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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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생산유적에서 드러난 시설물과 유물들

최근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학술집단이 새로 발굴한 소금생산유적은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3㎞정도 떨어진 논판가운데에 있는 흙둔덕들에서 발견되였다.

학술집단은 소금생산과 관련된 5기의 돌시설물들을 찾아내고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그중의 하나가 고구려에 통합된 조선후국의 소금생산유적이라는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조선후국은 A.D.37년에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조선일대에 세워져 2세기말경까지 존재하다가 고구려에 의하여 통합된 우리 민족의 소국이였다.

조선후국의 소금생산과 관련된 시설물은 땅겉면으로부터 120㎝깊이에서 나왔는데 돌로 쌓은 원형뚝모양이고 웃부분은 높은 열을 받아 굳어졌으며 안쪽에는 두터운 재층이 있었다. 시설물의 내경은 145㎝이고 외경은 240㎝이며 남쪽에는 불을 때던 아궁이흔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 원형의 돌시설물은 당시 가마를 걸고 불을 때던 가마터시설이였다고 볼수 있다.

가마터시설로부터 동남쪽으로 21.7m정도 떨어진 곳에서 깊이 1m, 직경 5.2m~6.5m정도되는 타원형의 물웅뎅이시설이 발견되였는데 그 밑부분에는 검은색의 재층이 두텁게 깔려져있었다.

가마터시설의 주변에서는 회백색, 갈색의 질그릇쪼각들과 주머니식쇠도끼를 비롯한 여러점의 쇠쪼각들이 나왔다.

유적에서 발견된 질그릇쪼각들은 지난 시기 고조선유민들이 남긴 유적들에서 많이 드러난것들과 일치한것이 특징이다.

특히 회백색단지쪼각은 전형적인 조선후국의 경질도기로서 2~3세기의 벽돌무덤들에서 나오는 질그릇들과 류사하며 활석가루가 섞인 화분형단지의 아구리쪼각은 1~2세기의 귀틀무덤과 일부 고구려초기유적들에서 나오는 질그릇들과 같다.

유적에서 나온 2점의 주머니식쇠도끼들은 주머니부분을 단조하여 접는 방법으로 만든것으로서 2세기경부터 쓰이던 유물이다.

그러므로 새로 발굴한 유적의 년대는 1~2세기경으로 볼수 있다. 이 시기 온천일대에는 조선후국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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