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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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첫 인민배우에 대해 알고싶어요

 

문 – 조국의 예술계에는 진실한 연기형상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관록있는 배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가운데 조국의 예술인들중 처음으로 인민배우칭호를 수여받은 황철선생도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선생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영인 – 재중 – 예술인)

답 – 황철선생은 무대나 화면에 나타나기만 하면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유명한 연극배우였습니다.

선생은 1912년 1월 충청남도 청양군의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량부모를 다 잃고 생활의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했지만 어려서부터 연극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었던지라 배우가 될것을 꿈꾸어왔습니다.

그 희망을 안고 《조선연극사》와 동양극장산하의 극단인 《청춘좌》 등에 들어가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선생은 그후 1939년 9월 《아랑극단》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였습니다. 해방후에는 미제와 그 주구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반대하여 지하투쟁을 벌리는 한편 극단명칭을 《락랑극희》로 고치고 진보적인 연극활동을 적극화하였습니다. 이 시기 선생은 적들의 검거선풍에 걸려 연극배우생활은 물론 자유로운 생활도 할수 없게 되였으며 무대를 떠나 은신해있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37(1948)년 4월 황철선생은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에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석회의후 평양에 남아 무대예술창조사업을 하고싶어하는 그의 소원을 헤아려주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지난날 식민지예술인으로서 굴욕적인 연기생활을 하여온 이름없는 배우가 수령님의 넓고도 따뜻한 품에 안겨 보람찬 예술창조활동을 벌릴수 있게 되였습니다. 국립극장(당시) 배우로 된 그는 연극 《항쟁의 노래》에 출연하여 맡겨진 역형상을 훌륭히 창조해냄으로써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을 힘있게 고무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로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일군들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황철선생의 일가식솔을 데려오도록 하시고 그들이 왔을 때에는 살림집까지 배려해주시였습니다. 선생은 한 연극배우의 재능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빛내여가도록 아낌없는 사랑과 배려를 거듭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마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극장의 련습실과 무대에서 침식을 하면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관철하는데 이바지할 연극창조사업에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그후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위문공작대에 망라되여 예술활동을 벌리던 황철선생은 적비행기의 폭격에 오른팔을 잃게 되였습니다. 황철선생이 중상을 입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빨리 치료대책을 세우고 입원시켜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고 하시며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으며 그후에도 선생이 전과 같이 연기를 할수 있게 의수를 잘해주어야겠다고 하시며 외국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따뜻한 사랑이 있어 선생은 한팔이 없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연극창조활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갈수 있었으며 그 나날에 선생의 재능과 열정도 더 활짝 꽃펴났습니다.

황철선생은 주체41(1952)년에 공훈배우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주체44(1955)년에는 우리 나라 예술인들가운데서 처음으로 인민배우칭호도 수여받았습니다.

그후 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배려속에 국립극장(오늘의 국립연극단) 총장, 교육문화성 부상, 국립연극극장(오늘의 국립연극단) 총장으로 사업하였습니다. 황철선생은 풍부한 생활체험과 예술적자질을 가지고 생애에 많은 연극작품들을 연기, 연출하였으며 소설랑독에서도 독특한 기교를 보여주었습니다. 《항쟁의 노래》, 《백두산》, 《리순신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연극들에서 주역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에는 고생도 많이 하고 공로도 있는 동무인데 꼭 살리자고, 우리가 사랑하는 동무인데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고 하시며 약도 제일 좋은것으로 쓰고 정성을 다해서 그를 꼭 살려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끝내 숨을 거두었을 때에는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다고 못내 애석해하시며 신문에 부고도 내고 장례를 사회장으로 성대히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의 자녀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고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도록 뜨거운 배려를 돌려주시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연극예술발전에 기여한 황철선생의 예술적재능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는 한팔이 없었으나 연기를 아주 잘하였다고, 화술도 독특하였다고, 재능있고 훌륭한 배우였다고 추억하시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고 조국통일상도 수여하도록 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선생은 애국렬사라는 영생의 이름으로 조국과 더불어 길이 남게 되였습니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이 있어 황철선생은 나라의 첫 인민배우, 관록있는 연극배우로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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