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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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행복

 

8년전 9월 어느날 이른 아침이였습니다.

따르릉-따르릉하고 울리는 자명종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빨리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남편과 함께 출근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던 저는 부지중 《아-》하는 신음소리를 터쳤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자신이 두다리를 상하고 이미 로동능력상실진단을 받은 몸이라는것을 상기했습니다. 유명무실해진 다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저의 눈귀로는 저도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였습니다.

이윽고 장림광산에서 측량공으로 일하는 남편도 출근길에 올랐고 맏자식도 학교로 갔습니다.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절로 설음이 북받쳤습니다.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생각으로 어깨는 세차게 오르내렸습니다.

《며늘아기야, 너무 울면 몸에 해로우니라.》

백발을 머리에 얹은 시어머니가 저에게 하는 위안의 말이였지만 정깊은 시어머니의 살뜰한 말도 한창나이에 불구가 된 저의 마음을 달래는데는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었습니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할수 없는 그런 몸, 그런 삶이 어디에 필요하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때없이 저를 괴롭히는것이였습니다. 저의 하루하루는 이런 쓰라린 고민과 몸부림속에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김기근지배인을 비롯한 광산의 일군들이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머님, 우리 〈꾀꼴새〉의 건강이 어떤지 알고싶어 찾아왔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도 자주 찾아오던 일군들이였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새로 나온 소설책들과 갖가지 보약재를 안겨주며 치료에 전념하라고, 그래야 다시 노래도 부를수 있다면서 힘을 주고 돌아가군 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웃음도 노래도 많은 저를 가리켜 광부들은 광산의 꾀꼴새라고 정담아 불러주군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를 잊지 않고 때없이 찾아오는 그 진정이 고마왔지만 그들을 볼 때면 보람찼던 로동의 나날들이 떠올라 가슴이 더 쓰려나군 하는것이 당시 저의 심정이였습니다. 그날도 보약재를 비롯한 여러가지 물자를 성의껏 마련해가지고 온 일군들은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모든것이 다 귀찮게만 여겨졌습니다. 뭇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며 남편과 나란히 오르던 출퇴근길을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되였다는 생각, 나이많은 시어머니에게 가정을 돌봐야 할 막중한 부담을 지워주었다는 괴로움이 시종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저의 일로 하여 잠 못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미처 알수 없었습니다.

제가 후날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로 그 시각 광산에서는 저의 가정방문정형을 놓고 책임일군들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오늘 나는 경애동무가 바라는것이 무엇이고 그를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알게 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것은 다리를 잃은 슬픔보다도 사회에 아무런 보탬도 줄수 없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두다리가 되여줍시다.》

며칠후 저는 일군들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온 삼륜차에 몸을 싣고 광산을 돌아보게 되였습니다. 오래간만에 다시 찾게 되는 일터였습니다. 정깊은 광산의 전경에서 이윽토록 눈길을 떼지 못하는데 출갱하던 광부들이 달려왔습니다.

《경애동무, 건강은 좀 어떻소?》

《이건 동무가 좋아하는 들국화요.》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야릇한 냄새에 나의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습니다.

얼마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광산의 한 일군이 말했습니다.

《이제부턴 한주일에 한번씩 올라와보는게 어떻소?》

순간 저의 가슴속에 기쁨의 환희가 솟아올랐으나 그것도 한순간이였습니다.

《나야 이젠 광산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무슨 소릴 하오. 우리 종업원명단에는 여전히 경애동무의 이름이 있소.》

저의 이름이 종업원명단에 있다는 소리에 저는 놀랐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눈길로 일군을 올려다보았지만 일군의 진중한 눈빛은 그것이 진실임을 말해주고있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나같은 장애자는 이미 해고되였을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주고있는것인가.)

그날밤 저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 정든 나의 일터, 고마운 동지들,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며칠후부터 저는 광부들에게 제손으로 장갑을 만들어보내주기 위해 재봉기를 마주했습니다. 사실 엎드린 상태에서 손으로 재봉기를 돌린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얼마 안있어 허리가 쑤셔났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지만 저는 재봉기를 돌리고 또 돌리였습니다.

신고끝에 장갑 한컬레가 만들어졌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별로 큰일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까지 수년세월 만들어보낸 장갑들은 광부들이 누구나 찾는 애용품이 되였고 이것은 그대로 광물증산에로 이어지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집단의 뜨거운 동지적사랑에 떠받들리여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사회와 집단을 위한 길에 땀방울을 아낌없이 바치며 삶의 희열을 한껏 느끼고있습니다. 제가 다시 찾은 행복, 이것은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사회제도가 안겨준것입니다.

장림광산 로동자 윤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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