관로고정대의 기초를 뚫고있던 수많은 돌격대원들이 고성기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며 환호하였다.

영훈과 춘옥은 물론 둘러선 지휘원들도 모두 세찬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감격해마지 않았다.

춘옥은 중폭기의 출력을 최대로 돌려놓았다.

땀밴 손으로 마이크를 힘껏 틀어쥐였다.

이윽고 청청하고 랑랑한 춘옥의 목소리가 산기슭에 부딪쳐 메아리를 일으키며 건설자들의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춘옥은 군복을 입었을 때 자주 그랬던것저럼 원고없이 실황방송으로 들어갔다.

수백명의 돌격대원들이 숨소리마저 죽이고 현장방송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직접적인 구상과 발기에 의하여 일떠서고있는 원산청년발전소건설자 여러분! 오늘부터 돌격대원동무들을 위한 현장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돌격대원동무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장군님의 전투명령을 높이 받들고 높고 험한 마식령산줄기로 달려왔습니다.

우리 도의 모든 길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선길과 이어져있습니다.

이름높은 안변땅에서 영웅적인민군군인들이 창조한 혁명적군인정신을 이어받아 어버이장군님을 하루빨리 완공된 발전소에 모시기 위하여 심장마다에 뜨거운 불길을 지피고 내달립시다.

선동원동무들은 혁신자들의 소식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요청하는 노래는 얼마든지 보내드립니다.

노래명수들과 시랑송명수동무들에게는 기꺼이 마이크를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춘옥은 즐겁고 행복했다. 오래간만에 마이크를 잡고 청중과 이야기를 나눈 그의 가슴은 한없이 높뛰였다.

돌격대원들로부터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을 또다시 들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춘옥은 재빨리 테프를 록음기에 넣었다.

아아한 산경사면에 두줄로 올리붙어서 함마와 정대로 기초구뎅이들을 파고있던 돌격대원들은 그리움과 소원의 노래에 한껏 감동되였다.

노래는 삽시에 합창으로 번져져 건설장은 그리움의 열기로 끓어번졌다.

한두시간이 지나자 중대와 소대들에서 선동원들이 춘옥을 찾아 달려왔다.

그들은 모두 놀랐다.

새로 나타난 방송선전원이 허리가 불편한 영예군인이라는 사실이 돌격대원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권춘옥이 려단장의 안해로서 자진하여 건설장에 달려나왔다는것을 알게 된 돌격대원들의 감동은 더 컸다.

리경숙은 이즈음 밤잠을 잊고 계산에 몰두했다.

영예군인녀성까지 건설장에서 힘있는 방송선전을 한다는 소식은 경숙의 가슴을 후두두 높뛰게 했다. 자신은 언제부터 나간다고 벼르기만 했지 대담하게 건설장에 달려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물조물 바재이기만 했던것이다.

로영훈이 대학을 다녀간지도 보름남짓한 나날이 지나갔다.

며칠동안 리경숙은 콤퓨터실에서 지내다싶이 하였다.

허금호가 제공한 원산청년발전소건설의 가능한 제요소들을 입력시킨 뒤 여러차례나 모의건설을 진행하였으나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은 매번 15년을 전후하여 기록되였다.

몇번이나 검산을 하였으나 착오라고 생각되는 점을 전혀 발견할수 없었다. 경숙은 이 가혹하고 불가사의한 수자를 도저히 발표할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전에는 시공책임자 허금호가 몇번이나 전화를 걸어 모의건설결과를 급히 알려달라고 끈덕지게 요구하는 바람에 15년이라는 수자를 공개해버리였다.

그는 자리에 누웠으나 통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맨먼저 눈앞에 떠오르는것은 두눈이 어글어글한 로영훈이였다. 그가 찾아왔을 때 발전소건설지휘부가 의뢰한 콤퓨터모의건설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그때 자신은 고작 3년이면 건설을 완공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3년쯤 집을 떠나 벅차고 보람찬 건설장에서 땀을 흠씬 흘리며 자신을 단련해보고싶었다. 그러면 온실속의 화초라고 가끔 자기를 놀려대는것만 같은 동창생들앞에서도 떳떳할것이 아닌가. 그 나날 당원의 영예까지 지니고 돌아오면 얼마나 리상적인 청춘의 삶이랴.

그런데 15년이상이나 건설해야 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노릇이 아닌가.

경숙은 더 누워있을수가 없었다. 눈살이 꼿꼿해지고 뒤골이 둔중한 물체에 부딪친듯 뗑했다.

무엇인가 커다란 착오가 분명 있었다고 생각되였다. 그런 수자를 경솔하게 람발한 자신이 뉘우쳐졌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그를 못 견디게 괴롭히였다. 만약에 그 수자가 나도는 경우에 돌격대원들속에서 좋지 않은 반응이 일어날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건설지휘부 시공일군들이 믿고 요구한 일인데 아직도 못했노라고 할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오랜 생각끝에 자기가 한가지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모의건설을 하기 전에 발전소의 전구간을 밟아보고 돌격대원들속에도 들어가보았어야 했다는것이였다.

그는 이 모의건설을 실무적으로 대하였다.

허금호가 가져다주는 건설의 제요소와 관련된 수자들을 기계적으로 입력시켜서 조급하게 답을 얻어낸것이였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계산되지 못한 심각한 오유가 있을것만 같았다.

한시바삐 오유를 바로잡아야 했다.

경숙은 조만간 대학당위원회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발전소건설장에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더우기 얼마전에 들렸던 로영훈에게도 곧 뒤따라나가겠다고 했던 경숙이였다.

그는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상급당의 파견장을 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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