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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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명화가 정영만선생의 스승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얼마전 동포의 집에 갔었는데 거기에 고국에서 가져왔다는 조선화가 걸려있었어요. 집주인의 말이 고국의 인민들속에 명화가로 널리 알려진 정영만선생이 그린 그림이라더군요. 훌륭한 인재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그를 키워낸 선생이 있었다던데 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주평 – 재중 - 회사원)

답 – 그는 인민예술가 정종여선생입니다. 호는 청계입니다.

그는 해방전까지 여러 전람회에 조선화작품들을 출품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생활과 떨어진 절간풍경, 꽃, 새, 풀과 벌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해방후 정종여선생은 서울의 성신녀자중학교와 배재중학교, 부산대광중학교 등에서 교원으로 있으면서 진보적인 미술창작활동을 벌렸습니다.

조국해방전쟁의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시기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온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따뜻한 품속에서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 교원, 강좌장으로,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선화분과 위원장으로 사업하였으며 주체67(1978)년부터는 미술가동맹과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주체적미술건설사상을 높이 받들고 조선화의 발전을 위하여 온갖 지혜와 재능을 다 바쳤습니다.

정종여선생은 비단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조선화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체43(1954)년부터 주체53(1964)년기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장으로 있으면서 주체미술의 주역들로 될 수많은 후비들을 육성하였습니다. 정영만, 정창모, 리률선, 리창 등 후날의 유명한 조선화의 중진들이 그의 제자들이였습니다.

정종여선생은 많은 후비들을 키워냈을뿐 아니라 조선화의 우월한 화법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연구사업도 적극 벌려 《채색화에 대하여》, 《묵화에 대하여》, 《채묵화에 대하여》, 《조선화재료에 대한 사용법》 등 일련의 교수요강들을 작성하였으며 조선화실기기초를 완성하고 조선화교육을 과학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중요한 성과들을 거두었습니다. 이와 함께 《혁명적인 채색화를 힘차게 발전시키자》, 《조선화분야에서 채색화발전을 위한 몇가지 의견》 등 조선화발전과 관련한 여러 론문도 활발히 집필하였습니다. 그는 조선화화가의 대렬을 결정적으로 늘이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과 지방에서 진행된 조선화실기강습을 여러 차례 조직집행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할 미술작품들을 전부 조선화로 창작하도록 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정종여선생은 몰골기법을 비롯한 다양한 기법의 능수였습니다.

그는 현실을 깊이 연구하고 묘사대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 힘썼으며 그것을 자기의것으로 소화하기 전에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나 늘 속사첩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른아침 이슬을 헤치며 모란꽃을 해부학적으로 파고들어 탐구하였고 해종일 양어장에서 잉어의 움직임을 관찰하였는가 하면 닭과 제비를 잡아놓고 털들을 세여보며 그 생태의 밑바닥까지 놓침없이 살피고 습작하는것은 그가 창작에 앞서 반드시 진행한 어길수 없는 공정이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붓은 대상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한 기초우에서 대담하고 정확하였습니다.

정종여선생은 조선화의 전통적기법에 충실하면서도 그를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켜 밝고 선명하며 섬세한 형상을 창조하였습니다. 선묘법, 채색법, 점묘법 등 묘사기법들을 형상창조에 능숙하게 적용하였으며 특히 조선화의 진채세화기법, 몰골기법으로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도 해내외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조선화 《청봉의 아침》, 《농민들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비롯하여 《바다가 보인다》, 《5월의 농촌》,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용해공들》, 《풍어》 등이 있으며 그밖에 화조화와 풍경화들도 많이 그리였습니다. 특히 조선화 《5월의 농촌》,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등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평가를 받았으며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는 국제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여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미술후비육성사업에서 세운 공로로 그는 주체50(1961)년에 부교수의 학직을 수여받았으며 미술창작에서 이룩한 공로로 주체63(1974)년에 공훈예술가, 주체71(1982)년에는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는 한생에 걸쳐 1 900여점의 조선화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조선미술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박물관에 국보작품으로 소장되고 이딸리아, 프랑스 등 서유럽나라들에도 널리 소개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사망한지 이태후인 주체75(1986)년 12월에 정관철, 정종여 2인전람회를 열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조국해방전쟁시기부터 주체70(1981)년사이에 창작한 그의 작품들가운데서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6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되였으며 수많은 관람자들이 찾아와 로화가를 추억하였습니다.

화가는 오래전에 우리곁을 떠났으나 민족문화를 중시하는 조선로동당의 정책에 의하여 조선화의 기법은 오늘도 꿋꿋이 이어지고있습니다. 정종여의 가정만 놓고보아도 아버지에게서 붓쥐는 법을 익히던 그의 맏아들 정희진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실장으로, 공훈예술가로 재능을 떨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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