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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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승마풍습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문 - 얼마전 인터네트를 통해 고국에서 설명절과 3. 8국제부녀절을 기념하여 진행한 승마경기를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승마풍습이 이처럼 오늘도 꿋꿋이 이어져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동적이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승마풍습이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하던데 그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쎄르게이 김 – 따쥐끼스딴 - 대학생)

답  - 승마운동은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온 우리 민족풍습의 하나입니다.

말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길들여온 집짐승의 하나로서 우리 나라에서 말을 부린 력사는 오랩니다. 고조선사람들은 구리로 말자갈을 만들어 말을 부리였으며 말치레거리도 만들어 말들을 장식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말타기를 제일 잘한것은 고구려사람들이였습니다.

상무기풍이 강하였던 고구려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말을 탈줄 알고 활을 쏠줄 알았으며 고구려에서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것이 생활상요구로, 또 인재선발의 평가기준으로 되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온달전》만 놓고 보아도 고구려사람들이 말타기를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3월 3일이면 락랑언덕에서 나라의 모든 무사들이 참가하는 사냥경기가 진행되였는데 온달은 이날 누구보다도 말을 빨리 몰아 경기에서 우승하였으며 고구려를 침공한 외래침략자들을 무찌르는 싸움에 참전하였습니다.

말을 탄 고구려사람들의 용감한 사냥모습은 고구려벽화무덤들인 춤무덤, 약수리무덤, 사냥무덤 등에도 잘 반영되여있습니다. 덕흥리무덤벽화에는 말타고 고정과녁에 활쏘기를 진행하는 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있습니다.

고구려사람들속에서 널리 장려된 말타기와 말타고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는 나라를 지켜 싸우는데서 절실히 필요한 용감성과 무술을 익히기 위한것이였습니다.

고구려사람들은 기병의 전투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말을 적의 타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보호시설과 말을 제어하기 위한 기구로서 등자(발디디개)도 도입하였습니다. 고삐를 쥐지 않고 말우에서 진행하는 활쏘기와 칼쓰기, 창쓰기는 등자를 어떻게 밟고 말을 자기 의사에 맞게 제어하면서 쟁기를 쓰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고구려말들은 키는 비록 크지 않아도 산을 잘 톺아오르고 힘이 셌으며 무거운 투구(마면갑)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무장한 말을 개마라고 하였고 개마를 탄 고구려기병을 개마무사라고 불렀습니다. 중무장한 고구려개마무사를 그린 무덤벽화로서는 4세기의 안악3호무덤(고국원왕무덤)과 강서덕흥리무덤벽화 등이 대표적입니다.

고구려의 상비무력중에서 기병은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력사기록들을 보면 《철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진격하면서 적을 들이쳤다.》 등의 자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구려에 중무장한 개마무사들의 집단이 하나의 대부대를 이루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고구려의 승마풍습과 승마에 필요한 말을 부리는 기구들과 말치레거리들은 백제와 신라, 가야에 널리 보급되였으며 지어 일본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구려시기의 승마풍습을 위주로 한 상무적기풍은 후세에도 계승되였습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에서는 건국초시기부터 고을들에서 용감하고 힘이 세고 날랜 젊은이들을 골라 궁마(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워주는것을 법으로 정하였습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고려에서 성행한 말타기와 활쏘기가 국가적으로 장려되였는바 국왕을 비롯한 봉건관료들은 《조선의 장끼는 말타기와 활쏘기》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민은 먼 옛날부터 전통적인 승마풍습을 련면히 이어오면서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단련하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국강토를 지켜냈으며 그 우수한 문화를 널리 전파시켰습니다.

오늘 조선로동당의 은정속에 훌륭하게 꾸겨진 미림승마구락부에서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승마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해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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