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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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설화의 왕》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얼마전 제가 듣자하니 고국에 《설화의 왕》으로 불리우는 선생이 있었다더군요. 저도 화술로 이름을 날리는게 희망이고 꿈이예요. 그 선생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유룡 – 재중 - 대학생)

답 – 그 선생은 우리 공화국의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김일성상계관인, 로력영웅, 인민배우 박섭선생입니다.

그는  해방후 서울에서 극단배우로 있다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울이 해방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에 안겨 비로소 자기의 예술적재능을 활짝 꽃피우게 되였습니다. 그는 전선지구경비사령부 문화공작대 대원(1950-1951),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1951-1988)로 사업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조국으로 돌아온 관오의 일가》, 《푸른 소나무》, 《교육자의 모습》 등입니다.

그후 그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높은 신임에 의하여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으로 사업하였습니다. 박섭선생의 배우생활에서 전성기는 그가 번역영화배우로 활약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초기에 배우들은 번역영화이니만큼 그 나라의 말억양과 표현방식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제나름의 생각에서 대사에 별난 억양을 붙이다나니 결국 우리 말도 아니고 외국말도 아닌 얼치기화술이 되고말았습니다.

그러한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말의 고유한 특성을 살릴데 대한 문제, 대사형상을 화면에 나오는 인물의 입놀림에 맞게 할데 대한 문제, 영화해설을 영화를 연구하고 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한 기초우에서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 식 번역영화형상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습니다.

박섭선생이 《설화의 왕》으로 불리울 정도로 남다른 화술기량을 소유할수 있은것도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빛나는 예지의 손길을 떠나 생각할수 없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기회에 화술에서 박섭, 오향문동무들을 따를 배우가 없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박섭선생의 화술에 대해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관중들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불러일으키던 그의 설화들입니다.

그는 혁명영화 《조선의 별》과 예술영화들인 《이름없는 영웅들》, 《민족과 운명》들에서 보여준것처럼 무게있으면서도 구성지고 부드러우면서도 지성적인 설화로 관중들을 주인공의 내면세계에로 바닥없이 끌고들어가군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섭선생은 얼굴보다도 목소리로 관중들의 마음속에 인상깊이 새겨진 화면뒤의 보이지 않는 배우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박섭선생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말까지 외국영화들은 물론 우리 나라 영화들에서도 대부분의 설화를 맡아 형상한 이 분야의 로장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섭동무가 대사형상을 특색있게 잘한다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큰 대회의 대표명단에도 친히 그의 이름을 써넣어주시고 공훈배우칭호와 인민배우칭호를 수여하도록 배려해주시였으며 주체81(1992)년 4월에는 김일성상계관인의 높은 영예까지 안겨주시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의 품속에서 박섭선생은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고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러시고도 못다 준 사랑이 있으신듯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고 조선혁명박물관에 자신의 잊을수 없는 전우들과 나란히 내세워주시였습니다.

박섭선생이 세상을 떠난지도 20여년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영원한 삶의 어버이품을 목메여 노래하며 오늘도 우리 인민의 귀전에 뜨겁게 메아리쳐오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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