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의 허재복선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문 – 다른 사람들은 공연을 볼 때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지휘자가 지휘하는 모습을 본답니다. 요새는 TV로 이전에 내가 보관했던 비디오공연들을 보는데 감흥이 잘 오질 않아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데 조국에 허재복이라구 지휘를 그렇게 잘하는 선생이 있었다더군요. 그 선생에 대한 소개를 부탁해요. (상연 - 재로씨야 – 기업가 )
답 – 허재복선생은
주체20(1931)년 이국땅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신동으로 불리웠고 12살때에는 중국의 길림성에서 조직된 음악콩클에서 바이올린독주를 하여 1등을 하였습니다.
해방후 조국의 품에 안긴 선생은 자기의 희망대로 국립음악학교(오늘의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마음껏 공부하게 되였습니다.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그 나날 천성적인 청음력은 그가 지휘자로 되게 한 바탕이 되였습니다.
위대한
류학시절 선생은 자기의 꿈을 실현시켜주고 꽃피워준 당의 사랑을 잊지 않고 피타게 공부하여 그 나라에서 진행된 전련맹지휘자콩클에서 1등을 하였으며 그의 지휘실력은 대학의 범위를 벗어나 온 유럽에 알려지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그 손길에 떠받들려 선생의 지휘실력은 세계적수준에 오르게 되였으며 이 나날 중국, 영국, 프랑스, 이딸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대외공연활동을 벌리여 주체예술의 위용을 남김없이 시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는 음악예술창조활동의 전기간을 통하여 재능있고 원숙한 형상조직자로서의 자기의 특기를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뜻밖의 일로 생을 마쳤을 때
경애하는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허재복선생은 오늘도 주체적음악예술의 대오속에 영생의 모습으로 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