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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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첫 녀자국제레스링심판원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저는 레스링애호가예요. 지난 2019년 여기 그루지야에서 진행된 35살이상 세계로장선수권대회의 레스링국제심판시험에서 고국의 녀성심판원이 주심의 역할을 손색없이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후날 알아보니 이름은 최정복이고 지난해 2월에는 국제레스링심판원으로 되였다고 하더군요. 고국에서 첫 녀자국제레스링심판원이라던데 그에 대해 알고싶어요. (련꽃 – 그루지야 – 애호가)

답 - 지난해 2월 공화국의 녀자레스링감독이며 심판원인 대외경제성체육단의 최정복녀성이 우리 나라에서 첫 녀자국제레스링심판원이 되였습니다.

우리 공화국에서 녀자레스링은 2005년에 시작되였는데 중학교시절 기계체조선수였던 최정복녀성은 녀자레스링종목이 생기자 저도모르게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여 그는 대외경제성체육단 녀자레스링선수가 되였습니다.

그의 훈련지도를 맡았던 박현철감독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기계체조를 한 최정복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육체적준비가 좋았다. 이것은 그가 레스링기술을 빨리 익히는데 도움이 되였다.》

그는 좋은 운동감각과 이악한 노력으로 인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수생활을 시작한지 2년만에 그는 2007년 청소년선수권대회 녀자레스링 55kg급경기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쟁취한것을 비롯하여 여러 국내경기들에서 7개의 금메달을 포함한 10여개의 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그후 국가종합팀선수로 활약하면서 그는 2009년과 2011년 아시아레스링선수권대회 녀자레스링 55kg급경기들에서 각각 순위권에 입선하여 국제적으로도 실력이 높은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던 그는 훈련도중 부상을 당하여 더는 선수생활을 할수 없다는 의학계의 진단을 받고 경기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레스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년후 조선체육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화국의 녀자레스링종목의 첫 녀성감독, 심판원이 되였습니다.

그는 선수시절의 그 열정으로 레스링종목의 대를 이어갈 능력있는 선수들을 많이 키워냈으며 국내경기들에서 공정하면서도 정확한 심판활동을 벌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우기 그는 지난 2019년 10월 그루지야에서 진행된 35살이상 세계로장선수권대회의 레스링국제심판시험에서 자기의 실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습니다.

특히 남자레스링결승경기에서 주심의 역할을 손색없이 수행하는 그의 심판활동은 심판원들과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경기에서 그는 두 선수의 전술적의도를 제때에 판단하고 옳바른 위치선택과 즉시적인 결심채택으로 선수들의 동작채점을 신속정확히 내리고 여러가지의 형용법들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경기를 조종하였으며 관중과 선수사이의 경기호흡을 잘 맞추어나갔습니다.

경기후 세계레스링련합 위원은 최정복녀성의 심판모습을 록화한 동영상을 수험생들앞에 보여주면서 《심판동작들이 세련되고 오랜 심판원들의 능력을 릉가한다. 최정복은 오늘 레스링심판전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세계레스링련합에서는 지난해 2월 최정복녀성을 국제레스링심판원으로 등록하면서 6월에 진행하게 될 아시아청소년레스링선수권대회 심판원으로 정식 지명하고 초청장을 보내여왔습니다.

아쉽게도 세계적인 악성비루스의 급속한 전파로 하여 대회의 개최가 중단되여 실현되지 못했으나 앞으로 그의 심판사업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는 자못 큽니다.

오늘도 최정복녀성은 주체조선의 체육인으로서의 맡겨진 책임과 본분을 다해갈 불타는 열의를 안고 왕성한 정열과 패기에 넘쳐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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