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3월 18일
《생명》

제 1 장

8

이른아침부터 로철정의 사무실은 전에없이 붐비였다. 사업조직이 끝났으나 자기 단위의 애로를 풀어달라고 둘러서있는 려단장들과 창고장들, 시공, 설계, 자재일군들은 물론 대렬, 후방, 회계일군들까지 순서를 다투며 목청을 돋구었다.

《중병아리를 한 200마리 구해주십시오.》

시려단후방참모가 순서를 떼울가봐 청높은 고음으로 성급히 말했다. 로철정이 얼마전에 자체로 축산부업을 해서 고기와 알을 건설자들한테 공급해야 한다는 지시를 주었는데 그 과업이 되돌아온셈이다.

《구해봅시다.》

철정은 수첩에 적으며 대답했다. 그가 나간 뒤 십여명의 인원과 대면하여 결론을 주고나니 한시간이 지나갔다.

허금호는 헐끔해진 얼굴로 창문쪽 외진 의자에 앉아서 붐비는 사람들이 모두 물러갈 때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드디여 단둘이 남았다.

바로 그무렵이였다.

바닥을 울리는 류다른 군화소리가 뚜벅뚜벅 들려왔다.

철정이 사업일지에서 얼굴을 들었다.

오랜 나날의 수력건설을 통하여 면목이 있는 군부대 자재일군인 상좌였다.

《안녕하십니까? 려단 설비자재참모 장대식입니다.》

색바랜 군복을 헐렁하게 걸친 군관은 짜증이라도 내는듯 높은 소리로 웨치며 거수경례를 하였는데 인상만은 득의만면하게 싱글거리고있었다. 그러던 그는 철정의 답례를 받기도 전에 작전군관들이 쓰다가 넘겨준듯 한, 세멘트와 무연탄먼지에 퇴색된 낡은 작전가방을 자못 정중히 열더니 얄팍하면서도 새하얀 규격지에 콤퓨터로 타자된 문건을 꺼내여 절도있게 책임자의 앞상우에 내놓았다.

그는 로철정이 예리한 눈길로 그것을 다 읽을 때까지도 앉지 않고 그린듯 한 자세로 서서 책임자의 병색짙은 얼굴을 긴장하게 살피고있었다.

철정의 미간이 쪼프려지고 컴컴하게 흐려지자 거무스레하고 퉁투무레한 건강미가 넘쳐나는 상좌의 얼굴도 동시에 화색을 잃어갔다.

문건을 다 읽고난 철정은 현기증을 느끼며 천정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아침식사도 못한채 한시간나마 사람단련을 받고난 뒤였던것이다.

며칠째 도무지 음식을 넘길수 없었다.

거의나 허탈에 빠진듯 한 철정의 락심천만한 모습에서 절망을 느낀 군관은 들어오던 때와는 전혀 달라진 미안한 인상으로 조용히 웅얼거렸다.

《우리도 강원도사람들이 힘겹다는걸 잘 알고있습니다. 우리는 금야강과 또 몇군데의 발전소건설을 최고사령관동지의 관심속에 내밀고있습니다. 그런데 금야강발전소는 몇년째 수해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면서 매번 같은 공사를 되풀이하고있습니다. 세멘트와 철강재가 없어서 공사가 지연되고있는탓입니다.

우리는 어쩔수없이 사정을 부대지휘부에 반영하여 그중 가까운 곳인 천내리세멘트와 문천강철의 강재를 문건에 반영된 량만큼 보장받도록 토론해보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도당위원회와 도인민위원회 해당부서들에 들려 사유를 이야기했더니 책임자동지와 합의하라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허금호가 의자에서 솟구치듯 일어났다.

《군관동무! 이거 정말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지금 책임자동무와 시급히 필요한 철강재와 세멘트보장문제를 론의하자고 기다리던중입니다.

우리 강원도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악물고 숨죽었던 세멘트소성로를 살려내고 어떻게 공장과 집집의 울타리를 쳤던 철근까지 걷어다가 공사에 쓰고있는지 아십니까? 군대가 달라니 모른다고 할수도 없고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허금호의 말에 군관은 죄송스런 인상까지 띄우면서 가까운 의자에 풀썩 앉아버리였다.

《상급참모부에서는 강원도인민들이 힘들어할것이다, 여기 형편이 정 곤난하다면 다른 대책을 취해보자고 하면서도 수송거리가 그중 가까운 이곳 일군들과 토론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대장동지도 이 문건을 저에게 주어보내면서 우리가 강원도사람들과는 최근에 손잡고 큰 발전소건설을 하면서 인연이 더욱 두터워졌길래 그들이 못 내겠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돌아가서 도의 어려운 실태를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군관은 일어섰다. 그리고는 절도있게 발뒤꿈치를 부딪치며 돌아설 차비를 했다.

로철정이 다급히 손세를 쓰며 그를 자리에 앉게 했다.

《군관동무, 지휘부가 여길 믿고 동무를 보냈는데 어찌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우린 강원도사람들입니다. 침수된 탄갱들을 하루속히 복구해서 세멘트공장에 더 많은 탄을 보내주어 소성로들이 만가동하게 하겠습니다.》

철정은 군인건설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진정을 담아 말했다.

《책임자동지!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달부터 이 수량대로 우리를 도와줄수 있겠습니까?》

군관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래야지요. 인민군대와의 약속이 아닙니까!》

철정은 활달하게 대답했다.

군관은 병사마냥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고 활기있게 문밖을 나갔다.

잠시후에 다시 들어온 그는 《백승》담배 두갑을 책상우에 올려놓더니 싱긋 웃으면서 《피워보십시오. 구수합니다.》 하고는 잠시 서있다가 물었다.

《장미경이라는 처녀돌격대원이 어느 려단에서 일하고있는지 모르겠습니까?》

로철정은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이전부터 잘 아는 동무인데 압력철관로건설장에서 일합니다.》

《그래요?!》

장대식상좌도 화색을 지었다.

《그런데 그 처녀와 잘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 그저 좀 알고퍼서요. 됐습니다!》

군관은 뚜벅뚜벅 되돌아나갔다.

딸인가?! 틀림없었다. 얼마전에 장미경을 만났을 때 아버지가 금야강발전소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들은 생각이 났다. 바쁜 일로 떠다니는 몸이니 사사로운 일에 시간내기가 어려울것이였다.

철정은 기침때문에 담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허금호는 《허 참.》하면서 한갑을 터뜨려 냄새를 흠흠 맡아보더니 철정이 기관지를 앓고있다는걸 상기했던지 불을 켜대지 않았다.

그는 후-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점점 더 어려워만지는구려. 실태료해자료만 일찌기 올려보냈더래도 이런 일은 없었을걸 그러지 않았소.》

허금호는 은근히 철정을 칭원하였다.

《군대가 오죽하면 우리한테 호소하겠소. 사실 군대야 따로 세멘트나 강철생산기지를 가지고있는것도 아니고 또 군인들을 위해서 건설을 하는것도 아니지 않소.

최근년간에만도 우리가 군대들 도움을 좀 많이 받았소. 난 군대가 달라면 입안에 넣었던것도 다 꺼내주고싶은 심정이요. 가는 손이 커야 오는 손도 크다는 말이 있지 않소. 우리야 지금껏 군대들의 도움만 받았지 도와준적이야 있었소?》

로철정의 말에 허금호는 더 반대를 하지 못했다.

허금호는 로철정과 동년배이기는 하나 몸집으로 보나 건강상태로는 퍼그나 젊어보였다.

보기 좋게 훌렁 벗어진 이마며 약간 군턱이 질사한 두툼한 턱과 어진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기 좋게 부얼부얼하고 둥그스름하니 잘 생긴 얼굴에는 지금껏 근심걱정거리라고는 있어본적이 없었던듯 주름살조차 별로 잡히지 않았다.

두해전 추석날에는 도에서 진행한 60청춘씨름경기에 나가서 3등에 들어 젊은이들 못지 않다는 평판까지 듣고있는터였다.

금호는 성에 올려보낼 실태료해보고자료가 도당위원회의 부결로 기각되자 나래꺾인 새마냥 풀이 죽어버렸다. 그는 이틀동안 물길굴막장들과 언제건설장, 원산시려단에서 맡아 시공하고있는 압력관로고정대 기초공사장과 네개의 발전기실, 수십키로메터의 도수로건설장들을 죄다 밟아보았다.

함마전과 맞들이전, 마대전으로 한치한치 힘겹게 전진하는 돌격대원들을 볼 때마다 그는 손맥이 풀렸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땀을 적게 흘리면서 공사를 내밀수 있겠는가 하고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야 별다른 방도를 찾을수 없었다.

유일한 출로인 국가투자는 꿈도 꿀수 없게 되였다.

그런데 도당위원회는 로철정의 주장대로 도의 전반적인 경제력을 추켜세우는데 돌격대의 건설력량을 보충적으로 투입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로력은 둘째치고 압축기와 착암기는 물론 긴장한 폭약을 비롯한 설비자재들을 쪼개써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도에서 군인건설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건설하는 대상들에 세멘트와 철근 같은 기본자재를 나누어주어야 하는것이다.

그는 문득 안변청년2호건설때가 그리워졌다.

그때는 정말 일하기가 좋았었다. 일판이 전망대우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지휘반경이 고작 4km미만이여서 도보로 한시간이내에 끝에서 끝까지 충분히 다녀볼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도사업반경이 발전소건설구역을 훨씬 벗어나 강원땅 전체판도를 포괄하게 되였다. 력량을 분산시키고 일군들은 산지사방으로 달려다녀야 하니 어느 틈에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때가 허다하였다.

안변청년2호를 일떠세울 때에는 언제나 로철정책임자와 손발이 맞았다.

간혹 공법이나 시공상의 의견상이가 생겼다고 해도 허금호는 기술실무적측면에서 빈틈없는 책임자와 인차 견해를 함께 하게 되였다. 공사를 끝낸 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다른 도들보다 힘들게 한 강원도에서 이처럼 실리있는 멋쟁이발전소를 일떠세운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시공에서 큰 역할을 한 허금호도 치하해주시고 높은급의 수훈도 안겨주시였다.

그 나날에 어느덧 환갑나이가 넘었고 머리는 백발로 덮이여 어델 가나 《아바이》나 《할아버지》로 불리우며 존대를 받는 공로자로 떠받들리우게 되였다. 이제는 건설의 중하를 벗어놓고 송도원이나 명사십리를 거닐면서 명승의 아름다움을 누리고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 당에서는 또다시 대수력발전소건설을 발기했고 실력있는 허금호는 시공을 맡아안게 되였다.

사실 그때 허금호는 자기의 늙음을 외면하지 않고 또다시 내세워준 당의 헤아림이 눈물나게 고마왔고 다시금 로철정책임자와 손발을 맞추어 본때있게 인생의 마무리를 잘해보리라는 생각에 젊음이 되돌아온것처럼 활력이 넘쳤었다.

허나 정작 맞다들어보니 이전과는 대비도 할수없이 베차고 까다로왔으며 갈수록 말년을 헐그럽게 지내는 동년배들이 그립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점차 자기가 로철정의 높은 요구를 따라설수 없음을 느낄적마다 은연중 화가 날 때가 많아졌다.

로철정은 나이가 60이 훨씬 지났지만 이미 터득했던 기존지식에 매달려 그것을 우려먹는것이 아니라 최첨단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따르려고 병석에 있으면서도 잠들지 않고 최신과학기술지식을 부단히 학습하였고 콤퓨터도 자유자재로 숙련하여 필요한 자료들을 즉시에 꺼내보군 했다.

건설이 아름차지고 자연재해까지 련이어 들이닥쳐 공사가 좌절상태에 거의 직면했을 때마저도 로철정은 국가투자라는 말만 하여도 단호히 거절하고마는것이였다.

그런데 이제는 모지름을 쓰듯이 도의 잠재력을 총발동하다싶이 하여 살려낸 소성로에서 나오는 세멘트와 자그마한 유도로에서 나오는 강철마저 다른 도와 나누어쓰겠다고 흔연히 수긍하는것이였다.

책임자가 과연 우리의 실태가 얼마나 각박한가 하는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발전소건설을 하겠다는건지 무한정 뒤로 미루자는것인지 리해할수 없을 지경이였다.

그는 지나친 독단과 주관주의에 빠져 고집을 부리는것만 같았다.

허금호는 로철정의 주관을 바로잡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있었으나 그 시각에 책임자는 휴대용콤퓨터를 가동시키고 무슨 자료를 찾고있었다.

조용한 시간을 얻어내여야 했다.

허금호는 이즈음에 들어서면서 시대의 박동을 자기 생활의 울타리안에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남들이 새벽에 활개를 저으며 건설장으로 달려갔다가 밤중에야 내려오는것을 목격하거나 로철정책임자처럼 돌격대침실에서 밤패우는걸 볼 때마다 그들의 박자에 맞추어보려고 왼심쓰는것이였으나 그것을 따라가내기가 헐치 않았다. 그때마다 그는 내 나이가 얼마라구 하는 속대사로 자신의 부족점을 스스로 변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변명에 뒤이어 그 어떤 목소리가 로철정책임자는, 남궁일국장은 하고 징계하듯 물을 때에는 정녕 일언반구도 대답을 줄수 없는 허금호였다.

이처럼 그는 세월의 박동이 더 빨라지고 호흡이 거세여질수록 거기에 따라서기를 점점 더 힘겨워하면서 남들은 어찌하든 자기의 박자대로 살아가려고 했다.

시간이 퍼그나 지났는데도 로철정은 콤퓨터화면에 눈길을 박은채 허금호의 존재는 알은체도 안했다. 그는 무어라고 꽥소리라도 치고싶은 심정이였다. 하지만 철정의 긴장한 사색을 방해할수 없어 잠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에잇, 다음에 만나 이야기하자.

그는 무한정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앉아만 있을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들문쪽으로 걸음을 떼였다.

《가만, 이거 급한 일이 있어서…

근데 무슨 할 말이 있소?》

로철정은 콤퓨터전원을 끄고나서 물었다.

허금호는 철정이 그제서야 알은체 하는것이 고까와 대꾸를 안하고 그냥 나오려다가 아무래도 해야 할 말이여서 물러앉았다.

《책임자동무! 내 얼마전에 조군실원산공업대학에 발전소모의건설을 의뢰했댔습니다.》

《그래요?! 그건 왜요?》

철정은 의아한 눈길로 푸접없이 허금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 건설이 언제까지나 끝나겠는지 알아보고싶었지요.》

《그래서요?》

철정은 전혀 무관심하지 않다는듯 대답을 기다렸다.

《국가투자를 50프로이상 받는 조건에서도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는 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국가투자를 영 받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형편이라면…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그 이상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르지요.

그런즉 솔직한 말로 이 발전소전기불을 보지도 못할 우리가 괜히 목대를 높여가면서 왈가왈부하는게 아니겠소.》

허금호는 허무하다는듯 씁쓸히 허구픈 웃음을 날려버렸다.

《그건 비과학이요. 절대로 그렇게는 안될겁니다.》

로철정은 단호히 부정하였다.

《왜 비과학이라고 그러오?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콤퓨터수재가 계산한 수자인데요.》

철정은 모의건설이 오산된것이 분명하겠지만 어쨌든 듣고보니 몰랐던것보다 못하여 가슴이 서늘했다.

《아니, 뭐라구요?

어느 누가 그따위 황당한 계산을 했단 말이요.

당초에 과학적담보도 없는. 이건 정말 건설을 방해하는 고의적인 행위가 아니고 뭔가 말이요?

허동무, 당장 그 15년설을 취소시키시오.

당에서 알면 뭐라고 하겠소.

어쩌면 동무가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하게 했소? 옳지 않소, 옳지 않아. 머리에 녹이 쓸고있단 말이요.》

로철정은 예민해지고 날카로와지는 신경을 겨우 눅잦히고있었다.

허금호는 자기의 심정을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마저 숨기고싶지 않았다.

《어쨌든 난 두렵고 허무하오. 우리의 결말이 안변2호때처럼 락관적일수 있다는 확신이 어디에 있소? 방금전의 일만 계산에 넣는다 하더라도 공사는 더 지체될수밖에 없지 않소.

그런데도 책임자동무는 아무 생각없는 사람처럼 호주머니속의 푼전마저 아낌없이 남에게 주어버린단 말이요.》

철정은 지금까지 허금호에 대해서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노엽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허전한 눈매로 허금호를 바라보면서 유감스럽게 뇌이였다.

《남에게 주어버린다구요? 군대가 어떻게 남이요? 우린 이전에도 군대와 함께 건설을 했구 안변2호때에도 그들이 때때로 나와서 도와주지 않았는가 말이요. 허동무도 늙었구려. 그게 그렇게도 가슴아파서 우는 소리하는걸 보니 말이요.》

허금호가 퍼그나 가라앉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툭 털어놓고 말해서 이젠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날처럼 로동무와 손발을 맞추기가 어렵소.

이따금씩 어떻게 하면 로동무와 늘 마주서지 않는 조용한 자리에서 좀 들볶이지 않고 일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솟군 한단 말이요.》

철정은 난생처음 보는듯 한 눈길로 허금호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무슨 말로 어떻게 그를 납득시켜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허동무, 마음속을 솔직히 헤쳐보여서 고맙소.

내 잘못도 있겠지. 하지만 난 사람들이 나이들어가면서 나약해지고 우는소리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소. 내 지금도 병에 시달릴 때마다 안변청년2호건설장에서 순직한 80대의 이전 도당책임비서 최원익동지를 생각하군 하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오랜 혁명가인 최원익동지가 나이들고 병약한 몸으로 집에 들어가있으면서도 나라위해 숨이 지는 순간까지 헌신하려고 애면글면 노력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로년의 그를 우리 도에 책임비서로 내려보내주시였소.

전기를 한점 볼수 없는 캄캄한 고난의 행군때 제일 못사는 도에 내려온 최원익책임비서는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여생에 무엇인가 장군님께 기쁨이 되는 일을 꼭 해놓겠다는 결심을 하고 일에 달라붙었지.

그는 자그마한 수력발전소를 하나 건설해서 원산시민들에게 저녁시간에 조명을 보장해줄 생각을 했소. 허동무도 알겠지만 그가 고령의 나이로 험한 산발을 오르고 물결 사나운 강을 건느면서 맞춤한 공사자리를 찾느라고 얼마나 기력을 소모했소?

그러다가 마침내 안변청년발전소 퇴수를 리용하여 저락차식발전소를 건설하자는 방안을 찾아내고 늘 공사장에 나와서 살다싶이 했지. 끝내는 병마에 쓰러져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순간에도 그는 얼마후에 완공될 발전소에 장군님께서 오시면 전혀 병색을 드러내지 않고 준공의 보고를 올리겠다면서 퉁퉁 부어오른 배에 혁띠를 세개나 조여매고 거울앞에서 영접보고련습까지 했소.

그러다가 애석하게도 준공식을 앞두고 사망했을 때 장군님께서는 몸소 화환을 보내주시고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였지.》

허금호는 묵묵히 듣고있었다.

로철정은 목이 갈리여 보온병에서 물 한고뿌를 따랐다.

철정은 허금호도 다 아는 사실을 구태여 더 전개하고싶지 않았다.

그때에도 최원익은 발전소건설을 강원도자체로 소문없이 하자면서 도안의 예비를 총동원했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 식량을 절약하여 때때로 국수를 눌러 건설장에 지원을 나오도록 하였다.

발전소준공식때 도당위원회에서는 최원익책임비서의 헌신적인 노력을 귀중히 여기여 주석단가운데자리에 그의 이름표를 올려놓았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소. 우리모두가 자체의 힘으로 자기의 앞길을 열어나갈 결심으로 최후의 순간까지 분발한 선배들의 모범을 본받자는 의도요. 그래서 우리가 자력갱생의 구호를 내걸고 이렇게 악전고투하는게 아닌가.

솔직히 말하는데 난 설복하기를 좋아하지 않소.

정 힘겨우면 헐한데로 옮겨가구려.》

허금호는 제가 꺼낸 말이였지만 상대방이 긍정해주자 오히려 속에서 불끈 반발감이 치솟았다.

《내가 그렇게 쬐쬐하고 나약해보이오? 로동무가 하도 고집만 부리니까 화가 나서 그러는거지.

하여튼 지금대로는 공사를 진척시키기 어려우니 좀 다른 방도를 취하자는거요.》

《대책을 세우고있지 않소. 하여튼 그 콤퓨터모의건설이야기를 다시는 들고다니지 말아야겠소.》

《그게 뭐 큰 비밀이라고 말 못하겠소. 벌써 어떤 려단에는 그 소리가 퍼졌을거요.》

철정은 불끈했다.

《뭐요?! 동문 그 후과를 생각해봤소. 사람들이 손맥을 놓고 신심을 잃게 할거란 말이요.

이거 당장 대책을 취해야지 큰일나겠소.》

철정은 자리에서 후닥닥 일어났다.

《허동무는 못할 일을 했소. 신념이 확고치 못한 표현이요.》

철정은 나지막하면서도 준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금호도 철정을 더 노엽히지 않으려고 발끈하지는 않았지만 볼부은 소리로 발명하였다.

《거기에 무슨 신념이요, 뭐요 할게 있소.

시공담당으로서 능히 해볼수 있는 일이 아닌가 말요.》

《그럴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의도야 명백치 않소. 이처럼 어려울 때 자체로 하겠다는건 주관적이다, 그러니 국가투자를 받든가 뒤로 미뤘다가 하자는걸 말하자는게 아닌가 말이요!》

철정은 허금호의 속을 들여다보듯이 말했다.

그러자 허금호는 매우 언짢은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일이 잘될 때는 성수가 나서 락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다가도 일이 아름찰 때면 곧잘 신경질을 부리는 허금호였지만 묵묵히 말이 없었다.

로철정도 자기의 즙이 없는 칼날같은 성격이 많은 경우 후회를 가져오군 한다는것을 알고있기에 한껏 자제력을 발휘하고있었다.

《나가서 15년설을 내돌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오산했으니 절대로 떠들지 말라고 합시다. 확실히 그 모의건설은 무언가 잘못 되였소. 그런 온전치 못한 답을 공개한다는것은 대중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올뿐이요. 빨리 나가서 수습해야겠소.》

그러나 허금호는 떡돌처럼 늘어붙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계속 이러고있겠소?!》

철정은 노기어린 목소리로 재촉하면서 나들문쪽으로 걸어갔다.

썰렁한 기운이 도는 밖에 나오니 잎새를 죄다 털어버린 새빨간 감알들이 아지마다에서 추위에 떠는듯 데롱거렸다.

철정은 감이 붉어지는 계절이 오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일종의 불안을 느끼는것이였다.

그것은 겨울의 서막이기때문이였다.

이제 그 감알들마저 다 떨어지고 헐벗은 아지들이 추위에 떨게 될 때에는 혼합물타입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공사들이 제약을 받게 될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절에 대하여 머리쓸 때가 못되였다. 따라서기 힘겨워하는 허금호가 더 안타까왔다. 그가 과연 자신을 다잡고 이전처럼 발맞추어줄수 있을가. 지금처럼 신심없이 우왕좌왕하다가는 종당에 쓰러지고말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철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은 출로를 찾을길이 없었다.

계획한대로 물길굴건설장으로 가려고 운전사를 찾으려다가 문득 멈춰섰다.

무언가 중요한것을 잊은것 같았다.

아, 그렇지. 철선인양, 그 문제를 시급히 도당위원회에 상정시켜야 그쪽으로 잠수공들과 기능공들을 파견할수 있다. 그래야만 군대에 주기로 한 철강재를 더 생산할수 있게 될것이 아닌가.

세멘트생산을 늘이기 위해서는 침수된 탄갱에 돌격대인원을 더 보내야 한다.

이 모든 일이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손내밀수 없는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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